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6일 일요일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고전3:16-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리하니라.

본문의 말씀은 교회에 다니는 자신의 소견대로 살기에 급급한 성도들이 깊이 새겨야 하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세상의 삶을 살고 있읍니까? 교회에서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이지만, 세상에서는 할 짓 못할 짓하며 살고 있읍니까?

이 말씀을 통하여 두 가지를 생각해 보십니다.
첫째는 사람 안에 성령이 거하게 되면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둘째는 성전이 더럽혀지면 하나님께서 멸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첫번째로,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거룩한 성전이 됩니까?
성령이 내 안에 계시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령이 임재하시게 됩니까?
그리고 내 안에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줄을 어떻게 압니까?

주님의 제자들도 우리처럼 어떤 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며, 또 내 안에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하는 의문점을 갖고 있었읍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5-8)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으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주님께서 진실로를 두 번 사용하실 때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며, 거듭난 자들에게는 성령이 임하심으로 영에 속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

거듭나기 위해서는 우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물은 더러운 것들을 씻기고 깨끗하게 합니다. 죄를 애통해하며 회개하여 깨끗함을 입고 성령으로 내 안에 있는 모든 냄새나고 더러운 것들이 다 타서 정결케 되어 거듭난 자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성령이 임재하시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만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아 그 안에 성령께서 임재하지 않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셨읍니까?
나의 자아를 온통 뒤흔드는 죄의 철저한 회개의 과정이 있으셨읍니까?

잉태된 아이가 시간이 되어 세상으로 나올 때 얼마나 큰 고통이 따라 옵니까? 아이는 자신이 세상에 나왔다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웁니다. 그리고 어미가 아이를 해산하게 되면 모든 고통은 사라지게 되며 평안이 찿아오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세상에 속해 있던 육신이 주님의 은혜로 하늘에 속하기 위해 해산의 과정을 거칠때 그의 영과 육은 철저한 회개를 통한 고통의 울음의 과정을 통과하게 될 것입니다. 몇날 몇달 몇년이고 주님의 이름만 부르면 나를 택하시고 구원하신 주님의 사랑에 너무나 감사해서 것잡을 수 없는 눈물로 적시웁니다. 그런 경험이 없으십니까?

나의 영이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을 겪으셨읍니까?
기억이 가물 가물하십니까?
아니면 나는 구원받은 것 같은 것 같아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습니까.

그런 분들은 어쩌면 진실된 회개의 과정을 거치지 없기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영으로 거듭나는 해산의 고통은 각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분명하게 자신의 기억속에 남아 있는 사건일 것입니다. 아이를 해산 한 어미가 어찌 그 해산의 시간을 잊겠읍니까?

그리고 어떻게 자신 안에 성령께서 임재하심을 알 수 있읍니까?
교회에 다니는 신자들에게 당신 안에는 성령께서 계심을 믿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 제 안에는 성령께서 계십니다하고 확신있게 말하는 이들이 있읍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하며  성령께서 내주하심을 확신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약한 바람이라도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 있듯이, 성령으로 난 자들은 자신 안에 계신 성령의 임재를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산들바람이 붑니다. 눈을 감으면 잔잔하게 부는 바람을 볼 수는 없지만 손과 얼굴을 스치는 바람을 느낍니다. 또 세찬 바람이 불면 그 바람이 얼마나 힘세게 부는지를 느낍니다. 내 안에 성령께서 계심을 우리는 어렴풋이나마 느낍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 안에 계신 성령의 임재를 강하게 느끼지만 또 어떤 이들은 미세하게 성령의 임재를 느끼며 자신 안에 성령께서 계심을 압니다.


내 안에는 성령께서 계시는 성전이심을 확신합니까 

만일 이 사실이 내 안에서 확신이 가지 않는다면 나는 과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구원을 받은 자인가를 다시 깊이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이 문제만큼 나의 삶에서 중요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목사, 장로, 권사 혹은 집사일지라도 구원을 받지 못하였다면 나의 신앙생활은 무엇이 됩니까. 많은 시간과 재물을 투자하며 헌신하였는데 주님께서 나는 너를 도무지 말씀하신다면 얼마나 무섭고 두렵습니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에게는 성령께서 임재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이 안에 계시는 성전이 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십니까?
내 안에는 성령께서 계심이 확신이 갑니까 


두번째는, 성령이 내주하심으로 성전인 성도가 그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멸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더럽힌 자를 영원한 불못이 있는 지옥으로 던지신다는 약속이십니다. 이 말씀은 구원받지 못한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교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구원을 얻은 자가 그 구원을 잃어 버릴수도 있음을 의미하는지요?
이 문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하신 후에 지금껏 많은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
누구는 한번 구원은 영원하다고 주장하며 또 어떤 이들은 아니다 한번 구원은 영원하지 않고 구원을 잃어 버릴수도 있다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 결과 많은 종파들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기독교는 행위로서 구원을 얻는 종교가 아니고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은혜로 구원을 얻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각 사람의 책임 또한 묻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호와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아무도 주님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스스로가 주님을 거부하고 떠날 수도 있지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사랑하심에는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함은 변합니다.

구원을 얻은 후에 만일 거룩함을 지키지 못하고 성전을 더럽히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여 구원을 잃어 버릴 수도 있으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조심하라’, “깨어 있으라하며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권면을 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만일 한번 구원은 영원하다면 성령의 임재가 있는 자가 그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멸하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멸하신다고 하십니다.
내가 행하는 모든 죄가 성전을 더럽힐까요?  아니면 성전을 더럽히는 특별한 죄가 있을까요

(고전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니라.

에베소 5:5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5: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3:5-6 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3:5-6)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하나님의 유업을 받지 못하는 자들은 불의한 자 곧 음행하는 자, 더러운 자, 우상 숭배하는 자, 간음하는 자, 탐색하는 자, 남색하는 자, 도둑질하는 자, 탐욕을 부리는 자, 술 취하는 자, 모욕하는 자, 속이는 자들입니다. 이와 같은 불의한 죄를 범하고 있다면 회개하고 그 죄의 자리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지않고 뜻하지 않게 갑작스럽게 회개할 시간도 없이 자신의 종말을 맞이한다면 그 후에 어떠한 일들이 벌어 지겠습니까. 혹 주님께서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이 패역한 자를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 하시면 어쩌실렵니까.


특히 나의 거룩한 몸에 죄를 짓게 하는 대표적인 죄인 음행을 조심하여 피하여야 합니다.

(고전 6: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의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다른 죄들은 육신 밖에서 죄를 짓지만, 음행은 자신의 육신으로 죄를 범합니다. 곧 성령께서 계시는 성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자녀들은 성전을 더럽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인 음행을 조심해야 합니다.

음행을 하고 있습니까?
간음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음행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당장 나의 성전을 더럽히는 죄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회개하여야 합니다.
성령님께 음행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하세요.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녀이기 때문에 반드시 음행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만일 음행을 하고 있다가 급작스럽게 죽으면 언제 회개합니까? 죄의 문제를 회개하지 못한 영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하시겠읍니까?

회개하고 음행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야 합니다. 회개하는 영혼을 하나님께서는 분명 기뻐 하십니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범한 죄의 책임을 반드시 물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벌은 일시적이며 잠시뿐인 고통입니다. 그 기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회복이 됩니다. 

음행의 대표적인 죄를 지은 이가 다윗입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차지하기 위해서 계획적으로 남편인 우리아를 사지에 보내어 전사하게 합니다. 참으로 엄청난 죄를 지었읍니다. 다윗은 한 여인을 가지려고 그녀의 남편을 죽인 살인자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음행으로인해 죄에 무디어졌기 때문입니다. 죄에 무디어진 다윗에게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보냅니다. 밧세바와 음행하였지만 죄로 여기지 않고 있던 다윗에게 선지자 나단을 보내어 다윗이 은밀히 행한 음행한 죄를 깨닫게 합니다. 다윗은 비로서 저지른 죄의 심각함으로 충격을 받고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읍니다하며 회개를 합니다. 용서함을 받은 다윗은 시편32편에서 이렇게 노래 합니다.

(32: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회개를 하고 여호와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죄의 책임을 물으시며 벌을 주십니다.

(삼하12:10-11)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또 내가 네 눈 앞에서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말씀하신대로 다윗과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난 첫 아이가 죽고 얼마후에는 압살롬의 반역으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분명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내가 범한 죄에 대한 벌을 내리신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거두어 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들은 자신이 지은 모든 죄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회개하면 용서를 받습니다. 하지만 용서를 받았다고 해서 죄를 범하여 해를 끼친 책임 모두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어떤 모양으로든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벌을 내리심으로 다윗은 잠시동안 고통을 겪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다윗은 다시는 그와 같은 음행의 죄를 범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나의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죄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을 더욱 존귀하도록 축복하실 것입니다.


(벧전1:16-17)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외모로 보시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거룩한 삶을 살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죄성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틈만나면 죄의 생각을 하며 잠시라도 방심하면 죄를 짓고야 마는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죄를 짓고서 혹은 죄를 지으려는 순간 죄를 회개하며 용서를 간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용서를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로 빨리도 흘러가는 다시 주어 담을 수도 없는 후회로 가득한 나그네의 인생길을 가면서 수 많은 일들을 만납니다. 순간 순간마다 죄로부터 자유롭운 삶을 살도록 최선의 신앙생활을 하며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날마다 구하며 두려움으로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늘 의식하며 성전을 더럽히지 않도록 은혜를 간구하십시다. 금보다 은보다 세상 어떤 것보다 더욱 소중한 내 안에 임재하신 주님의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축복된 삶을 살아가는 인생이기를 간구합니다.
 

하니님 아버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하신 말씀을 늘 마음에 품고 살아 가도록 인도하옵소서. 이 땅의 삶은 늘 죄의 유혹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죄가 내 안에서 왕 노릇하지 못하도록 항상 주님의 얼굴을 구하며 죄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간구합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성전을 더럽히지 않아 온전한 구원을 이루게 하옵소서. 성전을 더럽히면 혹 하나님의 멸하심을 받을 수도 있음을 두렵고 떨림으로 늘 마음에 새겨 늘 나를 살리시려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도록 저를 인도하옵소서. 치열한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