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2일 토요일

행진하는 모든 길에서 보았더라


(출40:36-38)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떄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


출애굽을 하고 광야생활을 시작하면서 야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막을 만들게 하십니다.
백성들은 자신을 이끄시는 야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성막에 필요할 예물들을 만듭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성막을 지을 재료들을 충분하게 만들었읍니다. 그래서 모세는 더 이상 예물을 가져오지 말라고 합니다. 그 만큼 이스라엘 자손들은 때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부인하기도 하였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는 자신들을 이끄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야훼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있었읍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심을 다하여 야훼께서 임재하실 처소의 재료들을 예물로 드릴 수 있었읍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가 되어 만든 성막이 완성이 되어 야훼 하나님께 봉헌을 하였읍니다. 그리고 전적인 광야 생활이 시작이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40여년의 광야 생활을 하면서 여러 사건들을 만납니다.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자들과 목숨과 나라를 건 전쟁을 하여야 했으며 더위와 추위를 견디어 내어야 했읍니다. 여호와를 배역하며 불평하기도 하였지만 그들은 결코 야훼의 명이 없이는 한발작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읍니다. 한 곳에 오래동안 머물기도 하였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진을 헐기도 해야 했읍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밤낮으로 보면서 그들은 여호와의 임재를 느끼며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축복된 인생들입니까.

드디어 40여년에 이르는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을 바라 보는 곳에 이르렀읍니다. 지난 날을 회상하며 출애굽기는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하면서 끝을 맺습니다.

우리는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한가지를 깨달아 알 수 있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오기 전이나 나온 후에 끊임없이 야훼 하나님께 불평을 합니다. 마실 물이 없어 죽게 되었다고, 이방신을 섬기기도 하였으며, 강한 적이 가로막으면 죽게 되었다고 불평하였읍니다.

구름이 떠오르면 진을 헐고 행진하여야 하였으면 구름이 머물면 가던 길을 멈추고 구름이 떠오를 때까지 무작정 기다렸읍니다. 번거롭고 불안정한 삶이었는데도 이스라엘 자손은 이것에 대하여만큼은 야훼 하나님과 모세에게 결코 불평하지 않았읍니다. 성경 어디에서나 이스라엘이 불만 불평하였다는 구절을 찿을 수 없읍니다. 왜냐하면 비록 패역한 이스라엘 이었지만 그들은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여호와의 임재를 매일 보았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 중심에는 야훼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지켜 주신다는 확신이 있었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길을 가면서 항상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보았읍니다.
야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직접 볼 수 있는 이들은 축복된 인생입니다.


우리는 두 눈으로 혹은 마음으로 온갖 것들을 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온갖 형형색색의 색깔들이 있읍니다.
이른 아침에 해가 떠오르면 그리고 저녁에 노을이 지는 광경을 보며 아름답다고 합니다.
인적이 드문 곳의 한밤중에는 하늘에 빼곡하게 차있는 별들을 보며 경이로운 생각을 가집니다.
갖가지의 곤충들이 기어다니는 모습을 봅니다.
벌새가 쉬임없이 날개짓을 하며 단물을 빨아 먹는 모습을 봅니다.
사람마다 모두 다른 모습을 가졌음을 봅니다.
새로운 것을 보려고 여행을 갑니다.

본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사물을 보고 마음에 새깁니다. 보이는 것은 거짓이 아닌 부인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눈으로 보이는 사물 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도 있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 가운데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세요. 우리는 보이지 않는 주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며 예배를 드리며 영광을 드립니다. 온전한 마음으로 진정과 신령을 다하여 주님께 예배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십시요.
지금껏 어떤 길로 다니시다가 지금에 이르렀읍니까? 떄로는 잘못된 길 죄악의 길로 가기도 했지만 야훼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하심으로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읍니다. 아직도 많이 연약하지만 이제 잠시후면 광야 길을 마치고 주님과 함께 할 것을 저는 믿습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시며 저를 의의 길로 인도하심을 매일 매일 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믿음

야훼 하나님의 임재는 광야를 지날 때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보이셨읍니다. 하지만 지금은 야훼 하나님의 임재가 구름 기둥으로 불 기둥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야훼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저희와 함께 하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매우 중요합니다. 보고 믿는 믿음보다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요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예수님과 함께 하였던 제자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없었읍니다. 그래서 자신은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보아야지만 믿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며칠 후에 나타나신 주님은 도마에게 자신의 손과 옆구리에 손을 내밀어 확인하라고 하시며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복되도다 하시며 축복하십니다.

모세는 두려워말고 여호와께서 이르시는 구원을 보라고 말합니다.
(출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인생의 앞 길을 한치 앞도 볼 수 없읍니다.

얼마전에 제가 아는 내과 의사가 척추 디스크 수술하려 한국에 가서 CT를 찍었는데 췌장암 3기라는 진단을 받은 후에 3일 후에 죽었읍니다. 디스크 수술을 해서 허리가 아픈 것을 치료하려고 갔던 길이 그의 인생의 마지막이 되었읍니다. 그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을겁니다.

사람들은 제각각의 길을 가면서 생명을 위협하는 험한 길로 갈 수도 있고 깊은 구렁에 빠질 수도 있읍니다.
하지만 구름 기둥으로 불 기둥으로 인도하는 주님의 자녀들은 모든 길에서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마음에 믿으며 구원을 이루시는 주님을 두 눈으로 봅니다. 저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수많은 사건 가운데서 주님은 저와 함께 하시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음을 봅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123편에서 이렇게 찬양합니다.
(시123:1-2)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어디를 보십니까? 결국은 실의와 좌절케 하는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 보좌에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세요. 주님의 은혜는 높고 크십니다. 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을 바라봅시다.


야훼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빛으로 보입니다.
성막 위에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자신의 임재의 영광을 보여주신 야훼 하나님께서는 빛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 가운데 계십니다.

주님은 이 땅에 빛으로 오셨읍니다.
(요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1:4-5)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야훼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들이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읍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구름 기둥과 빛 기둥 가운데 계신 야훼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읍니다.

하나님은 제단을 쌓은 아브라함에게 후손의 축복을 약속하시고 횃불로 보이셨읍니다
(창15: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출애굽한 후 석달이 지나 시내 광야에서 하나님은 빽빽한 구름과 불 가운데서 나타나셨읍니다.
(출19: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출19: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언약궤를 새로 지은 성전에 모신 후에 솔로몬과 제사장에게 보이셨읍니다.
(왕상8:10-11)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야훼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선지자로 부를 때에 이사야는 환상으로 성전에 연기로 충만하였음을 보았읍니다.
(사6:1-4) 내가 본 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 성전에 연기가 충만하더라

에스겔이 환상을 볼 때에 구름과 불에 둘려 쌓여 계신 야훼 하나님을 보았읍니다.

야훼께서는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빛으로 빽빽한 구름으로 여호와의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가끔가다가 느끼지 않습니까? 저에게 환히 비쳐지는 주님의 영광의 빛을 느낍니다. 두 손을 하늘을 향하여 들고 두 눈을 감고 주님을 불러 보세요. 매우 밝은 영광의 빛이 느껴집니다. 빛에는 주님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과 은혜가 있읍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이기 때문에 주님의 빛을 느낍니다.

(엡5:9)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의 인치심을 받은 자들을 빛의 자녀라 불립니다. 빛의 자녀는 빛의 자녀답게 빛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빛 가운데에서 행하여 그 빛을 보면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


출애굽의 마지막 절은 광야에서 항상 함께 하신 야훼 하나님의 영광을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하며 끝을 맺습니다. 비록 험하고 위험한 광야 길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었지만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하시며 인도하셨읍니다. 때로는 죄 가운데서 주님을 배역하였어도 매일 매일 보이는 주님의 임재의 영광을 보면서 주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회복하고 그들은 다시 주님 품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읍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에서 함께 하셨던 야훼 하나님의 영광이 바로 우리의 인생 광야에서도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식에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바로 제 안에서 저의 삶에 직접 관여하십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말씀은 무엇을 말하고 있읍니까? 곧 말씀이 육신이 되신 주님이 바로 제 안에 계심을 보라고 말합니다. 제 안에 계신 주님의 영광을 바라 보십시요.

(출33:1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우리의 광야 길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읍니다. 지금껏 잘 견디어 내었듯이 앞으로 남은 인생 길도 주님께서 저와 함께 하실 것이기에 저는 견디어 낼 것입니다. 비록 제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야훼 하나님께서는 저보다 앞서 가시며 저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며 저를 편히 쉬게 하십니다.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까. 피곤한 인생 광야길에서 들려 주시는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오늘도 이 말씀을 의지하며 또 하루를 삽니다. 힘을 내세요. 용기를 가지세요. 주님께서 바로 제 안에 계시며 저를 쉬게 하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영광을 봅니다.


야훼 하나님 아버지
제 눈이 밝아져서 저를 둘러싼 야훼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보기를 간구합니다.
주님의 영광의 빛에는 자비와 긍휼이 있으며 저를 무한하신 주님의 사랑으로 이끄십니다.
저의 인생 광야길을 가면서 저와 함께 하시며 저를 구름 기둥으로 불 기둥으로 지키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오늘 또 하루를 삽니다. 눈을 하늘을 향하여 들고 긍휼과 자비의 주님을 봅니다.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께 모든 영광을 드립니다.

예수 그릐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9년 6월 2일 일요일

하나님의 이름 야훼

(출34:5-7)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에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실새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헤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And the LORD passed by before him, and proclaimed, The LORD, The LORD God, merciful and gracious, longsuffering, and abundant in goodness and truth, keeping mercy for thousands, forgiving iniquity and transgression and sin, and that will by no means clear the guilty



하나님을 얼마나 아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잘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단지 나의 지식과 상식의 범위 내에서 이해하며 안다고 합니다.
야훼 하나님은 우리의 지식을 뛰어 넘습니다. 우리는 야훼 하나님을 극히 너무나 제한적으로만 알 뿐입니다. 마치 밤하늘에 보이는 별들의 끝을 도무지 알 수 없는 것과도 같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우주의 끝이 얼마만큼인지를 도무지 알 수 없읍니다. 아무도 그 곳에 간 적도 없고 갈 수도 없읍니다. 그런데도 우주의 크기가 얼마만하다고 아는 척하며 말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 뿐이며 얼마든지 심각한 오류가 있기 마련입니다.

야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어떤 분이심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렴풋이나마 야훼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심을 막연하게나마 압니다.

모세는 출애굽한 후에 야훼 하나님의 명령하신대로 시내 산에 올라 40일을 지냅니다. 야훼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어떻게 짓고 어떻게 제사를 드려야 하는 지를 상세하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야훼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십계명의 두 돌판을 주십니다. 모세는 기쁜 마음으로 산을 내려 갑니다. 그렇지만 산 아래의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가 더디 내려옴을 보고 우상을 만들어 크게 소리지르며 이방신에게 제사들 드립니다. 모세는 이를 보고 크게 격노하여 두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립니다.

야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돌판 둘을 준비하여 다시 시내 산에 오르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에 모세는 십계명을 새길 두 돌판을 준비하여 등에 짊어지고 시내 산에 올라갑니다. 야훼 하나님께서는 구름 가운데 강림하시고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선포하시며 자신은 어떤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헤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선포하십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심을 이 땅을 살아 가는 저희에게 늘 기억되기를 간구합니다.
야훼 하나님을 가만히 불러 보세요. 나를 사랑하시는 야훼 하나님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느껴집니다.


야훼

야훼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부를때 그 사람의 이름을 부릅니다. 이름을 부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떠오릅니다.
예를들어 미국의 대통령이나 한국의 대통령의 이름을 부르게 되면 그 분의 모습과 행동과 말들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또한 가까운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게 되면 그 사람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사람의 이름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읍니다. 하나님 또한 자신의 이름을 갖고 계십니다. 되도록이면 하나님을 부를 떄 '야훼 하나님' 하면서 불러 봅시다. 보다 선명하게 야훼 하나님께서 내게로 다가오지 않겠읍니까.

YHWH.
오래전의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야훼'라고 발음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대의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도 않았고 또한 최초로 기록된 성경에는 모음이 없어서 정확한 발음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부를 수 없어서 아도나이(주님)라고 불렀읍니다. 그러다가 후에 유대인들은 맛소라 본문에 의지하여 성경을 통일하면서 YHWH에 모음을 첨가하여 YaHWeH (야훼)로 표기했읍니다. 또한 'I AM WHO I AM' 의 히브리어인 '예흐예 아쉐르 예흐예"의 예흐예에서 '여호와'가 유례가 되었읍니다. 따라서 '아도나이', '주님 (LORD)', '여호와' 혹은 '야훼' 모두 하나님의 이름이지만 정확하지않습니다. 그 중에서 "야훼"가 보다 하나님의 이름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이 '야훼'라고 소개하십니다.
마치 우리가 사람들을 처음 만날때 서로 이름을 소개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만나시면서 자신의 이름이 야훼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야훼 하나님께 저의 이름과 이러한 성품들을 갖고 있다고 한번 자신을 소개해 보세요.

하나님의 이름은 '야훼'이십니다.
야훼 하나님.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시며 우리의 삶과 죽음을 주관하십니다.
야훼 하나님은 전혀 모순도 없으며 흠도 없으시며 완전하십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자신의 이름이 '야훼'임을 알려 주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어떤 속성들을 갖고 계신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어떠한 속성을 갖고 계신지를 안다는 것은 우리에는 큰 축복이며 은혜입니다.

자비롭고 은혜로운 (merciful and gracious)

야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성품 중에서 자비를 가장 먼저 언급하셨읍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에게는 야훼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야훼 하나님의 자비가 없었다면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결코 받을 수가 없읍니다.

(시78:38)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죄를 들추어 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른 이의 약점이나 잘못함이나 죄악됨을 보면 까발리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자비하신 야훼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덮고는 나는 도무지 모른다고 하십니다. 야훼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됨을 보시고 분노하시면 견디어 낼 육신이 없음을 잘 아십니다. 자비하심으로 나의 죄를 덮고 또 덮으시는 야훼 하나님의 긍휼의 사랑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우리는 야훼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받을 자격이 없읍니다. 하지만 야훼께서는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셨읍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자비는 어떤 대가를 내야하는 것이 아닌 무조건적인 선물로 은혜로 베푸셨읍니다. 야훼께서 저를 택하시고 자비를 베푸심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longsuffering, slow to anger)

(눅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노하시를 더디하시는 야훼 하나님의 성품은 우리 인간의 성품과 가장 비교되는 성품일 것입니다.
참고 참으시는 야훼 하나님의 성품으로 인해 우리는 오늘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살아 갑니다..

참고 참으시는 야훼 하나님.
우리 인간들은 너무나 쉽게 분노합니다. 아무리 자제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이르면 분노합니다. 내 마음에서는 성령께서 화내지 말라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분노하고 맙니다. 쉽게 분노함은 하나님의 속성과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쉽게 분노할수록 주님의 성품과는 반대이며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오늘도 저는 또 어떤 일로 분노할지 모릅니다. 분노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과연 이 일이 내가 분노해야 하는 일인지를 생각해봅시다. 야훼 하나님께서는 제가 죄를 범할 때마다 분노하시지 않으셨읍니다. 그런데 저는 누가 저에게 조금만 잘 못해도 분노하며 함부로 악한 말을 쏟아 낼 때 그곳은 악한 기운들로 가득하게 됩니다.

쉽게 분노할 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가뜨립니다. 만일 제가 야훼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주님의 자녀라 한다면 저는 분노를 가라 앉힐수 있는 주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읍니다.

야훼 하나님은 저의 완악함을 보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오랫동안 참고 또 참으십니다. 저는 오늘도 여김없이 순간 순간 죄를 범합니다. 만일 야훼 하나님께서 분노하심을 참지 않으셨으면 저는 이미 오래전에 멸망하였을 겁니다. 하지만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야훼 하나님이시기에 저는 회개할 시간을 갖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생명을 버리기까지 저를 사랑하신 주님의 은혜로 오늘도 저는 살아 갑니다.



인자와 진실이 많은 (abundant in goodness and truth)


인자를 KJV에서는 Goodness (선함)으로 번역을 하였읍니다.
주님은 "나는 선한 목자이다 (I am the Good Shepard)" 선언하십니다.

(요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자신의 이름을 알며 따르는 양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며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지키십니다. 주님의 선하심은 한계가 없으십니다.

저의 삶을 되돌아보아도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보호하심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읍니다. 저의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주님께서는 지금껏 저를 주님의 선하심으로 저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셨읍니다.

또한 주님은 요14:6에게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요14: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주님은 진리이십니다.
진리이신 주님이 선포하신 말씀에는 거짓이 없읍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결코 해하지 않습니다. 진리이신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마땅히 가야하는 인생의 길을 제시하며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선포하신 진리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의 진리는 저를 변화시킵니다.

(엡3: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저의 겉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낡아지지만 저의 속사람은 야훼 하나님의 끊임없이 흐르는 샘의 은혜로 인해 늘 새로워 집니다. 지금껏 저를 주님의 선하심과 진실하심으로 인도하신 주님의 은혜가 저의 남은 호흡에도 함꼐 하실 것을 저는 믿습니다.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Keeping mercy for thousands)

주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야훼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후에 광야에 들어서자 선민으로서 반드시 지켜야할 십계명을 선포하십니다. 특히 제 2계명인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말씀하신후에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에 이르기까지 은혜를 베푸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출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주님은 천대에 이르는 후손의 영원한 축복을 약속하셨읍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후손들이 주님의 축복을 받아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어려움 없이 풍요로운 삶을 살기를 간구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잘 믿고 순종하여 나 뿐 아니라 소중한 후손 역시 주님의 풍요로운 축복을 받는 은혜를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Forgiving iniquity and transgression and sin)


야훼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형제가 범한 죄를 7번에 70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마18: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사람들은 한번 두번 용서할 수는 있어도 그 이상 용서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인내와 관용이 필요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상대의 거듭된 죄악됨을 용서할 마음의 그릇이 너무나 적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 지를 말씀하셨읍니다.
(마18:36)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내가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내게 잘못한 나의 형제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도 저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입으로 상대방을 용서했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가식적으로 우리는 용서했다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읍니다. 하지만 그것은 참 용서가 아니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용서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용서는 나의 마음으로부터의 용서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으로부터 용서를 하였다면 내 안에는 앙금이 남아있지 않게 되며 자유케 됩니다.

사람들은 일흔 번이 아니라 일곱번 용서하는 것도 무척이나 힘이 듭니다.
그런데 저는 수많은 죄악을 저지릅니다. 말로써 상대방을 정죄하며 비판하며 거짓을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수많은 죄악된 생각을 하며 주님께 죄를 범합니다. 그런데도 야훼 하나님께서는 저의 모든 죄악들을 수없이 용서하십니다.

(사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사랑하시는 야훼 하나님께서는 저의 죄악됨을 일곱 번에 일흔 번 뿐 아니라 그 이상도 저를 용서하시며 "나는 너의 죄를 도무지 기억하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야훼 하나님은 친히 육신을 입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땅에 오셨읍니다. 모든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야훼 하나님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받으셨읍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씻기시고 용서하신 주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모든 죄가 용서를 받는 길이 열렸읍니다.


환난 가운데 있던 시편기자는 시86에서 이렇게 간구합니다.
(시86:5) 주는 선하사 사죄하시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시86:15)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환난 가운데서 건지시는 야훼 하나님.
주께 부르짖는 영혼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저를 수없이 용서하셨듯이 저 또한 저의 이웃들을 마음으로부터 용서하게 하옵소서 늘 간구해야 합니다. 저에게 죄악을 범한 이웃들을 마음으로 용서를 할 수만 있다면 저는 자유로울 것입니다. 보다 세상은 밝아질 것입니다. 미움이 없으니 제가 거하는 곳곳마다 천국의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저의 마음을 아프게하는 못된 짓을 아무 생각도 없이 행하는 이웃을 용서하기를 기뻐하는 저를 분명 야훼 하나님께서는 보시고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며 주님의 인자함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참으로 복된 인생일 것입니다.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by no means clear the guilty)

야훼 하나님는 우리의 죄악됨을 공의로서 심판하시는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주님은 재림주로 모든 것들을 엄격하고 공의롭게 심판하십니다.
주님의 재림이 우리가 사는 동안 임할는지 아니면 우리의 육신이 땅에 묻혀 있을 때에 임할는지는 알 수 없읍니다. 주님의 재림의 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살아 호흡을 하는 동안 신랑으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신부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의 인생의 마지막이 언제 갑지기 임할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눅21:34-36)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 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로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골3:5-6)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야훼 하나님은 우리의 잘잘못을 반드시 하나님의 기준대로 심판하십니다.
행여나 죄악 가운데서 회개할 시간도 없이 뜻하지 않는 마지막을 맞아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지 않도록 늘 깨어있어 준비하여 약속된 성도의 축복을 받으세요. 땅의 지체에게 속한 악한 성품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저의 마지막이 갑자기 임할지라도 항상 준비된 성도의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야훼 하나님의 이름에는 저희를 사랑하시는 무한한 사랑이 담겨져 있읍니다.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야훼 하나님.
노하시를 더디하시는 야훼 하나님.
인자와 진실이 충만하신 야훼 하나님.
영원한 사랑의 야훼 하나님
용서하시는 야훼 하나님.
심판하시는 야훼 하나님.

야훼 하나님을 잊지 말고 늘 마음에 깊이 새기며 하루 하루의 삶 가운데서 천국을 경험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인생 여러 여정길에서 야훼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간구합니다. 만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심을 깨달아가는 축복의 삶을 사시기를 간구합니다.



야훼 하나님,

야훼 하나님의 이름을 되새기어 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주의 자비는 너무나 커서 저같은 죄인을 위해서 피를 흘리셨읍니다. 저는 늘 주님의 자비를 간구합니다.
주의 은혜로 말미암아 저같은 자도 구원의 은총을 입고 천국을 바라봅니다.
노하시를 더디하시는 야훼 하나님께서는 늘 패역한 죄 가운데 있는 저를 보시며 참고 또 참으시며 온전한 주님의 자녀로 소생시키십니다.
인자와 진실이 충만하신 야훼 하나님께서는 저를 세속적인 길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영원한 진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야훼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이 땅의 어떤 사랑과 야훼 하나님의 사랑을 비교할 수 있겠읍니까.
용서의 야훼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담기에도 너무 부끄러운 저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이미 용서하셨읍니다.
장차 모든 악과 선함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야훼 하나님는 만주의 주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온 우주의 주제이십니다.

저희들에게 귀하신 이름을 주신 야훼 하나님. 모든 영광을 받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