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25일 일요일

두려워말라 내가 도우리라

(41:8-13)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찿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약속을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 사람과 나라 사이의 약속. 혹은 나라와 나라간의 약속. 수 많은 약속들이 우리의 주변에 있다. 약속은 어떤 일이나 계획을 하기로 말로 혹은 서류로써 다른 사람과 정함이라고 Wiki 낱말 사전은 정의를 한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약속을 한다. 그 중에는 한번 한 약속을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지켜지는 약속이 있는가 하면, 약속을 하고 뒤돌아서자 마자 잊어 버리는 약속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은 상황에 따라 조건에 따라 변한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하신 약속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하신 약속을 언약이라 한다.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언약은 영원토록 결코 변하지 않는다.
(3:6)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삼상15: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여호와께서 하신 언약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지는 변개할 수 없는 계약이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과 약속을 하신다. 비록 이스라엘이 시시때때로 주님을 잊어 버리고 그토록 싫어 하시는 이방신을 주인으로 삼아 주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세상에 속한 삶을 살지만 그래도 버리지 아니하시고 지키시겠다는 약속을 하신다. 늘 쓰러지고 주님을 멀리하는 나에게도 주님은 약속을 하셨다.

여호와께서 하신 언약은 지금도 주님을 믿는 자녀들에게 유효하다.
여호와의 언약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약속이 아니라, 영원하게 지속이 된다.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으로 나와 같은 자에게도 구원의 은혜가 주어졌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특히 본문의 말씀에서 여호와께서는 어떤 약속을 이스라엘 곧 주님의 자녀들과 하셨을까?

버리지 아니하시는 여호와
어떤 인간들은 자신이 나은 자식을 버린다. 가까운 이웃은 말할 것도 없이 배우자를 버리기도 하고, 부모를 버리기도 하고, 형제를 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었는 타당한 갖가지의 이유를 대며 위로를 받기를 원하겠지만 참으로 모진 인생들이다. 인생들은 버리고 버림을 받으며 마음 한가운데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택한 자녀를 버리지 아니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신다. 얼마나 소중한 언약인가.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내 자신은 잘 아는데, 그런데 과연 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존재일까?

본문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어떤 모습으로 보시는지를 잘 말씀하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나를 보시며 너는 나의 택한 종이라고 말씀하신다.
착하고 충성된 종은 주인의 말을 따르면 순종한다.  그런데 나는 어떤 종인가?

(42:18) 너희 못 듣는 자들아 너희 맹인들아 밝히 보라.
귀는 있지만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이며, 눈은 있지만 보지 못하는 눈먼 자가 바로 나이다.

성경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인데 그들은 출애굽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기적들을 보았고 특히 홍해가 갈라지는 놀라운 광경과 곧 뒤이어 쫓아온 애굽 군대들이 다시 회복된 바닷물로 뒤덮혀 몰살하는 광경을 두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40년의 광야 길을 가면서 아침에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며 때로는 바위를 터트려서 물을 내시는 여호와를 바로 곁에서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놀라운 기적들을 매일 매일 체험하면서도 조금만 힘이 들고 어려우면 어김없이 투덜 투덜 불평하며 여호와를 버리며 이방신을 섬기며 의지하였다는 것이다. 축복으로 받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여호와를 온전하게 섬기기 보다는 자신들의 원하는 대로 이방종교와 혼합된 방식으로 여호와를 섬겼으며 우상도 함께 섬겼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내치겠다고 여러번 말씀하시지만 얼마못가 다시 용서하시고 품에 안으시며 거듭해서 내가 너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신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을 두 눈으로 보았어도 잠시동안 보지를 못하면 곧 여호와를 멀리하며 잊어 버리는 이해할 수 없는 이스라엘이 바로 나인것이다. 늘 주님께 죄악을 범하여 배반하며 세상에 속하려는 나를 보시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나를 용서하시고 품에 안아 주시는 놀라우신 주님의 긍휼하심에 감사들 드릴 뿐이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을 때 마음속에서 잔잔하게 들려오는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하시며 여호와께서 하신 언약을 다시 들려 주시는 놀라우신 주님의 은총이 너무나 크다. 왜냐하면 나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녀이기 때문이다.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려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왜 여호와께서는 늘 배역하는 이스라엘 곧 나를 품어 주실까?
바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인 나를 자녀로 택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원해서 내가 어떤 선한 일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나를 택하신 것이 아니라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주권자인 여호와께서 나를 택하신 것이다. 나를 택하신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것이 하나 있는데 내가 열매를 맺기를 바라신다. 나의 삶 가운데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들을 잘 맺고 있는가?


함께 하시는 여호와
(10)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나의 삶에 영향을 주는 말들이 있다.
사람은 끊임없이 무엇인가와 대화를 한다. 자신과의 대화, 다른 이들과의 대화, 자연과 대화 그리고 주님과의 대화. 그 중에서 우리의 삶에서 매일 부딪히게 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말은 관계를 좋게 하기도 하고  악하게 하기도 하며 좌절시킨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말씀이 무엇일까?
바로 마음속으로부터 잔잔하게 들려오며 위안을 주는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며 도우리라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
이 약속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있을까. 임마누엘의 축복은 어떤 축복보다 귀한 약속의 축복이다.
주님께서 임마누엘의 축복을 주님의 자녀에게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며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서 임마누엘의 축복을 다 이루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같은 자에게도 임마누엘의 축복이 임하여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이 땅의 삶을 지켜 주시며 인도하신다.

임마누엘이신 주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하니 참으로 너는 두려워 말라 하시며 거듭 약속을 하신다. 그런데도 우리는 끊임없이 세상일로 두려워하며 놀란다. 성경에는 많은 일들로 어쩌지 못하며 두려워하며 놀라는 우리에게 너는 두려워 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 라고 거듭해서 말씀하신다.

(43:1) 너는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0:1)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네게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는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많은 곤란과 역경 가운데서 헤쳐 나와야 함을 알고 계신다. 나의 눈에는 명확하게 보이지 않지만 분명 나의 삶 가운데는 여호와의 숨결이 늘 나와 함께 하고 있으며 때로는 도움을 주기도 하시고 피할 길을 열어 주시기도 하시며 내 발이 진흙에 빠지지 않도록 혹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인도하심을 믿는다.

27:1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기를 간구한다.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왜 두려워 할까
(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는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온전하게 믿는다면 우리는 세상의 일로 인해 놀라와 하거나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쉽게 흔들리는 연약한 믿음을 갖고 있어 나와 함께 하시며 지키시며 축복하시는 임마누엘이신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지 못해 의심하고 두려워한다. 내 마음에 주님을 온전하게 믿는 믿음이 적기 때문에 내 주위에서 풍랑이 일기만 하면 두려워한다.

내가 힘들때 나의 힘으로는 어찌 할지 몰라 낙심하며 주님을 쳐다 볼 때에 들려 주시는 주님의 음성. ‘나의 사랑하는 자여 너는 이 일로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하리라. 새로운 길로 너를 인도하리라


노하고 다투던 자들이 멸망할 것이라
(1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던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며 방해하던 자들을 여호와께서 다루신다.
나에게 노하던 자들은 수치와 욕을 당하며 나와 다투던 자들은 아무것도 아니며 멸망을 당할 것이다.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주님의 택하신 선한 자녀들 주위에서 끊임없이 원수들이 애워싸고 넘어 뜨리려고 한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원수들에게 친히 원수를 갚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친히 나를 괴롭히며 쓰러 뜨리려는 원수들에게 진노하여 저들을 멸망시킬 것이라 하신다.

(10)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주님께서 곤고한 세상에서 분투하며 살고 있는 주님의 자녀들과 약속을 하신다.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너를 도와 주리라,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시며 약속을 하신다.
만군의 왕이시며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 연약하여 쉽게 넘어지는 나를 굳세게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신다.
아무런 도움이 없는 나를 도와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시며 위로를 하신다. 나의 오른손을 붙들고 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인도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신다.

(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라.
세상일로 놀라지 말고 두려워 말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하시며 나와 함께 하시는 여호와의 약속으로 오늘 하루도 승리하는 놀라운 축복을 받은 성도이기를 축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제가 힘이 들때, 어려운 병에 걸렸을때, 어쩔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을떄 주님께 간구하면 잔잔하게 들려 주시는 사랑하는 자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 너는 놀라지 말라 두려워 하지 말라 하시며 들려 주시는 주님의 따스한 위로의 음성이 저의 삶에서 가장 귀한 말씀이며 언약입니다.

아무런 도움이 없을때에 주님께서는 저와 함께 하시며 저를 도우셨읍니다. 앞이 꽉막힌 곳에 피할 길을 열어 주시고 저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 주셨읍니다. 저의 삶을 뒤돌아 볼때 수많은 곳곳에서 주님께서는 부셔지기 쉬운 저를 지켜주셨으며 지금의 제가 주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읍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며 너를 도우리라.
나의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고 너를 건지리라.
보라 내가 네가 알지 못하던 새 일을 행하리라.
너는 두려워 말라. 너는 놀라지 말라.
너는 나의 사랑하는 자녀라.

들려 주시는 주님의 음성에 오늘도 저는 귀를 기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8년 2월 4일 일요일

거룩한 길 (Highway of Holiness)

(35:5-10)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고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고 행할 것이며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고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거룩한 길을 Highway 혹은 Highway of Holiness로 번역을 했다.
미국은 사방으로 highway들이 있어서 편하게 갈 수 있게 해놨다. 산에나 사막에나 길들이 잘 만들어져 있으며 지금도 곳곳에서는 길을 보수하며 확장하며 새 highway를 만들고 있다. 이 모두 이곳에 사는 자들을 위한 편리한 시설들이다. 잘 뚤려진 Highway들을 통하여 원활하고 빠르게 원하는 곳으로 물류를 이동할 수 있고, 사람들은 자신의 갈 곳을 안전하게 갈수 있다.

우리의 인생에 거룩한 길 곧 Highway of Holiness가 예비되어 있다면 얼마나 축복된 인생인가.
Highway of Holiness는 시온으로 가게하는 축복의 길이다. Highway of Holiness를 걷는 자만이 오직 시온에 이를수 있다. 시온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며 다스리시는 곳인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을 말한다.

천국은 어떤 곳일까?
천국이나 지옥에 갔다 온 간증들이 있다. 그 중에는 실로 천국이나 지옥에 갔다온 생생한 경험을 간증하지만, 대다수의 것들은 자신의 생각에서 떠오르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천국에 대하여 명확하게 보이지 않지만 장차 곧 천국의 실재를 명확하게 보게 될 것이다.
(고전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천국.
이제 우리는 누구나 예외없이 잠시후면 먼저 세상을 떠난 자들처럼 빨리도 흘러가는 이 세상의 삶을 끝내고 육신의 마지막 호흡을 마치고 원하든 원치않든 영혼의 순례를 하게 될 것이다. 지옥 아니면 천국으로 나의 영혼은 가게된다.

이사를 할 때 이사갈 집을 먼저 가서 보고 방은 몇개가 있고 화장실은 어디에 있으며 kitchen은 이렇게 꾸몄으면 좋겠군 sofa는 이렇게 배치를 하고 화분들은 이렇게 놓아야지 여러가지로 생각을 하며 이사가서 살 집에서 어떻게 가꾸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여러모로 미리 생각을 한다.

천국도 마찬가지 아닐까?
주님을 믿는 자들은 이세상에 살면서 때로는 천국은 어떤 곳일까 궁금해하며 상상하며 동경한다.
육신의 장막을 벗는 순간 나의 영혼은 이사를 간다. 그곳이 천국이기를 소망하며 천국에서 나의 집은 어떤 모양일까 생각을 해본다.

사복음서를 보면 주님은 천국에 대하며 많은 말씀을 하신 것을 볼 수 있다.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천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일부분의 모습이지만 주님께서 준비하신 천국의 모습을 그려보자.
장차 주님의 택하심을 입어 주님을 믿는 내가 거할 곳인 천국은 어떤 곳인가 마음을 열고 바라보자.
잠시뿐인 이 땅에서 고통과 고난의 시간이 끝나면 영원한 안식과 평안이 있는 너무나 완벽하게 아름다운 천국이 내게도 주어졌음에 감사한다.

회복의 은총이 임하는 시온
맹인의 눈이 밝아지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며,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뛰며, 벙어리가 혀가 노래하며,
광야에서 물이 나며, 사막에서 시내가 흐르며,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되며, 메마른 땅이 원천이 되며,
짐승이 눕던 곳에 풀과 부들이 나며, 사나운 짐승이 없는 곳이다.

시온에서는 모든 것들이 회복이 된다.
사람, , 그리고 동물을 포함해서 모든 것들이 창조의 원래의 완전함으로 회복이 된다.

우리 모두는 결함을 갖고 있다. 육신적인 결함과 영혼의 결함을 갖고 있다.
우리 모두는 육신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불완전한 모습으로 이 땅에서 산다.
육신적으로는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 있으며,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있으며, 뛰지 못하는 다리가 불편한 자가 있으며,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가 있다.

그런데 육신적인 불구보다 더욱 심각하며 치명적인 것은 영적인 불구이다.
두 눈이 있지만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영적인 세계를 보지 못하며, 두 귀는 있지만 들려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며, 혀는 있지만 주님의 사랑을 말하지 못하며, 두 다리는 있지만 주님께서 가라는 곳으로 가지 못하는 영적으로 불구인 자들이 너무나 많다.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불구인 모습들이 시온에서 회복이 된다.
두 손을 높이 들어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을 두 눈으로 확실하게 보고 주님의 음성을 제대로 듣고 순종하며 시온에 가득한 주님의 따스한 사랑으로 영원한 평안 가운데 거한다 


시온에서는 저주받은 땅이 회복이 된다.
(3:17)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시온에서는 인간의 죄로 인해 저주를 받아 수고하고 땀을 쏟아야지만 열매를 맺는 척박하고 황량한 땅이 변하여 원래의 창조의 모습으로 회복이 된다.  우리가 사는 지구의 모습을 보자. 어떤 것을 심어도 잘 자라는 비옥한 곳이 있으며, 비가 오지 않아 모든 것이 메마른 곳으로 변한 사막지대가 있으며,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는 극한의 땅이 있으며, 너무 높고 험하여 사람이 살 수 없는 산들도 있으며, 어떤 곳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 살아 제대로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곳들도 많다.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에 순종하는 자연은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하지만 보기에 먹음직한 것을 쫓는 탐욕적인 사람은 주님을 순종하지 못하여 자연을 훼손하며 결국은 사람들을 황페하게 만든다.

시온에서는 자연의 모든 것들이 회복이 된다.
물이 귀한 광야에서 물이 나며, 물이 있어도 물을 흡수해버리는 모래 투성이인 사막 한가운데로 물이 흐르는 강과 호수가 있으며, 척박하여 풀로 자라지 못하는 곳이 변하여 모든 것을 품는 대지로 회복이 된다.
척박하고 메마른 곳이 없어지며 어디를 가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으로 가득할 것이다.  어디를 보나 산이나 폭포나 광야나 초원이나 강들은 자신만의 색깔을 자신있게 내뿜으며 마음껏 주님께서 지으신 모습으로 자랑을 할 것이다.

어느 사진이나 그림보다 완벽한 아름다움이 사방에 널려 있는 곳인 시온.
바랜 빛이 아닌 각양의 색으로 영롱한 빛을 내는 자연의 모습.
사방에 널려 있는 왠지 모르게 마음을 편하게 하며 포근하게 하는 빛으로 가득한 곳.

짐승들도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이 된다.
표효하며 포식하는 사나운 짐승들이 변하여 더 이상 약한 동물들을 잡아 먹은 것이 아니라 같이 초원에서 사이좋게 풀을 뜯어 먹는다. 더 이상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니라 서로가 공존하는 삶으로 회복이 된다. 어린 아이가 독사들이 있는 구멍으로 손을 넣어도 전혀 해를 받지 않고 같이 지낼 수 있는 곳.

시온을 향하는 거룩한 길울 걷게 되면 나의 삶 또한 회복이 된다.
내가 있는 곳은 메마르며 잡초가 무성하며 사방은 사나운 짐승으로 둘러 쌓여 있다.
이런 나에게 주님의 놀라운 능력이 임하게 되며 나의 삶은 주님을 향하여 온전하게 변화한다. 변화된 나는 주님께서 예비하신 거룩한 길로 걸어가며 천국을 이 땅에서도 경험하다가 결국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주님이 내 삶에 함께 하신다면 모든 것들이 회복의 은총을 받으며 주님과 함께 하는 천국의 삶을 경험한다.
(11:4-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시온의 대로를 걸을 수 없는 자들
그런데 모든 자들이 시온의 거룩한 길을 갈 수는 없다.
성경은 깨끗하지 못한 자와 우매한 자는 시온의 길을 걸을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한다. 다시 말해서 깨끗한 자와 지혜로운 자만이 시온의 거룩한 길을 걸을 수 있다.

깨끗한 자
(24:3-4)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마음이 청결하고 깨끗한 자가 하나님을 보는 축복을 입을 것이다라고 말씀을 한다.
겉으로 보이는 내 모습이 깨끗하고 잘 차려 입어 귀티나게 보일지라도, 나의 마음이 부패하고 썩어 문드러져 냄새가 나지는 않을까 염려하자. 순간 순간 죄의 생각이 내안에 들어와 나를 휘젖어 놓으려 할 때마다 주님의 이름으로 물리치고 이겨내며, 죄의 유혹에 못이겨 죄를 지었다면 주님께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여 생명의 생명수로 깨끗히 씻김을 입고 성령의 불로 나의 깊숙히 숨어 있는 죄들을 정결하게 태워달라고 간구를 하자.

자비와 긍휼의 주님께서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시고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깨끗게 하시어 내가 여호와 앞에 설 수 있도록 인도하실 것이다.

우매한 자
우매한 자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거룩한 길을 걸을 수 없다.
우매한 자는  교육을 받지 못한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외할머니는 오래 전에 92세로 돌아가셨는데 국민학교도 나오지 못하신 분이다. 그런데도 한글을 깨치시고 옛날 말로 쓰여진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시며 여러 영적인 세계를 경험하신 분이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할머니를 보시고 결코 우매하다 하시지 않으셨음을 믿는다.

우매한 자는 주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말한다.
주님을 아는 자들은 주님께서 그 안에 계심으로 주님의 마음이 있기에 지혜로운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하게 된다. 쉽게 말해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

목사가 되기 전에, 권사가 되기 전에, 장로가 되기 전에, 안수집사가 되기 전에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
사람답지 못한 자들이 목사나 권사나 장로나 집사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인성과 영성을 갖춘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되지 않겠는가.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한 목사이다. 세상의 많은 지식을 알아 현명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아직도 나는 주님 보시기에는 우매하다. 그러기에 열심으로 주님을 더욱 알아가기에 힘써야 한다. 긍휼의 주님께서 그런 나를 보시며 우매하지 않도록 성령의 지혜를 주시며 은혜를 베푸실 것임을 믿는다.

시온의 대로를 걸을 수 있는 자들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와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만이 시온의 대로를 걸을 수 있다.

누구로부터 구속함의 속량함을 받았는가?
바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주님이시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하시며 마지막 숨을 거두시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하신 구원의 길을 마련하셨다.

주님의 구속함과 속량함을 받는 것은 주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선물이다.
나를 구속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마음으로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믿는가.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일 것이다.

구속함으로 속량함을 받아 시온의 대로를 걷는 자에게는 이런 특징이 나타난다
노래하며, 영영한 희락이 있으며, 기쁨과 즐거움이 있으며, 슬픔과 탄식이 사라진다.

시온의 대로를 걷는 자에게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데 나는 어떤가?
떄로는 나를 알아 주지 않아 실의에 차기도 하며,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나의 한계를 알고 슬퍼하며, 아 어떻게 해야 하나 탄식하며,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분노하지 않는가.

주님은 미리 내가 천국의 삶을 이 땅에서도 경험하기를 바라실 것이다.
많은 곤고함들이 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함을 회복할 수 있다면 그 가운데서 천국의 삶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슬픔과 탄식의 소리가 변하여 기쁨과 즐거움으로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찬양하자.
두 손을 높이 들고 주님을 찬양해 보자.
세상에서 지친 제가 지금 주님 앞에 서있읍니다. 저를 받으옵소서.
주님께서 바로 제 안에 계심을 느끼기를 간구합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희락의 회복이 있기를 간구합니다.


거룩한 길을 걷고 있는가?
결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나는 인생의 길을 가면서 나는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시온으로 가는 거룩한 길을 세상에서 사는 우리에게는 좁은 문이라 말한다.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고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찿는 자가 적음이라.

혹시나 잘못된 멸망의 세상으로 가는 큰 길을 걷고는 있지 않는가?
내 앞에는 항상 좁은 문과 넓은 문이 놓여있다.  그런데 어떤 문을 선택할지는 나의 몫이다.
내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다면 비록 망설이며 힘들어 하겠지만 결국은 좁은 문을 선택할 것이고,
그렇지 않고 세상을 따라간다면 분명히 보기에 좋아 보이는 넓은 문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내가 넗은 길을 선택하여 가게 된다면 주님은 내가 다시 좁은 길을 가도록 인도하신다. 비록 다시 돌아오는 길이 험하여 지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좁은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주님은 인도하실 것이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라가는 내 앞에는 시온으로 가는 거룩한 길이 뚫려 있다.
비록 다른 이들의 눈에는 한심하고 좁고 협착한 길로 보이겟지만 적어도 나의 눈에는 이 길이 생명의 대로이며 희망과 소망의 길로 보이며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내가 그 길로 잘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실 것이다.

장차 나의 육신의 마지막 호흡을 하고 모든 것들로부터 가벼워져서 시온의 대로를 걷는 나의 모습을 그려본다. 우리 모두가 시온의 거룩한 길을 가는 축복을 받기를 축원을 드립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얼마후에 저의 육신의 한계에 이르러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분리가 될 때에 저의 영이 하나님께서 계신 시온에 함께 거하기를 소망합니다.

이 땅에 살면서 시온의 거룩한 대로로 걸어가기를 간구합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좁고 협착한 길이 저의 눈에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길로 보이게 하옵소서.
모든 불완전한 것들이 온전하게 회복하게 되는 시온인 천국을 이 땅에서도 경험하도록 인도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제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주님께서 베푸신 이 땅의 축복이며 천국을 경험하도록 인도하신 주님의 은혜였읍니다.

두 눈이 있지만 주님의 영적인 세계를 온전하게 보지 못합니다.
두 귀가 있지만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제대로 듣지를 못합니다.
혀가 있지만 주님의 마음을 전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말들을 쏟아 냅니다.

주님을 향하여 걷는 제게 마련해 주신 거룩한 길에서 천국에 가기까지 주님을 온전하게 만나며 주님의 사랑안에 거하며 모든 것들이 온전하게 회복되는 은총을 받기를 간구합니다.

제 마음속에 늘 제가 장차 여호와와 함께 거할 시온을 마음안에 품고 살며, 좁은 문과 넓은 문의 선택의 길에서 저의 눈이 밝아져 제게 허락된 좁은 길을 갈 수 있도록 성령님 저를 도와주옵소서.

시온을 향한 거룩한 대로를 가도록 저의 삶을 주관하시는 주님께 모든 찬양과 영광을 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