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2일 일요일

풀과 같은 나그네 인생


(벧전1:17-24)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베드로 전서는 초대교회 당시 고난과 핍박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소망을 주는 서신이다.
점점 더 심하게 적대와 멸시를 당하는 성도들. 베드로는 그들을 나그네이며 풀과 같은 인생이라고 말한다. 잠시뿐인 이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고난을 견디어 장차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의 즐거움을 누리라고 성도들을 권면한다.
 
베드로서를 통하여 베드로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뜨거운 사랑과 또한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리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져 가는 깊은 베드로의 영성을 느낄수 있다. 거칠고 성격이 급하고 아무 생각없이 나서기 좋아하던 베드로였지만 변하여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도 사도로서의 권한으로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여 주는 베드로.
 
 
성경은 우리 인생을 나그네라고 부른다.
(7:6)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우리 인생을 나그네로 비유하였다. 노래에인생은 나그네길이라 하지 않는가.
 
특히 벧전에서의 나그네란 벧전 1:1-2에서 흩어진 나그네란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받은 자라고 한다.
즉 베전에서 말하는 나그네는 구원받은 거듭난 영혼을 말한다.
 
나그네길을 가는 거듭난 영혼들은 장차 우리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하나님을 섬기기기에 두려움을 갖고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의 외모로  판단하시지 않는다.
(2:11) 이는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나의 능력, 잘남, 권세, 명예를 보시고 나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나의 행위대로 판단하신다.
(3:25)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
그러기에 나의 행위가 어디에 있는지를 잘 살펴 보야야 한다.
 
하지만 우리 나그네들은 헛된 행실을 이어받았다.
결코 우리의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그네와 같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흠없고 점없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을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듭난 자들인 나그네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같이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이어서 너희가 거듭난 것은 너희의 행위가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으로 되었으니 풀과 같은 인생아. 영원토록 있는 말씀안에 거하여야 한다고 가르친다.
 
 
거듭난 나그네와 같은 인생을 풀의 꽃으로 비유한다.
그리고 잠시뿐인 꽃과도 같은 인생과 세세토록 있을 영원한 말씀을 대조한다.
 
꽃이 시들어서 말라 버리듯이 인생 역시 얼마안가 마지막을 맞이 한다.
하지만 거듭난 영혼은 썩지 아니할 씨인 항상 있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되었기에 영원함을 보장받는다.
 
이 말씀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거듭난 인생이지만 꽃과도 같아 얼마안가 땅에 떨어지기에 세세토록 있을 영원한 말씀을 소유하라고 강조를 한다.
 
 
꽃은 참으로 아름답다.
갖가지 꽃들이 시절을 따라 피고 진다.
 
매해 봄이 되면 야생화의 군락지를 보려고 사람들은 찿아 간다그곳에 가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감탄을 한다하나 하나의 꽃을 볼 때에 그리 볼품이 없어 보이지만 군락을 이뤄서 같은 색깔로 뒤덮힌 것을 보고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하지만 아름다운 광경을 보이는 야생화의 군락지는 얼마가지를 못간다.
곧 뜨거운 햇빛과 건조함이 찿아오게 되면 꽃들은 떨어져서 시들고 말라 버리고 씨들은 땅에 떨어져 파묻히고 다음 해을 기약한다.
 
 
우리 인생도 광야에서 자라는 풀과 같다고 성경은 말한다.
들풀의 특징을 살펴보자.
 
1.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24)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103:15)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오직 한 때 뿐인 영화를 얻기 위해서 사람들은 참으로 부단히도 노력을 한다.
네 것이 내 것이고 내 것은 내 것이 삶의 기준이다.
다른 이가 가진 것을 부러워해서 나의 것으로 삼으려고 별의별 치사한 짓을 거침없이 한다.
그래서 얻은 것이 오래 가는가!. 얼마 지나지 않아 스러져 버리는 안개와도 같이 없어지지 않던가.
 
순간의 영화를 만끽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실증을 느끼고 허무함을 느끼지 않던가.
솔로몬은 갖고 싶었던 모든 것을 가졌지만 결국 그는 세상의 것들은 허무함을 준다라고 고백을 한다. 또한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던 인생의 정상에 서 있던 많은 이들이 삶의 허무를 느끼고 스스로 목숨을 취하였음을 우리는 목격을 한다.
 
(1:10- 11)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느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같이 쇠잔하리라.
 
야고보는 부한 자들에게 경고를 한다. 부한 자들이 찿던 영광은 언젠가는 예기치 못한 일로 인해 쇠잔하여 지므로 덧없는 것들에 더 이상 자신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고 낮아져야 한다고 가르친다.
 
인생이 열심을 내어 찿고 또 얻으려고 하는 이 땅의 영화는 잠시뿐인 영광이다.
얼마안가 세상은 자신이 주었던 세속되고 물질적인 영광은 시들어 버려 다시 거두어 가버리고 남는 것은 허무함뿐이다. 그러기에 영화를 얻어 높아지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거듭난 인생들은 늘 낮은 모습으로 겸손한 모습으로 주님앞에 나아가야 한다.
 
 
2.     얼마안가 시들고 말라 버린다
(24)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90:5-6)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인생이란 참 짧다.
꽃이 아름답지만 하지만 꽃은 정해진 시간이 있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꽃은 시들고 땅에 떨어진다. 마찬가지로 인생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은 잠시뿐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인생은 시들고 육신은 흙으로 돌아간다.
 
어느덧 벌써 이만큼의 세월이 흐르지 않았는가모르긴 몰라도 지금까지 산 날보다는 앞으로 살 날이 훨씬 짧을 것이다. 완벽한 건강한 삶을 산다 할지라도.
 
어려서 동네에서 아이들과 함께 불놀이도 하며 방패연을 만들어 띄우기도 하고 뛰어 놀던 생각이 어렴풋이 나는데 그런데 벌써 오래전의 기억이 아니던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도. 그만큼 세월은 빨리도 흘러 지나갔구나싱싱하고 파릇 파릇 꽃을 피웠던  젊음의 시간이 이제는 꽃이 떨어져 시들어버릴 날이 훨씬 더 가까이 왔구나.
 
욥 또한 우리가 겪는 것을 경험하고 이렇게 말한다.
(14:1-2)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고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그림자 같이 지나가며 머물지 아니하거늘
 
지금은 영원하게 오래 살 것 같지만 꽃과 같아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어 버리기도 하고, 혹은 전혀 예상하지 않은 때에 그만 싱싱하던 꽃이 떨어져서 마지막 호흡을 하고 흙으로 돌아간다만일 그렇다 하더라도 억울해 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정한 이치이다.
 
우리는 영원토록 살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고 얼마안가 마지막을 맞이 할 것이다.
그 날을 대비해야 하지 않곘는가!
만일 나의 마지막 날을 대비하지 않는다면 나는 너무 나의 영혼에게 무책임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잠시뿐인 들의 꽃과도 같은 나그네의 삶이지만 반면여호와의 말씀은 영원하다라고 사도 베드로는 역설한다.
 
또한 이사야서 40:6-8의 말씀을 보면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40:6-8)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풀과 같은 인생이 영원을 소유한 거듭난 자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썩지 아니할 씨앗인 영원한 말씀이 내게 심겨져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늘 말씀을 가까이서 매일 듣고 순종을 해야 한다
오직 말씀만이 나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육신은 꽃과도 같아서 얼마지나지 않아 소멸될 것이지만 우리의 영혼은 영원을 소유한다.
나의 영혼이 썩어 버릴 씨앗을 품고 있다면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의 벌을 받을 것이지만,
나의 영혼이 썩지 아니할 말씀의 씨앗을 품고 있다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축복을 받을 것이다.
 
유한한 육신의 길을 따르다가 멸망하지 말고, 무한한 그리스도의 말씀의 은혜를 따라 영생을 소유하자.
 
나의 육신은 얼마 안가 시들어 버려 죽겠지만 말씀의 씨앗이 거듭난 내 영혼에 심겨져 있기에 나의 영혼은 영원한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영원하신 말씀의 씨앗이 거듭난 내 영혼에 깊이 자리잡고 잆다아멘
 
 
 
나그네. 들풀은 거듭난 자들을 말한다.
당신의 영혼은 거듭났는가나는 거듭났음을 확신하는가?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거듭난 자에게만 영원한 주님의 말씀의 씨앗이 영혼에 심겨져 있다.
 
거듭난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가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불 수 없느니라.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로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거듭난 자라면 주님의 말씀을 사랑할 수 밖에 없어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 하려고 할 것이다.
말씀안에는 썩지 아나할 씨앗이 있어 세세토록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게 한다.
늘 말씀을 가까이 하며 말씀과 하나가 되는 인생 여정길을 갔으면 한다.
 
17절의 말씀과 같이 풀꽃과 같은 나그네들은 언제 스러질지를 모르기에 늘 두려움을 갖고 살라고 권면을 한다.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저는 언젠가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나그네입니다.
언제 스러져 버릴 들의 풀과도 같은 저입니다.
들의 풀과도 같은 저를 사랑하시기에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생각해 봅니다.
저의 마지막의 순간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주님의 말씀의 씨앗이 저의 영혼에 심겨져 있기에 저의 호흡이 있는 동안 싻을 건강하게 티워서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의 나그네의 길을 가는 동안 늘 두려움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하옵소서.
거듭난 자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옳바른 행위를 하도록 성령님 저를 도와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6년 5월 1일 일요일

산상수훈의 결론


(7:24-28)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위에 놓은 까닭이요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마태복음의 5장과 6장과 7장은 산상수훈 (the Sermon on the Mount)이라 잘 알려져 있다.
주님은 산에 올라 가셔서 제자들에게 산상수훈에 대하여 말씀하신 후에 산에서 내려 가셨다.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8;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산상수훈은 주님의 설교이시다
어떤 설교보다 가장 훌륭한 설교이다.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주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치신다.
구약에서는 모세 오경의 율법이 성도의 삶의 지침서이었지만신약에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산상수훈이 성도의 삶의 지침서이다.

산상수훈은 믿지 않은 사람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 하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의 잘못된 것들을 잘라 내어 새 사람으로 회복케 하시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군더더기 없는 주님의 설교이다.

가장 최고의 설교를 듣기를 원하는가?
요사이는 Internet 이 잘 되어 있어서 원하기만 하면 좋은 설교들을 search 해서 이 사람의 것은 들을만해 하며 가려서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설교말씀이 좋다고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큰 교회의 목사님의 설교가 최고라 생각하는가내 취향에 맞으면 좋은 설교인가
좋다고 들은 설교를 듣고 내 삶이 변화되었는가
내가 생각하는 것이 주님의 마음으로 바뀌어졌는가?
남을 무시하고 나 잘났다고 하는 나의 말하는 습성이 바뀌었는가?
고르고 골라서 들은 설교를 통해 영과 육에 중병이 들어 있는 내게 약이 되었는가?
다른 설교보다 주님의 설교에 귀를 기울여보자.
주님의 설교는 병들은 나의 영과 혼과 육을 치료하실 것이다.

육신의 대표적인 중병인 암.
암에 걸리게 되면 놀라게 되는 일이 하나 있다.
암으로 진단받았는데 병원에서는 아무런 치료약을 처방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기나 몸살이 걸려 의사에게 가면 약을 처방해 준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한 암에는 어떤 약도 없다는 것이 환자를 절망케 한다.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암의 부위를 절단하거나키모나 방사선 치료를 통하여 암세포룰 죽이거나아니면 자연적인 치료법으로 낳는 방법밖에 없는 듯하다.현대의학으로는 암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지를 못하기에 근본적인 치료법은 없다암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여 치료할 수 없기에믿는 자들은 주 여호와만을 의지할 수 밖에 없다여기에 주님의 섭리가 있는 듯 하다.

나의 영의 상태는 어떠한가?
나는 건전하고 건강한 영을 갖고 있는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갖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교만함과 거짓과 음욕과 분노의 마음을 갖고 있는가?

그렇다 아직 나의 영와 육은 너무나 연약하다.
육신의 병이 낫기를 원하는가
삐뚤어지고 왜곡된 나의 영이 회복되기를 원하는 가?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자.
무엇보다 존귀하고 소중한 나는 주님의 말씀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나의 영과 육의 환부를 도려내어 쪼개기까지 하는 주님의 설교인 산상수훈을 늘 가까이 하자.
그러면서 주님의 뜻대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길인 섭리에 나를 온전하게 맏기자


주님은 산상수훈을 통하여 아름답고 영롱한 보석과 같은 여러 말씀들을 주셨다.

우선 팔복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주님의 자녀에게 주신 이미 받은 복들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팔복을 받기 위해서 이런 저런 일들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첫번째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말씀하셨다.
나의 심령이 완전하게 가난해 질 수 있을까?  아마도 마지막 호흡을 하기까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천국을 갖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미 믿는 자들에게는 천국을 약속하셨다.
주님께서는 믿는 자녀들에게는 가난한 심령을 주셨다하지만 때로는 나의 패역한 심령이 동할 때마다 나는 마음이 강팍해 진다그럴때마다 성령은 내게 분명하게 말씀하신다주님께서는 네가 심령이 가난한 것을 기뻐하신다네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말라 하시며 권고하시며 이 땅에서도 천국을 소유한 축복된 삶으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소금과 빛의 자녀가 되라고 말씀하신다.
소금은 주님안에서의 화목을 의미한다
(9: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소금이 음식에 골고르게 배어 조화를 이루어 맛을 내듯이성도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이들과 화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화목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성도의 인내와 겸손이라고 생각한다.
내 말만하게 되면 그곳에 화목이 임할까?
내 생각대로만 하기를 원한다면 그곳이 화목할까?
내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하게 되면 그곳은 화목이 있을 수 없다.
가정이나 교회에서나 다른 이들을 나의 입장에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대할 수 있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내가 나타나지 않고 조용하게 스며 들어 조화를 이룰때 그곳은 화목이 있게 된다.

빛은 성도의 착한 행실을 말한다.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착한 행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성도의 거룩함이다.
이 빛 곧 착한 행실을 “등경위에 두어 사람앞에 비춰라”라고 말씀하신다.
착한 행실을 나 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웃들에게 베풀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는 방법은?
주님은 무엇이 착한 행실인지를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왜 착한 행실을 해야 하는 지를 설명해 주신다.
(5:16)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의 자녀로서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선한 행실을 하게 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얼마나 놀라운가내가 선한 일을 하게 되면 누가 영광을 받는가곧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적어도 교회에 발을 담고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열심히 기도하고 헌신하게 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까
경건하고 거룩하게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까
나의 속내를 감추고 겉은 정장을 입고 의젓하게 앉아서 조용한 모습으로 교회에 참석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까?
참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주님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법이 실은 매우 실질적이며 간단함을 피력하신다.
곧 소금과 빛의 자녀로서 화목하며 착한 행실을 하게 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신다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돌리는 방법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쉽지 않는가?

이어서 주님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받으시는 지를 말씀하시면서소금과 빛의 자녀가 해야 할 착한 행실들 그리고 해서는 않될 악한 행실들을 가르치신다:
·         형제에게 노하지 말고 화목하라
·         마음에도 간음하지 말라
·         맹세하지 말라
·         원수에게 보복하지 말라
·         구제하라
·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
·         금식함을 사람들에 나타내지 말라
·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으라
·         염려하지 말라
·         비판하지 말라
·         남을 대접하라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         좋은 열매를 맺으라


주님의 초점은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림에 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자녀들이 마땅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명확하게 말씀하시며 천국을 소유하는 법을 가르치시며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소금과 빛의 자녀로서의 거룩함은 말로만 얻어 지는 것이 아니다.
착한 행실과 하지 말아야 할 행실을 통해 주님의 마음인 거룩함에 조금씩 다가간다.
빛과 소금의 자녀에게 주시는 축복의 가장 큰 것이 천국을 소유한다는 것이다.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빛과 소금의 자녀로 살지 못한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수도 있다.
아무리 열심으로 교회에 참석해서 예배를 드리고 헌금하고 모든 일에 헌신하며 일등 신자의 노릇을 하였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보이고자 하는 겉의 모습이었다면  주님은 그런 자를 보시면서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다고 말할 것이다.

주님은 산상수훈의 말씀을 마치신 후에 7 24-27절에 이렇게 말씀하시며 결론을 맺으신다.
(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그러므로” 이 단어를 통하여 주님께서는 산에 오르셔서 하신 산상수훈의 말씀인 팔복과 이어서 소금과 빛의 자녀로 살기 위한 착한 행실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결론을 지어 주시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신다

(7:24)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행함”이다.
주님께서는 빛과 소금의 자녀는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닌 실제적인 행함이 반드시 있어야 함을 가르치신다.  
아무리 좋고 훌륭한 말을 들었지만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렸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자녀로서 이미 받은 복을 더욱 풍성하게 받으며 소금과 빛의 자녀답게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면서 살라고 말씀하신다

이웃들과 화목하며 착한 행실을 통하여 주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기 위해서는 우리는 행함이 있어야 한다.
야고보서는 행함에 대하여 말씀한다.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니라.
이어서 예를 드는데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고 또한 기생 라합은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피신토록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한다.

(2: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의롭다함을 받는 것 즉 구원을 얻는 것은 믿음으로만 얻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는 행함이 있어야 한다.  믿는다고 하면서 아무런 행함이 없는 그런 믿음은 곧 죽은 믿음이다.
믿음을 단지 신앙의 교리로만 이해하며 입술의 고백으로만 만족하는가.
믿음이 온전케 되기 위해서는 행함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빛과 자녀로서 착한 행실을 행하는 자는 비창수바람이 불어도 견디어 낼 수 있다.
비와 창수와 바람은 두가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첫째비와 창수와 바람은 우리의 삶에 시련이 있음을 의미한다.
주님의 가르치심대로 행하였다면마치 땅을 깊이 파서 기초를 쌓은 집이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쳐도 견디어 내듯이착한 행함으로 집을 반석위에 잘 지은 사람은 시련이 왔을 때에도 굳건하게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지킨다.
하지만 주님의 가르치심을 듣고도 행하지 않았다면마치 모래에 기초를 쌓은 집이 파도에 속절없이 허물어 내리는 모래성과도 같이말만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는 자는 인생의 갖가지 시련이 오게 되면 기초가 든든하지 않아서 쉽게 무너져 버리고 만다

둘째비와 창수와 바람은 마지막 심판을 의미한다.
최종적인 심판에서 내가 갖고 있는 믿음이 영원한 천국을 소유한지 아니면 영원한 불못의 지옥을 소유했는지를 판결을 받는다.
주님의 가르치심대로 행하였다면마치 땅을 깊이 파서 기초를 쌓은 집이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쳐도 견디어 내듯이 최후의 심판에서 견디어 낼 것이다.
하지만 주님의 가르치심을 듣고도 행하지 않았다면마치 모래에 기초를 쌓은 집이 파도에 속절없이 허물어 내리는 모래성과도 같이 영원한 불못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말씀을 정리하면,
주님은 우리들에게 성경을 통해 삶의 지침서를 주셨다
특히 산상수훈은 우리 성도들의 기독교 윤리 교과서이자축복된 삶의 안내서이자 지침서이며천국으로 인도하는 기행문과도 같다.
주님은 산상수훈을 통해서 소금과 빛의 자녀들이 미리 예비된 팔복의 복을 받으며 착한 행실을 행하여 집을 반석위에 지은 거룩한 주의 백성이 되어 이 땅에서도 천국을 미리 경험하는 축복을 충만하게 받고 또한 최후의 심판에서도 천국을 소유한 축복받은 자녀들이 되라고 권면하신다
소금과 빛의 자녀로서 행하는 착한 행함을 통하여 주님께 영광을 드리며이 땅에서도 천국을 미리 경험하며 풍성한 천국의 축복을 받는 성도이기를 축원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주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하여
믿는 자녀들이 어떠한 기독교적인 윤리의 삶을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치십니다.

주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서
천국을 풍성하게 누리는 축복의 방법을 말씀하셨으며,
또 소금과 빛의 자녀로서 어떠한 행함이 있어야 함을 알려 주셨읍니다.

소금과 빛의 자녀로 살게 되면 삶의 이득이 있읍니다.
우선 인생의 시련이 올 때에 주님의 도우심으로 능히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서
이 땅에서도 천국을 경험하게 합니다.
또한 최후의 심판에서 영원한 천국을 보장받게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주위를 보면
교회안에서는 주님을 잘 믿는 행동을 하지만
교회문을 나서면 얼마나 가식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저 역시 예외는 아님을 고백을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산상수훈의 삶을 온전하게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저희는 단지 말로만 믿기를 좋아합니다.
말로는 무엇이든 다 한다고 하지요.
말로는 무슨 의인이나 된 듯 말하지만아무런 행함의 따름이 없는 죽은 신자와도 같습니다.

저의 마음이 완악하고 굳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영이신 성령님저의 마음을 생명수로 부드럽게 하옵소서.
부드러운 땅이 물을 남김없이 흡수하듯이
저의 마음도 부드럽게 되어 성령의 생수로 충만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께서 가르치신 산상수훈의 말씀과 같이 행함이 있는 믿음을 소유하여
이 땅에서도 미리 천국을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소서.
저와 같이 완악하고 패역한 자를 불쌍히 여기소서.
말로만 주님의 제자의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실제에서 착한 행실를 통하여 소금과 빛의 자녀로서 천국의 축복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그래서 부족한 저의 착한 행실을 통하여서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영광을 드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