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4일 일요일

여호와의 경영

(14:24-27)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이루리라……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경영이라는 단어가 24절부터 27절까지 3번 나오는데 KJVNIV애서는 구체적으로 ‘have thought’ ‘have planned’, ‘have determined’, ‘have purposed’를 사용하여 여호와께서 어떤 일을 행하실 때에는 이미 계획하셨고, 어떤 뜻이 있으며, 그리고 결정하셨음을 의미한다.
1, (24) Surely, I have planned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모든 것을 이미 계획하셨다고 확언을 하신다. 여호와께서는 나 뿐 아니라 나의 가장 가까운 가족과 세상 모든 일에 관여를 하시며 인도하신다.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이해할 수 없지만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 악인의 이루 말할 수없는 패역함과 흥함과 택하신 자녀의 곤고함 가운데서 불꽃같은 눈으로 모든 것을 보시며 인도하신다. 
(29:11-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찿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주님의 택한 믿는 자녀에게도 재앙은 임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재앙후에 반드시 다가올 주님께서 회복케 하시는 희망이 있으며 재앙 가운데서도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신실한 믿음의 고백을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들으시고 평강으로 인도하실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재앙을 허락하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확연하게 알수는 없지만 그 가운데서도 실의에 빠져 주님을 잊지 않고 주님을 찿는 자에게 주님은 만나주신다.
2. (26) This is the plan determined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택한 자녀를 괴롭히는 앗수루를 꺽으시고 파할 것이며 그로인해 자녀를 힘들게 했던 멍에는 벗겨져서 고통스럽게 하던 짐들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이라 하시며 이는 이미 계획하셨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 계획하시고 행하시는 것은 이미 결정하셨음을 말씀하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사람들과는 달리 한 번 말씀한 것을 결코 변개하시지 않으신다.
여호와께서는 나같은 자를 사랑하시기로 이미 정하셨다. 왜 그렇게 결정하셨는지를 나는 알 수 없다.
당신은 이해를 하는가?  왜 당신과 같은 자를 하나님은 주님의 자녀로 택하시고 섭리하시며 관여를 하시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가?
여호와께서는 이미 내가 구원의 길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정하셨고 반드시 이루어진다.
(삼상15: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나같은 자를 살리시려고 여호와께서는 예수님을 중계자로 보내셔서 십자가에 대신 죽게 하심으로 사랑을 확증하셨다.  여호와는 나를 구원하시기로 이미 계획하셨고 확증을 하셨다. 그러므로 죄악 가운데서 살며 주님의 뜻대로 제대로 살지 못할때 채찍을 드셔서 나의 어긋났던 길을 다시 돌려 놓으시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로 인도하시어 결국은 마지막 호흡을 할 때에 구원의 자녀에게 주신 천국으로 입성하도록 인도하시는 참으로 감사하신 여호와이시다.
여호와께서 정하신 구원은 결코 변개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사랑의 은혜를 베푸셨다. 무엇과도 바꿀수 없은 귀한 사랑을 주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은 결코 소멸되지 않을 것을 약속하신다.
구원의 뜻은 결코 변하시지 않으시지만 죄악을 범하는 우리를 향한 여호와의 진노는 바꾸신다.
(3:7)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시는 하였지만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3, (27) The LORD Almighty has purposed
여호와께서 계획하신 것은 어떤 목적이 있으심을 말씀하신다.
여호와의 뜻은 결코 사람들은 이해를 하지 못한다.
왜 이런 일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읍니까? 여호와여 살려 주옵소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이 일이 왜 제게 임하였는지를 저는 결코 이해할 수가 없읍니다. 이 일도 여호와의 뜻이십니까?  왜 주님을 믿는 저에게 이와 같이 감당하기에 너무 어려운 일들이 제게 임하였읍니까?
왜 제가 싫어하는 이 인간을 제게 붙여 주시어서 저를 괴롭게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제가 이런 병에 걸렸읍니까? 주님을 잘 섬긴다고 섬겼는데 왜 이런 죽을 병에 제가 걸렸읍니까?
왜 제가 교회에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합니까? 저보다 못한 인간들은 저 잘났다고 저리도 설치는데 저는 왜 이리 찌그려 뜨리셨읍니까?
당장 지금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서 뒤돌아보는 여유가 있을때 왜 주님께서는 나를 향한 어떤 목적이 있으셔서 나를 그런 모습으로 인도하셨는지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된다.
(46:8-9) 너희 패역한 자들아 이 일을 기억하고 장부가 되라 이 일을 마음에 두라.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11) 내가 동쪽에서 사나운 날짐승을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셨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
주께서는 자신의 사랑하는 자녀가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패역하면 반드시 고치신다.  때로운 사나운 짐승을 보내어 힘들게 하시며 곤고함 가운데로 몰아가신다. 그 가운데서 여호와의 은혜를 깨닫고 뒤를 돌아보아 죄악된 모습을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고 다시 주 앞에 서기로 간구를 한다면 여호와께서는 회복의 은혜를 베푸신다.
(3:6)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녀를 지키신다는 약속은 결코 변함이 없으며 영원토록 지속이 된다.
여호와께서 때로는 패역된 죄악의 길을 가지만 고치시고 회복시키시도 영원토록 소멸되지 않도록 은혜를 주신다.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를 향하신 여호와의 목적이 무었일까?
그것을 알아가는 인생은 축복된 인생일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나를 향하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아가며 나를 내려놓는 희생의 연습을 통하여 여호와께서 준비하신 사랑하는 법을 배울 것이고, 내게 주어진 십자가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아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달게 지며 또한 내게 주어진 십자가가 주님께서 함께 지셨기에 결코 무겁지 않다는 것을 알아가며, 나와는 상반된 여호와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며, 주님을 닮아가는 복된 여정길을 갈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왜 내게 이런일들이 일어났을까로 가득차 있다.
그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해하는 것들도 많다. ! 이래서 나를 어려움 가운데로 주님은 인도하셨구나 조금은 이해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의 인생에서 일어났던 많은 일들 가운데 대다수는 아직도 이해하지를 못한다. 여호와께서 나를 인도하시는 뜻을 알지는 못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나의 평생에 나를 푸른 초장으로 늘 인도하셨음을 확신한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신실하시다.
여호와는 언제나 나를 축복의 길로 인도하신다.
여호와는 내 어깨의 짐을 내리시고 짐을 가볍게 해 주신다.
여호와는 내가 목마를 때에 나를 샘물로 인도하시며, 내가 굶주릴 때에 먹을 것을 예비하시고 인도하시며, 내가 추울 떄에 입을 옷을 예비하셨다가 입혀주신다.

God is good and faithful.
God is always leading me to the blessed path.
God takes off burdens from my shoulder,
When I am thirst, the LORD lead me to the water and I will eventually find the streams in the pastureland.
The LORD feeds me and provides me with a warm shelter.
I will never be a stranger in the land any more.
여호와의 뜻은 언제나 주님의 자녀에게로 향하여져 있다. 자녀를 지키시고 보호하신다. 여호와는 양인 자녀들을 물이 한가운데로 흐르는 울타리가 쳐져 있는 푸르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목자이시다.
GOD always has a plan for HIS people. 여호와의 적인 마귀가 우리를 시시때때로 괴롭히지만, 하지만 주님을 믿는 자녀에게는 여호와는 피난처이시며 피할 요새요 안전하게 거할 포구이다.

여호와의 팔에 안기자. 오직 그 길만이 나의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일것이다하나님은 앞으로 남은 나의 인생에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실까? 그것을 찿아 가는 인생 여정길은 반드시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축복의 길임을 확신하며 기대가 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저는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한가지 분명히 확신하는 것은 늘 죄악 가운데 거하지만 결국은 제가 구원의 은총을 입고 아버지가 계신 천국으로 영원토록 거하며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 거할 것을 믿습니다.
떄로는 아버지께서 저를 더 온전한 자녀로 다듬으시려고 저를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길을 가게 하십니다. 그 가운데서 주님의 사랑을 회복하고 다시 생명이 소생케 되는 기쁨을 누리며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하며 사랑하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늘 제 입에서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하여 모든 영광을 주님께 드리기를 간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7년 12월 10일 일요일

여호와의 위로


(12:1-6)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본문에서는 주님의 속성에 대하여 말씀하고 그리고 영혼의 잘 됨을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를 말씀하신다.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
 
1. 진노하시는 주님

(1)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사야서를 보면 하나님의 진노가 많이 언급이 된다

자신의 택한 자녀들이 방종하며 패역할 때에 하나님은 진노하신다. 나의 죄악된 언어와 행위와 말씀을 무시하는 것들이 여호와의 진노를 일으킨다.

여호와의 강렬한 빛 앞에 모든 것이 드러난다.
마치 아무것도 없이 정결하게 보이는 곳에 한 줄기 강한 빛이 비추이면 셀 수 없는 수많은 먼지들이 드러나듯이 아무리 죄가 없다 하는 사람도 주님의 거룩한 빛 앞에 서면 모든 더럽고 추한 죄들이 드러나서 진노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3:8)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역하여 그의 영광의 눈을 범하였음이라

(5:24-25)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노를 발하시고 그들 위에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지라.

(30: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죄에 죄를 더하도다.

(63:10)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죄악을 보시면 공의로 심판하시는 준업하신 여호와이시다. 여호와는 사28:17에서 자신을 이렇게 표현하신다.

(28:17) 나는 정의를 측량줄로 삼고 공의를 저울추로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진노하시는 주님은 우리에게는 큰 축복이다.

만일 진노하심이 없다면 우리는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주님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진노하신다. 주님께서 진노하실때에 다시 나를 뒤돌아 보아 죄악됨을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여 주님의 은총으로 다시 주님 앞으로 가게 하시니 축복이지 않는가!  우리들이 자녀들의 잘못됨을 보고서 화를 내며 체벌을 하듯이 주님 또한 사랑하는 우리들이 죄악 가운데 있을때 우리에게 진노하시지만 그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시다. 진노하시는 주님께 감사하자. 곧 나를 사랑하시는 은혜이다.


2. 위로하시는 주님
(1)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시 않는 자에게 주님은 이를 깨닫고 다시 주님 품에 안기라고 진노의 심판을 베푸신다.

진노 중에 임한 주님의 섭리하심을 보고 다시 주님께로 돌아오면 주님은 진노로부터 돌이키시고 주님의 위로가 임한다.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나의 잘못된 죄악들을 기억하고 주님께 고백하며 용서를 구할 떄 주님의 긍휼하신 사랑으로 모든 죄를 기억지도 않으시겠다고 약속을 하신다. 그리고 주님의 위로하심이 상한 내 심령위에 임할 때 주님께 감사한다.

(2:14)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하는 자녀의 죄악됨을 고쳐 주시기 위해서 때로는 광야길로 이끄신다. 여호와께서는 진노하심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지나지 않아 진노하심으로부터 돌아서시고 다시 안위하신다. 따뜻한 말씀으로 위로하시며 광야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나의 믿음은 보잘 것 없으며 너무나 적은 믿음을 갖고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나의 적은 믿음을 기뻐하시며 나를 의로운 자라고 불러 주신다. 이 모든 것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은혜를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화평을 누리라고 말씀하신다.

 
3. 구원이신 주님

(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나를 구원하신 주님은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이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주님을 만나야 한다.

(19: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주님을 만난 삭개오와 그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던 삭개오는 주님을 만나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그렇지만 키가 작은 삭개오는 사람들에 가려져서 주님을 바라 볼 수도 없고 주님앞에 나아갈 수 없자 주님을 보기 위해서 나무위에 올라가서 마침 그곳으로 지나가는 주님을 만날 수 있었지만 실은 주님께서 삭개오가 올라간 나무 아래로 찿아 오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삭개오를 보시며 오늘 내가 너희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5)하시며 삭개오를 부르셨다. 삭개오의 집에 이르신 주님은 삭개오와 그의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포하신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주님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주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면 주님께서는 내가 계신 곳으로 찿아 오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선포하신다. 그런 주님을 내 집에 초청을 하면 주님은 오늘 너와 네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축복의 말씀을 하신다.

오늘 내가 유하여겠다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나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자. 닫혀 있던 마음이 열려 주님을 맞이한다. 주여 제 집에 들어 오소서. 말씀하옵소서. 저와 제 집에 오늘 구원이 이르렀다라고 선포하여 주옵소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주님울 축복합니다. 저의 축복을 받으소서.

또한 구원을 받은 자는 세상의 일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40: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왜냐하면 주님께서 바로 내 안에 계시며 나를 붙드시고 도와 주실 것이기 떄문이다.
모든 것을 주님의 뜻 가운데서 결국은 나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4. 아름다운 일을 행하신 주님
(5)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이름이 온 땅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선포하셨다.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짓는 사람들에게 진노의 심판을 베푸신다. 하지만 긍휼의 하나님께서는 모두 멸절될 수 밖에 없는 패역한 우리를 살리시려고 아름다운 기묘한 일을 행하셨다. 곧 주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낮추시고 그것도 모자라서 가장 천한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구원을 이루셨다. 예수님께서 친히 하나님 아버지와 나와의 사이에 중보자가 되시어서 구원의 길을 여셨다. 얼마나 기묘한 일을 행하셨는가?

십자가를 꼭 붙들자. 오직 그 길만이 내가 살 수 있는 길이다.

바로 나를 위하여 아름다운 일을 행하신 여호와. 주님은 과연 내게는 기묘하신 분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또한 영원토록 계시는 하나님이시며 평강의 왕이시다. 아멘.

내가 해야 할 일
우리의 영혼의 잘 됨을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1, 감사하라
(1) 그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였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진노하셨지만 진노하심을 거두시고 다시 주의 은총으로 나를 위로하시는 주님께 감사드려야 한다.

회복케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는 멸망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으며 새 생명의 소망 또한 있을 수 없는 절망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감사해야 하는 것은 주님께서는 나의 죄악됨을 고치신다는 것이다.

(1:25) 내가 또 내 손을 네게 돌려 네 찌꺼기를 잿물로 씻듯이 녹여 청결하게 하며 네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내 안에 죄악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찌꺼기들과 혼잡물들을 제하여 주신다고 주님께서 약속을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가. 인생을 되돌아보면 수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서는 주님께서 우리를 고치시려고 내 안에 있는 잡다한 찌꺼기들을 제하여 버리시려고 주님께서 섭리하셨다. 우리는 그런 어려운 상황을 시험이라 부른다. 많은 시험의 연단의 과정을 통하여 주 앞에 나아감에 부족함이 없도록 주님께서는 나의 모든 죄악됨을 고치신다.

(19:22)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라.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 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주리라.


영혼이 갈급한가?
몸이 아픈가?  의학으로서 더이상 치료할 수 없는 병에 걸렸는가?
곤고한 일들이 닥쳤는가? 도저히 나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났는가?

나의 잘못된 관리로 육신의 질병이 생길 수도 있으며 나의 잘못된 판단과 대인관계로 인하여 견디기 힘든 곤고한 일들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더욱 깊게 들어가보면 나의 죄악됨을 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일 수도 있다.

그럴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간절함으로 여호와께 자신의 죄악됨을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며 고쳐달라고 간구를 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혹 들으시고 고쳐주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놀랍고 아름다운 일을 행하신 여호와의 구원을 입은 자들은 마땅히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늘 여호와 주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살전5:16-22)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2. 물을 길으라
(1)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구원을 입은 내가 기쁨으로 구원의 물에서 물을 길러 나의 모든 죄악과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내야 한다.
(13: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은혜의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내가 서있는 곳에 그저 서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전심으로 주님 앞으로 나아갈 때 구원의 샘물을 찿게 될것이다. 억지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심령으로 기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4: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사마리아 여인은 물을 길러 왔다가 예수님을 만나 그녀의 인생은 전적으로 변화를 받았다.

물을 길러 온 여인에게 주님은 자신이 주는 영생의 물을 마시라고 말씀하신다.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주님이 주시는 영생의 물을 마시기 위해서 사마리아 여인이 주님께서 계신 우물 앞에 나아간 것과 같이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만일 주님 앞에 나아가지 않고 내가 서 있는 곳에 그저 서있는다면 결코 주님이 주시는 우물가로 나아갈 수 없어 주님이 주시는 영생의 물을 마실 수 없을 것이다.


3. 행하심을 선포하라
(1)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나에게 역사하신 이해할 수 없는 주님의 섭리하심을 선포하며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높임을 드려야 한다. 주님의 행하심을 많은 경우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의 내가 서 있을 수 있도록 인도하시지 않으셨는가.  나를 가장 선하고 최선의 길로 인도하신 주님의 행하심을 선포하자. 

(118:17)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호흡이 있어 살아 있는 동안 마음껏 주님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들을 선포하자. 나의 평생에 얼마나 도움을 주셨으며 나를 이곳에 이르기까지 이해할 수 없는 섭리함으로 인도하셨는가. 은혜와 긍휼의 주님께서 내게 행하신 일들을 선포하자.


4. 찬양하라
(1)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입이 있는 자들은 두 손을 높이 들고 나와 같은 자에게도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찬양을 해야 한다 

시편의 많은 부분은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차지한다.
시편의 기자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자신을 지켜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하였다.
옥중에서 사도 바울과 실라는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주님을 찬양하였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뻐 찬양하며 기꺼이 순교의 길을 갔다. 

(15: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오늘도 호흡을 있게 하심으로 주님앞에 나아와 찬양과 경배를 드리도록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진노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참고 참으시는 인내와 사랑의 여호와이십니다. 하지만 회개하지 아니하고 계속하여 죄악 가운데 있다면 저를 살리시려 진노를 베푸시는 공의의 하나님 이십니다. 주님의 진노가 없었다면 저는 사생아이어서 버림을 받을 수 밖에 없읍니다. 저에게 공의로서 진노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저를 위로하십니다. 비록 저를 고치시려고 진노를 하셨지만 긍휼의 주님께서는 저를 위로하십니다. 내 아들아 내 딸아 하시며 저를 품에 다시 안으시고 위로하십니다.

주님은 저를 구원하셨읍니다. 저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육신을 입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바로 저를 영원토록 살리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통을 마다하시고 다 이루셨다고 선포하셨읍니다. 주님은 참으로 저는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운 기이한 일을 행하셨읍니다.

그런 여호와께서는 제가 해야 할 일들을 가르쳐주십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늘 기뻐하며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어찌하지 못하는 육신의 질병이 찿아 왔을때 혹은 피폐한 삶을 만났을때 제가 어디 서 있는지를 보고 죄악됨을 회개하며 용서를 간구하며 주님 앞으로 나아가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오직 그 길만이 제가 살아 날 수 있는 길이기에 곤고함을 저에게 허락하신 여호와께 감사를 드립니다. 

생명의 우물에서 물을 길러 마시기를 원합니다. 생명의 물로 저의 갈증을 면하기를 간구합니다.

주님께서는 저를 위하여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읍니다. 저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사랑을 널리 선포하는 도구로 제가 사용되어 지기를 간구하며 두 손을 높이 들고 저의 전심을 다하여 아름다운 일을 행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7년 11월 26일 일요일

남은 자의 은혜




(10:20-23)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 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 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된 파멸은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선민인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의 뜻대로 여호와 중심의 삶을 살아야 했지만 여호와를 섬기기 보다는 이방신을 섬기며 진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믿을 수 없는 세상의 강한 자를 의지하며 자신의 뜻대로 살다가 결국은 하나님의 준엄하신 진노의 심판을 받아 대다수는 앗수루의 칼에 스러지고 얼마는 종으로 끌려 가고 나라는 산산히 부셔져 버렸다.

하지만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몇몇을 남겨 두셨다. 여호와께서는 남은 자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구원의 은혜의 축복을 베푸셨다. 여호와께서는 여호와께 불순종하며 이방신을 섬기는 패역한 자들에게 진노를 베푸셨지만, 여호와의 은혜를 생각하고 다시 여호와께 돌아 온 자들에게는 항상 남은 자의 은혜를 베푸셨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롬9:27에서 인용하며 비록 많은 유대인들이 있지만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을 받은 남은 자들은 얼마 되지 않음을 말한다.

(9: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서 얼마는 교회에 나오는 신자들이다. 그런데 교회에 나오는 모든 자들이 구원을 입었는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수 많은 자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구원을 입은 자들은 소수이다.  이들 구원을 입은 남은 자들은 자신의 뜻대로 구원을 입은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택하심이며  은혜이다.
(11:5)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남은 자의 은혜는 나의 선하고 의로운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다. 만일 남은 자의 은혜를 나의 완전한 의로운 선한 행위로 받는다면 그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남은 자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공의이시다.
누구를 택하사 남은 자의 은혜를 주실 것은 하나님의 택하심이다. 누가 무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18: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남은 자의 은혜가 없다면
(1: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패역한 소돔과 고모라는 많은 이들이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진노의 불의 심판을 받아 오직 롯과 그의 딸 둘만 남은 자의 구원을 받았다. 소돔과 고모라는 패역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았다.

현재 우리는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마치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말하지 않던가. 사방을 둘러 보아도 온전하게 주님을 섬기는 모습을 찿아 보기 힘들며 곳곳에서 주님을 부인한다.  자신의 한 때 뿐인 만족을 위한 향락과 타락함과 부정함이 넘친다. 거짓이 난무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이들을 짓밞는 것을 수 없이 본다.

세상은 그렇다치고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주님은 분명하게 동성애를 금하셨다. 그런데 정통성이 있다는 장로교단을 시작으로 거룩히 구별됨을 가르쳐야 하는 교회에서 세상과 동조되기 위해서 동성애가 합법화 되었다. 분명히 주님의 뜻은 아니다.  낮은 자리에 서있기보다는 성도나 사역자나 기득권을 갖기 위하여 온갖 권모술수가 자행되는 곳이 교회이다.  진실된 주님의 사랑을 찿기 위해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떤 부정한 이익을 취하기 위해 교회에 출석을 한다.  주님만이 영광을 받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영광을 받으려는 곳이다. 성도가 많이 나오는 큰 교회나 성도가 없어 쩔쩔 매는 교회나 잃어버린 영혼을 살리는 진정한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야 한다. 하지만 패역한 나를 살리시려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말씀만이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귀를 만족시키려고 그럴듯하게 포장을 해서 말씀을 선포한다. 살았다 하나 실은 죽은 교회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책망을 받을만 하지 않겠는가!  주님의 준엄한 진노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그 부패함이 아마도 유황불이 심판을 받아 멸망한 옛적의 소돔과 고모라보다 심하면 심할 것이다. 그런 세상에 남은 자의 은혜가 없었다면 나는 결코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주님은 패역한 세대이지만 그 가운데서 주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남은 자의 은혜를 베푸셨다.

만일 남은 자의 은혜가 없었다면 나는 세상에 속한 자가 되어 소돔과 고모라에 살던 자들과 같이 영원한 파멸의 심판을 받아 멸망의 자식이 될 수 밖에 없었지만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남은 자의 은혜가 내게도 임하여 주님의 구원을 받은 은혜의 자식이 되었다. 남은 자의 은혜가 나 같은 자에게도 임하였으니 얼마나 주님의 은혜에 감사한가!

오늘도 해가 뜨고 있다.
캄캄하여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어둠을 뚫고 온 세상을 환희 비추는 해가 다시 내게도 비친다.
주님의 은혜가 오늘도 내게 임한다.  오늘도 죄악 가운데서 살 내게도 남은 자의 은혜를 베푸신 주님의 거룩한 강렬하며 모든 것을 투과하는 빛이 오늘도 비춘다.

남은 자로 택하신 주님의 축복이 차고도 넘치나이다.


여호와의 약속
패역함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남 유다가 멸망하여 뿔뿔히 흩어지고 나라들 잃어버렸지만 여호와께서는 흩어진 자 중에서 남은 자들을 다시 모아 한 곳으로 모아 들이실 것이다.

(2:12-13) 야곱아. 내가 반드시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반드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의 양 떼 같이 하며 초장의 양 떼 같이 하리니 사람들이 크게 떠들 것이며 길을 여는 자가 그들 앞에 올라가고 그들은 길을 열어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가며 여호와께서는 선두로 가시리라.

이 말씀에서 여호와의 아픈 마음이 전해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자식의 패역함을 보시고 벌을 내리셨지만 차마 쳐 버릴 수 없는 아버지의 아픈 마음이 전해진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만일 나에게 패역한 자식이 있다면 그 자식의 패역함을 고쳐서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려고 체벌을 가한다. 하지만 체벌을 가하며 같이 아파하며 나의 목숨과 바꿀수 있는 그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그런 못난 자식이 변화되어 온전한 모습이 될 때 얼마가 기쁜가.

주님은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하실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아!  내가 지금은 너를 벌할 수 밖에 없어서 진노의 벌을 내리지만 얼마후에 내가 반드시 너를 다시 모을 것이라. 다시 한 곳 모아서 너희들은 은혜를 베푼 나 여호와를 크게 기뻐할 것이라. 내가 너희 앞서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잃어버린 영혼들이다. 
주님은 잃어버린 자를 찿으시고 다시 남은 자의 은혜를 베푸신다.
(34:15-16)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찿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Am I not a loser?
지쳐버린 영혼,
잃어 버린 영혼.
상처가 나서 곪은 영혼.
병든 영혼.
영혼의 양식을 먹지 못해 곤고한 영혼.
무엇에 쫓긴 듯 늘 불안한 영혼.
삶의 평강이 없어 항상 불평하는 영혼.

여호와께서는 친히 목자가 되어 남은 자들을 욕망과 정욕으로 살진 자와 강한 자로부터 지키신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주님의 은혜로 남은 자들인 곤고한 영혼들을 싸매어 먹이시고 마시우게 하시며 주님의 품으로 안아 주시는 여호와의 절절한 사랑 앞에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다.


이해할 수 없는 남은 자의 은혜
(8: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 일이 그 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야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남은 자의 은혜를 우리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왜 나와 같은 형편이 없는 자에게 여호와의 남은 자의 은혜가 임했는지를 나는 결코 알 수 없다.
왜 나보다 더 악하게 보이는 자에게 주님의 남은 자의 은혜가 임했는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나보다 나아 보이는 자들에게 여호와의 진노의 심판이 임했는데 그들보다 못한 나는 여호와의 택함을 입어 남은 자의 사랑을 받게 되었는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일이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은 나의 눈에는 참으로 기이하다.
도저히 나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여호와의 사랑이 있기에 나도 구원을 입지 않았는가.
나를 택하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할 뿐이다.


남은 자의 은혜를 받은 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20-21)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남은 자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여.
다시는 세상을 의지하지 말자. 세상은 나에게 가지 가지의 상처와 실망과 좌절과 슬픔을 주지 않았던가.
그런 겉에 보이는 세상을 다시는 의지하지 말고 오직 사랑과 긍휼하심으로 나를 감싸 안으시는 만군의 주이신 주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자 

늘 불순종을 한다.
여호와께로 돌아 오지 않고 계속해서 불순종을 하게 되면 여호와의 진노의 심판이 임하여 멸망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여호와를 의지함으로 여호와 앞에 나아와서 불순종을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면 남은 자의 은혜는 반드시 임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남은 자의 은혜를 받은 자는 악을 더 이상 행하지 말고 거짓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3:12)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로 온전하게 돌아가자
남은 자의 은혜를 받은 자는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해야 한다.

남은 자의 은혜가 너무나 귀한 것임을 아는 이사야는 이렇게 우리에게 권면을 한다.
(26:3-4)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주 안에서 심지가 굳어야 한다.
주를 신뢰함에 심지가 굳은 자를 주께서는 평강위에 평강을 더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신다.
나의 마음의 중심에 주님이 계셔야 한다. 주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오직 주 안에서 정결함과 성결함과 거룩히 구별되어야 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남은 자의 은혜를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의 겉모습은 포장이 되어 그럴듯해 보이지만 제 자신은 제가 잘 압니다.
저는 참으로 패역하고 부정한 자입니다.

그런 저에게 남은 자의 은혜의 소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살리시고 남은 자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패역한 저를 택하사 남은 자의 은혜를 주신 주님을 저는 이해할 수 없읍니다.

저의 눈에는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은 기이할 뿐이십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은혜를 베푸신 주님앞에 참된 마음으로 나아가서 주님께서 기뻐하사는 모습으로 살기를 간구합니다.

성령님이여 저를 도우사 남은 자의 은혜를 받기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7년 11월 12일 일요일

여호와의 이름


(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매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라.

[KJV] For unto us a child is born, unto us a son is given: and the government shall be upon his shoulder: and his name shall be called Wonderful, Counsellor, The mighty God, The everlasting Father, The Prince of Peace. Of the increase of his government and peace there shall be no end, upon the throne of David, and upon his kingdom, to order it, and to establish it with judgment and with justice from henceforth even forever. The zeal of the LORD of hosts will perform this.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는 말씀을 우리가 잘 아는 요3:16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표현을 한다. 우리를 구하시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을 할렐루야하며 찬양합니다.

어깨에 정사를 매었고를 살펴보자.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났을때 어깨에 무거운 짐을 매었다고 표현을 한다.

(22:22)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다윗의 뿌리로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주권을 갖고 계신다. 열면 열 자가 없고 닫으면 다시 닫을 수 없는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주권. 이 땅과 하늘과 땅 아래의 모든 권세를 주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His name shall be called’하며 어깨에 정사를 매신 곧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의 이름이 반드시 이렇게 불려 져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1. 기묘자 (Wonderful)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보고 기이하다고 말한다. 나의 생각으로 내가 그동안 배운 지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현상을 보고 우리는 기적이라고 한다 
성경에는 많는 기적들이 있다.
홍수로 모든 땅이 덮혀 모든 호흡하는 것들이 멸절된 일, 홍해 가운데가 열려 길이 난 일, 해가 뒤로 10도 물러난 일, 손을 들자 해가 중천에 머물렀던 일, 처녀 마리아의 잉태, 별을 보고 주님의 탄생을 알고 멀리서 찿아온 일, 죽은 지 삼일 후에 다시 살아난 일,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부활, 거의 2000년 후에 잃어 버렸던 이스라엘의 부활, 무엇보다 내가 주님을 믿을 수 있도록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간섭하신 사건들.
많은 사건들이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기적들이며 이 기적을 베푸신 여호와 하나님은 참으로 기묘하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우리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하신 분이시다. 
(28:29)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이사야서에서는 파종하려는 자가 땅을 개간하고 알맞는 곡식을 알맞는 곳에 심어 적절한 방법으로 곡식을 추수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기 때문이며 여호와의 지식과 경영은 참으로 기묘하다고 고백을 한다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주님의 행하심.
임신할 수 없었던 삼손의 어머니에게 어느날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서 아이가 탄생할 것이니 그 아이는 나실인으로서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라고 부모에게 전하여 준다. 이에 삼손의 잉태함을 마노아에게 알리려고 찿아 온 여호와의 사자에게 마노아가 이름을 묻자 이렇게 답변한다.
(7:14)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은 우리 인간의 지식으로는 가늠조차 할 수 없어 우리는 그것을 보고 놀라 기묘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2. 모사 (Counsellor)
주님은 요14:16에서 보혜사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곘음이라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지혜를 주시며 또한 장래 일을 알게 하신다.

(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과 모든 보화가 감추여져 있느니라.
(16:1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무엇보다 우리에게 소망 주시는 말씀은 곧 성령께서는 나를 보호하시고 변호하시는 보혜사이라는 것이다.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내가 죄를 지을 때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나를 하나님 아버지께 변호하신다.

하루에도 나는 수 많은 죄악을 범한다. 그런 나를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애통해 하시며 변호하시는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나는 죄악 가운데로 떨구어 질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가 아니던가!
(8:26)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니라


3. 전능하신 하나님 (Mighty GOD)
예수님은 계1:8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신다.
(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이시며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다.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10-11)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주님이 창조주이심을 믿는가?
1:1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이 믿어지는가?
1:1의 말씀이 진심으로 믿어져야지만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사건들을 의심하지 않고 믿어지게 된다.
만일 창1:1의 말씀이 믿어 지지 않는다면 믿음의 근간은 흔들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은 주님을 믿는 자녀가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여서라도 주님께서 창조주이심을 의심하게 만든다.
진화론은 근본적으로 창조주이신 주님을 부정하는 가상의 학문인데 그것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믿게 한다.

주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창조주이신다.
바로 그 분이 나의 주가 되시니 얼마나 기쁘며 감사한가.
 
 4. 영존하시는 아버지 (Everlasting Father)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히1:8에서는 영원전부터 영원토록 계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라고 소개를 한다.
(1:8)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1:11)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모든 창조물은 한계가 정해져 있다.
우리 인간 역시 하나님께서 정하신 각자의 수명이 있다. 언젠가는 다시 흙으로 돌아 간다. 유한한 생명이 흙으로 다시 돌아 가기 전에 영원하신 여호와를 바라보며 그 분의 자비를 간구해야 한다.

영원부터 영원에 계시는 영존하시는 여호와께서 나의 길을 부탁해보자.
주님의 자비와 긍휼이 임하사 저를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하소서.
 
5. 평강의 왕 (Prince of Peace)
예수님의 탄생하심을 보고 수많은 천군과 천사가 함께 이렇게 찬양한다.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천사들은 주님께서 평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심이 세상에 거하는 자들에게 평강을 주시기 위함을 알기 때문에 큰 소리로 찬양을 한다.

부활하신 주님은 도마가 제자들과 함께 모인 곳에 오셔서 (20:26)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 하시며 제자들의 평강을 축원하셨다. 주님의 관심은 주님의 죽음으로 인하여 두려워하는 제자들의 평강이다.

나의 머리터럭까지 세시는 세밀하신 주님께는 나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아신다. 힘이 들고 벅차고 낙심되어 두려워 할떄 나에게 주시는 주님의 위로의 말씀.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얼마나 위로를 주시는 감사하신 말씀인가. 위로의 말씀을 듣고 다시 힘을 얻어 평강의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은혜를 입는다.

너희는 평강할지어다 하시며 나를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주님.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지라.

평강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고 또한 주님은 서로 평강하기를 요구하신다.
(고후5: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곳에는 평강이 임한 모습을 보여주는 성경 구절이 있다.
(11:6-9)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나의 육신의 끝나기 전에 주님의 재림이 임하면 나는 이 땅에 평강의 왕이신 주님의 다스림이 임함으로 모든 곳에서 평화가 임함을 목격하게 되는 놀라운 은혜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육신이 끝나도 주님의 재림이 임하지 않다면 소망이 있으니 곧 나의 영혼은 평강의 왕이신 주님께서 계시는 천국으로 거처를 옮겨 그곳에서 평강 가운데 거하게 될 것을 믿는다.

이 외에도 또 다른 이름이 있다.
(7:14)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말씀은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실제로 처녀 마리아에게 나심으로 성취되었다.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여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묘자요 모사요 전능자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이신 주님.
바로 그 분이 저의 삶의 주인이시며 제 안에 계시며 저를 인도하시니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순간 순간 죄악을 범할 때마다 저를 일깨워 주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저의 마음과 눈이 밝아져서 주님의 임재를 늘 체험하기를 간구합니다. 저의 삶을 지금껏 저는 이해하지 못하는 놀라운 방법으로 인도하시고 주님의 자녀의 삶을 살게 하신 기묘하신 주님. 저의 삶 자체가 놀라운 일들의 연속입니다. 이제는 제 안에서 제가 천성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주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꺠닫고 순종하며 나아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은 온 우주를 각각의 종류대로 창조하신 창조주이신 전능의 주이십니다. 열면 풀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는 권능의 주님이 저의 주이십니다.

영존하시는 주님과 함께 저 역시 영원한 생명을 갖고 주님 바로 곁에서 섬길 수 있게 은혜를 베푸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늘 저의 삶을 주권하시며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
주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저에게 너는 평강하냐? 나의 평안을 너에게 주노니 너는 평강할 지어다 하시며 축복을 하십니다. 주의 주시는 놀라운 평강의 능력이 저에게 늘 임하여 앞으로 어떤 일을 맞닥뜨릴 지라도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평강 가운데 거하기를 간구합니다.

주님의 놀라운 이름의 능력이 제게 충만하게 임하는 축복을 부어 주심에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