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3일 일요일

마르다야 마르다야

(눅10:38-42) 그들이 길을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으로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르다와 마리아를 통하여 저희는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마르다는 음식을 준비합니다. 이는 육적인 행동이며, 마리아가 말씀을 경청하는 것은 영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가르침을 통하여 영적인 것이 육적인 것보다 항상 중요한지를 저희는 생각하게 합니다.  
말씀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영적인 것이 육적인 것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바로 전에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가 기록되어 있고 이어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에서 누가 나의 이웃인지를 가르치며 사랑의 실천에 대하며 말합니다.
그리고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에서는 가장 가까운 이웃에게 어떻게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마르다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마리아를 자비로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놓치고 불평합니다.  

주님은 이를 깨우쳐 주십니다. 불쌍한 마음으로 자비를 베풀어야 할 대상이 마리아임을 일깨워주십니다.
 
주님은 사마리아 인의 비유를 통하여 누가 나의 이웃이며 도움이 필요한 그들에게 불쌍한 마음으로 자비를 베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어서 마르다와 마리아를 만납니다.
 
  1. 마르다
예수님과 일행이 집에 왔으니 음식준비도 해야 하고 돌보야 할 것도 많아 마음이 분주합니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정신없이 바쁜데 마리아를 보니 도와줄 생각은 않고 주님 곁에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을 보고 여러 가지 일로 분주한 마르다는 예수님에게 마리아에게 자신을 도와주라 말해달라고 불평합니다. 

  • 이웃 사랑
(38)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예수님을 따름에는 희생을 각오해야 헸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였습니다. 그 당시 대놓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유대사회로부터 단절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마르다는 예수님과 그 일행을 초청하고 열심히 주님과 일행을 대접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합니다.
 
주님은 바로 전에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를 통하여 이웃을 불쌍한 마음으로 자비를 베풀며 이웃 사랑의 실천에 대하여 가르쳐셨습니다.
 
예수님 역시 이웃 사랑을 실천하시며 헌신하셨습니다.
(눅22: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예수님은 자신을 섬기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저희도 섬김을 받는 갑의 위치가 아니라 섬김을 베푸는 을의 자리로 내려 가야 합니다.
 
  • 일하지 않는 마리아를 보고 불평합니다.
(40)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마르다는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하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손님으로 와서 이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봉사하며 여러 일로 마음이 분주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마리아를 보니 그녀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집중해서 듣고 있습니다. 그런 마리아를 보며 왜 자신을 돕지 않나 하며 불평합니다. 마르다는 자신과는 다른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는 마리아를 판단하였습니다.
 
불평을 한 이유는 상대방을 나의 기준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상대방이 하지 않기에 불평 불만이 일어납니다. 
불평은 결코 성령의 선한 열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일을 한다고 하면서 불평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며 헌신하는 자들은 불평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 많은 일을 준비하느라 염려하며 근심합니다.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41)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많은 일로 분주합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면 평안할 터이지만, 가지 많은 나무가 잔잔할 리가 없듯이 어떤 일은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 마음 한구석에 앙금으로 남아있어 편안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대접하는 일은 기쁜 일입니다. 하지만 마르다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로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는 욕망이 앞섭니다. 염려하고 근심하는 원인이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때문에 마음이 분열이 되어 염려하고 근심합니다.
 
주님은 이를 가르쳐주십니다.
(42) 한 가지만으로도 족하다.
 
마르다가 손님을 기쁘게 하려고 많은 음식을 준비하지 않고 한 두 가지의 음식만 준비했다면 마르다는 불평하지 않았을 겁니다.  
 
주님 앞에 나아감에 도움이 되는 것이 '간단함 혹은 단순함'입니다. 
세상의 분주한 일로 얽혀 있다면 주님 앞에 나아가기가 힘이 듭니다.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머리속에는 여러 잡음으로 가득해 이것 저것이 생각이 나서 주님께 집중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주님 앞에 나아가려면 저희의 삶이 단순해져야 합니다.
 
  • 주님의 사랑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도 마르다야 마르다야
주님은 염려하며 근심하고 있는 마르다를 보시며 ‘마르다야 마르다야’ 하며 이름을 두 번 부르십니다. 

주님은 마르다를 다그치기 위하여 큰소리로 책망있는 어조로 부르지 않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아마도 마르다는 주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 번 부르는 것을 들으며 따스함과 사랑과 평안을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주님은 어려움에 처한 베드로와 사울을 깨우치려고 이름을 두 번 부르시며 주님의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눅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행9:4)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주님은 자비로움으로 마르다를 쳐다보시며 마르다에게 평강을 주시며 위로하십니다. 
염려하고 근심하던 마르다는 자신을 부르는 주님의 따뜻한 사랑으로 불평하며 근심하고 염려하던 마음이 눈 녹듯 사그러져 들었을 겁니다.
 
주님은 저희가 어려움 가운데 있으면, 저희의 이름을 두 번 부르시며 저희를 위로하십니다.
예수님은 봉사하고 있던 마르다에게 잘못하였다고 책망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저희의 중심을 보십니다. 진심으로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며 봉사할 때에 주님은 이를 인정하시며 기뻐하십니다.
 
 
  1. 마리아
(39)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예수님 당시에 여자와 남자는 철저하게 구별했습니다. 
지금도 통곡의 벽에 가면 여자가 가는 구역과 남자가 가는 구역이 정해져 있습니다. 
여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남자가 모인 공간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있는 공간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를 받아들이시고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주의 말씀을 들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밖은 분주하지만 마음을 정리하고 주님 앞에 나아가 발치에 앉아서 주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며 마음에는 평안함이 오며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차단된 주님과의 대화의 창구가 열려집니다.  
 
(42)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마리아가 주님 곁에 앉아서 말씀을 경청하였던 것은 영으로 성장하여 할 시간이었습니다.
저희 역시 저희의 영이 성장하여야 한다면 주님 발치에 앉아서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마리아가 말씀을 듣기로 작정하고 주님 곁에 머문 것은 주님께서 허락하신 마리아의 권리입니다.
마르다가 음식 준비하고 손님을 대접한 것이 그녀의 권리이었듯이, 마리아가 선택한 말씀을 배우는 권리도 귀중한 것입니다.
  

헌신하고 봉사하는 마르다가 잘못되고, 말씀에 열중하는 마리아가 올바른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마르다의 섬김이나 마리아의 말씀에 집중함 중에 어느 한 쪽이 더 좋은 것을 비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1. 각기 자신의 방법대로 예수님을 섬김에 서로 존경하고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주님은 봉사하며 헌신하는 것은 잘못되었고, 말씀 듣는 것이 좋은 편이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마리아는 말씀 듣는 것을 택하였고, 마르다는 봉사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섬기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나와는 다르다고 불평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불평하다보면 내 안에서는 미움이 싹이 트며 분열하게 됩니다.  
 
2. 우리가 무엇을 택하든지 그 중심에 주님이 계셔야 합니다.   
저희가 무엇을 하든지, 말씀을 듣든지, 헌신과 봉사를 하던지 그 중심에는 주님이 계셔야 합니다. 
나를 나타나기 위하여 헌신하고 봉사하게 되면 그때뿐인 영광을 받으며 이내 염려와 불평이 나를 감싸게 됩니다. 

말씀과 섬김은 둘 다 대등하게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요소입니다.
마르다가 하는 일은 덜 거룩하고 마리아가 말씀에 집중하고 있이 더 거룩함을 알려 주신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의 중심에는 주님이 있어야 하며, 가까운 이웃을 바라보며 그의 입장에서 그를 더욱 사랑해야 하는 것을 알려 줍니다. 
 


주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하여 나의 이웃이 누구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통하여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을 따뜻한 마음으로 배려하며 내 뜻대로 하지 않는다고 하여 미워하고 불평하지 말아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를 통하여 누가 나의 이웃인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통하여 가장 가까운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여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십니다.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을 나의 기준대로 판단하지 말고 그를 존중하며 그의 기준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옵소서.
또한 저희가 말씀을 듣거나 봉사하며 헌신하는 모든 일의 중심에는 주님이 항상 계셔야 함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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