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17일 일요일

산상수훈 – 팔복


(5:1-10)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2.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3.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5.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7.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8.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의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의 5장과 6장과 7장은 산상수훈 (the Sermon on the mount) 이라 잘 알려져 있다.
주님은 산에 올라 가셔서 제자들에게 산상수훈에 대하여 말씀하신 후에 산에서 내려 가셨다.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8;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주님은 산상수훈을 통하여 아름답고 영롱한 보석과 같은 여러 말씀들을 주시며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팔복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자녀라면 이미 받은 복들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이 팔복은 과거와 현재에 받은 복과 함께 미래에 받을 복까지 포함한다.

산상수훈은 주님께서 가르치신 주님의 자녀로서의 삶의 윤리이며 주님의 마음을 알아가며 주님께서 자녀들에게 이미 베푸신 축복을 더욱 풍성하게 받게 하는 교훈이다. . 

‘축복’이란 단어는 언제 들어도 싫지가 않다.
원어에서 ‘복’은 ‘행복’을 의미한다.

세상과 성경에서 말하는 축복의 개념은 사뭇 틀리다.
세상은 육신적이며 가시적은 축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성경은 궁극적으로 내세에 받을 영적인 축복을 말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축복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베푸신 죄사함으로 구원함을 받은 하나님의 선물을 의미하며또한 이 땅에서 천국을 소망하며 천국을 경험하며 사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팔복의 주제는 천국이다팔복의 첫번쨰로 천국으로 시작해서 여덜번쨰에 천국으로 끝난다.
천국시민으로 부름 받은 주님의 자녀들의 삶의 원리와 특징을 말한다.

주님께서는 모든 복의 원천이시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베푸신 구원의 능력으로 새사람이 된 주님의 자녀들은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팔복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새 생명의 열매를 맺는다.

‘복이 있나니’ 이런 저런 복을 받을 것이다 라며 미래형으로 쓰여져 있지만영어성경은 ‘Blessed are those’ 로 쓰여지며 현재완료형으로 쓰여져 있다.  복을 받기 위해서 이런 저런 것들을 해야지만 미래에 복이 조건부적으로 내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주님의 자녀라면 무조건적인 은혜로서 이미 받은 복을 의미한다.  주님의 자녀인 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팔복을 이미 받은 것이다.  


팔복의 내용을 보자.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6:20)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6:24) 화있을진저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주님은 심령의 가난함에 대하여 제일 먼저 말씀하셨다.
팔복의 첫번쩨인 심령의 가난함은 주님의 자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 것이다.

두가지의 가난함을 주님은 의미하신다.
마태복음에서는 심령의 가난함을 말씀하셨고누가복음에서는 육신의 가난함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심령의 가난함은 하나님 앞에 결코 설 수 없는 자신을 알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주님 앞에서 자신의 심정을 찟는 것이다.
세리는 가슴을 치며 이렇게 고백한다.  주여 저를 불쌍하게 여기소서저는 죄인이로소이다.

심령의 가난함은 나를 낮추는 겸손을 의미하며반대로 심령의 부요함은 나를 높이는 교만을 의미한다.
주님의 팔복을 받은 자가 겸손하지 않고 교만하다면 그는 이미 받은 천국의 축복을 온전하게 누리지를 못한다

이 땅에서도 천국을 경험해야 한다.  그렇지만 심령이 교만하여 높다면 결코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나의 심령이 부요한가 아니면 가난한가?

심령이 부요한 자는 자신이 벌것벗은 것을 보지 못한다.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 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주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하여 축복을 받은 들에게는 천국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내가 가난한 심령을 더욱 갖기를 원하신다.
이미 주님께서는 믿는 자녀들에게는 가난한 심령을 주셨다하지만 때로는 나의 패역한 심령이 동할 때마다 나는 마음이 강팍해 진다그럴때마다 성령은 내게 분명하게 말씀하신다주님께서는 네가 심령이 가난한 것을 기뻐하신다네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말라 하시며 권고하신다.

또한 주님은 실질적인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위로하신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의 대부분은 사회로부터 소외된 가난하고 권력없고 힘이 없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주님은 이들 실지로 가난하고 힘도 없는 소외된 자들에게 꿈과 소망을 주신다.
비록 지금 고통과 고난과 멸시와 궁핌함을 경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말자. .

주님은 우리의 궁핌함을 너무나 잘 아신다.
주님은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들의 풀도 먹이신다하물며 우리 주님의 자녀들을 돌보지 아니하시겠는가.

황폐하고 궁핍함이 보일지라도 두려워 말자염려하지 말자.
주님의 자녀들이여.  마음에 평강을 갖자.
주님은 결코 자녀들을 버리지 아니 하시고 거두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신실하신 주님의 약속은 결코 잊혀 지지 않는다


2.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6:21)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6:24) 화있을진저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무엇에 애통해 하는가?
슬픈 연속극을 보며 애통해 하는가?
부모와의 관계에서혹은 자녀들이 속을 썩여서혹은 배우자와의 문제로 애통해하는가?
연인과 헤어짐을 애통해 하는가?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애통해 하는가?
너무나 힘이 들어 죽을것 같다고 애통해 하는가?

팔복에서 말하는 애통함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애통함을 말한다.
하나님과의 사이를 갈라놓는 죄에 대하여 깊이 슬퍼하며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자신의 의에 대한 애통함이다.  늘 죄 가운데 있는 나를 보며 애통하며악이 만연한 세상을 보며주님을 부인하며 알지 못하는 자들을 보며 애통해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저는 어찌할 수 없는 죄인중의 괴수이며 곤고한 자라고 고백한다.

죄악된 일에 대하여 근심하며 애통하게 되면 회개에 이른다회개는 구원을 이룬다.
(고후7:9-10)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

여호와 하나님은 애통해하며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신다.
(61:1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죄에 연약하여 어찌할 수 없어 애통해하는 미련한 나를 보시며 사랑의 주님은 위로를 하신다.
죄가 만연한 세상을 보며 애통해 하는 나를 보시며 사랑의 주님은 위로를 하신다.
주님을 부인하는 자들을 보며 애통해하며 기도하는 나를 사랑의 주님은 위로를 하신다.
주님의 위로는 내 마음에 기쁨과 희락과 화평이 샘솟듯 일게 하신다.


3.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인이며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60:21은 의인이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한다.  
(60:21)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영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나의 심은 가지요 나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온유한 자를 하나님께서는 의인이라 인정하시며 땅의 기업의 축복의 은혜를 베푸신다.
땅이 소산을 내며 때에 맞춰 내리시는 단비로 곡식들은 열매를 맺으며 맺은 곡식을 축내는 황충의 피해를 막으신다.

온유함은 주님의 성품이시다주님은 자신의 성품이 온유하시다고 스스로 말씀하신다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온유함은 말씀이 내안에 온전하게 거하여 하나님의 의를 이루도록 인도한다.  말씀안에 거한다면 주님의 성품을 닮게 되어 범사에 온유하며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 온유함으로 대하게 될 것이다.
 (1:20-21)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온유한자는 주님의 사랑을 품은 자이다.
고통과 고난 가운데서도 오래 참을 수 있으며 인내하며  노하기를 더디하며 주님의 사랑으로 덮는다.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6: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6:25) 화있을진저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로다

영적인 갈금함을 의미한다.
세상의 것에 주리고 목이 말라 한다면 결코 주님이 주시는 영의 만족감을 채울 수 없다.
우리의 마음이 세상 것으로 채워져 있다면 성령의 거룩함이 채워질 자리가 없다.
결코 세상의 것과 주님의 거룩함은 같은 곳에 채워지지를 않는다주님의 것을 먹고 마시려면 세상의 것이 내 마음으로부터 비워져야 한다.

세상의 것으로부터 초연함을 배우자없으면 없는대로만족하는 법을 배우자.
(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하박국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하지 않는가.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마음이 세상의 욕심으로부터 비워져 있을때 주님의 거룩한 것으로 채워진다.  주의 거룩함으로 갈급한 영혼을 채우시는 성령님.
(55:1) 너희 목마른 자들은 물로 나아오라돈 없는 자도 오라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5.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은 여호와를 바라보며 경외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신다.
(103:17)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그런 긍휼하신 여호와께서 주님의 자녀들이 긍휼을 베푸는 것을 즐거워 하시며 복에 복을 더하신다.
긍휼을 행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용서라 생각한다
(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나에게 잘못을 행하는 자들은 너무나 많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에게 잘못하는 자들에 대하여 말한다그런데 실은 자신이 어떤 이로부터 마음에 상처를 받았지만또한 자신 역시 또다른 어떤 이에게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준다는 것을 잊고 있다불균형의 악순환이 거듭해서 반복되는 것이다.  그것을 끊기위해서는 무조건적인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

몇번이나 용서를 하는 것이 옳은가 묻는 베드로에게 주님은 일흔번에 일곱번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신다.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무제한적인 용서를 말한다인간의 마음으로는 할 수 없지만내 마음에 성령께서 계신다면 우리는 주님의 긍휼의 마음을 품고 나에게 잘못한 이들을 무제한적으로 용서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의 복을 받을 것이다.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주님은 유월절 만찬을 하시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그러시면서 자신을 팔 가롯 유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신다.
(13:10-11)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온 몸이 깨끗하니라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가롯 유다의 마음이 깨끗하였다면 그는 예수님을 결코 은삼십에 팔지 아니하였을것이다.
그렇지만 유다의 마음에는 불순함이 있었다세상의 명예에 대한 욕심세상의 헛된 이념에 관한 추구함세상의 재물에 대한 욕심이런 마음이 있다면 그의 마음은 깨끗하지가 않다그런 부정적이며 더러운 것들이 마음속에 있었기에 그는 참된 주님을 볼 수 없어 주님을 배반하고 부인하였다.

마음이 완악하여 더럽고 냄새하는 악으로 차있다면 주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13: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겼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완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의청결함과는 거리가 먼 더럽고 냄새나는 것들 뿐이다.
(16:5: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마음이 청결한 자는 여호와의 거룩한 산에 올라가서 거룩한 곳에 서서 나를 의인이라 불러 주시는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게 된다.
(24:3-10)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찿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