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6일 일요일

남은 자의 은혜




(10:20-23)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 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 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된 파멸은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선민인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의 뜻대로 여호와 중심의 삶을 살아야 했지만 여호와를 섬기기 보다는 이방신을 섬기며 진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믿을 수 없는 세상의 강한 자를 의지하며 자신의 뜻대로 살다가 결국은 하나님의 준엄하신 진노의 심판을 받아 대다수는 앗수루의 칼에 스러지고 얼마는 종으로 끌려 가고 나라는 산산히 부셔져 버렸다.

하지만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몇몇을 남겨 두셨다. 여호와께서는 남은 자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구원의 은혜의 축복을 베푸셨다. 여호와께서는 여호와께 불순종하며 이방신을 섬기는 패역한 자들에게 진노를 베푸셨지만, 여호와의 은혜를 생각하고 다시 여호와께 돌아 온 자들에게는 항상 남은 자의 은혜를 베푸셨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롬9:27에서 인용하며 비록 많은 유대인들이 있지만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을 받은 남은 자들은 얼마 되지 않음을 말한다.

(9: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서 얼마는 교회에 나오는 신자들이다. 그런데 교회에 나오는 모든 자들이 구원을 입었는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수 많은 자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구원을 입은 자들은 소수이다.  이들 구원을 입은 남은 자들은 자신의 뜻대로 구원을 입은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택하심이며  은혜이다.
(11:5)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남은 자의 은혜는 나의 선하고 의로운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다. 만일 남은 자의 은혜를 나의 완전한 의로운 선한 행위로 받는다면 그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남은 자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공의이시다.
누구를 택하사 남은 자의 은혜를 주실 것은 하나님의 택하심이다. 누가 무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18: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남은 자의 은혜가 없다면
(1: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패역한 소돔과 고모라는 많은 이들이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진노의 불의 심판을 받아 오직 롯과 그의 딸 둘만 남은 자의 구원을 받았다. 소돔과 고모라는 패역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았다.

현재 우리는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마치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말하지 않던가. 사방을 둘러 보아도 온전하게 주님을 섬기는 모습을 찿아 보기 힘들며 곳곳에서 주님을 부인한다.  자신의 한 때 뿐인 만족을 위한 향락과 타락함과 부정함이 넘친다. 거짓이 난무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이들을 짓밞는 것을 수 없이 본다.

세상은 그렇다치고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주님은 분명하게 동성애를 금하셨다. 그런데 정통성이 있다는 장로교단을 시작으로 거룩히 구별됨을 가르쳐야 하는 교회에서 세상과 동조되기 위해서 동성애가 합법화 되었다. 분명히 주님의 뜻은 아니다.  낮은 자리에 서있기보다는 성도나 사역자나 기득권을 갖기 위하여 온갖 권모술수가 자행되는 곳이 교회이다.  진실된 주님의 사랑을 찿기 위해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떤 부정한 이익을 취하기 위해 교회에 출석을 한다.  주님만이 영광을 받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영광을 받으려는 곳이다. 성도가 많이 나오는 큰 교회나 성도가 없어 쩔쩔 매는 교회나 잃어버린 영혼을 살리는 진정한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야 한다. 하지만 패역한 나를 살리시려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말씀만이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귀를 만족시키려고 그럴듯하게 포장을 해서 말씀을 선포한다. 살았다 하나 실은 죽은 교회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책망을 받을만 하지 않겠는가!  주님의 준엄한 진노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그 부패함이 아마도 유황불이 심판을 받아 멸망한 옛적의 소돔과 고모라보다 심하면 심할 것이다. 그런 세상에 남은 자의 은혜가 없었다면 나는 결코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주님은 패역한 세대이지만 그 가운데서 주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남은 자의 은혜를 베푸셨다.

만일 남은 자의 은혜가 없었다면 나는 세상에 속한 자가 되어 소돔과 고모라에 살던 자들과 같이 영원한 파멸의 심판을 받아 멸망의 자식이 될 수 밖에 없었지만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남은 자의 은혜가 내게도 임하여 주님의 구원을 받은 은혜의 자식이 되었다. 남은 자의 은혜가 나 같은 자에게도 임하였으니 얼마나 주님의 은혜에 감사한가!

오늘도 해가 뜨고 있다.
캄캄하여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어둠을 뚫고 온 세상을 환희 비추는 해가 다시 내게도 비친다.
주님의 은혜가 오늘도 내게 임한다.  오늘도 죄악 가운데서 살 내게도 남은 자의 은혜를 베푸신 주님의 거룩한 강렬하며 모든 것을 투과하는 빛이 오늘도 비춘다.

남은 자로 택하신 주님의 축복이 차고도 넘치나이다.


여호와의 약속
패역함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남 유다가 멸망하여 뿔뿔히 흩어지고 나라들 잃어버렸지만 여호와께서는 흩어진 자 중에서 남은 자들을 다시 모아 한 곳으로 모아 들이실 것이다.

(2:12-13) 야곱아. 내가 반드시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반드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의 양 떼 같이 하며 초장의 양 떼 같이 하리니 사람들이 크게 떠들 것이며 길을 여는 자가 그들 앞에 올라가고 그들은 길을 열어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가며 여호와께서는 선두로 가시리라.

이 말씀에서 여호와의 아픈 마음이 전해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자식의 패역함을 보시고 벌을 내리셨지만 차마 쳐 버릴 수 없는 아버지의 아픈 마음이 전해진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만일 나에게 패역한 자식이 있다면 그 자식의 패역함을 고쳐서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려고 체벌을 가한다. 하지만 체벌을 가하며 같이 아파하며 나의 목숨과 바꿀수 있는 그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그런 못난 자식이 변화되어 온전한 모습이 될 때 얼마가 기쁜가.

주님은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하실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아!  내가 지금은 너를 벌할 수 밖에 없어서 진노의 벌을 내리지만 얼마후에 내가 반드시 너를 다시 모을 것이라. 다시 한 곳 모아서 너희들은 은혜를 베푼 나 여호와를 크게 기뻐할 것이라. 내가 너희 앞서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잃어버린 영혼들이다. 
주님은 잃어버린 자를 찿으시고 다시 남은 자의 은혜를 베푸신다.
(34:15-16)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찿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Am I not a loser?
지쳐버린 영혼,
잃어 버린 영혼.
상처가 나서 곪은 영혼.
병든 영혼.
영혼의 양식을 먹지 못해 곤고한 영혼.
무엇에 쫓긴 듯 늘 불안한 영혼.
삶의 평강이 없어 항상 불평하는 영혼.

여호와께서는 친히 목자가 되어 남은 자들을 욕망과 정욕으로 살진 자와 강한 자로부터 지키신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주님의 은혜로 남은 자들인 곤고한 영혼들을 싸매어 먹이시고 마시우게 하시며 주님의 품으로 안아 주시는 여호와의 절절한 사랑 앞에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다.


이해할 수 없는 남은 자의 은혜
(8: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 일이 그 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야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남은 자의 은혜를 우리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왜 나와 같은 형편이 없는 자에게 여호와의 남은 자의 은혜가 임했는지를 나는 결코 알 수 없다.
왜 나보다 더 악하게 보이는 자에게 주님의 남은 자의 은혜가 임했는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나보다 나아 보이는 자들에게 여호와의 진노의 심판이 임했는데 그들보다 못한 나는 여호와의 택함을 입어 남은 자의 사랑을 받게 되었는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일이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은 나의 눈에는 참으로 기이하다.
도저히 나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여호와의 사랑이 있기에 나도 구원을 입지 않았는가.
나를 택하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할 뿐이다.


남은 자의 은혜를 받은 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20-21)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남은 자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여.
다시는 세상을 의지하지 말자. 세상은 나에게 가지 가지의 상처와 실망과 좌절과 슬픔을 주지 않았던가.
그런 겉에 보이는 세상을 다시는 의지하지 말고 오직 사랑과 긍휼하심으로 나를 감싸 안으시는 만군의 주이신 주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자 

늘 불순종을 한다.
여호와께로 돌아 오지 않고 계속해서 불순종을 하게 되면 여호와의 진노의 심판이 임하여 멸망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여호와를 의지함으로 여호와 앞에 나아와서 불순종을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면 남은 자의 은혜는 반드시 임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남은 자의 은혜를 받은 자는 악을 더 이상 행하지 말고 거짓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3:12)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로 온전하게 돌아가자
남은 자의 은혜를 받은 자는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해야 한다.

남은 자의 은혜가 너무나 귀한 것임을 아는 이사야는 이렇게 우리에게 권면을 한다.
(26:3-4)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주 안에서 심지가 굳어야 한다.
주를 신뢰함에 심지가 굳은 자를 주께서는 평강위에 평강을 더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신다.
나의 마음의 중심에 주님이 계셔야 한다. 주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오직 주 안에서 정결함과 성결함과 거룩히 구별되어야 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남은 자의 은혜를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의 겉모습은 포장이 되어 그럴듯해 보이지만 제 자신은 제가 잘 압니다.
저는 참으로 패역하고 부정한 자입니다.

그런 저에게 남은 자의 은혜의 소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살리시고 남은 자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패역한 저를 택하사 남은 자의 은혜를 주신 주님을 저는 이해할 수 없읍니다.

저의 눈에는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은 기이할 뿐이십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은혜를 베푸신 주님앞에 참된 마음으로 나아가서 주님께서 기뻐하사는 모습으로 살기를 간구합니다.

성령님이여 저를 도우사 남은 자의 은혜를 받기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7년 11월 12일 일요일

여호와의 이름


(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매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라.

[KJV] For unto us a child is born, unto us a son is given: and the government shall be upon his shoulder: and his name shall be called Wonderful, Counsellor, The mighty God, The everlasting Father, The Prince of Peace. Of the increase of his government and peace there shall be no end, upon the throne of David, and upon his kingdom, to order it, and to establish it with judgment and with justice from henceforth even forever. The zeal of the LORD of hosts will perform this.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는 말씀을 우리가 잘 아는 요3:16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표현을 한다. 우리를 구하시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을 할렐루야하며 찬양합니다.

어깨에 정사를 매었고를 살펴보자.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났을때 어깨에 무거운 짐을 매었다고 표현을 한다.

(22:22)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다윗의 뿌리로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주권을 갖고 계신다. 열면 열 자가 없고 닫으면 다시 닫을 수 없는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주권. 이 땅과 하늘과 땅 아래의 모든 권세를 주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His name shall be called’하며 어깨에 정사를 매신 곧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의 이름이 반드시 이렇게 불려 져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1. 기묘자 (Wonderful)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보고 기이하다고 말한다. 나의 생각으로 내가 그동안 배운 지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현상을 보고 우리는 기적이라고 한다 
성경에는 많는 기적들이 있다.
홍수로 모든 땅이 덮혀 모든 호흡하는 것들이 멸절된 일, 홍해 가운데가 열려 길이 난 일, 해가 뒤로 10도 물러난 일, 손을 들자 해가 중천에 머물렀던 일, 처녀 마리아의 잉태, 별을 보고 주님의 탄생을 알고 멀리서 찿아온 일, 죽은 지 삼일 후에 다시 살아난 일,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부활, 거의 2000년 후에 잃어 버렸던 이스라엘의 부활, 무엇보다 내가 주님을 믿을 수 있도록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간섭하신 사건들.
많은 사건들이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기적들이며 이 기적을 베푸신 여호와 하나님은 참으로 기묘하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우리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하신 분이시다. 
(28:29)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이사야서에서는 파종하려는 자가 땅을 개간하고 알맞는 곡식을 알맞는 곳에 심어 적절한 방법으로 곡식을 추수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기 때문이며 여호와의 지식과 경영은 참으로 기묘하다고 고백을 한다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주님의 행하심.
임신할 수 없었던 삼손의 어머니에게 어느날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서 아이가 탄생할 것이니 그 아이는 나실인으로서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라고 부모에게 전하여 준다. 이에 삼손의 잉태함을 마노아에게 알리려고 찿아 온 여호와의 사자에게 마노아가 이름을 묻자 이렇게 답변한다.
(7:14)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은 우리 인간의 지식으로는 가늠조차 할 수 없어 우리는 그것을 보고 놀라 기묘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2. 모사 (Counsellor)
주님은 요14:16에서 보혜사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곘음이라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지혜를 주시며 또한 장래 일을 알게 하신다.

(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과 모든 보화가 감추여져 있느니라.
(16:1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무엇보다 우리에게 소망 주시는 말씀은 곧 성령께서는 나를 보호하시고 변호하시는 보혜사이라는 것이다.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내가 죄를 지을 때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나를 하나님 아버지께 변호하신다.

하루에도 나는 수 많은 죄악을 범한다. 그런 나를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애통해 하시며 변호하시는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나는 죄악 가운데로 떨구어 질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가 아니던가!
(8:26)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니라


3. 전능하신 하나님 (Mighty GOD)
예수님은 계1:8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신다.
(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이시며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다.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10-11)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주님이 창조주이심을 믿는가?
1:1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이 믿어지는가?
1:1의 말씀이 진심으로 믿어져야지만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사건들을 의심하지 않고 믿어지게 된다.
만일 창1:1의 말씀이 믿어 지지 않는다면 믿음의 근간은 흔들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은 주님을 믿는 자녀가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여서라도 주님께서 창조주이심을 의심하게 만든다.
진화론은 근본적으로 창조주이신 주님을 부정하는 가상의 학문인데 그것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믿게 한다.

주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창조주이신다.
바로 그 분이 나의 주가 되시니 얼마나 기쁘며 감사한가.
 
 4. 영존하시는 아버지 (Everlasting Father)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히1:8에서는 영원전부터 영원토록 계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라고 소개를 한다.
(1:8)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1:11)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모든 창조물은 한계가 정해져 있다.
우리 인간 역시 하나님께서 정하신 각자의 수명이 있다. 언젠가는 다시 흙으로 돌아 간다. 유한한 생명이 흙으로 다시 돌아 가기 전에 영원하신 여호와를 바라보며 그 분의 자비를 간구해야 한다.

영원부터 영원에 계시는 영존하시는 여호와께서 나의 길을 부탁해보자.
주님의 자비와 긍휼이 임하사 저를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하소서.
 
5. 평강의 왕 (Prince of Peace)
예수님의 탄생하심을 보고 수많은 천군과 천사가 함께 이렇게 찬양한다.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천사들은 주님께서 평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심이 세상에 거하는 자들에게 평강을 주시기 위함을 알기 때문에 큰 소리로 찬양을 한다.

부활하신 주님은 도마가 제자들과 함께 모인 곳에 오셔서 (20:26)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 하시며 제자들의 평강을 축원하셨다. 주님의 관심은 주님의 죽음으로 인하여 두려워하는 제자들의 평강이다.

나의 머리터럭까지 세시는 세밀하신 주님께는 나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아신다. 힘이 들고 벅차고 낙심되어 두려워 할떄 나에게 주시는 주님의 위로의 말씀.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얼마나 위로를 주시는 감사하신 말씀인가. 위로의 말씀을 듣고 다시 힘을 얻어 평강의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은혜를 입는다.

너희는 평강할지어다 하시며 나를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주님.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지라.

평강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고 또한 주님은 서로 평강하기를 요구하신다.
(고후5: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곳에는 평강이 임한 모습을 보여주는 성경 구절이 있다.
(11:6-9)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나의 육신의 끝나기 전에 주님의 재림이 임하면 나는 이 땅에 평강의 왕이신 주님의 다스림이 임함으로 모든 곳에서 평화가 임함을 목격하게 되는 놀라운 은혜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육신이 끝나도 주님의 재림이 임하지 않다면 소망이 있으니 곧 나의 영혼은 평강의 왕이신 주님께서 계시는 천국으로 거처를 옮겨 그곳에서 평강 가운데 거하게 될 것을 믿는다.

이 외에도 또 다른 이름이 있다.
(7:14)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말씀은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실제로 처녀 마리아에게 나심으로 성취되었다.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여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묘자요 모사요 전능자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이신 주님.
바로 그 분이 저의 삶의 주인이시며 제 안에 계시며 저를 인도하시니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순간 순간 죄악을 범할 때마다 저를 일깨워 주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저의 마음과 눈이 밝아져서 주님의 임재를 늘 체험하기를 간구합니다. 저의 삶을 지금껏 저는 이해하지 못하는 놀라운 방법으로 인도하시고 주님의 자녀의 삶을 살게 하신 기묘하신 주님. 저의 삶 자체가 놀라운 일들의 연속입니다. 이제는 제 안에서 제가 천성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주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꺠닫고 순종하며 나아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은 온 우주를 각각의 종류대로 창조하신 창조주이신 전능의 주이십니다. 열면 풀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는 권능의 주님이 저의 주이십니다.

영존하시는 주님과 함께 저 역시 영원한 생명을 갖고 주님 바로 곁에서 섬길 수 있게 은혜를 베푸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늘 저의 삶을 주권하시며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
주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저에게 너는 평강하냐? 나의 평안을 너에게 주노니 너는 평강할 지어다 하시며 축복을 하십니다. 주의 주시는 놀라운 평강의 능력이 저에게 늘 임하여 앞으로 어떤 일을 맞닥뜨릴 지라도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평강 가운데 거하기를 간구합니다.

주님의 놀라운 이름의 능력이 제게 충만하게 임하는 축복을 부어 주심에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