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8일 일요일

지옥

 제목:  지옥

(9:43-48)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9: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주님은 제자들을 불러서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셨고 또한 지옥에 대하여 거듭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지옥에 관한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하셨습니다. 곧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개역개정 성경에는 44절과 46절에는 (없음)이라 쓰여 있지만 KJV 성경에는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라는 말씀이 반복됩니다. 이 말씀은 사66:24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66:24)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또한, “(25:6)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하며 사람을 구더기 인생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라는 표현은 구더기 같은 인생이 죽지 않고 영원한 불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옥이라는 단어를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지옥’이라면 왠지 거부감을 나타냅니다. 오늘의 신자들은 달콤한 말씀을 듣고 감성이 자극받아 눈물을 흘리며, 축복의 말씀을 듣기를 좋아합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감동하고 은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감동함이 오래 지속이 되는가요은혜받은 이후의 삶은 변화를 하였는가요? 실제의 삶에서 천국을 경험하는지요? 아니면 여전히 지옥을 경험하는지요?

지옥이 있음을 믿습니까?
성경에 말하는 지옥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한 자들이 가는 곳이며 실제적이며 끔찍한 형벌이 있는 곳입니다.
주님은 지옥에 대하여 말씀하시며 그곳에는 눈이나 발이나 손을 잃더라도 제발 가지 말라고 세 번 거듭 반복하시면서 강하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죄의 문제를 해결받지 못한 자들이 가는 지옥은 실제로 존재하는 매우 두려운 장소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지옥은 가서는 안 되는 곳이며예수님을 부인한 죄인이 가는 곳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지옥은 실제로 있으며 그곳은 뜨거운 불이 있어 고통받는 곳입니다. 죄의 유혹에 이끌려 죄를 지속해서 범하다가 갑작스러운 일로 회개 못하고 인생의 종말을 맞으면 지옥에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옥에는 제발 가지 말아야 합니다.
지옥은 공포의 장소이며 끊임없는 고통이 있는 무서운 곳입니다. 피하려야 피할 수도 없습니다. 계략을 꾸미며 아무리 애를 써도 도망할 수도 없는 극심한 절망과 후회만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의 영의 눈이 뜨여서 실질적인 지옥이 있음을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1. 실질적인 장소인 지옥
성경은 분명하게 지옥과 천국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주님을 믿는 자들이 가기를 소망하는 천국이 실제로 있듯이 지옥 마찬가지로 실제로 있는 장소입니다.

 

지옥은 마귀와 그의 사자들과 예수님을 부인한 자들을 위한 곳입니다.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25:41)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마련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세세토록 고통을 받는 지옥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자가 가는 장소이며 끔찍한 뜨거운 불이 있는 형벌의 장소입니다. 마귀와 그 사자들만 들어가는 곳이 아니고 그들을 따르던 왼편에 있던 자들도 함께 가는 곳입니다.

 

모든 사람은 천국 아니면 지옥에 갑니다. 중간의 곳은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인침을 받아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천국에 가게 되지만, 주님의 택함을 입지 않아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은 지옥에 갑니다. 교회에 나가는 신자들이라 해도 예외는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자가 자신의 행위에 따라서 내침을 받는 경우를 봅니다. 주여 주여 하는 모든 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주여 주여 하지만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라고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세상에 속한 이들은 지옥이나 주님이 계신 천국을 부인합니다. 또한, 지옥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지 않고, 더군다나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지 않아,
지옥에나 가라 (Go to hell)이라고 저주의 욕을 퍼붓기도 합니다.
내 부모님이 내 사랑하는 이가 지옥에 있다고 하니 나도 그곳에 가서 같이 지내려고 해,
지옥에 가면 어때 그곳에는 내 친구들도 많이 가서 있을 터이니 외롭지는 않을 것이야,
지옥이 어디에 있어 그곳은 인간이 만든 생각의 장소이며 허구일 뿐이야 말하기도 합니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무섭고 두려운 지옥의 뜻을 가볍게 하려고 갖가지의 단어를 사용하여 지옥의 뜻을 희석하려고 합니다.
Henry Morris 박사의 성경은 해답이 있다에서 “지옥이란 단어는 구약에는 스올 (Sheol)’신약에는 게헨나 (Gehenna)’ 혹은 하데스 (hades)’ 쓰인다. 이를 스올, 음부, 구덩이, 죽음의 세계, 무덤, 혹은 불못으 번역하였고 심지어 음부와 저승으 번역을 하였다. 음부와 저승은 불교사상에서 도입되었다. 즉 이교사상이 성경 번역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데스에 대하여 다섯 번 그리고 최종 지옥인 ‘게헨나 대하여 열한 번 언급하셨는데 예수님께서 ‘하데스라 하셨을 때는 땅의 중심부에 있는 지옥을 의미하셨고, ‘게헨나 말씀하실 때는 백보좌 심판 후에 있을 죄인들의 최종 거처인 지옥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 하데스
하데스는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이 일시적으로 거하는 지구 중심부에 있는 지옥입니다.
(16: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1: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게헨나
게헨나’는 최후의 심판 후에 마련된 지옥입니다.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에게 마련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12: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게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게헨나 게힌놈  힌놈의 골짜기에서 유래되었으며, 우상 몰렉에게 희생제물로 드려진 동물들의 사체를 소각하던 곳이었습니다. 매일같이 사체를 불에 태우던 곳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구더기들이 들끓었던 곳이었습니다. 그로부터 게헨나는 영원한 저주의 장소 곧 지옥의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많은 영화가 지옥의 자식들에 대하여 세상을 구원할 영웅처럼 보이게 하며 아름답게 미화를 하기도 합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지옥은 영화처럼 가 볼 만한 곳이 아니며 더군다나 아름다운 곳도 아닙니다. 지옥의 자식들은 영화에서와 같이 세상을 구원할 구원자가 아니고 반대로 세상을 파멸로 이끄는 자들입니다. 사탄의 속임의 영향을 받아 세상에 속한 많은 자가 지옥의 심각성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모릅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지옥은 실질적인 장소이며 꺼지지 않는 너무나 뜨거운 불의 무서운 형벌이 있는 곳입니다. 지옥은 낭만도 사랑도 즐거움도 기쁨도 소망도 연민도 불쌍함도 없는 곳입니다.


(9: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는다
지옥에 갔다 온 이들의 간증을 들어 보면 지옥에서 뜨거운 형벌을 받는 자들에게 구더기들이 득실해서 눈구멍에서도 나오고 입에서도 콧구멍에서 나오는 모습을 말합니다. 그런 천국과 지옥의 간증들을 과연 무시할 수 있는가요? 모든 간증이 꾸며댄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는가요? 그중에 어떤 간증들은 제 생각으로 지어낸 것도 있겠지만, 반면에 어떤 간증들은 실제적인 체험을 한 것에 관하여 이야기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거지 나사로를 업신여기고 함부러 대했던 부자가 죽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천국에 갔지만 부자는 지옥에 가서 너무나 고통스러워 이렇게 고백합니다.

(16:23-24)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이 이 곳에 오지 못하도록 거지 나사로를 보내어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도록 간청을 합니다.

(16:27-28)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제발 지옥에는 가지 말아야 합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세요. 과연 나는 천국에 가기에 합당한 자인가를 돌아보세요.
나의 부모와 배우자와 자녀와 형제와 이웃들은 과연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그들에게 지옥의 심각성을 알려야 합니다.


2. 지옥의 위치
성경은 지옥은 땅 아래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14:9) 아래의 스올이 너로 말미암아 소동하여 네가 오는 것을 영접하되 그것이 세상의 모든 영웅을 너로 말미암아 움직이게 하며 열방의 모든 왕을 그들의 왕좌에서 일어서게 하므로
(32:27) 이 용사들은 다 무기를 가지고 스올에 내려가서 자기의 칼을 베개로 삼았으니
(12: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속에 있으리라
For as Jonah was three days and three nights in the belly of a huge fish, so the Son of man will be three days and three nights in the heart of the earth


한글 성경은 ‘땅속’이라고 번역을 했지만, 영어 성경은 ‘heart of the earth’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지옥이 위치한 곳은 바로 heart of the earth 즉 지구의 중심부입니다. 지구의 중심부는 모든 것들이 녹은 상태로 있는 엄청나게 뜨거운 마그마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있는 지옥이니 얼마나 뜨겁겠습니까!

 

3. 회개에 합당한 열매

(3:8-9)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지옥에 가는 이들은 누구입니까? 곧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 가는 곳이 지옥입니다. 내 손이나 내 발이나 내 눈으로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 가는 곳이 뜨거운 불의 형벌이 있는 지옥입니다. 내가 죄악을 행할 때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은 경고를 하신데도 혹 이를 무시하지 않는지요? 계속해서 성령의 경고를 무시하고 불순종한다면 나는 과연 천국에 갈까요? 아니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에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범죄할 때 마다 죄를 회개하여야 하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회개해야 하고, 그 후에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에 던져지게 됩니다.
회개는 우리의 삶 가운데 무척이나 중요한 사건입니다. 회개는 거룩한 삶의 출발점입니다. 세례요한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주님 또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면서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순간순간마다 죄를 짓습니다.

이유는 우리는 아담과 이브의 후손이기에 때문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었던 까닭은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죄가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럽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악은 우리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기를 원하고, 듣지 말아야 하는 패악한 말들을 속아서 듣고,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서슴없이 손으로 행하고, 발로 걸어서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은 나를 깨우치십니다. ‘너는 지금 죄를 짓고 있지 않니 그러니 죄에서 떠나라. 죄의 생각에서 떠나라. 네가 행하려고 하는 것으로부터 떠나라’ 하고 경고하시며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라고 거듭해서 내 마음에 감동을 주십니다. 만일 그런 감동이 없다면 과연 나는 주님의 자녀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도는 반드시 죄를 지을 때마다 회개하여야 하고, 회개했으면 그에 합당한 좋은 열매를 맺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나쁜 열매를 맺게 되면 찍혀서 지옥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처럼 억울한 일이 또 있겠습니까! 자신은 열심히 믿는다고 믿었고 남들보다 더 헌신하며 천국을 소유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육신의 호흡이 다 하여 주 앞에 갔을 때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고 하신다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우리의 삶은 날마다 순간순간마다 죄의 유혹과의 싸움입니다. 곧 지옥과의 싸움이지요. 죄에 노출될 때마다 나의 옛사람의 성품은 되살아나려고 합니다. 죄의 유혹에 져서 빠져 회개할 기회를 놓치게 되면 결국 지옥에 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곧 땅에 속한 지체를 십자가에서 죽여야 합니다.


(3:5-10) 그러므로 땅의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늘 죄를 지을 때마다 성령께서 죄를 깨달아 알도록 감동을 주실때 회개하여야 합니다.
주안에 깊이 뿌리 박혀서 좋은 열매를 맺도록 착한 행실을 행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 지옥으로 가는 삶에서 벗어나서 천국의 삶을 경험하며 영위할 것입니다.

4. 누구나 죽는다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언제 지옥이나 천국에 갈까요?
바로 나의 육신의 호흡이 다 했을 때 곧 죽었을 때 가는 곳입니다. 죽은 후에 가는 곳이 천국 아니면 지옥입니다. 죽지만 않으면 지옥에 안 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사람은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는 회개할 수 없습니다. 영원토록 살 것 같은데 실은 사람은 무척이나 연약한 깨지기 쉬운 그릇과도 같습니다. 아무리 재물이 많아 세상의 유명하다는 모든 의사의 치료를 받을 수 있어도, 생명의 여탈권을 가진 왕의 권력을 갖고 있다해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신의 수명을 연장하여 죽음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지금 건강하지만 언제 죽음과 삶의 경계에 걸린 중병에 걸릴지 알지 못합니다.

예기치 못한 천재지변이나 사고로 인해 생명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훅하고 불으시면 나의 호흡은 마지막이 됩니다.

내게 내일이 있다고 믿습니까? 그것은 나의 기대일 뿐입니다. 나의 삶의 종착점에 언제 어떠한 모습으로 다다를지 나는 알 수 없습니다.

살아 있을 때,
숨 쉬고 있을 때,
나의 의식이 깨닫고 있을 때,
오늘이 은혜받을 만한 때이니,
오늘이 가기 전에,
나의 날이 다하기 전에
죄를 지을 때마다 회개하여 용서를 구하며,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이 변하지 않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으로 가야 합니다.

지옥은 두렵고 무서운 곳입니다.
영원토록 고통이 있는 곳입니다.
사랑도 없고, 자비도 없고, 긍휼도 없고,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절망의 곳이며 소망도 없는 곳입니다.
지옥에는 제발 가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천국을 소망하는 자 중에서도 지옥을 가볍게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나는 지옥 가지는 않을 것이야 하면서 스스로 위안으로 삼는 이들도 있습니다.

주님은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좋은 열매를 맺어라 그렇지 않고 나쁜 열매를 맺으면 찍혀서 영원한 불에 던져지게 될 것이라고 우리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지옥. 듣기만 해도 두렵고 떨리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지옥을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하게 있습니다.
속지 말게 하옵소서. 주님을 부인한 자들이 가는 영원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는 곳임을 자각하게 하옵소서. 지옥에는 희망도 없고, 소망도 없는 오직 증오와 미움과 분노와 불평과 저주가 있으며 너무나 뜨거워서 손가락 끝에 찍힌 한 방울의 물이라도 있으면 갈증을 면하고 싶은 절망의 곳입니다. 지옥이 있음을 믿게 하옵소서. 제가 나쁜 생각과 언행과 행실을 하려고 할 때마다 지옥을 떠올리며 묵상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행하신 의롭고 은혜로운 사랑을 베푸심으로 천국을 소망할 수 있도록 인도하심에 감사를 드리며 모든 영광을 주님께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1년 2월 7일 일요일

그가 누구이기에 (Who is this?)

 제목: 그가 누구이기에 (Who is this?)     

(4:37-41)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 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놀라운 일을 행한 사람을 보며 와 이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하며 감탄을 합니다.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신 주님을 만나셨습니까?  주님을 만난 감동으로 주님 과연 주님은 누구이십니까?” 하며 고백을 하셨습니까?


요사이는 Covid 인하여 많은 것들이 변했습니다대부분 신자들이 교회를 가지 못해 그나마 있던 믿음이 흔들리고 있으며 또 많은 이들은 아예 주님을 떠난 삶을 살기도 합니다. 주님을 떠났어도 큰 부담 없이 아무렇지 않게 삽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님을 온전하게 만나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는 우리의 인생길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탄 배는 잔잔한 곳을 지나다가도 바람이 심히 부는 곳을 지나갈 때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살려 달라며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같은 배에 타고 계셨던 주님께서 잠잠하라 명령하실 때 아주 잔잔하여 졌습니다. 원치 않는 것들이 우리의 인생을 마구 흔들어댈 때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께서 잠잠하라 명하실 때 우리의 인생은 평안의 항구를 향하여 나아갑니다. 나를 평안케 하시는 주님을 만나 과연 주님이십니다 하고 경외하며 주님을 만나시기를 간구합니다.

예수님은 과연 누구이신가?”

이 질문은 우리뿐 아니라 예수님과 3년간 동고동락하며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함께했던 제자들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또한,  후에 2000년이 지나는 동안 예수님의 이름이 전파된 곳에 사는 사람이라면 가진 질문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으로 주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아직 그들은 주님이 누구이신지를 몰랐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며 천국 복음을 전하시며 더러운 귀신들린 자들의 귀신을 쫓아내시고 각종 병에 걸린 자들을 낫게 하시며 죄인을 부르시는 것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가까이서 보면서 주님께서 가지신 어떤 영적인 능력을 느끼며 주님에 대해서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주님이 자신이 말하는 대로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바로 주님 곁에 있었지만, 그들은 주님의 실체를 볼 수 없었고 단지 주님의 외부적인 모습만을 보았던 것입니다

 

주님을 표면적으로 지식적으로는 많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2000 전에 오신 분이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기독교를 세운 사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주님을 만나 주님을 알게 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대부분 교회를 나가는 사람들 역시 주님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지식적으로 상식적으로 예수님을 만납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에 나간다고는 하지만 진정으로 나의 삶을 변화시키는 주님을 만난 이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예수님은 누구이시지?” 하는 질문을 하며 자신의 삶 가운데 직접 개입하시는 주님을 체험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주님의 자녀로서 더욱 깊은 관계로 들어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주님을 체험적으로 만나지 못한 이들은 주님에 관한 관심이 없어 주님이 주시는 깊은 교제가 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소유할 수 없어 조그마한 일에도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자들이 어떤 주님을 체험했는지를 보십시다.

1. 주무시고 계시는 주님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 말씀에서 육신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수많은 이들에게 천국복음을 선포하셨으며 아픈 이들을 치유하셨습니다. 사역으로 인해 지치고 곤하여 탄 배가 마구 흔들려도 곤하게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제자들의 곤고한 소리에 깨어 목숨을 위협하는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주님은 내가 느끼든지 못 느끼든지 항상 나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성난 파도와 바람이 부는 배에 제자들과 함께 계셨듯이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십니다.
때로는 절망 가운데 있지만, 주님께서 주무시는 듯 주님의 임재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주무시지 않으십니다.

( 121:3-4)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왜 주님은 주무시고 계신 듯할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평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육신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은 많은 것들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과의 마찰, 많은 이들을 돌보야 하는 부담, 열 두 제자들, 십자가에 달려야 하는 운명 등 많은 것들을 주님은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님은 그런 것들을 염려하지 않았으며 풍랑이 거칠게 이는 가운데서도 평안하게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어떤 상황에서도 심한 풍랑과 바람이 몰아쳐도 평강을 가지십시요. 그 가운데서도 두 다리 쭉 펴고 잠을 자십시요.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때로 우리는 이 세상에 나 홀로인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빠져나갈 곳이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의 자녀이지만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느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무시는 듯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으시는 듯한 주님께서는 나의 실족함을 더는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주여 빠져 거의 죽게 되었나이다” 하는 저의 절규를 듣고는 주님께서는 “바람아 파도여 잠잠하라” 명령하십니다.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 “아 이제 우리는 살았구나” 하고 마음에 위안을 가졌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배에 있었으므로 심한 파도가 몰아치고 바람이 불었어도 아무 염려도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들은 같이 계신 주님을 보지 않고 환경만을 보았기에 자신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하셨습니다.


때로는 사방에서 나를 우격다짐으로 덮치는 경험을 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찾아 온다면 바로 그곳이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귀한 축복의 자리입니다. “바람아 파도야 잠잠하라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 하느냐하시며 바로 나를 위하여 바람과 파도를 잠잠하게 하시는 주님을 만나십시요. 주님은 결코 주무시지 않으시고 저와 함께 하시며 제가 하는 곤고의 소리를 다 듣고 계십니다.

 

2. 말씀의 능력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예수님은 병이 낫기를 원해 몰려드는 사람을 피해 호수 건너편으로 가시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 때 심한 바람과 파도를 만나 배에 물이 가득하여 배가 거의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배가 위험에 빠져 모두가 물에 빠져 죽게 되었을 때 제자들은 곤히 주무시고 계시는 주님을 급히 깨웁니다. 그리고 “주여 우리가 물에 빠져 죽게 되었나이다” 하며 주님께 호소합니다. 이에 주님은 사납게 몰아치는 파다와 바람에게 “파도야 바람아 잠잠 하라 고요하라”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거세게 부는 바람과 파도를 향하여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토록 흉용스럽게 자신들에게 내리치던 바람과 파도는 주님의 말씀 한마디로 아주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은 아주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예수님의 말씀 전과 후의 너무나 다르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제자들은 주님의 한마디 말씀에 자연도 복종하는 것을 보고 놀랍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비로소 말씀 한마디로 자연이 복종하는 놀라운 주님의 실체를 보았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이신 주님을 바로 옆에서 보며 경험하며 주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주님은 자연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의 말씀에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광풍과 파도로 인해 죽을 고통 가운데서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 여호와께서 잠잠하게 하시고 항구로 안전하게 인도하는 말씀이 시편에 쓰여 있습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이 처한 환경과 일치합니다.
(107:28-30)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 도다

시편의 말씀처럼 주님은 말씀으로 성난 파도와 바다를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시편의 말씀을 기억하며 이 같은 일을 행하신 주님은 과연 여호와이시구나 느낄 때 제자들은 두렵고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과 함께 배에 타고 있는 예수님은 과연 하나님이심을 알고 경외함으로 두렵고 떨며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말씀이신 주님의 실체를 비로소 만난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에 대한 믿음은 아직 확고하게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후에 주님을 배반하기도 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버리고 멀리 도망을 하기도 하였지만, 주님의 실체를 만난 그 믿음은 제자들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어 있어 그 후에 주님의 참된 제자로서 복음을 세계에 널리 전파하는 교두보 역할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쁘게 감당하며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 누구인지를 만나는 체험을 통해서 비로소 주님의 실체를 알게 된 제자들은 두려워하며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들과 같이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경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두려움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본문에서 두 가지의 두려움을 표현합니다.
하나는 세상의 위력에 육신이 느끼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또 다른 두려움은 주님이 누구인지를 알고 느끼는 영적인 경외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결국은 주님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두려워하다”의 원어는 “경외하다” 뜻을 가집니다.
주님이 누구이신지를 알 때 사람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주를 경외하게 됩니다.

 

주님을 체험적으로 만나게 되면 놀라고 경외하며 두려워하게 됩니다.

제자들뿐 아니라 사람들은 주님을 만날 때 두려워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친구처럼 대했던 (33:11) 모세는 하나님을 만났을 때 두려워 얼굴을 가렸습니다.
(3:6)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칠 때 그곳에 거하는 사람들은 여호와의 소식을 듣고는 마음이 녹았습니다.
(2: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계시록을 쓴 사도 요한은 주님의 임재를 보고는 땅에 엎드려져 죽은 자 같이 되었습니다.
(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려져 죽은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사도 요한은 주님의 가장 가까운 친구요 제자입니다. 주님은 사도 요한을 많이 사랑하셨고 이 땅에 계실 때 많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누구보다 주님을 가장 가까이서 교제한 사도 요한이지만 부활하사 영광의 몸을 입으신 주님을 볼 때에 두려워서 주님 발 앞에 엎드려져 죽은 자같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의 실체를 알게 된 제자들은 두려움의 대상이 바뀐 것입니다.

광풍과 거센 파도를 보며 자연의 위협에 두려워했던 제자들은 더는 광풍과 파도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예수님을 경외하며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하는 자에게 여호와는 자비를 베푸사 막힌 것들을 회복케 하시고 다시 살리시며 축복하십니다.
(33:18-19)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

주님을 두려워 하며 경외하며 교제를 나누십시요. 우리의 영혼과 육신의 평강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4. 나의 고백

(41)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주님의 실체를 만난 제자들은 “이런 일을 행한 이가 누구이신가” 경외함으로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토록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며 날뛰던 파도가 주님의 “잠잠하라 한마디의 말씀으로 완전하게 잠잠해지는 것을 목격한 순간 자연도 자신의 권위로서 복종시키는 주님을 보고 두렵고 놀라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백부장은 자신이 못 박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들과 운명하시면서 지진이 나며 땅이 갈라지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백부장은 예수님의 실체를 만났습니다. 그 후로 그의 삶은 전적으로 변화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며 고백하였습니다.
귀신들도 주님을 보고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하며 두려워하며 고백을 합니다.

나에게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나의 삶을 송두리체 바꾸신 주님을 과연 여러분은 체험적으로 만나셨습니까?
주님을 만나서 주님이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저의 모든 죄를 구속하시고 살리셨다고 주님께 고백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라는 질문을 갖고 살 때,
우리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되며,
주님이 창조주이심을 확신하며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형통의 귀한 축복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자들은 심한 바람과 파도로 자신들이 탄 배 안에 물이 가득 차서 배가 거의 가라앉게 되어 죽게 되었음을 알고 주여 내가 죽겠나이다 나를 살리소서 절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나와 같이 풍랑이 이는 배에 타고 계시지만 주님의 임재를 느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늘 저와 함께하시며 저를 안전한 포구로 인도하십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삶의 어려운 과정을 맞닥뜨렸을때 좌절하며 두려워하지 말게 하옵소서.

저를 위하여 바다야 바람아 잠잠하라 명하시며 저를 지키시는 주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지식적으로 주님을 만나는 것이 아닌 저의 삶에서 체험적으로 섭리하시는 주님을 만난 인생은 실로 복된 인생입니다.

과연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저를 구원하신 메시야이십니다 하며 고백하며 살아 가도록 성령이여 인도하옵소서.

주님을 만난 놀라운 경험을 하였지만 때로는 실수와 실패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주님을 따라가는 아름답고 값진 삶을 살도록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

주님은 늘 저와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저를 덮치려는 날뛰는 바다와 파도를 보시며 “잠잠하라” 명령하십니다.
주님은 온 우주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만왕의 왕이신 창조주이십니다. 창조주이신 주님께서 저를 부르시며 “내 아들아 내 딸아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세상 끝까지 함께 함이니라” 말씀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저의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은 “예수님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늘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늘 갖고 있어 늘 주님께 감사하며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느끼며 살아 이 땅에서 미리 천국의 삶을 경험하며 많은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