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7일 일요일

롯도 의인이라 부르시는 하나님


(벧후2:6-8)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함이라.


하나님께서는 롯을 의인이라고 부르신다.
성경에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롯을 의인이라 부르신다는 이 구절 말씀도 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롯과 같은 자도 의인이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살펴보자.
하나님께서 누구를 의인이라 부르시는지,
롯의 어떤 선한 행동이 의인이라 불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의인이라 불린 롯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호하시는지를 보며 위안을 갖고롯과 같은 나 같은 자도 의인이라 부르시는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자.


A.     의인
성경에서 의인이라 불리운 자들을 보자.
대표적인 믿음의 장인 히11장에 의인들의 이름이 나온다.
믿음으로 제사를 드린 아벨.
믿음으로 약속의 땅을 받은 아브라함.
믿음으로 약속한 아들을 잉태한 사라.
믿음으로 약속의 땅을 상속받은 야곱.
믿음으로 약속의 땅으로 가게 될 것이라 유언한 요셉.
모세기생 라합기드온바락,삼손,,,
그 외에도 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의인이라 부르시는데 거기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이들 믿음의 선진들은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선한 행실들을 하였다의인이라 불리우는 것에 조금도 의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롯을 의인이라 부르시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해가 가지 않지만하나님께서 롯을 의인으로 택하셨음은 우리가 무어라 말할 자격이 없는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이며 선택하심이다이 사실을 통해 우리 역시 의인이라 불러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지 않는가!

우선 의인이라 불리는 것은 값을 지불하지 않고 얻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다.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리고 의인이라 불리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어떤 선한 행동이나 고행을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닌 믿음이 있어야 한다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진 자를 의인이라 부르신다.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울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는니라..

수도승이었던 Martin Luther는 영혼의 구원의 문제에 고심하였다카톨릭교회의 가르침대로 고행을 통해서 의를 얻으려고 하였다하지만 아무리 고행을 해도 선한 행실을 해도 그 자신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자신에게는 의로 불릴만한 의가 없음을 알고 고뇌를 한다그러다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의 말씀을 깨닫고 각성을 한다.

이 사건을 통하여 Luther는 선한 행실과 율례를 우선시하는 종교적 행위에서 벗어나 종교개혁을 한다.
나의 행실이나 고행을 해도 여전히 죄인이며의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선포하게 된다.

무엇을 믿는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마음에 진심으로 믿는가?
그렇다면 그런 나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의인이라 부르신다.

의인이라 불리는 것은 나의 선한 행실구제사역헌신이 아니다.
의인이 됨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나를 의인이라 부르시려고 작정하신 하나님의 선물이며주님께서 나의 구주이심을 믿게 하는 갚을 길 없는 은혜이다.

무엇을 믿는가?
주님께서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으며죄악되고 부패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진실되게 믿는가?
그렇다면 그렇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를 보시며 의인이라 부르실 것이기 때문이다.

(요일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세상을 이기는 승리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의인이란 믿음으로 영생을 소유한 천국백성이며 또한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된다.


B.     롯은 누구인가?
롯은 의로운 행동보다는 대부분 자신의 유익을 구하며 세상의 욕심을 쫓아간 어찌보면 나와도 같다.
나 역시 의롭고 거룩한 행실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세상에 속해 악한 행실을 하기도 하고 나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에 바쁘며하나님 안에 서 있기 보다는 세상에 속한 듯이 살기도 하지 않는가!

그렇지만 세상의 유익을 구하며 세상에 속했던 롯을 하나님께서는 의롭다고 하시며 의인이라고 부르시며 그가 고통가운데 있을 때 그를 건지셨다고 말씀하신다.

얼마나 위안이 되는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인가!

하나님께서는 롯과 같이 나 역시 대부분의 삶을 하나님께 범죄하며 악한 행실을 하며 눈 앞에 보이는 유익을 구하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거룩한 행실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롯을 의인이라 부르셨듯이 나 또한 의인이라 부르신다.

하나님께서 롯을 의인이라 부르실 때 나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성경을 보면 롯이 의인이라 불릴만한 어떤 선한 일을 한 기록이 거의 없다.
하나님께서 롯을 의인이라 부르심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말씀이다.
하지만 그런 롯을 의인이라 부르시며 자녀로 인정하시는 하나님께서 롯과 같은 나 또한 의인으로 삼으신다고 약속하시는 위로의 말씀이지 않는가!

롯의 행실을 살펴보자.
1.     사람을 따라 간 롯
(13: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땅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간 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간것이지만롯은 아브람을 따라 갔다.

아브람은 말씀을 따라 갔지만 롯은 사람을 따라 간 것이다.
우리 역시 사람을 따라 가지 않는가?
흔히 우리가 말하기를 사람이 출세하려면 줄을 잘 타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혈연학연을 관계 지으며 보기에 좋은 줄을 타려고 안간힘을 쓴다.
무척이나 인본적인 생각이다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의지하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필경은 그 관계는 아주 조그마한 것으로 인해 깨질수 밖에 없다.

롯은 우리와 같이 사람을 따라 갔던 사람이다.
의를 찿을 수 없다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롯을 의인이라 부르신다.

나는 어떤가나도 롯처럼 사람을 따라 가지 않는가?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자녀로 삼으시고 의인이라 불러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2.     이기적인 롯
(13:9-11)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나를 떠나가라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롯은 하란에서부터 아브라함을 따라왔고아브라함과 같이 동거동락하며 힘들고 어려운 일을 같이 하며 마침내 많은 가축을 지닌 부자가 되었다.  많은 종들과 많은 가축으로 인해 종들간에 다툼이 일어나자 아브라함은 서로 독립을 하자고 한다아브라함이 우리 둘 모두 많은 가축을 가졌으니 함께 하는 것이 유익하지 못하니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네가 오른쪽에 있는 땅을 가면 나는 왼쪽의 땅으로 갈것이니 네가 가고 싶은 곳을 가라고 하자롯은 자신의 눈에 보기 좋은 물이 풍부한 동편 땅인 소돔과 고모라 땅을 선택한다.

롯은 자신의 육신의 눈에 보기 좋은 곳을 선택한 것이다.
그것이 후에 고난의 길인줄을 모르고 당장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고 소돔 땅을 취한것이다.
겉에 보기에는 축복 받은 땅과 같이 보이지만 그 안을 보면 부패와 타락이 만연해 있는 멸망의 땅이었다.

우리 역시 눈에 보이는 이익을 택하려고 하지 않는가?
눈에 보임직하고 먹을만한 것을 탐하지 않는가?
세상의 물질명예권력정욕을 탐하지 않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신의 소욕을 찿는 자를 의인이라 하지 않을 것이다.

롯은 눈에 보이는 물질의 축복을 따라간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이런 롯을 보시면서도 그를 의인이라 부르신다.
나는 어떤가?  나도 롯처럼 세상의 욕심을 따라가지 않는가?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자녀로 삼으시고 의인이라 불러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3.     천사를 영접한 롯
성경에 기록된 롯이 행한 선한 행실이다.
(19:1)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롯은 소돔을 멸하려 온 두 천사를 영접한다아마도 두 천사는 인간의 옷을 입고 인간의 모습으로 롯에게 왔을 것이다롯은 이 두 천사를 자신의 집으로 영접한다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집을 포위하고 이 아름다운 모습을 한 두 천사와 동성관계를 맺겠다고 험악하게 요구하자롯은 마을 사람들에게 아무런 짓도 하지 말라며 막아서지만 흥분한 무리들은 힘으써 취하려고 한다이에 두 천사는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고 롯을 구한다그리고 두 천사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한다.

롯은 자신의 집에 머무는 자들이 주님의 천사들인지를 몰랐다.
롯은 영접한 손님들을 상관하겠다고 내 놓으라는 무리로 부터 지키려고 하였지만 많은 숫자이기에 중과부족이었다그럴때 천사들은 롯을 도와주며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얼마나 위안을 주시는 말씀인가.

우리 역시 주님께서는 천사들을 보내셔서 지켜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91:11-12)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라.
(34: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천사는 무엇인가?
성경에는 천사에 대한 기록이 많이 있다.
천사는 우리 인간과 같이 창조물이며 그들 또한 지정의를 갖고 있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영적인 존재이다창조때에 타락한 마귀를 쫓는 악한 천사들이 있고 주님을 따르는 선한 천사들이 있다.
선한 천사들은 주님의 자녀들을 도우라고 파견이 된다
(1: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보이지 않지만 천사들은 내 주변에 있을 것이다.
또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 나를 도우려고 나에게 다가 올 것이다.
천사들은 내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 주고 보호해 줄 것이다내가 천성에 가기까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볼픔이 없이 보인다고 함부러 사람을 대하지 말아야 한다.
부지불식간에 인간의 모습을 한 천사들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4.     마음에 근심한 롯
(벧후2: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롯은 눈으로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물이 넉넉하게 흐르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롯에게는 축복의 땅으로 보여 세상의 속물적인 선택으로 물이 흐르는 동편 땅을 차지하였지만그곳은 패역한 땅이요 부패한 땅이었으며 음욕이 가득한 땅이었다.

비록 롯이 속물적인 속성을 지닌 자이지만그래도 그 마음속에는 아브라함의 영향을 받아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었다롯은 아브라함과 많은 시간을 같이 지내며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순종과 열정을 볼 수 있었다그래서 은연중에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그의 마음속에도 새겨 지게 되었다그래서 하나님의 믿음을 갖고 있는 롯의 마음이 상하였으며 이를 하나님께서는 보시고 롯을 의인이라 부르신다.

하나님께서는 롯을 아브라함과 같이 그를 의인이라 부르신다.
참으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사건이지 않는가.
단지 음란하고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심령이 상하였다는데 그를 의인이라 부르신다

얼마나 나에게 위안을 주는가?
아무리 나를 좋게 보아도 나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그릇을 소유하지 못했다.
나는 롯과 같은 자가 아닌가세상의 속물근성을 가진 주님의 자녀이지 않는가.
그런데 나도 롯과 같이 음란하며 불법한 세상의 행실을 보고 들을 때에 나의 심령이 상하지 않는가.
롯이 소돔과 고모라의 불법한 행실을 보고 재를 뒤집어 쓰고 탄식하며 울며 하나님께 울부 짖었다고는 생각 되지 않는다단지 잠시동안 마음이 아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은 나의 조그마한 선한 행실이라도 기뻐하시며 칭찬을 하시며 보응을 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죄악됨을 잘 아시기에 나의 선한 모습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시며 나를 의인이라 불러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얄팍한 나를 보시고도 의인이라 부르신다는 데 창피하고 부끄럽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기쁜가.


C.     롯과 그의 가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롯과 두 딸과의 근친상간으로 만들어진 후손은 모압과 암몬자손이다이들은 이스라엘 자손들과 늘 대적하였던 민족이다그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과 그의 가족들을 구원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을 사랑하신다그래서 모든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죽으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롯과 그의 가족을 구원하셨다.
(17: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불과 유황이 쏟아져 내리는 멸망의 곳으로부터 하나님께서는 롯과 두 딸과 아내를 건져내셨다.
비록 아내가 세상에 대한 미련이 있어 뒤돌아 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지만롯과 두 딸과 아내가 구원받을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한 이유가 분명하게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19: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에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셨더라.

우리가 유념하여할 단어는 ‘생각하사”일 것이다Remember”라는 단어가 쓰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Remember what I did for you.
Remember what you have done for me.
Remember I AM WHO I AM.

하나님은 늘 죄악 가운데 있는 나를 기억하고 계신다.
또한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배은망덕한 자가 되지 말자.

나의 가족들이 구원 받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내가 우선 의인이라 불리어 구원받은 자가 되어야 한다.
내가 의인이라면 나의 가족들을 하나님께서는 그냥 보고만 계시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생각하시며 기억하시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도 나를 생각하사 지켜 주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실 것을 확신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롯도 의인이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에 저는 위안을 받습니다.
저는 롯과 같이 여호와를 따르기 보다는 사람을 찿아 다니고
눈에 보이는 좋은 것을 탐내는 세상의 소욕을 따르는 속물근성이 가득한 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롯을 사랑하시고 의인이라 부르십니다.
저는 롯을 의인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읍니다.
왜냐하면 저의 마음 구석에는 아직도 구원이란 선행과 고행을 통하여 얻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심으로 선행과 헌신과 말씀과 기도 가운데 거하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아 실망하고 절망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롯을 의인으로 삼으신 것은
바로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임을 저의 마음속에 가득하게 새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행실이나 고행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저의 믿음을 보시고 의인이라 부르십니다.

롯을 의인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저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제가 아무리 입이 많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 아무런 할 말이 없읍니다.
저의 마음은 죄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저를 자녀로 받아 주시고 의인이라 불러 주시니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아주 조그마한 선한 행실도 살피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에게서 조그만 착한 마음이나 선한 행실을 보시면
그래 너는 나의 사랑하는 자야 하시며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며
저의 모든 잘못된 죄악됨과 부패함을 용서 하십니다.

롯도 의인으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저의 아버지가 되시니 부끄럽지만 저는 참으로 기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2016년 7월 10일 일요일

마귀를 대적하라

(벧전5:7-9)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A)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B)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찿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C)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D)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사도 베드로는 극심한 박해 가운데 있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자신의 유언과 같이 근신하여 깨어서 마귀를 대적하라고 권면한다. 이 구절 전에 사도 베드로는 건강한 가정을 세우기 위한 아내와 남편이 해야 할 일에 대하여 그리고 교회의 장로들과 젊은 자들에게 교회를 어떻게 세워 나가야 하는지를 권면하였다. 우리의 삶의 가장 기본인 가정과 교회에 대하여 가르치고 이어서 우리의 삶에서 가장 당면한 문제를 언급한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당면한 문제는 무엇인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닌가가장 가까운 곳은 사도 베드로가 말하였듯이 우선은 가정이요 그리고 교회이다제일 먼저 사랑을 가깝게 나누어야 할 대상인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아 매사에 껄끄럽고 염려의 대상이 된다. 관계가 심각해 지면 서로 미워하고 원수가 되어 저주를 하지 않는가.
 
많은 염려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염려의 근원은 대적 마귀가 주는 것이니 근신하여 깨어 있어 대적해야 한다고 말한다. 8절의 대적과 9절의 대적은 같은 뜻이 아니다. 8절의 대적은 “큰 원수”를 말하며, 9절의 대적은 “적과 싸워 맟서라”를 말한다.
 
우리는 매일 매일을 영적전쟁을 한다.
에베소서의 말씀과 같이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영적싸움인데 애꿎은 사람과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미워하며 싸우려고 한다. 그래서 가정이 깨지고 교회가 깨지며 후회만이 남을 뿐이다. 깨짐을 막기 위해서는 그 근원이 누구인가를 확실히 알고 대처하며 이 땅에서도 천국을 경험하며 승리해야 한다사도 베드로는 그 비결을 가르치고 있다
 
 
A.     근신하라 깨어라
(벧전1:13)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찌어다.
(벧전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찿는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우선 근신하고 깨어야 한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때에 살고 있다. 자신의 때가 얼마남지 않음을 알고 있는 사탄은 온갖 불법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영혼 하나를 더 넘어 뜨리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러므로 주님의 자녀들은 마귀를 대적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근신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혼탁하여 어지러운 세상에 살고 있다마귀가 활개치는 곳이기에 도처에서 불법이 성행하고 주님의 이름을 배역하는 일들이 벌어 지고 있다. 세상은 정욕의 유혹으로 가득차 있고, 주님 중심의 거룩함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인간 중심의 쾌락과 행복과 번영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혼탁하고 죄가 만연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행동이나 말이나 모든 것에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덧 세상의 덫에 걸릴 것이기 떄문이다.
 
만일 나의 영혼이 자고 있다면 세상의 덫에 걸릴 수 밖에 없다
(살전5: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꺠어 근신할지라.
우리의 영혼은 깨어 있어야 한다. 나의 영혼이 잠자고 있는가그렇다면 나는 마귀를 결박하여 대적할 수 없다.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나의 영혼이 깨어 있어야 한다.
 
내 영혼이 잠자고 있다면 세상의 것을 탐할 수 밖에 없다.
세상 것들에 집착을 하며 세상속에서 만족함과 기쁨을 찿으려고 한다. 그렇지마 세상 것에 유혹을 받아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 육신을 쫓는 내 마음 속에는 속된 것들로 가득차게 된다.
(8:5-6) 육신을 쫓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쫓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주님의 자녀는 늘 깨어 있어 말씀을 읽고 찬양하며 기도하는 경배의 자리에 늘 나아가며 나와 나의 사랑하는 자들을 공격하는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주님의 자녀는 이미 마귀를 대적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귀를 과소평가해서는 않된다. 나의 영혼이 주님안에 온전하게 거하지 못하면서 어정쩡하게 마귀를 대적하면 오히려 마귀는 더욱 날뛰게 될 것이다. 사도바울이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는 놀라운 일들을 보고 부러워하는 마술하는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들린 자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였더니 어떤 일이 벌어 졌는가.
(19:15-16)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늘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그러므로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나의 영이 온전한데 서 있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는 영에게 마귀는 제압을 당할 수 밖에 없다. 놀라운 주님의 능력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주님의 자녀는 늘 근신하여 깨어 있어야 한다.
(21:34-36)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B.     대적 마귀
마귀 즉 사단은 이 땅의 주인이다.
(2:13)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1:7)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 왔나이다.
 
사단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이다.
주님께서는 성경 곳곳에서 사단을 언급한다.
사단은 보이지는 않지만 실체인 것이다. 그것도 사단은 세상의 주인이 되어 이 땅에서 살며 사람들을 지옥의 자식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금도 사단은 이곳 저곳을 두루 다니며 주님의 자녀들을 참소하고 있다.
 
사단은 주님을 가장 미워하며 더불어 주님의 자녀들 역시 미워한다.
그래서 주님의 자녀들에게 사단이 있는 이 땅은 영적전쟁터일 수 밖에 없다.
주님께서 광야에서 사단으로부터 시험을 받으셨는데 하물며 주님의 자녀 역시 사단으로부터 시험을 받지 않겠는가.
 
주님의 선과 마귀의 악은 항상 충돌을 한다.
이 땅은 사단의 속성인 거짓과 욕심과 교만과 정욕과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
마귀는 틈만 보이면 여지없이 굶주린 우는 사자와 같이 나를 찢어 버려 삼키려고 달려든다.
 
1.     우는 사자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은 시22에서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22:12-14)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사단은 주님을 우는 사자와 같이 주님을 찢어 삼키려 하였다. 사단은 주님의 자녀들인 우리 역시 찢어 삼키려고 한다. 그럴때에 나의 마음은 너무나 힘이 들어 초가 불에 녹듯이 내 마음도 녹는다.
하지만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시고 돌아 가시고 지옥에 가셔서 사단을 깨뜨리시고 승리하셨듯이 주님의 자녀 역시 사단의 권세에 이미 승리하였다.
 
마귀가 아무리 우는 사자와 같이 울부 짖으며 겁을 주지만 결코 두려워 하지 말자.
John Bunyan의 천로역정에 순례자가 길가 양 옆에서 사납게 울부짖는 사자 둘을 만나 두려워 하는 장면이 나온다. 순례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를 해야 하지만 사납게 울부 짖는 두 마리의 사자가 너무나 무서워 한발짝도 갈 수 없어 겁을 낸다. 같이 가던 ‘불신’과 ‘겁쟁이’역시 가기를 두려워 한다. 순례자는 과연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가 하며 겁을 내며 되돌아 갈까하며 두려워하자 ‘경계’의 이름을 가진 문지기가 사자들은 사슬에 매여 있으니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충고를 한다. 이 말을 듣고 순례자가 사자들을 가만히 살펴보자 과연 사자들은 사슬에 묶여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자들은 사납게 울부 짖지만 사슬에 묶여 있어 결코 순례자를 해칠 수 없었다.
사자가 사납게 울부짖기에 조금은 시끄럽겠지만,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사자의 목줄을 이미 묶어 놨기에 아무리 마구 날뛰어도 사자는 결코 나를 해칠 수 없다.
 
주님의 자녀인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얼마나 마귀는 날 찢으려고 집요하게 사납게 달려 드는가.
주위는 온통 나를 겁을 주고 찢어 삼키려는 시끄러움으로 가득하다. 그렇지만 그런 소음 가운데서 고요함을 찿아 보자.
사방은 나를 옭매고 말도 안되는 시끄러움으로 가득하지만, 그 가운데서 주님께서 주시는 고요하고 평온함은 나를 온전케 하시며 주님의 사랑을 느끼게 한다.
 
2.     삼킬 자를 찿는다
(13:7-8)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더라.
 
사탄은 이 땅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고 성도들과 싸워 이기는 권세 또한 받았다. 자신의 권세를 사용하여 이 땅의 거민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아 자신께 경배하도록 한다. 사탄은 오직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만 이길 수 있으며, 생명책에 기록된 주님의 자녀들은 손끝하나 다치게 할 수도 없으며 이길 수도 없다.
 
오직 주님만이 누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지를 아신다. 그것을 모르는 사탄은 주님의 자녀들이라면 어떤 방법과 수단을 써서 괴롭히고 삼키려고 한다.
 
(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마귀는 밀 까부리듯이 나와 내 주위사람들을 까부려서 나를 넘어 뜨리려고 한다. 그럴때마다 내 마음에는 평안이 없어지고 염려함으로 근심과 고통과 좌절이 내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근신하여 깨어서 주님께서는 내게 평안을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자.  또한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는 흔들리기 쉬운 나의 믿음이 떨어 지지 않도록 나를 위하여 간구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담대하게 용기를 내자.
 
 
C.     마귀를 대적하라
(4:7)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나를 황폐케 하며 파멸시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려는 마귀.
유일한 방어 수단은 적과 맞서며 대적하는 것이다.
적에게 등을 돌리고 도망하게 되면 얕잡아 봐서 끝까지 지겹도록 쫓아 오지 않겠는가.
 
마귀는 예수님 앞에서 복종할 수 밖에 없는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그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주셨다.
 
마귀는 모든 대적하는 자로부터 도망하지 않는다.
오직 담대하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하며 결박하는 자를 무서워하며 도망한다.
 
귀신들린 자들을 깨끗히 치유하시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님께 묻자 예수님은 이렇게 답변하신다.
(3:27)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예수님께서는 귀신들린 사람으로부터 귀신을 쫓아 내기 위해서는 귀신들린 자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귀신을 먼저 결박하여 쫓아 내어야 한다고 하신다.
 
1.     성령의 전신갑주
마귀를 쳐서 이기기 위해서는 말로만 맨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영적인 무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6:11-17)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권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 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분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를 대적하여야 한다.
일곱가지의 성령의 전신갑주에 대하여는 다음 기회에 살펴 보았으면 한다.
성령의 전신갑주 중에서 마귀가 마구 쏘는 불화살을 막기 위해서 나를 지키며 방어할 수 있는 무기가 믿음의 방패이다. 믿음이 있어야 적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지켜낼 수 있다.
(요일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어설프게 마귀를 대적하면 오히려 마귀에게 당한다.
(19:13-16)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 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어설프게 마귀를 대적하지 말고 성령의 전신갑주로 잘 무장하여 나와 사람들속에서 역사하는 마귀의 실체를 잘 파악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결박하며 대적하여야 한다.
 
  
2.     용서
마귀를 대적하기 원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선 용서를 하여야 한다. 마귀가 가장 쉽게 접근하는 통로는 용서하지 못한 마음을 사용한다.
(고후2:11)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이는 우리로 사탄에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다.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누가 준 것인가?
우리에게 미움을 주는 것은 성령이 아니고 마귀인 것은 자명하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에는 쉽게 상대방을 비판하여 분노하며 미워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주님의 성품이 아니다. 마귀는 나의 마음을 어지럽혀 쉽게 용서하지 못하게 한다. 용서한 것 같은데 마음 한구석에는 용서할 수 없는 이유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기회만 되면 끄집어 내게 된다.
미움이 있는 상태에서 마귀를 대적할 수 있곘는가! 전혀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마귀는 불타는 데에 기름을 더 부며 활활 타오르라고 꼬득일 것이다.
용서하지 못한 마음으로는 마귀를 대적할 수 없다.
 
 
3.     담대함
마귀대적을 하는 자는 주님께서 주시는 담대함을 가져야 한다.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님께서는 세상을 이기셨다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신 이유는 주님의 자녀들 역시 세상을 이기기 위함이다.
주님께서 바로 내 안에 계시지 않은가!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셨듯이 나 또한 세상을 이미 이겼는데 왜 염려하며 무엇을 두려워할까!
담대함을 갖고 모든 두려움과 염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주님께서는 이미 마귀를 이기셨다.
승리의 주님을 송축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높이 올립니다.
 
 
D.     다른 형제들도 마귀로부터 동일한 고난을 받는다
마귀의 공격은 나만 받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내 주위의 사람들도 받는다.
바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나의 아내 나의 남편 자녀들 부모 그리고 교회의 교인들.
모든 이들이 마귀로 부터 공격을 받고 때로는 이용되기도 한다.
그런 이들을 바라보며 이해하고 그를 위하여 기도를 해 주어야 한다.
못된 짓을 하는 것은 그가 아니라 그 사람 안에서 역사하는 마귀인것을 알자.
우리가 미워해야 할 대상은 주님을 믿는 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안에서 역사하는 마귀란 것을 잊지 말자. 제발 정죄하고 비판하지 말자.
 
대신에 그를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 사랑을 나누어 주자.
서로 위로하고 서로의 잘못을 이해하고 용납하자.
그것이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지 않겠는가.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마귀로부터 승리할 수 있는 한가지 비결을 알려 주셨다.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10:17-19)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밞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주님의 이름에는 놀라운 주님의 권세와 능력이 있다
주님의 이름앞에 귀신들은 무서워 떨며 항복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싸움의 실체인 귀신과의 싸움에서 이미 우리는 승리하였으니 나를 괴롭히는 영의 실체에 앞으로 다가가 대적하여 승리하자.
 
 
 
하늘에 계신 아버지
 
세상은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터 입니다.
저희들의 영이 깨어 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마귀의 실체를 알기를 원합니다
자고 있는 나태한 영혼은 마귀와의 싸움에서 질 수 밖에 없읍니다.
마귀와의 싸움에서 지게 되면 마귀에게 질질 끌려 다니는 마귀의 종이 될 수 밖에 없읍니다.
 
세상은 주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한데도
마귀에게 속박된 영혼은 눈이 감겨져 있어서
주님의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 볼 수 없읍니다.
 
마귀는 지금도 우는 사자와 같이 울부짖으며 믿는 자들을 찢어 삼키려고 합니다.
그 울부짖는 소리에 지레 겁을 내어  움추려듭니다.
 
주님 저희들에게 담대함을 주옵소서.
저희들의 영혼이 꺠어서 울부짖는 마귀를 대적할 수 있는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이 땅에서 우리의 싸움은 더 이상 나의 사랑하는 자들이 아닌 것을 알게 하시고
사랑하는 자들과 관계를 허무는 그 실체가 마귀인 것을 알아 주님의 이름으로 대적하게 하옵소서.
 
마귀는 주님의 이름 앞에 맥없이 물러설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자녀들에게 이미 승리를 주셨읍니다.
주님께서 주신 주님의 이름의 권세는 실로 대단하고 우리의 삶에 너무나 유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