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7일 일요일

새 하늘과 새 땅


(65:17-09)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이사야서는 마지막 부분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를 약속하며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모든 것이 회복된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평강 가운데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될 것이지만, 하나님께 패역한 자들은 죽은 자가 되어 영원한 불못이 있는 곳에서 고통 가운데 거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며 이사야서의 끝을 맺는다.

(66:24)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며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이사야서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늘 죄악을 범하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죄로부터 떠나서 다시 주님 앞으로 돌아오면 저주의 삶으로부터 회복시키겠다고 거듭 거듭해서 말씀하신다. 참고 또 참으시며 용서하시는 자비의 주님이시다. 하지만 주님께서 예비하신 주님의 심판의 날이 오게 되면 주님은 패역한 자와 택한 자를 골라내신다. 알곡은 창고에 들이시고 거라지는 뽑아 영원한 불이 타는 곳에 버리신다. 그러므로 우리 생명이 있는 자들이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호흡을 하는 동안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주님 안에 온전하게 구별된 삶을 살게 되면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의 축복이 내게 임하게 될 것이지만, 만일 패역하여 하나님으로 멀리 떨어진 분리된 삶을 살게 되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때에 나의 마지막이 임하여 영원한 불못의 고통 가운데 살게 될 것임을 분명하게 경고한다.

(65:2)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이 구절에서 주님의 사랑을 느낀다.
주님은 하루 종일 나를 쳐다보시며 나를 부르신다.
나는 곧 나의 생각을 따라가는 자며 옳지 않은 길을 서슴없이 죄악을 행하는 패역한 자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 나를 주님의 자녀이기에 항상 쳐다보시며 죄악의 길에서 벗어나라고 나의 이름을 부르신다.

주님의 사랑과 끊임없는 자비의 은총으로 회복되었지만 얼마못가 죄악의 성정을 가진 자녀들은 다시 하나님을 배반하며 패역한 짓을 저지른다. 용서를 구하여 회복되었지만 얼마못가 다시 죄악을 행함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며 천성을 바라보는 삶이 아마도 나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지속될 것이다.

늘 죄악 가운데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은 다시 오시겠다고 분명하게 약속하셨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전에 나의 마지막 날을 맞을 것인지 혹은 주님께서 재림하실때 살아서 주님을 맞이 할게 될지는 알지 못한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하루 하루 주님께서 다시 올 날을 예비하고 최선의 구별된 삶으로 온전한 신부로서 신랑이신 주님을 맞이하는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님의 재림이 있어야 한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은 주님의 택한 자들에게는 축복의 날이며 모든 것이 회복되는 기쁨과 희락의 날이지만, 주님에게 패역한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요 모든 것이 멸절하는 재앙의 날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사모하는 주님의 재림의 날은 모든 것이 변화하여 새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는 날이다. 주님께서 십자가가에서 죽으시고 삼일후에 부활하셨다. 그 후  40일간 주님의 자녀들과 함께 하시다가 주님은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시고 그들이 지켜 보고 있는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신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래서 초대교회 교인들은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받으면서도 소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주님의 재림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내어 던지면서까지도 지키기를 원했던 것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과 믿음이었다. 그 후 어느새 200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주님을 진실한 마음으로 섬기는 주님의 자녀들은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하며 다시 오실 신랑이신 주님의 재림의 날을 사모하며 준비한다.


새로운 창조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주님의 재림이 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창조를 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신다.
(20: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21:1) 또 내가 보니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새 하늘과 새 땅은 임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모습일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은 뜨거운 불에 완전히 녹아서 모든 호흡이 있는 생물들과 사람들은 마지막을 맞이 하게 된다. 아무리 숨고 피하고 싶지만 숨을 곳도 피할 곳도 없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은 임한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온전한 원래의 창조의 모습으로 회복된 평강이 임하게 된다.


언제 주님의 재림은 임할까?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재림이 있어야 한다.  주님의 재림은 언제 임할까?
초대 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기꺼이 순교를 하며 믿음을 지켰다. 그리고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신실한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린다.

(벧후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3:9의 말씀과 같이 주님의 재림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패역한 세대이지만 사랑하는 자녀들이 회개하여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여 구원을 받기를 원하셔서 늦어지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어서 벧후3:10에서는 주님의 날은 아무도 예비하지 못한 떄에 임할 것이라고 말씀한다.
(벧후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모든 자녀들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셔서 참고 또 참으시며 인내하시지만 주님의 재림의 날은 어느날 생각지도 않은 때에 갑자기 임할것이며 그 때에는 모든 것이 변화할 것이라고 경고를 하신다.

살전5:2 에서는 주님께서 도적처럼 임할 것을 주님의 자녀들은 잘 알기에 주님의 재림의 날을 사모하며 예비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살전5: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룰 줄을 너희 자신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주님은 주의 재림의 날이 도적 같이 임할 것이기 떄문에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13:32-33)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나의 영은 꺠어있는가 아니면 지금도 잠을 자고 있는 상태인가?
잠자고 있다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할 수 없고 또한 언제인가 임할 나의 마지막도 준비할 수도 없다.

나의 영혼아 깨어 날지어다!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어떻게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주님의 재림의 날을 준비해야 하는가?
주님의 재림의 날에는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은 멸망할 것이며 뜨거운 불의 심판을 받아 온 땅과 하늘에 재앙이 임하여 모든 것이 멸절할 것이기 그 때가 되어서 가슴을 치며 후회하지 말고 주님의 날을 이렇게 준비해야 한다고 권면을 하신다.

(벧후3:11-13)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이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생명이 있을 때에 스스로 조심하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깨어서 준비해야 한다.
(21:34-35)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우리의 삶은 항상 세상의 유혹과의 싸움이다.
세상은 오늘도 나에게 이렇게 꼬득인다. 너는 무척이나 잘 나아 보이니 교만해라. 때에 따라 거짓을 말하며, 네가 가장 우선이니 남을 너보다 낮게 여기고, 나의 것을 움켜 지고 남의 것을 빼앗으며 세상이 주는 즐거움과 방탕함을 한 껏 즐기라고 꼬득인다. 하지만 그렇게 인생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염려와 걱정과 욕심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런 세상에 속한 일들에 나의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 주님의 재림의 날의 소중함을 쉽게 잊어 버리고 거룩하게 구별되어 주님의 재림의 날을 준비할 수 없게 된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들에게 깨어 있도록 항상 기도하고 예비하라고 권면을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마치기 전에 이런 자들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66: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자는 교만하지 않고 마음이 가난한 자이며, 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죄를 통회하는 자이며, 늘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경외하는 자이다. 이런 자는 거룩한 행실 가운데 거하게 되며 주님의 재림의 날을 간절하게 기다리며 하루 하루의 삶을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살려고 할 것이다.

방탕하며 세상에 술취해 비틀거리며 삶의 염려가 나를 사로잡으려 할 때마다 이겨내야 한다. 이겨내기 위해서 늘 기도하며 영혼이 깨어 있어야 한다. 나의 영이 잠자고 있다면 세상의 혼탁함에 가려져서 주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된다. 영이 깨어 있는 자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분명한 구원의 길을 찿아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길의 끝에는 주님의 임재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게 되는 축복이 임하게 될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온 땅과 온 하늘과 그 가운데 속해 있는 모든 것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재림의 날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새로운 창조가 있는 날이라고 약속을 하십니다.
주님의 재림의 심판의 날이 언제 임할지는 모르지만 하루 하루 그 날을 예비하여 깨어 있어 주님의 택한 자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아 마지막 날을 예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지 않고 잠자고 있는다면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의 권세가 있는 지옥에 갈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주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자와 심령이 애통한 자와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경외하며 섬기는 자를 기뻐하시며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구별된 삶을 살기를 간구합니다. 성령님 저를 도와 주옵소서. 제 안에 계신 성령님의 뜻을 따라 순종과 낮아짐의 삶을 살기를 원하오니 저의 발걸음을 지켜 주옵소서. 제 눈에 보이는대로 갖고자 하는 교만함과 욕심을 내려 놓게 하옵소서. 저만 주님의 사랑을 받는 자가 아니라 바로 저의 곁에 있는 자들 또한 주님께서 사랑하심을 꺠닫도록 인도하옵소서.

주님의 재림의 날은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기쁨과 희락과 평강의 날이지만,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절망과 후회로 가득한 재앙의 날입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주님의 재림의 날을 기다리며 하루 하루 저의 영이 깨어나서 그 날을 준비하여 영광을 주님께 드리기를 간구하옵니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날마다 고백하며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주님의 자녀이기를 간구합니다.
다시 오실 주님 모든 영광을 받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8년 5월 6일 일요일

듣지 않으시는 여호와

(사59:1-8) 여호와의 손이 짦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냄이라. 공의대로 송송하는 자도 없고 ….……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늘 평안한 삶을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이 늘 평안하다면 좋을텐데 어느날 생각지도 않았는데 도저히 감당이 않되는 인생의 위기가 찿아온다. 삶의 위기는 어느날 갑자기 평안하다 할 때에 다가온다. 생각지도 않은 일들을 만나기도 하고, 억울한 오해를 사서 관계가 틀어져 버리기도 하고, 고칠 수 없는 병을 만나기도 하고, 천재지변을 만나 생명이 뜻하지 않게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우리는 길지 않은 삶을 살면서 도저히 내 힘으로는 헤쳐 나갈 수 없는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운 일들을 만난다. 깊은 흑암속에 있어 헤쳐 나가야 하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나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어려운 과정을 통과해야 하며 장애물 가운데는 나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 절대 우리들이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가로막을 때에는 좌절하고 어쩔수 없이 절대자이신 주님께 매달릴 수 밖에 없다.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어려운 장애물들을 헤쳐 나아가야 하니 얼마나 힘이 들까?
너무나 힘이 들어 좌절하고 실망하여 모든 것을 포기한다.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하며 부르짖는다고 한다.

주님을 믿는 자들은 주님이 도우심이 있으니 얼마나 복된 인생인가!
주님과 함께 있었던 제자들은 광풍이 몰아치고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험에 처하자 곤히 주무시고 계시는 주님을 깨우며 죽게 되었으니 살려 달라고 간구를 한다.

(8: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어려움에 처한 주님을 믿는 자녀들에게는 주님의 도우심이 반드시 임한다. 왜냐하면 위험에 처한 자녀와 함께 주님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잔잔하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광풍이 불던 나에게 모든 것이 잠잠하여 평강의 은헤로 회복이 된다.

그런데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 보일떄도 있다.
주님을 잘 믿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믿는다고 믿는데 왜 이토록 어려운 일을 맞닥뜨렸을까?
아무리 발버둥을 치며 할 짓 못할 짓을 해봐도 도무지 해결이 되지 않는다.

저 인간이 나한데 이럴수가 있어. 여러 인간들이 나한테 손가락질을 한다.
자녀 문제로 속이 타들어 가는데 자식의 상태는 더욱 심해진다.
이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내가 이것밖에 않되나 너무나 낙심이 된다.
내가 이제 고칠수 없는 죽을 병에 걸렸데.

주여 어디에 있읍니까?
주님이 과연 계시긴 계십니까?

매달릴데라고는 주님 밖에 없다.

여호와여 어디에 계십니까 저를 도와주세요 제가 지금 죽게 되었읍니다 하며 주님께 매달리지만 여전히 너무나 어렵고 힘이 든다. 과연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까 하며 절망을 한다.

Separation from Jehovah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갈라 놓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한다.
믿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는 무엇을 말하는가? 축복의 근원인 하나님으로부터의 도우심이 없어 메마르고 황량한 곤고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3:44) 주께서 자신을 구름으로 자신을 가리사 기도가 상달되지 못하게 하시고

많은 기도 제목들이 있어 아무리 열심으로 간구를 해도 여호와께서 듣지 않으신다면 어찌할까나!
아무리 기도를 해도 그 기도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허공에서 흩어진다면, 상황은 전혀 바뀌지 않고, 마음도 바뀌지 않고, 사람도 바뀌지 않고 결국은 그것으로 끝을 맞는다.

왜 그럴까?
왜 아무리 기도를 해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을까?
바로 내 안에 있는 죄가 해결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5:25)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는니라

죄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죄의 근원은 마귀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죄는 하나님과의 사이를 막는다. 죄의 문제를 해결받지 못했다면 아무리 기도를 해도 그 기도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허공에서 흩어지게 된다.

여호와께서 나의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을 얻기 위해서는 철저한 회개가 반드시 우선되어야 한다.
내가 행한 모든 죄는 회개하여 용서함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회개하지 않아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죄들은 하나님과의 친교를 막는다 

하나님으로부터 해결 받지 못한 죄가 무엇이 있는지를 찿도록 해야 한다.
제 안에 깊이 감추어져 있어 아직 해결 받지 못한 죄가 있읍니까? 성령님 깊이 숨겨진 저의 죄가 들어나게 하옶소서. 죄가 표면에 떠오르게 되면 토해내며 회개를 해야 한다.

(요일2:15-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죄가 내 안에서 준동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포기하기 않고 계속해서 죄인줄 알고 행한다.

죄는 참으로 끈질기며 나를 교묘하게 얽어매서 같이 가게 한다. 죄의 허물로 인해 하나님과의 친교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을 아는데도 죄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안에 있는 땅의 지체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하는 죄를 즐기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들이다. 어떤 죄악들을 말하는가?
(3-7)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냄이라.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생각은 악한 생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있으며

피를 묻혔다는 것은 살인을 의미한다.
(요일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살인을 의미하지 않고, 형제를 미워하는 자가 곧 살인하는 자며 영생이 없음을 말하고 있다. 거짓과 악독을 내는 입, 악한 생각, 공의대로 행하지 않는 죄들은 땅에 속한 지체가 저지르는 죄이며 곧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어긴 죄이다.

골로새서에서 구체적으로 우리가 저지르는 죄를 말한다.
(3:5) 그러므로 땅의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죄는 땅의 지체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을 할 때 시작이 된다. 어디를 가나 세상은 음란과 부정과 탐심과 정욕과 교만과 거짓으로 가득차 있으며 주님의 자녀들을 죄의 세계로 유혹을 한다.

죄의 유혹은 매우 달콤하여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어느새 땅의 지체의 음란과 욕심과 교만과 거짓이 내 안에 들어온다. 그래서 주님의 자녀들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으려면 십자가에서 땅의 지체를 죽어야 한다. 사도바울의 고백과 같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15:31)”가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날마다 주님의 십자가에 나를 죽일때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내가 거하는 곳이 바로 천국이 될 것이며 주님의 주시는 놀라운 회복의 은총이 임하게 될 것이다.

(8)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한가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죄악을 범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분명한 특징이 하나가 있는데 곧 마음에 평강이 없다는 것이다. 비록  사람들의 눈에는 띄이게 보이지 않는 사소한 죄일지라도 죄 가운데 있다면 늘 불안하고 무언가 찝찝하다. 그래서 마음은 늘 불안해 안절부절하며 평강이 없다.

그런데 주님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평강을 주신다.
주위를 보면 평강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지만 왠지모르게 마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평강이 임한다.
주님께서 평강의 마음을 주시기 떄문이다.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이 아니하니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의 자녀에게는 놀라운 특권이 있다.
이해할 수 없는 평강이 임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기에 주님의 사랑과 평강이 임한다 

내가 힘이들고 어려울 때 왜 두려워 하는가. 왜 근심하는가. 너는 평안할 지어다.” 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보자. 내 마음에서 잔잔하게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으로 힘을 얻고 용기를 갖고 다시 형용할 수 없는 놀라운 기쁨으로 살아보자. 죽어가는 나를 다시 살리는 평강의 축복이 임하기를 간구하자.

끊임없이 나를 옭아매려는 죄.
죄는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를 갈라 놓는다. 땅에 속한 나의 지체는 죄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들어 계속해서 죄를 즐기게 하며 죄에 거하는 것을 당연시하며 합리화시킨다. 그렇지만 분명하게 죄는 하나님과의 사이의 단절을 의미한다. 하나님과의 단절과 분리는 이 땅에서 나의 힘으로 살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짦지 않은 세상을 살면서 한가지 느끼는 것은 세상은 나의 힘으로 살기에는 너무나 힘이 들고 버겁다는 것이다. 주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처럼 미련한 자는 벌써 오래전에 좌절하여 실패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주님은 나를 도우셨다. 앞으로의 남은 삶도 주님꼐서 나 뿐 아니라 주님의 자녀와 함께 하시며 도우실 것이다.

나를 살리신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곧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일 것이다.
십자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신 주님의 은혜로 나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죄를 마음을 다하여 회개함으로 용서함을 받아 해결받고 드리는 모든 간구가 주님의 뜻대로 드려지는 간구가 되어 모두 응답받는 놀라운 인생으로의 회복의 은총과 평강의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드립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저의 삶을 뒤돌아 보면 여러가지의 굴곡이 있는 삶을 살았읍니다.

떄로는 저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나서 좌절하고 어쩔줄 몰라 했읍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헤쳐 나갈 길로 인도하신 주님의 손길이 있어서 지금 이 시간 지난 날을 되새기며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도록 축복하셨읍니다.

힘이 들고 어려웠지만 여전히 그곳에 주님께서는 저와 함께 하셨읍니다.
비록 주님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주님은 분명히 제가 어려워 할 때 저와 함께 하시며 저를 위로하시며 생명의 길로 인도하셨읍니다.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 주님 미련한 저를 살려 주세요 간구하지만 주님은 보이지 않았기에 곧 실망과 좌절과 불안에 휩싸이고는 했읍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넗은 팔로 저를 안으셨고 피할 길을 예비하셨으며 저는 주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은혜릐 길을 따라가며 위로와 기쁨과 감사를 회복할 수 있었읍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서의 삶 가운데서 항상 저를 지키시며 저의 간구를 들으시며 저를 주님의 따스한 손으로 안으시고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저는 보이지는 않지만 주님의 임재가 저와 늘 항상 있기에 승리하며 살아갈 것을 확신합니다.

미련하고 패역한 제가 죄를 지으려 할 때마다 제 안에 계신 성령님이여 저를 깨우소서.
죄가 저를 주님으로부터 떼어 놓아 분리시키려 할 때마다 죄의 실체를 깨닫게 하시고 죄를 토하며 회개할 수 있는 심령을 주옵소서. 죄로부터 멀리 떨어지도록 저의 발걸음을 인도하옵소서. 십자가에서 날마다 죽을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옵소서.  어떤 일을 만나도 주여 제가 여기있으니 저를 받으소서 하며 고백하는 축복된 인생을 살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