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8일 일요일

구름 기둥과 불 기동의 축복


(9:15-18)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의 성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는데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른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광야생활의 모습을 그린 출애굽기의 마지막 장인 40장의 마지막 구절에 이렇게 광야생활을 정리한다.

(40:36-38)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에서 보았더라.

이스라엘은 광야의 길을 가는 40년동안 매일 매일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보았으며, 구름 기둥이 이끄는 데로 길을 갔으며 밤에는 불기둥을 보며 안식을 취하였다. 매일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보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역사가 지금의 내게도 임하기를 간구한다.

첫째,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한다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항상 성막 위에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있었다.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있는 성막에 임재하셨음을 말한다. 임재하신 여호와께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항상 함께 하셨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셨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사방 어디에서나 여호와의 임재를 알리셨다.

(13:20-22)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우리는 여호와의 임재를 간구한다.
(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구름 기둥과 불 기둥 가운데 계셨던 여호와께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이제는 주님을 믿는 자녀인 나와 같은 자안에 임하신다. 저 멀리 구름 기둥과 불 기둥 안에 계신 두려움과 경외함으로 바라보았던 여호와께서 이제는 바로 내 안에 임재하신다.

두번째, 순종
(9:17)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이스라엘은 구름이 떠오르면 지체하지 않고 행진하다가 구름이 머무르면 진을 쳤다. 언제든지 구름이 떠오르면 장막을 거두고 이끄는 대로 행진하였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을 하면서 그리고 광야생활을 하면서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여러 기적들을 경험하였다.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불평하고 원망을 하며 여호와의 진노를 받기도 하였지만, 한가지 늘 순종하였던 것은 구름이 떠오르면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르는 곳에서는 행진을 멈추었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나의 길을 인도하신다.
때로는 나 역시 여호와께 불평하고 원망하며 목이 곧은 백성처럼 행동을 하지만 한가지는 꼭 지켜야 하는 것이 여호와께서 멈추라 하면 멈추어야 하며 가라 하시면 가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나의 앞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를 알고 계신다.
피하여야 갈 떄가 있으며 한 곳에 머물러야 하는 시기가 있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상황에서 앞으로 계속 가다가는 너무나 큰 피해를 입을 것이기에 진영을 가다듬고 앞으로 있을 것들에 대한 준비를 하라고 멈추라 하신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기적적인 개입의 축복이 내게 임하기 위해서는 주님께 순종하여야 한다.
주님께서 나를 구름 기둥으로 불 기둥으로 인도하시려는데, 나의 순종함이 없다면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축복은 내게 임하지 않을것이다.



세번째, 전쟁에서 보호
(14:19)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가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14:24)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을 그당시 세계 최강의 군대인 애굽 군대가 바짝 뒤쫏아온다.
앞에는 홍해가 뒤에는 애굽군대가 있어 앞으로 뒤로도 갈 수 없어 깊은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을 여호와께서는 보호하신다. 여호와께서는 홍해를 가르시고 구름 기둥을 선두로 이스라엘을 건너편으로 건너가게 하신다. 곧바로 홍해 길로 따라 들어선 애굽군은 맹렬하게 추격을 한다. 앞에서 가던 여호와의 사자와 구름 기둥은 이스라엘의 뒤쪽으로 옮겨간다. 애굽 군대와 이스라엘 사이에는 구름 기둥이 있다. 구름 기둥 가운데 계신 여호와께서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사 더 이상 추격을 할 수 없게 되자 애굽 군인들은 여호와의 개입함을 보고 두려워하여 우왕좌왕하며 도망하려고 하지만 곧 회복된 홍해 바다물에 모두 전멸한다.

여호와는 자신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을 구름 기둥으로 불 기둥으로 지키셨다.
여호와의 임재하심이 과거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지키신다.

1967년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요르단과 이집트와 6일 전쟁을 하였는데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기적적인 사건들이 있어 하나님께서 개입하심으로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 때에 이스라엘 군인들을 이끈 이가 모세 다이안 이었는데 출애굽 할 때의 모세와 이름이 같다.
이스라엘은 6일 전쟁을 하면서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광야길을 지켜주셨듯이 여호와께서 개입하신 기적들을 체험한다. 

수천명의 이집트 군인들이 한 명의 이스라엘 낙오군인에게 항복을 하였는데 그 이유가 그 군인 뒤에 수천의 천사들이 자신들을 겨누고 있음을 보았다. 자신들은 이스라엘 군인들과는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만 하나님의 천사들과는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항복을 하였다고 많은 이들이 진술하였다. 이집트 군이 남쪽 국경에 다가갔을때 갑자기 하늘에 여호와의 손이 나타나서 그들은 무서워서 도망하였다.”

여호와께서 개입하시어 전쟁을 승리로 이끄셨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사건들이었다.
기적적인 개입은 지금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함께 한다. 사람의 눈에는 기적처럼 보이지만 여호와께는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고 인도하는 여호와의 방식이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삼상17:47)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총사령관이었던 모세 다이안 장군은 전쟁이 끝난 후에 통곡의 벽에 쪽지를 끼어 놓고 기도하였는데 쪽지의 내용은 시118:23의 말씀이었다.
(118:23)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바퀴를 빠지게 하여 갈길을 막고 어지럽게 하셨듯이 나를 가로막는 전쟁에서 여호와께서는 구름 기둥으로 보이지 않게 하시고 적의 바퀴를 빠지게 하여 길을 막고 어지럽게 하시며 나에게 다가서지 못하도록 나를 지키신다. 나의 눈에는 기이하게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다.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전에도 기적을 베푸셨고 앞으로도 기적을 베푸시며 전쟁에서 나를 보호하시며 인도하실 것을 나는 확신한다.

주님은 나를 어떻게 인도하셨는가?
(27:3)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리로다

나의 지난 날을 보면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위기의 순간이 있었고 여호와를 배역한 일들도 있었고 결단할 때가 있었으며 실패의 때가 있었으며 사람과의 관계에서 잘못된 영향을 주고 받은 적도 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예수님을 믿고 말씀을 생각하고 있다.

내가 여기에 있기까지 있었던 많은 일들이 과연 우연이었을까?
우연처럼 보이지만 필연이었던 것이다. 모든 순간 순간 마다 여호와께서는 나를 수렁에서 건지시고 고난 가운데 있던 나를 건지셨다. 앞으로도 여호와께서는 그렇게 나를 인도하실 것이다.

(33:9-10)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모세가 여호와와 대화하기 위해 회막에 들어 갈때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있었다. 회막 문에 내려 온 구름 기둥을 보고 이스라엘은 각각의 장막 문 앞에 서서 여호와를 경배하였다. 이스라엘은 자신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여호와를 체험함으로 보아왔다. 지난날의 고난 가운데서 인도하신 여호와를 마음 깊이 새기며 머리를 숙이고 경배하였다.

나를 구름 기둥으로 불 기둥으로 인도하시는 여호와께 일어나서 두 손을 높이 들고 경배하자.
나를 지금까지 자비로움으로 인도하신 여호와를 머리숙여 예배하자.
나를 인도하시고 축복의 길을 예비하신 여호와를 찬양하며 경배하자.
나의 모든 삶이 예배의 순간 순간이었으면 한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이 광야길을 가는 동안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인도하셨고, 매일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심으로 굶주리지 않게 하셨으며, 입은 옷이 헤어지지 않게 하사 추위와 강렬한 햇빛으로부터 보호하셨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요단강을 건너자 만나는 그쳤다.

(5:12)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여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그런데 성경에는 언제 불 기둥과 구름 기둥이 멈췄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왜 기록이 되어 있지 않았지를 생각할 때에 이런 생각이 든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은혜는 없어진것이 아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광야길을 가는 동안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보며 여호와의 임재하심을 체험하였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불 기둥과 구름 기둥은 보이지 않는다.

(13: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그렇다고 해서 여호와의 임재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비록 나의 눈에 불 기둥과 구름 기둥은 보이지는 않지만 여호와께서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심을 확신한다. 주님께서 늘 나와 함께 하시며 구름 기둥으로 불 기둥으로 나를 인도하심을 나는 믿는다. 내 안에 내주하시는 주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구름 기둥 불 기둥이 되셔 나의 광야길을 가는 동안 나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심을 나는 확신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의 광야생활동안 불기둥으로 구름기둥으로 지키시사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읍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인도하신 여호와께서 제가 저의 광야길을 가는 동안에도 불기둥으로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광야길에서 많은 강하고 악한 적들을 만납니다. 우리를 해하려고 하고 끄집어 내려 하고 상처를 주어 낙심하고 절망케하여 여호와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그렇지만 여호와께서는 저를 눈동자처럼 보호하시며 구름기둥으로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며 능히 이기도록 인도하시니 참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여호와의 명령대로 순종하여 머물라 하시면 머물게 하시고 가라 하시면 무슨 일이 있어도 망설이지 않고 떠날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광야길을 가는 동안 저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하게 예배하는 예배의 회복이 있게 하옵소서. 늘 저를 구원하신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기를 원합니다.

제가 천국에 이를때까지 광야길을 가는 저를 구름기둥으로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7년 6월 4일 일요일

나실인



(6: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



 

나실인의 뜻은 구별된 자, 헌신한 자, 분리된 자의 뜻을 갖는다.

나실인의 제도는 광야생활에 시작되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제사장으로 제한되었다. 오직 레위지파의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자만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레위지파에 속하지 않은 자들도 구별된 자로 들어 쓰셨다. 나실인을 제정함으로서 하나님을 진실된 마음으로 섬기고자 하는 남자나 여자가 자원을 해서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규례를 지키면 나실인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나실인의 대표적인 인물을 보자.
삼손
(13:5)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삼손의 아버지는 단 지파의 자손이다. 제사장이 될 수 없는 혈통을 갔고 태어났지만 여호와께서는 삼손을 어미의 태중에서 이미 나실인으로 정하셔서 고통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나실인은 하나님께서 택하신다. 람의 뜻으로 자원해서 나실인이 되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이미 나실인으로서 택하신 것이다.


사무엘
(삼상1: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사무엘의 아버지는 에브라엠 자손이다. 사무엘 역시 제사장이 될 수 있는 가문은 아니었지만 어머니 한나의 서원으로 사무엘은 나실인이 되었고 사무엘은 자라면서 자원하여 나실인으로 삶을 살며 제사장의 임무를 감당하였다.

레갑자손
(35:8) 우리가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한 모든 말을 순종하여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 동안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레갑의 자손은 선조가 나실인으로 서원한대로 유언을 따라 평생동안 나실인으로 구별하며 삶을 살았다.

세례요한
(1:13-15)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라여 무서워하지 말라.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천사는 사가랴에게 세례요한이 탄생할 것을 알린다. 이는 태어날 요한이 나실인으로 택하신 여호와의 뜻임을 분명하게 알려 준다. 세례요한의 부친 사가랴는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 가문이었다.

사도바울
(18:18)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사도바울은 베냐민 지파의 혈통을 이어받았으며 (3:5)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데 앞장을 섰었지만 주님의 은혜로 주님의 자녀가 되었고 자원해서 머리를 깍고 나실인으로서의 서원을 하고 평생을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전도자의 삶을 살았다.


제사장은 혈통으로 이어갈 수 있었지만, 혈통이 따르지 않는 자들은 나실인의 서원을 함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특혜를 허락하신 것이다. 나실인은 혈통을 따르지 않고 자신이 자원해서 하나님의 종이 됨을 의미한다.




나실인이 되기 위해서는 몇가지 서원을 해야 했으며 나실인의 삶을 사는 동안 구별하여 자신의 삶을 여호와께 드려야 했다. 현재 믿음생활을 하는 대다수의 성도들이 나실인의 예에 해당한다.


우리는 혈통으로 주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 우리 모두는 자원해서 주님을 섬기지 않는가. 지금의 우리가 곧 나실인이지 않겠는가!  나실인이라면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나실인의 특징을 살펴보자.


자원하는 심령



나실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자원하여 서원을 하였다.
(2)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

나실인은 여호와로부터 택함을 얻어 서원하기를 원하는 누구에게나 열린 길이었다.
(51: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억지로 하게 되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기쁨을 갖지를 못한다.
하지만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자원해서 기쁜 마음으로 하게 되면 그 가운데서 삶의 가치를 갖는다. 내가 원해서 하는 것과 원하지 않고 억지로 하는 것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주님의 일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가 진심으로 원해서 주님의 일을 하기를 주님께서는 원하신다. 자원하는 심령으로 주님의 일을 기꺼이 하면 분명히 성령의 열매을 맺게 될 것이다.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을지라도 분명 주님께서는 나의 자원하는 심령을 받으셨을 것이라 확신한다.




주님의 일을 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아무리 하찮고 적은 일이며 눈에 드러나지 않을 지라고 기뻐하며 자원을 해 보자. 누가 날 알아 주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지켜 보고 계신다.


나실인의 서원
나실인이 되기 위하여는 몇가지를 지켜야 했다.



  1. (3)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금한 술
    (10:9-10)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성소 봉사는 정신이 깨끗한 상태에서 섬겨야 한다.
    제사장이 해야 할 임무 중에서 중요한 것이 곧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율법에 쓰여진 대로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제사장이 술에 취하게 되면 이성을 잃게 되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어 무엇이 거룩하고 속된 것을 구별할 수 없으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할 수 없게 되어 올바르게 백성들을 지도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제사장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반드시 술을 멀리하여야 한다고 규례로 정하셨다.
     
    우리의 삶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술.
    술은 약이 되고 병을 주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술은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해주기도 하며 악화시키기도 한다. 술은 멀리하는 것이 좋다. 특히 나실인의 서원을 하였다면 곧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기로 서원을 했다면 술을 멀리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자기부인
    세상의 축복을 의미하는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는 것은 곧 자기부인 (self-denial)이다.
    포도주는 세상의 축복을 의미한다.
    (3:9-10)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주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104:15)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세상의 소욕 곧 나만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곳에서 자려고 하는 자기 이익을 쫓아가려는 자기의 욕심과 자아를 버리고 주님 앞에 온전하게 서야 함을 의미한다.
    (4:4)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독주는 사람을 실수하게 한다
    (28:7) 이들은 포도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을 치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말미암아 옆 걸을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환상을 잘못 풀며 재판할 때 실수하나니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것이 없도다.
     
    술이 과다하게 들어가게 되면 사람은 이성을 잃는다. 땅이 오르락 내리락 하여 비틀거리다가 결국은 속안에 것들을 모두 토하여 더럽고 냄새나는 것들로 가득하게 한다. 사람이 절제하지 못한다면 죄가 가득하게 되어 냄새가 나고 더러운 오물로 더럽혀진다. 나실인으로서 서원을 한자는 독주에 술에 취해 있어서는 않된다.
      
  2. (5) 삭도를 절대로 그 머리에 대지 말것이라
    머리와 연관된 나실인으로 삼손은 좋은 예다. 머리칼은 힘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숱이 많은 머리칼을 가진 압살롬을 아름다운 자라고 표현하였으며, 대머리인 엘리사를 조롱하며 욕한 자들은 저주를 받아 암곰 두마리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나실인이 되었다는 표식으로 머리털을 깍지 않고 길렀다.
    나실인의 서원은 자신에게만 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도 자신의 결단을 알리는 것이다.  나실인의 서원을 한 자는 머리털을 깍지 않고 길게 자라도록 내버려 두었다. 길게 자란 머리는 나실인의 표식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길게 자란 머리칼의 모습을 보고 그가 나실인인지를 구별할 수 있었다.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은 것은 겉에 보이는 모습도 나실인으로서 적합한 정결해야 함을 의미한다.
    나실인으로 택함을 받은 나 역시 주님의 자녀답게 정결한 모습이어야 한다. 나실인은 속의 마음과 생각 뿐 아니라 겉의 모습 역시 나실인으로서의 품위와 정결함과 도덕성과 진실된 신앙인의 모습을 갖고 있어야 한다.
     
    나는 나실인의 표식을 갖고 있는가?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사도바울은 수많은 박해와 고난을 받아서 몸 곳곳에 상처가 아문 흔적들이 있었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영혼이다. 사도바울의 영혼에 예수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나의 영혼에도 예수의 흔적이 새겨져 있음을 나는 확신한다.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나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4: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내 안에 새겨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표식으로 나는 구별되어 영원한 예수의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3. (6)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것이라
    나실인은 죽은 자 곁에 있어서 부정하게 되서는 않되었다. 만일 나실인 곁에서 사람이 갑작스럽게 죽어 부정하게 되었다면 그는 머리를 깍고 다시 나실인의 서원의 과정을 다시 시작해야했다.
     
    (8:21-22) 제자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제자 중의 하나가 자신의 아버지의 장례를 먼저 치루고서 예수님을 쫓겠다고 하자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제자들은 미처 모르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나실인으로 부르신 것이다.
     
    죽음은 곧 죄의 결과이다.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나실인은 죽은 자로부터 분리가 되어야 한다.
    나실인은 죄악으로부터의 구별됨을 말한다. 나실인은 죄악이 있는 곳에 가까이 가지 않아야 한다. 죄악을 만져서도 않되고 가까이 하지 않도록 늘 경계를 해야 한다. 그렇지만 잠시 방심하여 죄에 가까이 다가가서 죄를 만졌다면 주님앞에 나아와서 회개하고 용서을 구하여야 한다. 우리의 심정을 잘 이해하시는 주님께서 나의 모든 죄악들을 고하고 용서를 구하면 용서하실 것이다.
     
    (12)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릴 날을 새로 정하고 일 년된 숫양을 가져다가 속건제물로 드릴지니라. 자기의 몸을 구별한 때에 그의 몸을 더럽혔은즉 지나간 기간은 무효니라.
     
    나실인은 죄로부터 구별되어야 한다. 그래서 죄가 있는 곳에는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날마다 우리는 죄에 노출되어 죄를 만지고 죄악에 물들여진다. 죄를 지을때마다 다시 나실인의 새로이 서원을 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곧 우리는 날마다 다시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각오를 새롭게 하여 나실인으로서 구별되이 살아야 한다.
      
  4. (8) 구별한 모든 날 동안 거룩한 자니라
    나실인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속한 자이다.
    (19:2)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여호와께 속한 나실인이라면 사는 모든 날 동안 영혼이 깨끗하고 정결하고 거룩하게 구별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거룩하여 지는가?’가 우리의 질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답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곧 성경말씀과 기도와 성령충만이지 않겠는가.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 연약한 인간이 해야 하는 것은 늘 성경말씀을 가까이 해야 하며 주님의 뜻대로 드리는 기도와 성령충만한 삶을 살도록 주님께 은혜를 간구하야 한다. 주님께서 은혜를 부어 주실것을 소망해 보자. 주님의 은혜로 내 영혼이 영적인 자가 되면 자연적으로 겉에 보이는 모습 역시 주님을 닮아 갈 것이다.
     
    나실인으로서 주님의 자녀답게 행실, 입에서 나오는 말, 다른 이들을 위하는 모습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여야 한다.
     

나실인의 표본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나실인으로 이 땅에 오셨다.
거룩하신 주님. 죄로부터 분리된 정하신 주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며 하나님을 온전하게 섬기신 모습을 보이신 주님.
 
주님은 완전하신 나실인이셨다.
주님의 본을 따라 나실인으로 부름을 받은 우리 역시 온전한 나실인의 삶을 살도록 해 보자.
 
나실인은 예수님 앞에 온전하게 헌신하겠다는 나의 서원이다.
날마다 나실인의 서원을 할 수 있도록 나를 나실인으로 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예수님은 내가 나실인으로서 온전한 삶을 살며 열매를 맺기를 원하신다. 내가 속한 어디에서든지 나실인으로서 죽음으로 인도하는 죄를 멀리하며 항상 정결한 모습으로 거룩함을 쫓는 주님의 마음으로 이 땅의 삶을 살아보자.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나실인으로 삶을 살기를 자원하며 서원하는 나를 기뻐하시며 사랑과 은혜와 섭리하심으로 구별된 삶을 살도록 도와주실것이다.
 
 

하늘에 계신 여호와여
여호와를 사모하며 여호와의 일을 하기를 원하는 자에게 길을 열어 놓으셨읍니다.
선택된 백성 중에서 또 선택된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서 혈통을 중요하게 여기셨지만, 또한 자원하는 심령으로 주님을 사모하는 자들에게도 길을 열어 주셨읍니다.
 
저와 같이 부족하고 연약한 자일지라도 제 마음안에 주님을 사모하며 주님의 일을 하기를 원하는 자에게 나실인의 서원을 하여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읍니다.
 
오늘 말씀에서 배운대로 나실인은 술을 멀리 하여 세상의 축복을 따라가지 말고 깨끗한 정신으로 주님의 일을 하라고 가르쳐 주셨읍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도 제가 나실인 곧 그리스도인으로서 온전한 생각과 마음과 행동을 하고 있음을 알리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저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떠오르게 하옵소서. 죄로부터 분리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제가 연약하여 죄를 만지거나 죄로 인하여 부정하게 되면 저의 죄악됨을 주님께 고하고 용서를 구하며 회개할 수 있는 심령을 제게 허락하옵소서.
 
주님 앞에서 서기 전까지 저의 마지막 호흡을 하기전까지 나실인으로서의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제게 회복시켜 주옵소서. 날마다 나실인으로 구별된 삶을 살기를 자원하는 심령을 주옵시고 넘어지기 쉬운 연약한 저를 주님의 심령을 꽤뚫는 눈동자로 저를 붙드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