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요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

 (5:27-32)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서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본문에는 레위, 서기관, 바리새인, 그리고 예수님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표현을 따르면 이들 레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병든 자이며 죄인입니다.

 

레위

당사자인 마태는 이 광경을 마9:9-10에 표현합니다.

(9:9-10)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그 당시의 세리는 세금 내는 것에 대한 권한이 있어 많은 비리와 착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리를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레위 역시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부당한 방법을 사용하여 재물을 모을 수 있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창녀와 죄인과 세리를 천대했습니다. 특히 세리는 자신을 괴롭히는 로마의 관리이며 민족의 반역자로 취급하며 멀리하며 멸시했습니다.

 

세관원 레위 마태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람들이 천대하는 레위를 예수님은 제자로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레위가 마음이 깨끗하며 제자로 부름 받기에 부족함이 없으심을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일을 보고 있는 레위 마태를 나를 따르라 하시며 제자로 부르십니다. 그러자 레위 마태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일어나 따르기로 결단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큰 잔치를 베풉니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던 동료에게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전해주기 위하여 이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저희 역시 저희가 만난 예수님을 주위의 동료와 지인들과 함께 식사하며 교제하며 전해주며 예배의 자리로 초대하세요.   

 

레위는 예수님을 만나 그의 인생은 전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세상의 재물에 욕심을 내던 레위의 마음이 예수님께로 향하며 영적인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육신적인 사람에서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를 받았습니다. 세상의 재물에 더는 연연하지 않고 영의 곤고함과 가난함과 눈먼 것에 관심을 가진 예수님의 제자로 쓰이게 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레위 마태는 구약과 신약을 잇는 중요한 마태복음의 저자가 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Scribes and Pharisees)

예수님께서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어찌하여 예수와 제자들은 세리와 죄인과 함께 마시고 있느냐며 정죄하며 비난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로 복수로 사용되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정통을 따르는 율법주의자이며 열심히  믿는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이들 신앙인의 대다수가 정죄하며 비난을 합니다. 자신의 잣대와 관습대로 사람을 판단합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다수 교인은 자신의 잣대로 다른 교인을 판단합니다.

지금의 교회에도 율법 신봉자들이 있습니다. 교회 다닌다는 장로가 권사가 하면서 조그마한 것을 갖고 사람을 정죄하며 비판하며 자신은 의인이라 착각합니다.

 

(7:2-3)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자신의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다른 이의 티를 봅니다.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다른 이를 인식하고 비판하며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저희는 타인의 잘못에 대하여는 객관적으로 판단하지만 정작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는 무척 관대하며 합리화합니다.

 

레위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저희이며 중한 병을 앓고 있는 환자입니다.

 

육신의 병

·         병은 저희의 육신을 연약하게 만듭니다.

·         병이 깊어지면 초췌해지며 병약한 모습이 되어 육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립니다.

·         병에 걸리면 좋아하던 음식의 맛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음식을 멀리하게 됩니다.

·         병은 저희의 삶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영혼의 병

·         평강이 없습니다.

·         안에 감추어진 죄악을 포장하여 숨깁니다. 

·         죄로 깊어진 영혼의 병이라면 죄악으로부터 멀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죄악을 죄로 여기지 않고 계속해서 받아들인다면 그의 영혼의 상태는 매우 심각한 상태가 되어 치료받기가 무척이나 힘들어지게 됩니다.

·         Covid사건 이후로 교회를 떠난 이들이 너무나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교회로 돌아와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영의 아픔을 치료받아야 합니다.

 

 

예수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레위와 그의 동료를 비판하며 정죄하는 것을 보자 예수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말씀하십니다.

 

의사인 누가의 눈에 예수님은 영과 육을 치료하는 의사로 비칩니다.

의사인 예수님이 환자들과 함께 있는 것을 당연합니다. 병을 고칠 환자가 없다면 의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아픈지를 자각하지 못합니다.

아픈데 곧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여 의사를찾지 않습니다.

많이 아픈데 고쳐줄 의사의 schedule이 꽉 차있어 당장 고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고쳐줄 의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희의 의사이신 주님은 언제든지 저희 곁에 계십니다.

완전하게 진단하시고 치료하십니다.

저희는 영과 육이 병든 자입니다.

죄에 연약한 자들입니다.

 

예수님는 저희의 영과 육의 아픔을 치료하시기 위하여 채찍에 맞음으로 저희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은 저희를 치료하십니다.

치료하시는 예수님이 저희의 친구이며 세심하게 저희를 돌보시니 얼마나 감사하는지요. 예수님은 저의 영과 육을 치료하시는 의사이십니다.

 

·         가장 유능하십니다. 어떤 질병이라도 예수님은 치료하십니다.

·         따스한 사랑으로 저희를 치료하십니다.

·         그리고 치료받는데에 치료비가 들지 않습니다.

·         저희의 비뚤어진 영도 치료하십니다.

 

 

 

(32)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회개하는 것은 저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저희에게 죄 사함을 받게하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푸신 구원을 받기 위해서 저희는 회개해야만 합니다.

 

죄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회개를 하세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은 저희가 곧 세리와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같이 죄인이며 병에 걸린 환자임을 일깨워주십니다.

우선 저희가 금해야 하는 것은 사람을 보며 나의 잣대로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행한 비판대로 저 역시도 비판받으며 정죄를 받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계가 허물어지게 됩니다.

 

주님은 저희의 영과 육의 연약함을 고치십니다.

죄에 대한 회개가 저희가 주님 앞에 온전하게 나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저희는 하루에서 수많은 죄를 짓습니다. 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때마다 회개하는 영성을 갖게 하옵소서.

 

저희를 고치시며 선한 길로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4년 4월 21일 일요일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5:17-26)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어놓고자 하였으나…

(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두병자 (나병과 중풍)의 치유를 통하여 어떻게 저희의 문제를 치유받을 수 있는 지를 가르치십니다

나병 환자의 치유

  • 예수를 보고 얻드려 구하여: 예수님 앞에 나오세요. 무릎을 꿇고 엎드려
  • 주여 원하시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 불쌍히 여기사 (1: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중풍병자의 치유

  1. (20)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 말씀에서 주목하여 볼 것은 중풍병자를 메고 온 네 사람의 친구들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는 곳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걸을 수 없는 중풍병자를 메고 온 친구들은 사람이 많아 도무지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의 집들은 대개 직사각형으로 돌로 벽을 만들었고 나뭇가지와 진흙으로 만든 지붕은 평평하며 지붕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습니다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지붕 위로 올라가서 지붕을 뚫고 친구인 중풍병자를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달아 내렸습니다.

나의 친구를 위해서 주님 앞에 나아가면 낫겠다는 믿음을 갖고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라는 말씀은 세 복음서에 동일하게 기록이 되었있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믿음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2: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9:2)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주님은 중풍병자를 보시고 그를 고치신 것이 아니라, 지붕을 뚫고서라도 예수님 앞에만 나가면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시고 고쳐 주십니다.

아마도 네 명 모두 귀한 믿음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중보기도의 능력

의인의 간구를 들으시고 믿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백부장의 예를 보세요.

(7:7)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신실한 백부장이 있는데 자신의 종이 병이 들어 거의 죽게 되자 그가 나을 수 있는 온갖 방법을 찿아봅니다. 그러다가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찿아 가서 간청을 합니다이에 예수님이 가까운 곳에 있는 백부장의 집으로 가려고 하자 예수님께서 자신의 집에 오심을 감당할 수 없으니 말씀만 하여 하인을 낫게 해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주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종을 고쳐주셨습니다백부장의 하인이 병이 낫게 된 것은 하인의 믿음이 아니라 신실한 백부장의 믿음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나를 위하여 나를 메고 갈 수 있는 친구가 있는지요.

나를 위하여 울며 기도해 줄 수 있는 친구 한명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큰 축복입니다.

본문의 말씀과 같이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주님은 나의 영혼과 육신을 고쳐주십니다.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중보기도해 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지요만일 없다면 주위를 살펴보아 나를 위해 진심으로 중보기도해 줄 수 있는 의인을 찿으세요.

(5:15-16)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의인을 친구로 두었다면 참으로 그는 복을 받은 자입니다.

그가 나를 위하여 자기 일처럼 간구하며 기도할 것입니다. 그의 기도를 통하여 많은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도만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나 또한 그 누군가에게는 그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나의 일처럼 중보기도해 줄 수 있는 진솔한 친구가 되세요.

그리고 기쁜 소식은 우리에게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좋은 친구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나를 친구라 부르십니다.

(15:14-15)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세상의 친구들은 때로는 나를 배반하기도 하고 뒤통수를 치기도 하고 이용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심으로 나에 대한 크신 사랑을 나타내셨으며 그런 주님을 따르는 자를 친구라 부르시며 영원토록 신실하시며  배반하지 않으시고 나를 지키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1. (23) 어느 것이 쉽겠느냐

주님은 우리에게 “어느 것이 쉽겠느냐”하시며 물으십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시기를 원하실까요?

주님께서는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을 사람들이 듣기를 원한다는 것을 아십니다그런데도 주님은 일부로 “네 죄 사함을 입었느니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와 ‘일어나 걸어가라’ 어느것이 쉽겠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우리는 어떤 것에 더욱 마음이 끌리는지요‘죄를 사한다’는 것은 나의 내면의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일어나 걸어가라’는 보이는 육신의 문제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문제와 육신의 문제중에 어느 것이 더욱 중요한가를 물으십니다.

영혼의 풍요로움과 육신의 풍요로움 중에서 우리는 무엇을 더욱 원하는가요?

주님은 거듭해서 저희의 죄의 문제를 다루십니다. 왜냐하면 죄의 문제는 저희의 영생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육신의 풍요로움은 잠시뿐인 영광임을 알려 주십니다

 

주님은 온갖 육신의 풍요로움을 모아놓은 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19- 20)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찿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만일 내가 불치의 병에 걸렸다고 생각해 보세요.

주님께서 저를 보시면서 ‘네 죄가 사함받았다‘ 라는 말씀과 ‘네 병이 다 나았으니 침상에서 일어나 걸으라’라는 말씀 중에 어떤 말씀이 내게 다가오는가요?

아마도 ‘네 병이 다 나았으니 일어나 걸으라’ 하시는 말씀이 내 귀에 더욱 속속히 들어 올 것입니다그렇지만 병이 기적적으로 나았다고 해서 영원하게 살지는 못합니다. 언젠가는 죽으며 죄의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육신의 기적적인 나음이 지금의 내게 절실할 지라도 저의 영혼을 위해 죄를 사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마음이 당연히 앞서야 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주님은 저희의 육신과 영의 문제를 치유하십니다주님은 두 병자를 치유하시며 저희가 어떻게 치유받아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나병환자가 치유받기 원하여 주님 앞에 나왔듯이 저희는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꿇어 엎드려 주님의 자비를 구하여합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의 뜻이면 저의 환부를 도려내어 낫게 하옵소서.

그리고 중풍병자의 예를 통하여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 저희의 믿음이 반드시 있어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육이 치유됨에 기뻐하는 것보다 영이 치유받았음에 더욱 감사하세요.

주님께서 저희를 치유하시며 기쁨을 회복하게 하십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주님께서는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영혼과 육신의 문제를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중풍병자를 메고 와서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뚫고 달아 내린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의 영과 육을 고치셨습니다.

그것을 보신 주님께서는 친구들의 귀한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의 영혼과 육신의 아픔을 치료하셨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친구가 되기를 원합니다무겁고 힘들지만 아픈 이를 위해서 지붕을 뚫는 수고를 하여 주님 앞으로 데려 가는 진실한 친구가 되기를 원합니다또한 저에게도 아플 때에 저를 메고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친구가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에게는 사람의 죄를 사하실 수 있는 능력과 저희가 해결 할 수 없는 불치의 질병을 치유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심을 보이시며 하나님 아들이시며 만주의 주이시며 창조주이시며 메시야 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바로 그 주님께서 저의 마음에 성령으로 오셨음을 감사드립니다저의 연약한 영혼과 육의 아픔을 치유하시고 영생을 주셨음을 확신하며 믿는 믿음을 갖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모든 영광을 받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4년 4월 14일 일요일

주여 원하시면

(5:12-13)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이르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난지라


 

많은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 지를 잘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의 방법을 이 구절을 통하여 알아봅니다.

 

본문에는 한 나병환자가 나옵니다. 그가 예수님 앞에 나아와 청원하여 그 결과 그의 나병이 고침을 받은 장면입니다. 어떻게 간구해서 그가 나음을 입었는지 알아 우리 기도의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기도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마음속에 새깁시다.

 

1.     예수를 보고 

이 나병환자는 예수님이 계신 곳을 찾아 갑니다.

그동안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이곳 저곳을 찿아 다녔지만, 자신의 병을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어쩔 수없이 하루하루 연명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병을 낫게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소문을 듣고 그는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이들이 멀리하며 외면하지만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절박한 가운데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예수님을 찾아 갑니다.  

 

삶의 해결해야 할 절박한 문제가 있습니까?

예수님 앞에 나오세요.

어떤 능력 있는 사람 앞에 나아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엎드려 구하여 

(1: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이 나병환자는 예수님을 보고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서 간구하였습니다.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에 댔다는 것은 완전히 자신을 상대방에게 낮추는 표현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올 때에 고개를 빳빳이 하고 나오십니까?

고개를 빳빳이 하고 나온다는 뜻은 교만의 모습입니다.

·         나는 목사인데, 나는 장로인데, 나는 많은 종업원을 이끄는 사장인데, 나는 사회에서 존경받는 사람인데 하며 목에 힘을 주고 혹 예배당에 들어서지는 않습니까.

·         혹은 사람에게 나의 믿음을 보이려고 서서 기도하시는지요.

(6:2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 하느니라

 

여러분들은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사업처에서나 사람을 만날 때에는 어떠한 모습입니까?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예배당이나 가정이나 사회에서 같은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진실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갖고 있지만, 교회를 벗어나서는 딴 얼굴을 갖고 있다면, 지킬과 하이드와 같이 이중인격의 양면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들을 기뻐하실까요?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우리의 인생길은 내일이 어찌 될지 모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취하실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우리의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겸손한 모습으로 나를 낮추어야 합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늘 나와 동행하시며 저를 보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어느 곳에 있든지 늘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3.     주여 원하시면 (if YOU are willing)

여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의 key-point가 있습니다. “주여 원하시면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우리는 기도합니까?

저는 이런저런 일을 해결 받아야 합니다. 주여 고쳐주옵소서. 아마도 우리는 이런 식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의 뜻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셔야지 그 일은 이루어 집니다


주님께서 주기도에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로 가르쳐 주셨듯이, 하늘과 땅의 모든 일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하신 대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주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의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이 저희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기도할 때 반드시 주여 원하시면하며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저희의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4.     나를 깨끗하게 하실수 있나이다 

한글 성경에는 주님이 생략되어 주어가 나로 표현되어 있는듯 합니다. 하지만 KJV를 보면 You can make me clean’와 같이 주어는 주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간구를 청원하는데, 주어는 내가 아니라 곧 주님이 되어야 합니다.  

 

저희는 간구할때 내가 주어가 되어 나의 필요를 간청합니다.

·         제가 이런 병에 걸렸습니다. 고쳐주시면 나은 후에 저는 주님을 위하여 돕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         제게 재물의 문제가 있습니다. 해결해 주시면 저는 그 중의 얼마를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쓰겠습니다.

·         저의 자식이 좋은 학교에 들어가야 합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게 하옵소서.

·         저에게 이런 저런 일들이 필요합니다. 필요를 채워주시면 저는 주님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저희는 나 중심에 매우 익숙해 있습니다. 모든 것에서 내가 중심이 되기를 원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내가 중심이 되어 간구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때에 따라서 응답하시며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하지만 우리의 나 중심적인 기도 모습이 달라져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주님께서 일하시도록 간구한다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5.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이르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주님은 나병환자의 병이 깨끗이 낫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떨어져서 간구하고 있는 나병환자에게 다가가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안수하십니다. 예수님은 구태여 손을 내밀어 안수하지 않으시고 백부장의 하인에게 하셨듯이 말씀만으로도 나병환자를 고치실 수 있으십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직접 다가가셔서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안수하신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을 나병환자가 바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 각자의 성격과 개성에 맞추어서 저에게 다가오시며 손을 내미십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저희의 삶에 주님의 손길의 기적이 일어나기 위하여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사 (Have mercy on me)

(1: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예수님 앞에 나아와 절실하게 간구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세요. 그런 저희를 보시며 예수님은 긍휼하심으로 불쌍히 여기사 저희의 간구를 응답하십니다.

 

(20:30-34)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하며 간절히 예수님의 손길이 임하기를 원하는 맹인 두 사람을 보시고 가던 길을 멈추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눈을 치료하여 보게 하십니다.

 

(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을 입으세요.

주님은 저희의 병이 깨끗이 낫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저희의 어려운 삶의 문제 또한 깨끗이 해결되기를 원하십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손길이 다야 합니다.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을 간절하게 찿는 자에게 주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주님의 임재가 있으면 저희의 영과 육의 연약함은 치료를 받으며 또한 저희의 간구함은 하나님의 뜻대로 응답을 받음을 믿으세요. 아멘.

  

 

 

하늘에 계신 아버지

 

나병들린 자가 주님 앞으로 나아와 고침을 받았습니다.

갖가지 모습으로 저희의 영과 육은 병들어 있습니다.

주님 앞에 무릎 꿇고 나아와 엎드려 간구할 때에 주님의 손을 내밀어 저희를 안수하옵소서.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희 각 사람은 기도의 응답을 받아야 할 것이 많이도 있습니다.

제가 원하오니 하며 기도하는 것으로부터 주여 원하시면 하며 기도의 주어가 제가 아니라 주님으로 바뀌게 하옵소서주기도에서 가르쳐 주셨듯이 아버지의 뜻이 저를 통하여 이루어지기를 간구합니다.

 

주님의 임재를 느끼는 예배의 회복을 통하여 저희의 영과 육이 치료함을 받아 온전하게 되어 놀라운 주님의 긍휼의 은혜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