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요일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눅6: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As you would that men should do to you, do you also to them likewise.

주님은 저희에게 가장 큰 두 계명을 주셨습니다.
(마22:37-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저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 삶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면 저희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하지만 나의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것에는 막막해하며 서툴어 합니다. 주님은 그런 저희에게 어떻게 이웃 사랑을 해야 하는 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마5-7장에서 산상수훈를 선포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자녀의 특권에 대하여 말씀하시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 팔복
  • 빛과 소금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원수를 사랑하라
  • 주기도
  •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 보물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
  • 염려하지 말라 – 믿음이 작은 자들아
  • 비판하지 말라 – 상대의 티보다 자신의 눈 속의 들보를 보라
  •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 기도의 중요성
(마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 말씀은 기독교의 황금률 (Golden Rule)로 알려진 말씀이며 기독교 윤리의 핵심이며 인간관계의 가장 근본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은 많은 종교에서도 가르칩니다.  
  • 유교: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
  • 이슬람: 나를 위하는 만큼 남을 위하지 않는 자는 신앙인이 아니다.
  • 유대교: 네가 싫어하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
  • 힌두교: 내게 고통스러운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라.
  • 불교: 내게 해로운 것으로 남에게 상처 주지 말라.
하지만 예수님은  ‘하라’하시며 긍정적으로 가르치십니다. 
부정적인 어조와 긍정적인 어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행하기 위해서는 저희가 먼저 표용하며 관대해야 합니다.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차이를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로부터 인정받고, 존경받으며, 인간다운 대접 받기를 원합니다.
저희는 다른 이가 저에게 이렇게 해 주기를 원합니다.
  • 정직하게 저를 대해주기를 원합니다.
  • 관대하게 저를 대했으면 합니다.
  • 가식적이 아니라 진실적으로 저를 대해주기를 원합니다.
  • 때로는 부족한 저를 인내를 갖고 대하기를 원합니다.
그런 아버지의 자녀인 저희 역시 풍요롭게 저희 주변의 사람들에게 관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저희 각 사람을 지으시면서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부족해 보여도 하나님의 눈에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피조물입니다. 
그런 저희를 살리시기 위하여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저희를 대속하셨습니다.


주님은 저희를 보시며 대접을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서 베풀라고 가르치십니다. 
  1. 이 황금률의 핵심은 남이 해주기를 바라는 그것을 내가 먼저 실행하라는 것입니다.
대접을 받기를 원하시면 먼저 행하세요. 남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바로 그것을 저희가 먼저 실천해야 합니다. 실천해야 하는 것들이 저희 주변에는 많이 있습니다.

  • 존중받기를 원하시면, 먼저 그를 존중하세요.
  • 인정받기를 원하시면, 먼저 그를 인정하세요.
  • 칭찬받기를 원하시면, 먼저 그를 칭찬하세요.
  • 사랑받기 원하시면, 먼저 그를 사랑하세요.
  • 섬김받기를 원하시면, 먼저 낮은 자리로 가서 그를 섬기세요.
  • 인사받기를 원하시면, 먼저 그가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사회적 위치가 낮아도 그에게 다가가 인사하세요.
  • 진실하게 저를 대하기를 원하시면, 먼저 그를 가식 없이 진실하게 대하세요.
  • 이해받기를 원하시면, 먼저 그를 이해하세요.
  • 용서받기를 원하시면, 먼저 그를 용서하세요.
  • 비판받지 않기를 원하시면, 먼저 그를 비판하지 마세요.
  • 정죄 받기를 원치 않으시면, 먼저 그를 정죄하지 마세요.
  • 존경받기 원하시면,  비록 나보다 지위가 낮아도 어려도 무식해 보여도 먼저 존경하세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황금률은 수동적이 아닙니다. 
먼저 내가 적극적으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행함을 요구합니다.
누가 나한테 이렇게 했으니, 나도 행하여야겠다가 아닙니다. 내가 먼저 솔선해서 행함을 요구합니다.
  1. 나의 판단의 기준이 과연 옳을까 생각해야 합니다.  
저희는 다른 이를 보며 나의 기준에 맞춰 판단합니다. 그들 역시 저를 보며 그의 기준으로 저를 판단합니다.

현재 80억명 이상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중에 저와 똑 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지문이나 눈의 홍채가 많은 사람 가운데 같은 이가 하나도 없듯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준은 저마다 다릅니다.  

그런데 각양각색의 그들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기에 많은 어려움으로 부딪힙니다. 
상대방을 이해할 때 나의 기준이 아니라 그의 입장에서 그의 형편에 따라 생각하도록 노력해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너무나 자주 옳다고 생각하는 데에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모든 것이 옳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의 가치관과 기준은 항상 옳지 않을 것입니다.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기준이 아니라 진리이며 소망이신 말씀에 기준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형제를 비방하며 판단하는 자에게 경고하십니다.
(약4:11-12)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과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시기도 하시며 멸하시고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형제를 판단하고 비판하는 자를 하나님은 재판관이라며 책망하십니다. 
저희의 선악을 판단하는 재판관은 저희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 뿐이십니다.  저희가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은 제 자신이 하나님의 위치에 서있다는 것을 말하며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저희의 교만입니다.
  
사실 인간관계는 어렵습니다. 
열 가지 잘하다가도 한 가지를 잘못하면 관계는 허물어집니다.  
주님은 그런 저희에게 주님의 뜻 가운데 인간관계를 개선하는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자녀인 저희가 먼저 베풀며 대접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대접하다’는 ‘serve’, ‘treat’과 같은 단어가 사용되는데, 본문에서는 ‘do’라는 동사가 쓰이며 능동적인 행함을 말씀합니다. 
(약2:15-17)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로다
 
듣기만 하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면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들었으니 저희 마음에 깊이 새기고 기회가 될 때마다 먼저 베품을 행하여야 합니다.
대부분의 저희는 남에게 베풀 때에 그들 역시 저에게 베풀기를 원합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남에게 베풀 때에 그들로부터 댓가를 바라지 말고 베풀라고 말씀하십니다.
(눅14:13-14)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조건없이 베푼 좋은 예가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눅10:30-37)
한 사람이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제사장, 레위인과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갔는데 그중에 여행하던 사마리안 사람만이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상처를 싸매어 주고 먹을 것을 먹이고 주막으로 데려가 돌보아 주었습니다. 다음날 주막 주인에게 돌보아 달라 부탁하며 돈을 건냅니다.
주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시고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겠느냐 묻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자비를 베푼 자라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십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소위 종교인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불쌍한 처지에 있는 이를 돌보지 않고 모른척하고 제 갈 길을 갔습니다. 그렇지만 유대인도 아닌 사마리아인은 불쌍한 이를 보자 자신의 소유로 그를 돌보며 먹을 것을 주며 잠잘 곳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는 곤경에 처한 이가 자신에게 갚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베푸세요.
선행을 베푸세요.
그들이 나에게 이렇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하는 것들을 먼저 능동적으로 베푸세요.
하나 주었으니 그로부터 하나 혹은 그 이상을 되돌려받으려 하지 마세요.
오히려 먼저 그에게 베풀고,  베풀었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세요. 
나의 기준이 아니라 그의 기준으로 생각해 보세요. 많은 것들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댓가를 바라지 않고 이웃에게 배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은 저희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저희가 먼저 그들에게 대접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저희가 주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행하면 서로가 인격적으로 대하며 관용을 베풀게 되어 저희 주변에는 사랑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그곳이 곧 저희가 앞으로 경험하게 될 천국의 모습일 것입니다.
저희가 어디에 있든지 주님의 자녀로서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옵니다.
저희를 도와주옵소서.
저의 이기적인 모습이 나타날 때마다 깨우쳐서 변화하게 하옵소서.
저 역시 그들처럼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할 때가 있음을 잊지 말도록 저를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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