2024년 9월 22일 일요일

나를 따라 오려거든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고 주님은 제자들에게 물어보십니다.

이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며 고백합니다.

이와 같이 고배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참된 제자가 되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예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주님을 따라가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1.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부인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더 이상 저 자신이 저의 삶의 주인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저희의 육신은 세상의 소욕을 따라 가려하기에 연약합니다.

자신을 부인하며 잊어버려야 합니다. 이제까지 저 자신의 삶의 주인은 바로 저였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행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의 제자가 되면 이제는 제 삶의 주인은 제가 아니라 주님이 바로 제 삶의 주인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저 자신이 더 이상 저의 삶의 주인이 아니고 주님이 주인이시며, 주인인 주님이 하고자 하는 대로 이끌려 나가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온전하게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37: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주님 앞으로 나아감에 방해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곧 자기 중심적이며 제 자신의 이익이 우선하는 이기적인 자아입니다자신을 위주로 자신만 생각하는 자기 만족, 불순종, 욕심, 교만, 자존심, 기득권과 같은 이기적인 자아 (Egoism of sefl-ism)는 죄로 우리를 이끕니다.

-       자신의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권리를 포기하며 나를 부인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무척이나 손해보는 것 같습니다.

나 중심의 삶이 아니라 예수님 중심의 삶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나의 이기적인 자아의 비중이 적어지고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더욱 나타나야 합니다.

 

자신을 부인함은 십자가에서 죽음을 의미합니다.

육신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자아의 죽음을 뜻합니다.

주님 앞에 나아감에 방해되는 것으로부터 저희의 육신이 죽어야 합니다저희의 육신이 죽었다는 것은 저희의 본성을 부인하고 잊어버려야 함을 의미합니다

제 안에는 성령께서 내주하십니다. 내 안에 성령께서 온전히 거하시도록 저의 본성은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고전15:31) 나는 날마다 죽노라하며 선포하였습니다.

성령님 저희를 도우사 날마다 다시 살아나는 저희의 자아가 죽어 저희 안에서 주님께서만 온전하게 나타나게 하옵소서.


 

2.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 당시의 십자가 형벌은 매우 가혹했습니다. 십자가 형벌을 받는 이는 십자가가 세워지는 곳까지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가야 했으며 죽을 때까지 십자가에 매달려 있어야 했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반드시 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영광 가운데 이 세상에 오셨지만, 저희 모든 이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죽어야 했습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며 십자가가 없는 예수님을 저희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이 없었다면 예수님은 저희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지 못합니다.


1)    십자가를 진다는 것을 희생을 의미합니다.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나 한사람을 희생함으로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나를 지키겠다고 뻣뻣하게 머리를 곧게 세우고 있다면, 저희는 열매를 결코 맺을 수 없습니다성경을 보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희생한 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야곱: 네 아내를 얻으려고 20년간을 머슴처럼 일했습니다. 야곱에게는 네 아내와 자녀가 야곱이 지고 가야 할 짐이었습니다.

요셉: 형제들로부터 버림받고 종노릇을 해야 했습니다.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비록 총리가 되어 십여 년간 나라를 다스렸지만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버지 야곱을 찾아 갈 여유가 없었습니다.  

제자들: 예수님의 제자들은 순교하였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씨앗이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순교하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십자가였습니다. 거부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하나의 씨가 되어 땅에 떨어졌습니다.


주님의 제자인 저희 역시 감당하고 지고 가야 하는 짐이 있습니다.

저희 각자는 지고 가는 크고 작은 짐이 있습니다. 각자가 진 십자가를 통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헌신하며 이웃을 온전하게 사랑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렇지만 어떤 짐은 너무나 버겁고 무거워 내려놓고 싶지만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짊어진 짐이 무거워 힘들어하는 저희를 보시며 주님은 너의 짐을 내게 맡기라 말씀하십니다.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가 지고 가는 짐에는 불안과 염려가 있습니다.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벧전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2)     자기 십자가를 지기위해서는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심에 즉각 순종하셨습니다. 제자들 역시 순교함에 순종하였습니다.

순종을 통하여 저희는 주님에 대한 사랑의 확신과 기쁨과 주님의 마음을 배웁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하는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는 길에는 멸시와 조롱이 있으며 나를 버려야하는 희생이 동반합니다.

 

많은 것을 잃는 손해가 있어도 예수님을 따르십니까?

가족에게 버림받을지라도 예수님을 따르겠습니까?

먹고 사는 것에 지장이 있을지라도 예수님을 따르겠습니까?

생명을 잃는다 해도 예수님을 따르겠습니까?

 

십자가가 없는 삶이 가치가 있으며 편안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십자가보다 세상 오락에 마음이 가 있는지요.

 


3.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성화의 과정은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날마다 날마다 저희는 자신을 부인하며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행해야 합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과정은 하루에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잘 지고 갔다 할지라도 내일 잘못할 수 있습니다. 오늘 잘하였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희가 천성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주님을 닮아가는 길을 가야 합니다.

어설프게 주님을 따르겠노라 다짐을 하지만 그때 뿐입니다. 날마다 예수님을 따라가며 주님을 닮은 종이 되겠노라 저희는 단호하게 결단해야 합니다.

(21:5-6) 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히브리 종을 사면 여섯 해 동안 섬기지만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자유인이 되지 않고 상전과 처자를 사랑함으로 자원하여 종이 되기를 결단하면 귀를 뚫어 종신토록 종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자유를 부인하며 주어진 권리를 포기하고 주인인 주님 앞으로 나아가 주님의 종이 되겠다고 단호하게 결단해야 합니다. 그래야 큰 흔들림 없이 꾸준하게 주님을 닮아가는 인생 여정길을 갈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저희는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주님을 따라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은혜로 저희는 모든 죄를 용서함 받고 구원의 자녀로 인정해주셨습니다.

저희 역시 저 자신을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려 합니다.

천성에 이르기까지 저희 자신을 부인하며 저희가 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를 지기를 간구하며, 주님을 따라가겠노라 단호하게 결단합니다.

날마다 주님을 닮아가도록 인도하시는 주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4년 9월 15일 일요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9:18-20)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니이다 하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8:29)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이런 물고기 문양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익투스 (ICQUS, IChTHyS, 이에수스 크리스토스 테우 휘오스 소테르):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이는 베드로의 믿음의 고백이며, 핍박을 심하게 받던 초대 기독교인의 상징이며 암호로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며 묻습니다. 제자들은 어떤 이는 세례 요한 혹은 엘리야 혹은 선지자의 하나라고 답합니다. 이에 예수는 다시 제자들에게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며 묻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님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그리스도: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뜻을 가진 히브리어의 메시아 70인역에서 헬라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은 메시아의 탄생과 십자가의 고난과 사역에 대하여 참으로 많은 곳에서 예언합니다.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이니라

(7:14)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구약을 보면 기름 부음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제사장 혹은 왕으로 세웠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육신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천국복음을 선포하는 곳마다 죽은 자들이 살아나며 귀신들린 자가 고침을 받으며 병든 자가 나음을 입으며 죄가 사해지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모든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제물로 드려졌습니다. 이는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합니다.  

예수가 구약 (타나크)에서 예언된 메시아 즉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이심을 믿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아직도 유대인을 포함하여 많은 이들이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이심을 부인하며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과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목수인 아버지를 이어서 목수를 하고 있으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구약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놀라운 말씀을 전하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많은 이들의 굶주림을 해결하였으며, 병든 자를 낫게 하며, 귀신들린 자를 고치는 놀라운 기적을 베푸는 것을 보고 세례 요한이나 선지자 중의 하나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내가 네 죄를 사하노라하시며 죄인을 용서하는 광경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머리 둘 곳도 없어 이곳 저곳을 떠돌며, 죄인이라 간주하여 멀리하던 창녀와 세리와 같이 지내며, 유대 율법과 반대되는 일도 거침없이 하며, 성공한 사람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런 예수님을 구약에서 예언한 기다리고 있던 그리스도요 메시아라 결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면서 예수님을 가까이서 보며 보통 사람과는 매우 다른 점을 보고 느낄 수 있었으며, 마침내 베드로는 예수님은 과연 지금까지 기다려온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같이 사역하던 열한 제자는 확신을 갖고 베드로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를 보시며 기뻐하십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메시아나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 못하지만, 베드로가 자신의 실체를 보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하며 고백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의 큰 믿음에 기뻐하시며 교회의 반석이 되는 축복을 주십니다.

(16:18-19)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느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따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살아 계신 하나님

(1:4)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3:14)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하나님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죽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우리의 생각에서만 존재하는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영원토록 존재하시는 하나님지금도 저희의 삶 가운데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또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저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의 관심은 바로 저에게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주님은 어떤 존재이십니까?

 

예수님이 저에게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물어보시면 어떻게 답변할 수 있습니까?

나에게 주님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어떤 주님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제자들과 사람들은 주님을 세례 요한, 엘리야, 혹은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많은 사람과 교제를 나누며 그들에게 많은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 중의 어떤 이는 예수님을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주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의 소문을 듣고 찾아 온 이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아직 예수님의 참다운 모습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의 표면적으로만 보이는 것만을 봅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은 예수님이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구주이심을 애써 부인합니다.

아직도 많은 곳에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여 배척하며 부인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라 불리는 것을 많이 들었지만 결코 인정하지 않으며 마음에 담지 못합니다.

  

Who is Jesus to you?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마 저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답변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하루 일과를 보면 예수님이 나에게 어떤 분임을 압니다.

주일날 예배당에 가서 예배를 드리며 예수님을 잠깐 생각하는 것으로 만족하십니까?

교회 문밖에 나서면 예수님이란 존재를 까마득하게 잊고 멋대로 사십니까?

예수님을 알고 싶어 성경을 읽으시는지요?

진정과 신령으로 예배를 드리시는지요? 그렇지 않다면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순간 순간마다 예수님과 동행하며 자체가 예배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것을 많이 가졌다고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은 인생은 결코 아닙니다.

저희는 고쳐야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특히 예수님과의 관계가 더욱 고쳐져야 합니다.

많이 가지지 못했지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섬기며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인생은 참으로 축복받은 인생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고 물었을 때, 그는 망설이지 않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택함을 입어 제자로서 동고동락하며 그는 예수님에 관하여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마음에 새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약에 예언한 메시아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섬기며,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거룩하며 기쁘고 보람된 인생을 살았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되었을 때, 저의 삶 또한 변화됩니다.

제 안에 늘 계시는 주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 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