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5일 일요일

나누어 주신 귀한 성령의 은사

 (고전12:4-11) 은사는 여러 가지나 셩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갖가지의 모습의 많은 사람들이 있읍니다. 각각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가난한 사람과 부요한 사람이 있읍니다. 사회에서 누구나 부러워 하는 직업과 지위와 명예와 권세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있읍니다. 성격이 온유한 사람, 교만한 사람, 교활한 사람, 정직한 사람, 늘 떠벌이는 사람, 늘 주눅들어 있는 사람이 있읍니다. 건강한 사람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불치의 병으로 인해 내일을 소망하는 얼마 살 수 없는 사람들도 있읍니다. 믿음이 서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며 또한 그러한 사람을 교만하다며 깍아 내리는 사람도 있읍니다. 일반 성도, 안수집사, 권사, 장로, 목회자들도 있읍니다. 실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특히 교인들은 매사에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행동을 하지만 다른 이들은 같은 생각으로 받아 들일 수 없어 마음에 큰 상처로 다가 읍니다. 왜냐하면 지나온 배경과 환경과 이해하는 것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자녀들에게 성령의 은사들을 나누어 주시며 교회에 덕을 세우며 7절의 말씀과 같이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하시며 서로에게 유익을 끼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이에게는 지혜의 말씀을, 지식의 말씀을, 믿음을, 병고치는 은사를, 예언함을, 영들 분별함을, 각종 방언 말함을, 방언들 통역함을 나누어 주시는데, 그 이유는 빛과 소금으로서 유익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성령은 각양의 주님의 자녀들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역사하십니다. 

어떤 이는 산을 옯길만한 믿음이 있어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며, 어떤 이는 병든 자를 위해 안수하면 병든 자가 일어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지혜가 있어 말씀을 깨닫습니다. 어떤 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을 아는 지식이 있읍니다. 어떤 이는 상대방의 영의 상태를 꽤뚫습니다. 어떤 이는 예언의 은사가 있어 성도들을 권면합니다. 어떤 이는 방언을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이해할 수 없는 방언을 통변하기도 합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으셨읍니까? 어떤 은사를 받으셨읍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은사를 받지 않은것 같습니까?
혹은 은사를 억제하거나 부인하십니까 

성령의 은사를 이단시하여 부인하는 교회들이 많이 있으며 또한 은사가 나타나는 교회를 찿아보기도 힘듭니다. 어떤 이들은 방언이 폐지되었다고 주장하며 마귀 방언이라고 많은 이들을 실족시킵니다. 또 어떤 교회는 방언을 하지 못하는 교인들을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여기는 교회도 있읍니다. 한가지 은사에만 치중을 하여 생긴 그릇된 이해입니다.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성령의 은사의 역사를 금하거나 제한하는 사람이나 교회는 잘못되었읍니다. 또한 은사를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고 이용하는 것은 더욱 잘못되었읍니다.

주님은 성도들에게 각각의 은사를 주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녀에게 자신의 뜻대로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 주셨읍니다. 귀한 은사는 주님을 믿는 자녀들에게는 모두 주어졌읍니다. 단지 아직 내안의 영이 완전하게 깨어나지 않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받은 은사를 귀하게 여기셔야 합니다.


의학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병에 걸렸읍니까.
주변에 있는 의인에게 간구해달라고 부탁하세요. 나의 주변에 나의 어려움을 중보해 줄 수 있는 의인이 있읍니까? 그는 큰 복을 받은 자입니다.

(5: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힘든 병에 걸렸으면 중보기도를 부탁하십시요. 의인이 드리는 기도에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변에 나의 어려움을 대신 간구해줄 의인이 있읍니까?

의인은 누구가 될 수 있읍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사랑을 입은 자가 바로 의인입니다. 그의 간구를 주님께서는 들으십니다. 사람이 인정한 사람이 아닌 주님께서 인정한 사람은 의인입니다. 겉모습으로 의인으로 보이는 자가 실은 삯군일수 있으며 겉과 속이 다른 자일 수 있읍니다. 그런 이의 간구는 주님께서 듣지 않으십니다. 비록 초라해 보이고 보잘 것 없는 자가 주님께서 인정한 의인일 수 있으며 주님께서는 그의 간구에 응답하십니다 


제가 암에 걸렸을때 어떤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해 주셨읍니다. 어려울 때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간구해 줄 수 있는 중보자가 두 세명 있는 이는 복을 받은 자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마치 내 일처럼 살려 달라고 간구해주는 중보자가 계십니까? 아니면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그런 사람은 생각이 나지를 않습니까? 만일 나를 위해 중보해줄 그런 의인이 없다면 주위를 둘러 보십시요. 나의 주위에 주님께서 보내신 신실한 의인이 있을 것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분과 함께 믿음의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애를 쓰십시요. 바로 그 분이 나의 힘으로는 어찌 해 볼 수 없을 때 바로 나를 위해서 사랑하는 주님께 나의 사정을 아뢰며 눈물을 흘리며 중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인생은 언제 끝을 맺을지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의인이 낫게 해달라고 중보기도를 하였지만 마지막 호흡을 하는 이들도 있읍니다. 주님께서 정한 그의 인생의 수명이 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기적적으로 소생하기도 합니다. 죽고 사는 것은 우리 인생이 어찌해 볼 수 없는 주님의 권한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계획을 알 수 없읍니다. 단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어려울때 주님께 감사하며 기도하는 것 밖에 없읍니다.


주님께서 주신 은사가 있읍니까.
그렇다면 은사를 행함에 겸손하게 행하여야 합니다. 은사가 있는 사람들이 실족하는 경우가 참 많이 있읍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교만이 싻을 터서 자신이 잘 나서 능력이 나타난다고 생각해서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합니다 

은사가 있는 사람들을 보며 영적인 사람이라고 부러워하며 자신도 그와 같은 영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실은 주님을 믿는 자녀는 영적인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세상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녀들에게 각 사람의 사정에 맞춰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 주셨는데 자신이 어떤 은사를 받았는지를 잘 모를 뿐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외적인 영향을 끼치는 외적인 은사와, 내적으로 영향을 주는 내적인 은사가 있읍니다. 사람들은 흔히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보며 판단하려고 합니다.

성령이 임재하시는 영적인 세계에서는 외적인 것 뿐아니라 내적인 것에도 소중한 가치가 있읍니다.
병을 고친다거나 예언하며 방언을 말하고 통변함은 외적으로 보이는 은사이며, 지혜와 지식과 믿음은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내적인 은사입니다.  외적인 은사를 가진 이는 내적인 은사가 부족할 수도 있읍니다. 반면에 내적인 은사를 가진 이는 외적인 은사가 부족할 수도 있읍니다.
 
우리 믿는 자녀들은 외적으로 나타나는 자신이 가진 은사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누가 어떤 은사를 가졌다해서 부러워 하는 것이 아니라 늘 겸손하게 서로 서로가 가진 은사를 인정하며 함께 공유하여 덕을 세우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선한 일군에게는 더욱 큰 은사가 주어집니다.
(19:26) 주인이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나태하고 무익한 종이 되지 마십시요. 비록 적은 은사가 주어졌지만 최선을 다할때 더욱 큰 은사가 주어집니다.

나로부터 성령의 강줄기가 흘러가는 축복의 통로의 은혜를 구하십시요.
주신 은사를 올바르게 주님의 뜻대로 마음껏 사용하십시요.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결코 교만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가정에 덕을 세우며 교회에 덕을 세우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크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지식의 한계 저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조금 하나님을 안다고 자랑하지 맙시다. 그 안다는 것은 실은 아주 미미한 한 부분일 뿐입니다. 늘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항상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도록 해야 합니다.

복을 주시는 이도 하나님.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이도 하나님.
오늘도 숨을 쉬며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 이도 하나님.
오늘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며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도록 하신 이도 하나님 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자녀로 올바르게 살라고 성령의 은사를 주셨읍니다. 나의 유익을 구하라고 주시지 않으셨읍니다. 높은 위치에서 교만하라고 주시지 않으셨읍니다. 내 주위에 있는 이들에게 빛과 소금의 역활을 잘하라고 성령의 은사를 주셨읍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어 온전한 사람이 되어 오직 주님의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며 그리스도에까지 자라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랑의 지체들이 서로 연합하여 온 몸이 하나로 자라가도록 해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모든 것의 근원이시며 결과이신 여호와 하나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날마다 자라나기를 원합니다.
이 땅에서 온전하게 살며 덕을 세우라고 하나님의 뜻대로 선물로 주신 성령의 은사들을 저에게도 주셨읍니다 

주신 성령의 은사들이 주님의 뜻대로 쓰여지기 위하여 저의 자아를 늘 내려 놓게 하옵소서. 교만하지 않고 늘 겸손하기를 간구합니다. 다른 이가 가진 것에 부러워하지 말고 그를 인정하게 하옵소서. 그 또한 저의 삶에 선한 영향을 주며 간섭하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자녀임에 감사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선하심을 늘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저를 이처럼 사랑하시어 저를 주님의 자녀로 인정하시고 성령의 은사를 선물로 주신 은혜의 하나님.
많은 은사를 주셨음에도 아직 제대로 감사하며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음을 용서하옵소서.

저의 남은 삶을 통하여 저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영광을 올리기를 간구하나이다. 저는 어쩔 수 없는 죄인일뿐입니다. 늘 죄를 짓고 쓰러져 넘어지지만, 그 때마다 저의 손을 붙잡아 일으키시고 실의에 빠진 저를 위로하시고 새로운 힘을 주셔서 주신 은사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천국으로 가는 좁을 길을 가도록 인도하옵소서.

여호와께서 언제 저의 생명을 취하실지 알 수는 없지만 여호와 아버지는 저의 아버지이시요 저의 생명의 구원자이시요 제가 피할 곳이니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8년 11월 11일 일요일

감당할 시험 밖에는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시험을 우리는 고난, 연단, 시련이라 표현을 합니다.
삶이 내 생각대로 내가 원하는대로 된다면 시험받을 일이 전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시련은 끊임없이 다가 옵니다.

왜 그럴까요? 두 가지의 시험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나의 그릇된 자아로부터 야기된 시험이며 또 하나는 나의 믿음이 더욱 굳건하게 서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입니다.


우선 나의 그릇된 자아로부터 시작된 시험을 봅시다.

재물이 많은 이들은 늘 풍요로운 생활에 젖어 있다 보니 자신보다 가난한 자들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은 아무렇지 않게 행동을 하는데 다른 이들은 상처를 입습니다. 또한 자신보다 더욱 부유한 자가 의시대며 업신여길때 마음에 큰 상처를 입습니다.  또 재물이 없는 이들은 나보다 재물이 많은 이들이 나를 조금이라도 언잖게 대하면 저 사람이 재물이 많다고 나를 함부로 하나 하며 마음에 상처를 입고 힙들어 합니다.

권세가 있는 자들은 권세를 누림에 익숙해져 아래 사람들을 함부로 대해도 마음에 전혀 부담을 갖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신보다 더욱 권세 있는 자가 자신을 억누루고 함부러 대할 떄 마음에 상처를 입고 연단을 받습니다. 또한 권세있는 자의 아래에 있는 자들은 억압적으로 위에 있는 이들이 말이나 행동을 하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어 자신을 죽여야하는 시험을 받지만 마음에 앙심을 품습니다 

어떤 이가 나보다 잘 나 보일때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나도 잘 나보이려고 온갖 수단을 씁니다. 자신이 잘나 보이도록 변해 갈떄마다 자신도 다른 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습니다.

내 안의 잘못된 자아로 부터 시험을 받는 이들에 성령은 이렇계 말씀합니다.
(1:13-15)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시험을 받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는 나의 욕심으로 인하여 시험을 받습니다. 욕심의 근원은 무엇인가요?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이 나의 마음에 욕심을 심어줍니다. 나의 마음에 욕심이 자리잡게 되어 욕심장이가 되면 조그마한 욕심이 또다른 욕심을 부르고 결국은 더 큰 욕심을 가지려고 발버둥을 치게 되어 사망이 주인 노릇을 하게 됩니다. 이런 시험은 나의 잘못된 마음의 그릇으로부터 비롯되었읍니다. 하루빨리 버려야 합니다. 나를 점점 사망으로 인도하는 잘못된 시험입니다.


그런데 어떤 시험은 나의 잘못된 자아와는 연관이 없이 다가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연단이지요.

왜 이런 일들이 내게 임하였을까?  마치 욥이 어느날 갑자기 엄청난 시련을 겪었듯이 왜 이런 어려운 일들이 나를 힘들게 할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연단의 기간은 축북의 기간입니다. 바로 연단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다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다가왔을때 기뻐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으로 내게 연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삶은 내 뜻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어떤 때는 억울한 사건을 통하여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일을 겪기도 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 죽고 싶을만큼 어려워 하기도 합니다. 단지 주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순교한 자들도 있고 말할 수 없는 고통 받는 자들도 있읍니다. 떄론 원하지 않는 죽을 병을 만나 죽음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재정적으로 너무나 곤고하여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가의 걱정으로 밤을 지새기도 합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연단의 시험에 대하여 무엇을 말씀하는지를 살펴 봅시다 


감당할 시험 밖에는

우리에게 허락하신 연단의 시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하여 연단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시험을 받은 이로는 베드로가 있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시험으로 넘어질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2:31-3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노니

사탄은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베드로에게 예수님에 의심을 갖게 하려고 까부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교회의 반석이기 때문에 베드로가 넘어져서 예수님을 부인하여 교회를 세우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주님은 시험에 빠진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를 하시며 베드로가 시험에서 능히 이기고 교회를 세우는 주님의 제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시험에 빠진 베드로를 돌이켜 쳐다 보시며 붙들어 주십니다.

(22:61-62)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베드로는 죽음을 앞둔 비참한 모습의 예수님을 보는 순간 의심이 들어 예수님을 부인하며 까부림을 당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닭의 울음 소리를 듣자 예수님의 음성이 기억이 나서 회개하고 다시 예수님의 확고한 제자로서 교회의 반석이 될 수 있었읍니다. 아마도 그 순간이 베드로가 다시 태어나는 회심의 순간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로 그 순간에 주님은 베드로를 보시며 함께 하셨읍니다. 베드로에게 임한 시험은 위기가 왔을때 순간 주님을 부인하였지만 곧 다시 주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베드로가 감당할 수 있었던 시험이었읍니다.


저에게도 수많은 시련들과 시험이 있었읍니다. 

힘들었던 지난 날을 되돌아보면 어려움들이 내게 다가왔을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였던 적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김당하기는 너무나 힘들었던 어려움의 시간은 지나갔으며 지금은 기억의 한자리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짧지 않은 인생에서 겪었던 시험들은 지금은 저의 기억의 끝자락에서 겨우 생각해 낼 만큼 제가 감당할 수 있었던 어려움들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성정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제가 견디어 낼 수 있는 어려움만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그보다 힘든 어려움이 제게 다가 왔다면 저는 도무지 견디어 내지를 못하고 파멸의 길로 갔을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에 의심을 주며 혼란을 가져다 줍니다. 
(고후2:11) 우리로 사탄에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다.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 때로는 까불림을 당해 주님을 부인하여 세상의 소욕을 따르는 삶을 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주님 앞에 서서 시험에서 이길 수 있도록 주님께서는 바로 저를 위하여 중보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하며 또 시험에 들었다면 시험에서 이겨낼 수 있도록 주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제 안에 계신 주님께서 자비와 긍휼을 베푸실 것입니다.

임마누엘이신 주님께서 저와 항상 함께 하시기에 저의 인생길에 만나게 되는 주님 앞에 더욱 가까이 나아 가도록 허락하신 연단의 과정을 너끈히 넉넉하게 견디어내며 천성을 향하여 기쁘게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피할 길을 내사

너무나 힘든 상황에 부딪히게 되면 앞 뒤로 꽉막혀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절망만이 나를 휘돌아 가며 감싸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의 앞 뒤가 꽉막혀 나아갈 길이 보이질 않을때 주님께서는 피할 길을 예비하시고 인도하신다고 말씀을 합니다 

(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까?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겪는 고난을 겪으셨기에 우리가 받는 고난을 이해하십니다. 얼마나 뼈를 깍는 고통이 있는지, 나의 마음이 갈기 갈기 씻겨져 나가는지, 모래를 씹는 것과 같은 고통을 주님은 아십니다. 우리가 받는 고통의 아픔을 너무나 잘 아시는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녀인 우리를 도우십니다. 비록 보이지 않으시는 주님이시지만 바로 제 마음에 주님꼐서 임재하시기에 우리는 조금이나마 주님을 느낍니다.  주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고통 가운데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의 고통을 잘 안다. 많이 아프느냐. 내가 너를 낫게 할 것이다. 너를 가로막은 것들을 내가 꺠뜨리고 피할 길을 예비하였으니 조금만 더 참자. 인내하자. 내가 너의 함께 하지 않느냐. 나는 만주의 주이요 만왕의 왕이니라.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당시 최강의 군대인 애굽 군대가 뒤를 쫓아 맹렬하게 죽이려고 추격해 옵니다. 쫓기며 가다 보니 앞에는 홍해가 가로 막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있읍니다. 앞으로도 갈 수 없고 뒤로도 갈 수 없는 진퇴양난입니다. 이스라엘은 살려 달라고 울며 불며 차라기 애굽에 있었으면 이런 고난은 겪지 않을 텐데 하며 불평을 쏫아 냅니다. 이제 애굽 군대의 창칼에 무참하게 죽어야할 일만 남았읍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여호와께서 역사하십니다. 아니 그 이전에도 여호와께서는 항상 함께 하셨지만 절대 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놀라운 일들이 벌어 집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명하십니다.
(14:16) 지팡이을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 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홍해 바다가 둘로 나뉘는 기적이 일어 난 것입니다.
둘로 갈리운 바다 길로 이스라엘은 전원 무사하게 건넙니다. 하지만 뒤를 쫓아오던 애굽 군대는 바닷 길을 막으신 여호와의 권능으로 인해 몰살합니다. 그 뒤로 이스라엘은 애굽 군대의 추격을 더 이상 받지 않고 그토록 자신들을 얽매였던 애굽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었읍니다.

여호와께서 앞뒤좌우로 꽉 막힌 이스라엘에게 피할 길을 터주셨읍니다. 이스라엘은 바다가 둘로 갈라진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도 못하였읍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바다길을 터주셨읍니다.


삶의 위기에 계십니까?
한가지를 확신하십시요. 바로 내 안에 여호와께서 내주하시는지를 마음에 확신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여호와께서 임재하신다면 반드시 주님께서는 피할 길을 마련해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그저 생각 안에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실직적으로 관여하시며 섭리하시며 나를 살리시는 구세주이십니다. 


얼마전에 저는 암에 걸린 고난의 시간을 겪었읍니다.

암은 극심한 고통을 가져다 줍니다. 처음에는 암에 걸렸는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찌르는 고통을 주며 자신의 존재를 나타냅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 암에 걸렸다고 보고합니다. 그러면서 인생을 뒤돌아보며 또한 죽음에 대하여 생각을 합니다. 전과는 다르게 죽음이 보다 실질적으로 다가 옵니다. 주님 앞에 더욱 가까이 나아가기를 간구합니다.

들려 주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주님꼐서는 저를 다시 살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주님께서는 저의 육신을 다시 살리시며 위로를 하셨읍니다. 


암에 극심한 고통이 따르듯 고난에도 엄청난 고통이 따릅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고난은 나의 마음을 꼭꼭 무자비하게 찔러 댑니다. 나의 마음을 사정없이 찔러 대는 고난을 겪으며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바로 임할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바로 임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회복이 됩니다. 저를 고치시기 위하여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고난을 받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1:2-4)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고난 가운데 계십니까? 조급해하지 마십시요. 아무리 울며 불며 안달한다고 해서 고난은 절대 떠나가지를 않습니다. 고난은 그 자리에서 요동하지 않고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역사하실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9:11-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니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찿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저에게 임한 고난은 재앙이 아닙니다.
고난은 결국 저에게 평안과 희망을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저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하는 여호와 앞에 나아가서 간구하여야 합니다. 주님을 찿으셔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길에서 저와 함께 가시는 주님의 실체를 만나게 될 입니다.


(27:3)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리로다

그 어떤 것도 저를 해할 수 없읍니다. 왜냐하면 바로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신 주님께서 바로 제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고난이 다가올 때 감사하십시다. 바로 저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제가 주님앞으로 가까이 오게 하는 은혜의 선물이기 떄문입니다. 만일 저에게 고난의 연단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주님의 자녀가 아닐 수도 있읍니다.  


견디기 힘든 연단의 시간이 왔읍니까. 주님을 믿고 간구하다보면 어느새 고난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고난이 와도 감사하며 기쁘게 받아 들이십시다. 주님께서 고쳐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상하지 않도록 밤낮으로 간수하며 물을 주시며 마르지 않도록 은혜를 베푸십니다.


여호와 하나님

때로 찿아오는 결코 원치 않는 고난의 연단의 시간이 있읍니다.
너무나 힘들어하고 맥이 빠지고 살고자 하는 의욕도 없어집니다.
어떻게 견디어 내야 하나. 이 일을 어찌 해결해야 하는지 막막합니다. 도움을 청할 데도 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데도 없습니다. 아무도 저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습니다.

제가 간청할 데라고는 주님 밖에 없음을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주여 이 고난에서 빠져 나가도록 인도하옵소서. 자비와 긍휼을 베푸소서.

말씀에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을 허락하시며 또한 피할 길을 내 준시다고 주님께서는 약속을 하셨읍니다. 주님 이 약속의 말씀대로 저를 연단의 시험으로부터 건져 내주시고 피할 길로 인도하옵소서.

때때로 말라 비틀어 지지 않도록 흡족한 물을 주시며 밤낮으로 지켜주시는 주님께서 저와 늘 함께 하시며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저는 참으로 주님의 영광을 받은 축복받은 자입니다. 주님 저를 통하여 영광받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