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5일 일요일

긍휼의 그릇으로 빚어 가시는 긍휼의 하나님



(롬9:13-2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였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한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본문의 말씀은 토기장이의 비유로 잘 알려져 있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주권으로 어떤 그릇은 귀히 쓰는 그릇으로 어떤 그릇은 천히 쓰는 그릇으로 또 어떤 그릇은 멸망받을 진노의 그릇으로 어떤 그릇은 하나님의 영광을 받을 긍휼의 그릇으로 만드신다.


전에는 단지 토기장이가 자신의 뜻대로 그릇을 만들듯이 하나님은 자신의 뜻대로 사람을 빚으시는 주권의 하나님이라고만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말씀을 생각하면 할수록 한가지 분명하게 다가오는 것은 하나님은 진노의 그릇들인 우리 모두가 긍휼의 그릇으로 만들어지기를 원하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본문의 말씀을 두가지로 생각해 보자.
첫번째는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두번째는 하나님은 긍휼의 토기장이이시다.




첫번째,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시다
특히 저는 15-16절의 말씀에서 은혜를 받는다. 
(15-16)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였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시다.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또한 나를 불쌍히 여기신다.
얼마나 은혜가 되는 말씀인가.


모세가 여호와께 주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간구를 하자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어떤 분이심을 말씀하신다.
(33:19)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긍휼을 베풀고 누구에게 은혜를 베푸실지를 결정하신다.
나의 어떤 잘난 것을 보시고 결정하시는 것이 아니다. 누구를 택하실 것인지는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이시다.
나의 생각에 저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도 긍휼의 은혜를 베푸셨다. 또 그 사람도 나를 보며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저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것이 없이 보이는데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까 하며 생각을 할 것이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것이 곧 하나님의 마음이시며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마음은 언제나 나의 생각을 초월하신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있기에 나는 구원을 받았다.
왜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나의 무엇을 보시고 나를 택하셨을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비록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대로 받아 들이자.


내가 잘나서 무엇을 잘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며 긍휼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를 자녀로 택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기에 내가 마지막 호흡을 하기까지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나를 지켜주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신다.




(49:15-16)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긍휼의 원어의 뜻은 어머니가 자신의 자궁안에 있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며 자비와 긍휼로 쓰여진다.


어머니가 자신의 자신의 뱃속에서 자라다 나와서 젖을 빨아 먹은 갓난 아이를 잊을 수 없듯이 여호와께서도 나를 잊지를 못하시며 그것도 모자라서 나를 손바닥에 새기시고 손바닥을 보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시고 나에게 한없으신 긍휼을 베푸신다.


저를 손바닥에 새기시고 잊지 않으시는 여호와여!  저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54:7-8)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이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크신 긍휼하심으로 나를 손바닥에 새기시고 나를 사랑하시지만 나는 주님의 품안에 잠잠히 있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을 잊고 하나님의 길에서 뻣나가 죄악의 길에서 헤맨다. 그런 나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죄악 가운데서 헤매고 있는 나의 죄악됨을 알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진노를 허락하신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진노는 영원하게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잘못을 깨닫고 용서을 구하고 회개를 하게 되면 나를 언제나 불쌍하게 여기시는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거두시고 자비로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다시 회복시킨다.




인생들아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차라리 죽는 것이 낮다 싶어 죽고 싶다고 말하는가?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는가? 속이 탈때에는 밖으로 나오는 것도 새카맣지 않던가.
음식맛이 마치 모래알을 씹듯한가?
누가 뭐라고 말해도 들리지 않고 눈에는 초점이 없이 그저 망연하게 있는가?
고칠수 없는 병에 걸려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가? 왜 다른 이들은 멀쩡한데 나는 이러한 병에 걸렸을까?
소망은 모두 사라지고 절망만이 있는가?
사방을 둘러 보아도 높은 벽만이 보이고, 넘치는 성난파도만이 있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하며 마음이 녹아 내리며 낙심하지 말자.
우겨쌈을 당하여도 두려워하지 말자. 이미 벌어진 일 아닌가.
이웃과 친구들이 등을 돌리고 욕하며 멀리해도 모른척하자. 어차피 그들이 나의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지 않던가.
죽을 병에 걸려 내일이 나의 마지막날이면 어떠한가. 어차피 죽음은 언젠가 한번은 모두 경험하는 것인데 조금 일찍 죽는다고 무어 그리 억울해하며 왜 그리 살겠다고 발버둥치는가.




단지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자.
여하튼 그것만이 나의 살 길이지 않던가!  혹 여호와께서 긍휼로 덮으실지도 모른다.
나의 지난 날들을 뒤돌아 보자. 혹 어떤 일로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는지를 찿아보자.
이 사건을 통해서 내게 가르치시고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간구해 보자.



(103:13)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아버지의 긍휼하심을 입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자.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잠자고 있는 나의 영혼이 깨어야 한다.
나의 영혼아 깰지어다.
여호와의 긍휼을 바랄지어다.




두번째, 하나님은 긍휼의 토기장이이시다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토기장이의 비유는 이사야서 29장과 예레미야서 19장에 잘 나타나있다.


우선 이사야의 말씀을 살펴보자.
(29:16)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나를 빚으시는 분이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어떤 그릇은 귀히 쓰이는 그릇으로 어떤 그릇은 천히 쓰이는 그릇으로 만드신다.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어떤 이들은 할 짓 못할 짓 온갖 비행을 다 저지르고도 오히려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뼈더 빠지도록 일을 해도 겨우 입에 풀칠을 간신히 하며 목숨을 연명한다.
능력이 있는 잘난 이들은 교회에서도 중한 직책을 받으며, 능력이 없는 못난 이들은 교회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취급을 당한다. 혹 사회에서 제대로 취급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교회에서 중책을 맡으면 안하무인처럼 함부로 행동한다.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의 태중에서부터 에서와 야곱 중에서 약속의 씨로 야곱을 선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믿는 자를 박해하러 다메섹으로 가는 사울을 선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왕을 완악하게 하여 결국 자신의 첫아이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과 가축의 첫번째 소산을 죽게 하였고 홍해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죽게 하셨다.


우리 인간은 결코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을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택하신다.


하나님께서 빗으시는 그릇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진노의 그릇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긍휼의 그릇이다.
(22-23)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진노의 그릇
(22)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진노의 그릇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 멸하신다
    하나님은 마지막 심판때에 진노의 그릇들은 영원한 불못에 던져 넣을 것이다.
  • 오래 참음으로 관용하시고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심판을 아직 시행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이유가 바로 나를 사랑하시기 떄문이다.
    우선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는 여호와이심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한다. 나는 얼마나 완악하며 강팍한 자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지금껏 나를 참고 또 참으시며 나를 천국으로 인도를 하신다.
긍휼의 그릇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 영광을 받으신다
    내가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신다
나는 어떤 그릇인가?
멸하기로 약속된 진노의 그릇인가 아니면 영광을 받으실 긍휼의 그릇인가?
긍휼의 그릇은 안에 불순물이 없어야 한다. 불순물을 건져 내고 하나님의 마음대로 지어진 후에는 뜨거운 불가마 안에서의 연단의 과정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성령의 불의 역사가 임해야 한다. 성령의 인치심의 역사를 통하여 빗어진 그릇은 단단하고 아름다운 그릇으로 만들어 진다.




(18: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말씀이다.
토기장이는 아무 흙이나 그릇으로 만들지 않는다.
토기장이가 질이 좋은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질이 좋은 흙을 구하는 것이 비결이다.
좋은 진흙을 우선 잘게 부수고 불순물들은 건져낸 후에 적당한 물을 붓는다. 그리고 여러번 밟아서 훍 가운데 공기의 공간이 없도록 하고 알맞게 찰지도록 만든 후에 둘레에 올려서 손으로 자신이 원하는 모양대로 그릇을 만든다. 만든 그릇들을 가마에 넣고 장작을 때어 뜨거운 열기가 며칠이고 가해져서 마침내 단단한 그릇으로 만들어 진다. 가마에서 꺼내어진 그릇들을 토기장이는 골라낸다. 흙 가운데 불순물이 들어 있거나 공기구멍이 남아 있거나 열기가 제대로 가해지지 않다면 그 그릇은 잘못된 그릇으로 만들어 진다. 토기장이가 원하는대로 잘 구워진 그릇들은 잘 보관하지만 원하는 대로 만들어 지지 않은 그릇들은 망설임 없이 깨뜨리고 잘게 부수워서 흙으로 만들어 언제든지 원하는 그릇으로 다시 만든다.


하나님의 마음대로 제대로 만들어진 그릇은 긍휼의 그릇이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잘못 만들어진 진노의 그릇은 깨뜨려 버린다.


나는 본래 진노의 그릇이다.
진노의 자식이기에 영원한 불못의 사망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내가 긍휼의 그릇으로 만들어질 때까지 나를 부수고 또 부수어서 진노의 그릇으로부터 긍휼의 그릇으로 빗으신다.  진노의 그릇인 나를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자녀로 삼으시고 오랫동안 나를 깨뜨리고 또 꺠뜨리시며 결국은 긍휼의 그릇으로 빗어 가시며 나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인내하시며 내 안에 있는 불순물들인 죄악들을 하나 하나씩 걸러 내도록 성령의 불에 나를 연단하며 또 연단하신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 왠만한 그릇이라 생각이 들지만 하나님께서는 만족하시지 않으시고 다시 깨뜨리시고 또 깨뜨리시며 결국은 영성과 인성과 지성과 영원한 육신이 잘 갖추어진 온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아름다운 긍휼의 그릇으로 만들어 내신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제각각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긍휼의 그릇들로 가득하게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 긍휼의 그릇으로 빗어져가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변함이 없는 진노의 그릇인가!


진노의 그릇들인 우리는 악으로부터 돌이켜야 한다.  악에서 돌이키면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돌이키시고 다시 긍휼의 그릇으로 만드신다. 긍휼의 그릇으로 빗어져서 영광의 풍성함에 거하여야 한다.
(18:8)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만일 긍휼의 그릇으로 빗어져 가고 있다면 더욱 하나님께 감사하고 더욱 순종하며 주님의 길을 따라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 진노의 그릇이라면 오래 참고 또 참으시며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자. 나의 죄악들을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며 긍휼의 그릇으로 빗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를 하자.


왜냐하면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시기 떄문이다.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항상 쉬지말고 감사를 하자.
 


하나님 아버지여,
저는 본래 영원한 사망이 기다리고 있는 진노의 그릇입니다.
진노의 그릇인 저를 깨뜨리시고 다시 저를 긍휼의 그릇으로 빗으소서.
주여 은혜를 베푸사 진노의 그릇인 저를 긍휼의 그릇으로 다시 만드실 긍휼의 여호와께 감사를 드립니다.
성령의 불에 저를 연단하시며 제 안에 있는 불순물들을 다 태우사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긍휼의 그릇으로 저를 빗어 주옵소서.
긍휼의 하나님이시여.
저의 완악함을 오래 참고 참고 계시는 긍휼의 하나님. 오늘 이 시간이 제가 은혜를 받을 만한 때임을 깨닫도록 저를 인도하옵소서.
긍휼의 그릇으로 빗어져 가기를 간구합니다.
저를 긍휼의 그릇으로 빗으실 여호와여 영광을 받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7년 1월 1일 일요일

쌓아 두신 은혜의 축복



(31:19-24) 주를 두려워 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주께서 그들을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말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의 놀라운 사랑을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내가 놀라서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꼐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새해가 시작이 되었는데 지난 날들의 잘못된 것들은 이제는 내려 놓고 주님안에서의 새사람으로서의 변환을 해보자. 하나님께서는 셀 수 없는 너무나 좋은 축복들을 이미 마련해 놓으셨다. 올해에는 하나님께서 쌓아 두신 좋은 풍성한 은혜들을 찿아 쓰는 축복받은 인생이기를 간구하자.


여호와께서는 주님의 자녀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하신다.
여호와께서 풍성한 은혜를 쌓아 두셨는데 그 내용물은 good things 곧 우리 인생에 유익이 되는 좋은 것들이다.


첫째, 쌓아 두신 (have stored up)
(19) 주를 두려워 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How abundant are the good things that you have stored up for those who fear you, that you bestow in the sight of all, on those who take refuge in you,


‘have stored up’은 현재완료형이며 이는 이미 여호와께서는 좋은 것들을 여호와의 창고에 풍성하게 쌓아 두셨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준비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완벽하게 좋은 것들이 준비되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좋은 것들로 풍성한 은혜를 꺼내어 쓰는 축복된 성도이기를 간구한다.


여호와께서는 좋은 것들을 차고 넘치도록 보관하고 계신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마음대로 언제든지 꺼내어 쓸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쓸 수 있는 좋은 것들이 이미 차고 넘치도록 풍성하게 준비되어 있지만 창고 문을 열수 있는 key가 있어야 한다.  Key를 갖고 있다면 언제든지 원할때 창고문을 열고 들어가서 필요한 좋은 것들을 가져내 올 수 있다.

둘째, 창고를 여는 key?
(19) 주를 두려워 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여호와께서 풍성하게 쌓아 두신 은혜는 모든 자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다. 오직 자격을 갖춘 자만이 하늘 창고를 열고 하늘의 은혜의 축복을 꺼낸다. Conditional한 조건을 갖춘 자에게 여호와의 창고를 열수 있는 key가 주어진다.


두가지의 조건이 맞아야 한다.
1.  두려워하는 자 (who fear YOU)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은 어찌보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 것이다.
물론 여호와는 사랑과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임을 잘 안다. 그러기에 늘 죄악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용서를 구한다심판과 재앙과 저주하심으로 인간에게 보응하시는 무서운 여호와이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며 주권자이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두려워 하며 섬긴다. 온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해야 한다.


(5:22-2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 하지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리로다.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예레미야서 5장에서는 어떤 여호와이시기에 우리가 두려워하며 경외해야 하는 지를 말씀하고 있다.
여호와는 바다의 한계를 정하신 분이시다. 바닷가에 가면 수많은 모래들이 펼쳐져 있다. 아무리 깊고 넓은 바다도 하나님께서 경계로 정하신 모래를 넘어서지 못한다. 우리는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가 얼마나 큰 피해를 주었는지를 보고 안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쓰나미라 할지라도 어느정도 피해를 줄 수는 있지만 결코 온 땅을 뒤엎을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경외하지 않게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이른비와 늦은 비의 축복은 없어진다.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때에 맞추어서 와야 한다. 그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가 오기를 원해서 비가 오는 것이 아니며 비가 오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비가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비는 내리고 그친다. 하늘에서 내려 주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게 적당하게 내리지 않는다면 풍성한 추수를 기대할 수 없고 흉년이 오게 된다.


나의 삶에 피페함이 왔는가?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축복이 끊쳐 졌는가?
메뚜기와 황충이 남아 있는 열매들을 갉아 먹는가
말할 수 없는 흉년으로 너무나 힘이 드는가?
혹 여호와를 온전하게 두려워 하지 않았으며 경외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말씀하신대로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 곧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축복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 곧 여호와의 축복을 막았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어디에 서 있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여호와를 온전하게 두려워 하며 경외하였는가
혹시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는가?
여호와는 자신을 두려워 하는 자를 위하여 은혜를 쌓아 두셨다. 


2.  피하는 자 (who take refufe in YOU)
주께로 피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주를 두려워 하는 자는 주님을 피난처로 삼고 주께로 피한다
삼하22장은 다윗의 노래인데 다윗은 자신의 인생을 회상하며 여러 경험들을 통하여 깨달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찬양을 한다.
(삼하22:31) 여호와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이 밖에도 다윗은 여러 시편을 통하여 여호와께로 피하는 자가 받는 은혜를 노래한다.
(5:11)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17:7-8)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어려움 가운데 있다면 주님 앞에 나아가서 그 날개 아래에 거하도록 하여야 한다.
나를 지켜주실 이는 주님뿐이다. 창조주이시며 권능자이시며 주권자이신 주님의 날개 아래에 피하도록 하자.
오직 그 길만이 고통가운데 있는 나를 위로하시고 눈동자처럼 지켜 주시고 또 다른 예비하신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어 나를 회복의 은총으로 덮으실 것이다.


셋째, 어떤 좋은 것들인가?
좋은 것들의 축복이라고 할 때 우리는 흔히 우리 육신의 축복을 의미한다.
과연 시편에서 말하고 있는 풍성한 좋은 것들의 축복이 우리가 원하는 재물의 축복, 건강의 축복, 명예와 권세의 축복, 아니면 세상의 평안함의 축복인가본문의 말씀에서는 두가지의 회복 곧 관계의 회복과 어려움으로부터의 회복의 축복에 대하여 말씀을 한다.

1.  관계의 회복
(20) 주께서 그들을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말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두 가지가 언급이 된다.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1편은 복있는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첫번째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한다
복이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악인의 꾀를 쫓아서는 않된다.


악인의 꾀에는 무엇이 있을까?
유혹, 간계, 거짓, 자신이 남보다 우선이라는 교만,
악인의 꾀에 빠지게 되면 죄를 따르게 되며 오만한 자가 되어 결국은 복을 받을 수 없는 자가 된다


악인의 꾀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곧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될 때 비로서 악인들의 꾀에 빠지지 않게 되어 복된 자가 된다.


말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라 (from accusing tongues)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문제가 적든 크든 항상 conflict가 있는데 그 이유는 대개 말로부터 시작을 한다.
사람의 심기를 건드는 말, 사람의 자존심을 깍아 내리는 말, 칭찬의 말보다는 정죄의 말, 따뜻한 말보다는 가시돋친 말, 따뜻한 사랑의 말보다는 차가운 미움의 말, 축복의 말 보다는 저주의 말,


온갖 말들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며 사람과의 관계를 허물어 뜨린다
가장 말로 인해 관계가 허물어 지는 곳이 어디인가? 바로 가정이다.
사랑으로 가득해야 할 곳이 가정이 오히려 미움과 증오의 장소로 바뀐 것은 바로 말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한마디의 말로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 다툼이 있다면 조심하라. 다툼은 마귀가 심어주는 마음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마귀가 주는 다툼과 시기라면 그 결과는 좋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마귀가 주는 것은 악함이기 때문이다.
(3:14-16)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려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하나님의 준비하신 축복은 바로 말로 인한 상처를 보담어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을 한다.
가정의 회복의 축복은 얼마나 귀한 축복인가.
교회안에서 교인들간의 관계의 회복.
삶의 일터에서 동료들간의 관계의 회복.
관계를 허물어 뜨리는 간계와 말들로부터 회복되는 은총.

2.  어려움으로부터의 회복
(21-22) 견고한 성에서 그의 놀라운 사랑을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내가 놀라서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늘 좋은 일들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생은 늘 좋은 일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힘이들고 낙심케 하는 어려운 일들을 만난다.
앞뒤로 꽉 막혀 좌절하고 놀라서 주앞에서 나는 끊어졌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때로 우리는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는 견고한 성을 만난다.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는 견고한 성.
정욕의 문제, 탐욕의 문제, 재정의 문제.
굶주림과 절망으로 소망이 끊어진 상태.
질병으로 죽음을 전전긍긍하며 즐거움이 끊어진 상태.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진 상태.


이러한 것들은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깰 수 없는 견고한 성이다.
비록 적으로 에워싸여 있어 아무런 소망이 없지만 소망을 잃지 않고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여호와께 피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견고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주님의 은혜의 손길로 기적처럼 어려움을 디디고 회복이 되는 은혜가 임한다.


(6: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성들이 크게 소리쳐서 견고한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린 것이 아니다.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크게 소리치는 것을 보고 들으신 여호와께서 자신의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견고한 성 여리고를 무너뜨리신 것이다 
넷째, 은혜를 받은 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찬양 – Praise be to the LORD
(21) 여호와를 찬양하라


KJV‘Blessed be the LORD’로 즉 여호와여 축복을 받으소서라고 번역을 했다.
내가 누구를 축복을 하는 것보다는 축복 받는 것에 익숙해 있다. 더군다나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울 받는 것에만 익숙해 있다. 하지만 우리 역시 하나님을 축복하여야 한다. 여호와께서 나를 견고한 성으로부터 건져 주셨음으로 나는 여호와를 축복하며 찬양을 한다고 다윗은 고백을 한다.  여호와를 축복하며 찬양을 하자.


찬양을 할 때 어떤 모습으로 하는가?
많은 이들이 찬양을 형식적으로 하는 것을 본다.
찬양 team이 하는 가장 큰 잘못은 자신의 찬양하는 모습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다. 가운데 서려고 하고 화면에 비쳐지기를 원한다. 그런 모습으로 찬양을 하면 하나님께서 받으실까


나의 마음 중심으로 찬양을 드려야 한다.
찬양을 받으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많은 예배 가운데서 정작 중요한 찬양은 대강 생략을 하고 중요하지 않는 교회광고에 더욱 치중하기도 한다. 찬양은 설교만큼이나 중요한 예배의 요소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2.  간구 – For I said in my haste, when I cried unto YOU
(22) 내가 놀라서 말하기를
(22)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기쁠떄는 기쁨의 감사의 간구를 슬플 때는 나의 아픈 심정을 토로하는 간구를 드리자.
여호와 하나님 앞에 무엇을 감추고 포장해서 간구하지 말자.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모든 사정을 이미 잘 알고 계시며 나의 간구를 들으시기를 기뻐하신다.
나의 모든 사정을 주님께 간구하자







3.  사랑 – Love the LORD
(23)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사랑하라는 교회의 성도들이라면 너무나 많이 들어서 익히 알고 있는 말씀이다그런데 실천에 옯기기에는 어려운 말씀이기도 하다내 안에 주님의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남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다. 내 안에 주님의 사랑이 없다면 그 사랑은 형식적이며 가식적인 사랑일 수 밖에 없다.







4.  담대함 – Be strong and take heart
(24)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세상은 때로는 내게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내게 준다. 그럴때마다 좌절하고 소망을 잃어 버린다. 그렇지만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그런 나를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너는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너는 오직 여호와를 믿고 의지하며 강하고 담대하라. 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나를 위로하시고 감싸주시며 용기를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축원을 드린다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독수리라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으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경외하며 피난처로 삼은 자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새힘으로 독수리가 힘차게 날개치며 올라가듯이, 달음박질 하여도 지치지 않고, 아무리 오래 걸어도 피곤하지 않는 강건함을 주신다. 나의 육신의 연약함을 회복시키시며 보다 중요한 나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새힘을 주셔서 세상의 곤고한 일들이 많지만 주눅들지 않고 실망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만을 바라보며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축복받은 성도가 되자


(61:9) 그들의 자손을 뭇 나라 가운데에, 그들의 후손을 만민 가운데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여호와께 피하여 여호와께서 쌓아 두신 은혜를 찿아 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쌓아 두신 은혜의 축복을 나의 후손에게도 물려 주어서 대대로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받는 축복 받은 자손이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주께서 이미 준비하신 풍성한 은혜를 받기를 간구합니다.
주님의 창고에 예비하신 좋은 것들을 찿아 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주님을 두려워하며 주님께 피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두려움으로 섬기기를 원합니다.
또한 제가 주님의 은밀한 곳으로 피하여 거처를 삼기를 원합니다.

늘 저의 삶 가운데서 여호와를 저의 마음으로 입술로 찬양을 드리며,
늘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간구하며,
무엇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늘 주님만을 의지하여 강하고 담대하게
저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들을 보내도록
주의 풍성한 은혜로 저를 덮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