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1일 일요일

네 깃으로 나뉜 주님의 옷

(19:23)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그당시의 관례로는 십자가에 달린 죄인의 옷들을 병사들이 나누어 가졌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옷들을 나누어 가지는 네 병사들. 그리고 속옷은 제비 뽑기를 해서 한 병사가 가졌다.

영어성경에는 속옷을 “coat” “upper garment” 혹은 “under garment”라 번역이 되었다.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속옷이라 생각하면 될 것같다. 속옷을 포함한 모든 옷들을 나누어 가졌으니 주님은 발가벗긴 채로 치욕과 멸시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셨던 것이다. 온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께서 나를 위해 모든 멸시과 고난을 받으셨던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만으로 감격해야 하지 않겠는가!
 
 
주님의 옷을 네 깃으로 나누어 가지는 병사들의 모습이 곧 죄인된 우리의 모습 아닌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옷을 나눈 병사들의 모습에서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죄성을 네 가지로 생각해 보자.
 
1.    주님을 몰라 본 죄
병사들은 주님이 누구인지를 모르기에 그들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만일 주님께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임을 알았더라면 그들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단지 병사들은 주님을 십자가의 형벌로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의 하나로 보았을 뿐이다.
그래서 병사들은 주님을 함부로 대하였다.
 
나는 어떤가?
나 역시 때로는 주님을 몰라 보지 않는가?
바로 주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는 데도 주님 몰라라 하면서 온갖 죄를 저지르는 패역한 행동을 하지 않는가.
 
주님을 믿는 나도 그런데 하물며 주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오죽 하겠는가.
세상을 바라보자. 얼마나 많은 곳에서 주님을 모르는 배역의 죄를 범하고 있지 않는가.
날마다 곳곳에서 죄악의 순간들이 차고 넘쳐 난다.
 
며칠전에는 Oregon주에 있는 Umpqua College에서 13명의 학생들이 한 사단 숭배자의 총에 맞아 죽었는데 Christian이라고 고백한 학생들은 어처구니 없이 머리에 총을 맞고 인생길을 일찍 접어야 했다.
 
곳곳에서 주님을 부인하며 주님을 증오하며 주님을 따르는 Christian들을 죽이기까지 한다.
이 모든 일들의 배후에는 사단이 개입되어 있으며 사단은 무슨 방법을 쓰든지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부정하도록 만들고 있다.
 
 
2.    탐욕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옷들을 유가족인 어머니 마리아에게 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는가.
그런데 병사들은 주님께서 걸치신 옷이나 허리띠나 신발들을 서로 나누어 가지고 그리고 마지막 남은 속옷마저 차지하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왜 자신의 땀으로 소유한 것이 아닌데도 남의 것을 탐을 내는가?
 
인간의 욕심이다.
 
막상 그들이 주님의 옷을 가지고 갔어도 별로 쓰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단지 자신의 것으로 차지 하려는 욕심이다.
 
주님은 우리의 욕심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시며 경고하신다.
내게 욕심이 있다는 것은 바로 내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라는 것이다.
[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욕심은 정욕으로 표현이 되기도 한다. 잘못된 정욕 가운데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동성애간의 사랑이다. 동성간에 서로가 탐하는 것은 잘못된 정욕이다.
[1:26-27]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동성애가 분명 성경에 죄악이라 쓰여져 있는데도 세상은 동성애를 용납한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세상을 따라 가며 동성애를 수용한다. 그런 세상과 짝한 교회에 과연 주님께서 임재하실까?
 
욕심의 근원은 바로 사단이다.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욕심이 있으며 말씀을 받아도 내 안에서 결실하지 못한다.
[4:19]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그리고 욕심, 탐욕, 정욕의 결과는 사망이다.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욕심에서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는 성령을 쫓아 행하여야 한다.
[4:22-23]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욕심에서 자유롭게 되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며 이 땅의 삶에서 천국을 경험하자.
나의 정욕대로 욕심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으로 나의 남은 날 동안 살 수만 잇다면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의 뜻대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3.    교만
병사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보고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라면 너를 구원하라고 조롱하며 위세를 한다.
 
(23:35-36)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사형집행인인 병사들은 자신의 권한아래 있는 사형수들에게 군림하려고 한다.
사형장에서는 이들 병사들이 왕인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교만하고, 자신보다 위에 있는 자들에게는 머리를 조아리고 잘 보이려고 위선을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던지 높은 위치에 앉으려고 온갖 힘과 노력을 기울인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지 않는가.
그렇지 않은 성도들도 많이 있지만 대개의 성도들은 교회의 지도자의 위치에 서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 위치에 앉게 되면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며 알게 모르게 교회에 좋은 영향력 혹은 나쁜 영향력을 준다. 그리고 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모습은 교만이다.
 
 
4.    거짓
병사들은 거짓에 속고 있었다.
왜 병사들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수 있었을까?
병사들은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 못하고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으로 취급하였다.
 
십자가 사건의 근본적인 발단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사단이었다.
 
거짓과 욕심의 근원은 바로 사단이다.
[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거짓의 아비인 사단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단은 사람들의 마음에 거짓을 심어 주었다. 곧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려고 메시야로 오셨는데도 사단은 사람들의 마음에 거짓을 심겨 주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였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사단의 한계가 있었다.
 
사단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사단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였다. 그리고 자신의 목적을 이뤘다고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단의 한계이었다. 만일 사단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이는 일이 곧 자신의 궁극적인 파멸임을 알았었다면 사단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내 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주님의 옷을 나누어 가진 네 병사의 모습에서 우리의 죄를 볼 수 있었다.
주님을 배역하는 행동들, 욕심, 교만과 거짓등이 내가 갖고 있는 죄악됨이다.
나의 죄악됨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비록 우리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 십자가의 사건을 경험한 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회복의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이다. 비록 병사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죄를 지었지만 회개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주님은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푸셨다.
 
여기에 죄인인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
 
주님을 못박은 병사들을 지휘하던 백부장과 은혜받은 자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보고 회심하여 이렇게 고백한다.
(23: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15: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27: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십자가의 사건을 직접 경험하게 되면 십자가에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인 예수님의 모습에서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며 구속의 은총을 입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내 마음속에 오게 된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많은 이들이 있어 어떤 이들은 주님을 그저 죄인의 모습으로 봤을 뿐이지만 그 중에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게 된 은혜를 입은 자들이 있다.
 
십자가의 사건이 내게 직접적으로 다가 왔는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서 과연 내게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서 죄인인 나의 모든 죄들을 곧 전에 지었던 죄 또 앞으로 지을 모든 죄들을 이미 구속하셨음을 믿을수 있는가?
나는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구주시요 하고 두손을 들고 고백할 수 있는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음으로 죄인인 저를 살리셨읍니다.
 
저의 죄성인 거짓과 교만과 욕심이
주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게 만들고
결국은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했읍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우리는 영영히 죽을수 밖에 없읍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읍니다.
 
우리 가운데 아직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이들도 많이 있읍니다.
은촣을 베푸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직접 만나
그들의 입술에서 과연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며 고백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