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9일 일요일

잔잔한 물과 흉융한 물


(8:5-8) 여호와께서 다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느니라. 그러므로 주 내가 훙융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

 르신은 7:1에서 나와 있듯이 웃시야의 손자인 아하스가 왕일때 아람왕이며 또한 르말리야의 아들인 베가는 이스라엘의 왕이다.  앗수루가 호시탐탐 유다를 노리고 있을때 아람 왕과 이스라엘의 왕은 유다를 처들어 오지만 유다는 간신히 물리친다. 그리고 후에 아람과 이스라엘이 서로 동맹하여 유다를 치러 온다는 소식이 들린다. 아람과 이스라엘의 침략을 간신히 막아냈지만 둘이 연합하였다는 소식은 유다백성들의 마음을 마치 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같이 흔든다.  그렇지만 여호와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어 여호와의 뜻을 전한다. 여호와께서는 아람과 이스라엘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구르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렇지만 유다는 이 말씀을 믿지 못하여 동맹한 이스라엘과 아람과 화친하려고 한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두가지 물을 서로 대비하신다.
곧 천천히 흐르는 물인 실로아 물과 흉융하고 창일한 물인 앗수루이다. 앗수루가 곧 이스라엘과 아람과 유다를 뒤덮을 것이라고 경고를 하신다. 천천히 흐르는 물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물이며, 흉융하고 창일한 물은 악을 의미한다.




흉융한 물
(NIV) therefore the LORD is about to bring against them the mighty floodwaters of the Euphrates


깊은 산에 갑자기 큰 비가 내리면 골짜기는 얼마못가 급하고 거센 물들이 흘러 내려 가면서 모든 것들을 휩쓸고 지나간다. 사나운 물결에 무거운 돌맹이들도 자리를 지킬 수 없어 떠 내려가며 물이 지나가는 길에 있는 모든 생명들을 앗아간다.
그 당시의 앗수라라는 나라는 지금의 미국과 같이 최강의 나라이었다. 그 어떤 것도 막아 설 수 없는 거센 물결과 같은 나라였다. 여호와를 믿고 의지하기보다는 아람과 이스라엘을 의지하려는 유다에게 거세고 흉융한 물인 앗수루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될 것이라고 말씀한다.


여호와를 의지하기 보다 세상을 의지할 때의 결과는 결국은 피할 수 없는 흉융한 물을 뒤집어 쓴다.
(17:12) 슬프다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으되 바다 파도가 치는 소리 같이 그들이 소동하였고 열방이 충돌하였으되 큰 물이 몰려옴 같이 그들도 충돌하였도다.


흉융한 물은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파괴와 죽음을 가져다 준다.
흉융한 물을 의지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힘이 있고 거칠게 흐르는 흉융한 물은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것을 갖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겉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는 괭과리와도 같다.

천천히 흐르는 물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기혼의 샘물이 실로아 수로를 통하여 흐르는 물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자신의 성읍을 천천히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이다.


(KJV) Forasmuch as this people refuseth the waters of Shiloh that go softly
(NIV) Because this people has rejected the gently flowing waters of Shiloh


천천히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KJV NIV에서 천천히를 softly 혹은 gently라 표현을 한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물은 급하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부드럽게 흐른다.  주님은 인내를 가지시고 나를 부드럽게 온유하게 보듬어 주신다.

쉴 만한 물 가
대표적인 물이 잠23의 잔잔한 시냇가이다.
(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나의 삶에서 지친 나를 쉬게 하는 잔잔한 시냇가.
피곤하고 힘이 들면 쉴 곳을 찿는다.  짐승도 지치고 힘이 들면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곳에서 쉴수 있는 곳을 찿는다. 우리 역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두 다리를 쭉 펴고 편히 쉴 곳이 필요하다.


주님께서 이르시기를 내게로 와서 너는 편히 쉬어라. 너의 곤한 영혼이 쉼을 얻을 것이라. 이제는 쉴 때가 아니냐. 나를 온전케 하시고 평안케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실로 너무나 크다. 주님안에서 곤한 나의 영혼이 쉬기를 원한다.

회복케 하는 물
주님은 실로암 물을 이렇게 인용하신다.
(9: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괄호를 열고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를 삽입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물이 병을 깨끗하게 고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보냄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병이 나음을 입었음을 말하고 강조하고 있다.  병의 근원을 고치는 것은 실로암 물 곧 어떤 영적인 목사나 신령한 은사를 받은 은사자가 아니라 곧 그들에게 은혜를 주신 주님이라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단지 물인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병을 고치신 것이다.




생명의 물
나의 영혼과 육신을 깨끗하게 회복케 하는 생명수. 생명수의 근원은 곧 예수 그리스도.
하지만 죄성을 갖고 있는 우리의 습성은 생수의 근원인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려 한다.
(2:13)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우리는 늘 하나님께 범죄한다.
생수의 근원이신 주님을 부인하고 멀리하는 것이며 또한 내 안에 나 자신의 웅덩이를 판 것이다. 그런데 그 웅덩이는 터져 있어 생수를 담아둘 수가 없다. 안에서 생명을 담아둘 수 없어 그 삶은 실로 황폐한 삶을 살수 밖에 없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7:20-21)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마음 속에는 두 가지 법이 서로 상충하고 싸우고 있다. 주님의 은혜를 받은 나는 늘 선을 행하려고 하지만 기회만 되면 결국은 죄악을 행하여 참으로 곤고한 자라고 고백을 한다. 내 안에 있는 죄성으로 인하여 우리의 삶은 때로는 황폐하며 영혼은 목말라 한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한다.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주님은 이 말씀을 인용하셔서 요7:37-38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7:37-38)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58: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죄의 본성을 갖고 있는 나의 육신은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한다. 내 속에 있는 죄는 항상 내 안에 있는 생명의 물의 웅덩이를 허물어서 생명수를 간직하지 못하게 한다.


값 없이 주시는 생명수를 마시기만 하면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는 나를 죄악으로부터 지키신다. 내가 정결하여 빛 가운데 거한다면 그 생명의 웅덩이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내 안의 죄가 샘명수가 고여있는 웅덩이를 허물려고 할 때마다 성령께서 주신 생명수는 나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심으로 나를 다시 정결케 하신다.


사막에서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물이다.
사막과도 같은 이 땅의 삶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생명수이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의 원천인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을 지키신다.
(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이라.


(28:17) 나는 정의를 측량줄로 삼고 공의를 저울추로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여호와께서는 공의과 의로서 우리와 셈하신다. 우박과 창일한 물로서 숨어있는 곳을 치실 것이다.  고요히 흐르는 생명의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 흉융한 물을 의지하는 자의 결국은 결국 의와 공의의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 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집을 지은 자들은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마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않으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다윗은 온갖 어려움을 겪는다.
한 때는 왕의 사위가 되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듯 하였지만 얼마못가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도망자로 피해 다니며 생명을 위협받는 깊은 절망의 나락 가운데로 떨어진다. 하지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라고 고백하며 어려서부터 믿어온 자신을 지키시는 여호와를 신뢰한다.  다윗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기를 간구한다. 다윗은 자신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해 주신 여호와에게 감사와 찬양으로 고백한다.


(삼하22:5) 사망의 물결이 나를 에우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지만
(삼하22:17) 그가 위에서 손을 내미사 나를 붙드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생명을 위협하는 폭풍우 가운데에서도 배 한 구석에서 평안하게 주무시던 예수님.
(4:37-39)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 고물에서 베개를 배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니이까 하니 얘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나의 삶 가운데 들이닥치는 흉융한 물.
나를 마구 뒤흔드는 심한 물결 앞에서 어찌할 수 없어 죽게 되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서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을 붙들자. 주님께서는 나와 함께 흉융한 폭풍우 가운데 계시며 나를 돌보신다. 주님의 손을 붙잡으면 주님은 나를 뒤덮으려는 광풍을 보시고 잠잠하라 고요하라 나의 사랑하는 종을 다치게 하지 말지어다하시며 나를 보호하시고 평안의 포구로 인도하신다.


(8)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의 축복이 저의 삶에도 늘 임하기를 간구한다.
나의 삶 또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비록 사망의 음침한 사나운 흉융한 물결이 나를 덮기도 하지만 주님의 섭리하심으로 나를 지켜주신 여호와를 두손을 높이 들고 찬양하며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도 많은 역경의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흉융한 사나운 물이 나를 뒤덮을지라도 그 가운데서도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주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간구할 것이다. 그것이 주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총이다. 


저의 삶 가운데 편만하게 임재하소서.
천천히 흐르는 생명의 물로 저를 감싸 주소서.
임마누엘이신 주님의 축복이 임하소서.
두 손을 높이 드신 주님의 날개 아래에 거하며 늘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이 제게 임하기를 간구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 오면서 수많은 일들을 겪었읍니다.
때로는 지치고 힘이 들때 주님의 팔에 안겨서 영혼의 쉬임을 통하여 평온함을 느끼기도 했읍니다. 그래서 회복의 은총으로 힘을 새로이 얻어 역경을 헤쳐 나갔읍니다. 때로는 무섭게 몰아치는 역풍을 만나기도 하여서 좌절하고 실의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주님은 저와 함께 하셨읍니다.  나의 인생 가운데 찿아온 달갑지 않은 사나운 폭풍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나게 해 주셔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에 모든 어려운 일들을 잠잠하고 고요하게 신 주님의 자비에 두 손을 높이 들고 찬양하나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주신 여호와의 은혜에 모든 영광을 여호와께 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7년 10월 15일 일요일

들포도


(사5:1-2)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나무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뱆음은 어찌 됨인고



 
주님은 나를 가장 귀한 극상품으로 만드셨음을 믿는가?
나는 왜 이리 못났을까. 나는 실패한 인생이다. 제대로 이룬 것이 없다. 참으로 내가 나를 보아도 초라해 보인다. 다른 이들을 보면 나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데 나는 왜 이렇게 궁상을 떨고 있을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어디에다 내 세울데도 없는 보잘 것 없는 모습이라고 지금도 그런 생각을 나는 가끔가다 한다.


벟써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
보람된 인생인가 아니면 후회만 가득한 인생인가?
어떠한 열매를 맺었는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은 것이 보이지 않는가?

실망스러운 삶이었다고 생각을 하는가?
후회만 가득한 험한 인생 여정길이었다고 자책을 하는가?

그런데 주님은 나는 너를 가장 소중한 극상품으로 너를 만들었어. 내가 볼 때 너는 가장 귀하다 라고 말씀을 하신다. 얼마나 감사한가!  그래 나는 누가 나를 깔보고 업신여기고 갑질을 당해도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이 세상에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가장 극상품으로 만들어진 걸작품임을 믿자.

포도는 유대인들에게는 땅의 소산의 풍성한 열매를 상징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정탐꾼이 가나안 땅에서 가져온 땅의 소산에는 포도송이가 있었다.
(13:23)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따니라.

이사야는 성령의 감동으로 유대인이라면 쉽게 이해하는 포도를 사용하여 그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전한다.
 
포도원의 주인
포도원의 주인은 여호와이시다.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들을 위해서 여호와는 기름진 곳에 포도원을 만드셨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15: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내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
내가 아니라 곧 여호와께서 주인이시다. 잠시뿐인 이 땅의 삶에서 누가 주인인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내가 주인이라면 내 판단과 기준으로 살게 될 것이고, 여호와께서 주인이시라면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려고 할 것이다. 내 자신은 참으로 부족하지 않는가. 늘 실수하고 남에게 상처를 주고 어디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그런 내가 나의 주인이라면 이기적이며 자신만 아는 얼마나 형편이 없는 삶을 살겠는가!

주님이 주인이라는 마음을 늘 품기를 원하지만 잘 되지를 않는다.
주님께서 나의 주인이라면 주님의 사랑과 관용과 자비의 성품이 늘 나타나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를 못하다. 내 자신이 나를 누구보다 잘 알지 않겠는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조그마한 일에도 쉽게 반응하고 넘어진다. 그리고 얼마 못가 후회하고 주님 제 자신을 죽이지 못하고 펄펄 살아서 주님께서 저의 주인이심을 잠시 잊어 버려 주님의 마음을 무시하고 제 멋대로 생각하고 행동하였읍니다. 저를 용서하옵소서 하며 회개를 한다.

주님은 이어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
(15: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주인이신 주님의 임재를 늘 느끼기를 원한다.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임재하심을 늘 느끼며 살기를 간구한다.
만주의 주이시며 창조주이시며 권능의 여호와이신 주님께서 나의 삶을 주관하시며 인도하심에 늘 감사하며 들려 주시는 주님의 세밀한 음성을 들으며 순종의 삶을 살기를 원한다.

여호와의 사랑이 제 안에서 넘치나이다.
주님께서 저의 주인이심을 늘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심히 기름진 산
포도원을 세운 곳은 척박하고 황량한 땅이 아닌 열매를 잘 맺게 하는 영양분이 심히 많은 기름진 산이다. 주님이 포도를 심은 토양은 매우 기름진 땅인 옥토이다.

주님은 우리의 삶에 축복의 은혜를 베푸신다.
여호와는 나의 삶을 풍성하게 축복하신다. 그런데 그 은혜의 축복을 받는 나의 태도는 어떠한가. 이해할 수 없는 축복의 은총을 베푸신 주님을 늘 잊고 산다.

여호와께서는 우리와 약속을 하신다.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말씀을 즐겨 듣고 순종하며 지키면 내가 약속한 축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1: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25:18-19) 너희는 내 규례를 행하며 내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땅에 안전하게 거주할 것이라. 땅은 그것의 열매를 내리니 너희가 배불리 먹고 거기 안전하게 거주하리라.

조금만 힘이 들어 어려운 일이 닥치면 실의하고 절망한다.
그리고 주님 살려 달라고 주님께 애걸 복걸한다. 생각해보자. 내 자녀가 힘이 들고 어려울 때마다 아버지 어머니 살려 주세요 하며 울며 불며 안달아 하면 그것을 볼 때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어린 아이가 징징거리며 무엇을 사달라고 떼를 쓸 때 그것이 그 아이에게 유익하다면 사 줄것이지만, 만일 그것이 그 아이에게 해가 된다면 아무리 애를 써도 사주지 않을 것이다.  

주님 역시 마찬가지이다. 주님께 무엇을 해 달라고 울며 불며 간구하지만 그것이 결국 나의 인생의 길을 망친다면 주님은 내가 아무리 간구해도 결코 들어 주시지 않을 것이다.

기도의 응답이 없다면 나와 주님과의 관계를 다시 깊이 생각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주님은 그런 나에게 또 다른 축복의 길을 예비하셨으며 다시 안주할 수 있도록 인도하실 것이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이스라엘에는 돌이 무척이나 많다.  성을 만들 때나 집을 지을 때 근처의 돌을 다듬어서 지었다.
포도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돌을 골라 내어야 한다. 포도나무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돌들이 없어야 한다. 돌이 가로막고 있다면 포도나무는 제대로 건강하게 클 수가 없다.

그런데 누가 땅을 파서 돌을 제하였을까?
꼳 포도원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땅을 파고 돌을 제하여 버리시고 땅을 고르게 해서 포도나무가 뿌리를 깊이 박고 잘자라 극상품의 포도를 맺도록 하셨다. 

주님의 나의 삶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제하여 버리신다.
그것이 내가 볼 때에 아무리 귀하고 값진 것일지라도 천국의 여정을 가는 길에서 방해가 된다면 돌을 집어 내듯이 하나 하나 끄집어 내어 버리실 것이다.

내가 주님 앞에 서기로 결단했을때 주님은 나의 삶에서 불필요 한 것들을 가지치기 하듯이 하나씩 하나씩 나로부터 떨어져 나가도록 하셨다. 세상 친구들과의 관계를 정리하셨고 나의 생각들을 새로이 정립하게 하셨다.

재물이 주님 앞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라면 주님은 재물을 제할 것이다. 명예를 얻는 것이 주님과의 관계안에 거하는 것보다 나아 보일 때에 나로부터 내가 그토록 얻기를 열망하는 명예를 제하실 것이다. 정욕이 주님 앞으로 나아감을 가로막는다면 나로부터 정욕의 대상들을 정리하실 것이다. 만일 그러한 일들이 내게 없다면 나는 주 앞에서 사생아 일 것이다.
 

극상품 포도나무
포도원의 주인이 심은 포도나무는 극상품의 포도나무를 심으셨다.
흠이 있고 맛없는 포도나무를 심은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열매를 맺는 최상품의 종자를 심으셨다.

씨뿌리는 비유를 보자.
(13: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밭의 주인은 나쁜 씨를 뿌린 것이 아니라 좋은 씨를 뿌렸다. 좋은 열매를 맺기를 원해서 좋은 씨를 뿌렸다. 하지만 좋은 씨를 뿌렸다고 해서 모두 같은 결과를 맺지를 못한다. 씨가 떨어진 장소의 토질과 적절한 수분과 기온이 서로 조화가 될 때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 이런 조건이 맞지 않으면 열매를 맺어도 쓸모없는 열매를 맺게 된다.

들포도
최상품의 포도를 심었는데 들포도를 맺었다. 돌연변이가 일어난 것이다.
기름진 밭에 가장 좋은 종자로 심었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들포도가 맺혔다.
(2:21)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냐

하나님은 좋은 열매를 맺을수 있도록 모두 최상품의 씨로 우리를 만드셨다. 하지만 죄악 가운데 거함으로 들포도인 가라지가 생겨난다.  들포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열매를 말한다.



본문 이후 3-23절에서 화 있을진저 모두 6번 언급되는데 어떤 들포도를 맺어서 여호와의 진노가 임하는지를 말씀하신다
(8) 자신의 부를 쌓으며 자기 중심인 자 결국 황폐한 열매를 맺는다
(11) 세상에 취한 자 여호와에 대하며 무지함으로 결국 스올에 빠진다.
(18) 거짓으로 죄악을 끄는 자 여호와의 뜻을 자신의  이익대로 받아 들인다.
(20) 선을 악으로 악이 선하다고 하는 자,
(21) 자만한 자
(22) 술에 취한 자

이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열매를 맺는 자들은 가차없이 찍혀 불에 던져진다.
(7:19-20)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우리 역시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혀 불사름에 처해 질 것이다.
나의 삶에 나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는가 아니면 아무 쓸모없는 들포도를 맺었는가?
만일 들포도를 맺었다면 나는 가차 없이 찍혀 불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왜 들포도를 맺게 되었는가?
왜냐하면 빛에 거하지 못하고 어둠 가운데 거하였기 때문이다.
(5:24)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거룩한 자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

말씀을 멀리하게 되면 빛으로부터 가려지게 된다. 주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흑암과 고난 속에 거할 수 밖에 없어 쓸모 없어 찍혀서 버리는 들포도를 맺게 된다.

(5:30) 그 날에 그들이 바다 물결 소리 같이 백성을 향하여 부르짖으리니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 빛이 구름에 가려서 어두우리라.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한가지 소망을 준다.
빛이 구름에 가려서 땅에는 흑암이 임하였다. 흑암이 임한 땅에는 고난이 있으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대신에 들포도를 맺었다. 비록 구름에 가려져 있어서 흑암 가운데 있었지만 언젠가는 바람이 불어서 구름은 결국 흩어지게 될 것이다. 바람이 불면 빛을 가렸던 빛은 다시 나를 향하여 비취게 된다.
성령의 바람이여 불으소서.
흑암 가운데서 고난 가운데 있는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빛 가운데 온전하게 거하여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극상품의 열매를 맺기를 원합니다.

나의 삶에서 나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는가 아니면 아무 쓸모없는 들포도를 맺었는가?
만일 들포도를 맺었다면 나는 가차 없이 찍혀 불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들포도를 맺는 남은 자 (remnant) 들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여호와의 사랑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신다.
어둠에 거하며 들포도를 맺을 수 밖에 없어 영원한 불에 던져 버림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여호와의 은총이 임하였다. 흑암 가운데 거함으로 들포도를 맺어 찍힘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주 안에서 남은 자들인 우리들을 살리시려 빛이 임하였다.

빛은 곧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다.

빛으로 오신 주님은 어둠 가운데 거하던 자들에게 빛을 비추사 그 빛 안에 거하게 하심으로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 

빛 가운데 거하지 못하고 내가 나의 주인이 될 때 나는 좋은 열매를 결코 맺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내 안에는 죄성이 가득하기 때문에 죄성으로 맺은 열매는 남을 해치는 독이 있는 열매를 맺는다.

빛 가운데 거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하나가 있다. 곧 죄성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주님께 회개하여 용서를 구할 때에 우리는 빛 가운데 거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 늘 성령의 만지심이 내주해야 하는 것이다.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많은 열매를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포도원 주인이신 주님은 울타리를 두르고 망대를 세워 포도원을 만드셨다. 극상품의 포도를 기름진 땅에 심으셨다. 그리고 좋은 포도를 맺기를 원하셔서 지금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나를 지키신다.

좋은 포도를 맺기 위해서는 한가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곧 포도나무인 빛이신 주님안에 거하여야 한다. 그래야 주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로 많은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지금 이시간이 곧 주님께로 되돌아갈 때인 것이다.
지금 주님은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어둠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빛으로 오신 주님은 우리가 원래 지워진 대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신다. 아무런 쓸모 없는 들포도를 맺지 않기 위해서는 회복의 은총이 임해야 한다.  늘 말씀을 가까이 해서 주님의 뜻대로 사는 삶을 살 때에 우리는 과연 아름다운 열매들을 맺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우리와 반드시 셈을 하신다. .
어떤 셈을 주님과 하시기를 원하는가?
들포도로 셈을 받아 버림을 받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너는 나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은 자야 하시며 주님의 인정을 받기를 원하는가?  그것이 우리의 남은 인생에 주어진 가장 큰 숙제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여호와께서 저를 가장 극상품으로 만드셨읍니다.
좋은 열매를 맺으라고 울타리를 치시고 망대를 세우셔서 지키시며 크고 적은 돌들을 뽑아내어  땅을 고르시고 시절을 쫓아 비를 내리시며 건강하게 자라서 좋은 열매를 맺도록 하셨읍니다.

주님은 저의 주인이십니다.
저의 삶에 제가 주인이 되면 저는 들포도를 맺을 수 밖에 없읍니다.

들포도를 맺지 못하도록 주님께서 저의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주인이심을 늘 잊지 않도록 저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제 안에서 내가 살아 있어 주인이 될 때에 저는 결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읍니다. 오히려 거칠고 독이 있는 열매를 맺습니다.

주인의 말씀에 순종하며 따르는 축복된 인생의 길을 가기를 간구합니다.
빛이신 주님 안에 늘 거하기를 간구합니다. 늘 죄성을 갖고 있는 죄로 인해 쓰러질 때마다 저의 죄악을 주님께 고백하여 용서를 구하게 하소서.

주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를 간구합니다. 저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너무나 크옵니다.
저의 삶을 통해서 복된 열매를 맺어 가도록 모든 여건들을 섭리하시며 인도하시는 주님을 알아 가게 하옵소서.
장차 주님 앞에 서서 주님께서 저를 셈하실 때 주님으로부터 칭찬받는 종의 반열에 서기를 소망하며 간구하나이다.

저를 너무나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의 은총에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