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7일 일요일

무화과나무

 제목무화과나무

(11:12-14) 이틑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20-24)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은 베다니에 가셔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11). 그리고 주님은 이제 자신의 마지막 사명 곧 십자가에서 죽어 모든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마지막 유월절 (Rosh Hashanah)을 지키시려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배고픔과 육신의 아픔을 고치실 왕으로 자신의 겉옷을 벗어 땅에 깔고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하며 주님을 열렬하게 환영합니다. 그리고 다시 베다니로 마르다와 나사로를 만나러 가십니다. 다음날 아침 베다니에서 나오셨을 때 주님은 배가 고프셨습니다.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먹을 것이 있는가 하여 가셨는데 무화과는 달리지 않았고 잎만 무성하게 있었습니다. 열매가 맺어 있지 않은 무화과나무에 주님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이 무화과나무는 뿌리부터 말라 시들어져 버렸습니다.
성경은 13절에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하며 아직 무화과가 익을 시기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유월절 시기이니 올해는 3월 말경입니다. 무화과는 3월에 잎이 나기 시작하고 6월에 가서야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니 아직 이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은 것은 자연의 순리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사 시들게 하십니다.  그리하셨을까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주님의 행동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 무화과나무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말라 시들어져 버린 것을 보고 ‘(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주님에게 물어봅니다. 주님께서는 왜 이런 행동을 하셨는지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시며 우리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십니다. 말씀을 읽다가 이해가 가지 않거나 혹은 인생길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주님께 물어보세요. 그러면 반드시 주님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주십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세 가지를 배우려고 합니다.

첫 번째,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가르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은 궁금해하는 제자들에게 22-23절 믿음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22-23)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우리가 이 땅에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주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많은 곳에서 믿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믿음은 실로 적고 보잘것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몇 가지 예를 드셨습니다.

1. 겨자씨만 한 믿음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1:20)

비슷한 말씀을 마17:20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7:20)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주님은 무화과나무와 겨자씨 비유로 하나님 나라에 속한 믿음에 대하여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겨자씨 한 알보다 작은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겨자씨만한 믿음이 주님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게 되면 무척 큰 나무가 됩니다. 마치 얼마되지 않는 누룩이 빵을 전부 부풀게 하듯이 우리에게 있는 매우 조그마한 믿음일지라도 결국은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겨자씨 한 알 혹은 누룩과 같이 매우 적은 믿음을 갖고 있지만, 이 적은 믿음만으로도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할 수 있으며 또한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옮겨지라 믿음을 갖고 말하면 저기로 옮기게 됩니다.

적은 믿음이지만 내가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도 조그마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많은 영혼이 쉬임을 얻는 큰 하나님의 나라로 자라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에 퍼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믿음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곧 의심입니다. 내 힘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불가항력적으로 보이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믿음을 가지려 하지만 의심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늘어 집니다. 할 수 없겠다 하는 의심을 버리셔야 합니다. 믿고 간구할 때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이루어 질 것을 믿으십시오.


2. 매일의 삶을 염려
(6:30-31; 12:28-29)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하나님은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들의 꽃들도 자라게 하십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돌보지 아니하겠느냐고 주님은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믿음이 적은 자들이기에 배가 고픈데 먹을 것이 없거나, 마땅하게 입을 옷이 없을 때, 잘 곳이 없어질 때, 어쩔 수 없이 염려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믿음이 적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눈물과 애환이 있고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며 절망과 소망이 번갈아 가며 나의 삶을 지배하려 합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근심하고 걱정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염려해보아도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시간이 이를 해결할 뿐입니다. 그 당시에는 죽을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렸지만, 어느덧 지나 그때를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도 미련스럽게 그 일에 매달렸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염려함으로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음을 주님은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직 주님은 우리의 삶을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비록 힘들고 험난하며 어려울지라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새도 먹이시고 꽃도 입히시는데 하나님의 자녀인 제가 처한 이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시는 주님을 믿으십시오.

세상일로 염려하기 쉬운 우리이지만 점점 우리가 주님 안에서 믿음이 성숙해 가면 세상의 염려를 점차로 내려놓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혹이라도 세상일에 염려하게 되면 염려하세요. 그러면서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공중의 새도 내가 먹이고 들의 꽃들도 내가 입히는데 내 자녀인 너를 내가 돌보지 않겠느냐? 염려하지 마라. 근심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내 사랑하는 자녀야.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세상을 바꿀 만한 큰 믿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비록 조그마한 믿음을 가졌지만, 염려하며 근심하지 말고 주님만을 의지하며 오늘 내게 닥친 어려움을 참고 견디어 내면 그 어려움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충만하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3. 파도를 잔잔하게 하심 - 평안
주님이 함께 타고 있는 배에 광풍과 파도가 몰아치자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제자들은 원래 믿음이 적은 자들입니다. 주님이 배에 함께 계시는데에도 제자들은 거칠게 몰아치는 바람과 파도로 인해 물이 배에 가득차서 거의 가라앉게 되자 두려워합니다. 주님께서 주무시기 때문에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주님을 깨웁니다. 그러자 주님은 제자들의 적은 믿음을 말씀하시고는 곧 제자들을 두렵게 한 원인인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십니다. 그러자 그렇게 흉융하게 날뛰던 파도와 바람은 아주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주님께서 마치 주무시고 계신다고 생각하는지 울부짖으며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주님을 깨우겠다고 몇 날이고 난리를 칩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야단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야 합니다. 환경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주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을 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구하십시오. 주님이 계신 곳에는 아주 잔잔한 평강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찿아 오셔서 너희는 평안할지어다하셨습니다.

4. 바다에 빠져가는 베드로 -  담대함

(14:29-31)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배에 탄 자신들에게 주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본 베드로는 자신도 물 위를 걸어 주님께로 가겠다고 주님께 물어봅니다. 그러자 주님은 오라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걷습니다한발짝 한발짝 걸어 주님께로 걸어가다 커다란 파도를 보자 덜컥 두려워져서 당황하여 베드로는 물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주님 살려 달라고 고함을 치자 주님은 즉시 바로 곁에 오셔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으시고 물에서 끄집어내십니다.

베드로가 원래 큰 믿음이 있어서 주님을 향하여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가다 갑자기 믿음이 적어져서 점점 물에 빠져 갔다고는 생각이 안 듭니다. 원래 베드로는 믿음이 적은 자였습니다. 그런 작은 믿음을 가진 베드로가 주님만을 바라볼 때는 주님을 향해 담대하게 물 위로 걸어갈 수 있었지만,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바람과 물결을 보자 마음에 의심이 들며 물에 빠져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믿음이 적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바람이 조금만 세차게 불어도 마음에는 의심이 생겨 주님 어찌합니까?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파도가 조금 세게 불어 타고 있는 배가 풍랑에 흔들리기 시작하면 주님 어찌합니까? 배가 지금 기우뚱거리고 있습니다. 제가 죽게 되었습니다. 소리치면서 살려 달라고 주님께 간구합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이기에 조그마한 환경에도 반응합니다. 담대해야 합니다.
우리의 눈의 초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내 주변의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담대하게 바로 제 안에서 저를 바라보시고 계시는 주님에게로 초점을 바꾸도록 해야 합니다. 믿음이 적은 자이지만 담대하게 주님만을 바라본다면 물 위를 걸어갈 수 있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께 나의 믿음이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간절히 구하십시오.
어려서부터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를 위해 주님께 간구합니다. 이 아이는 어려서부터 귀신에 사로잡혀 말도 하지 못하고 거꾸러져서 거품을 흘리기도 하며 바짝 말랐고 제자들도 능히 이 아이를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9:22-24)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주님은 이 무화과나무의 사건을 통해서 제자들이나 우리에게 믿음의 소중함을 가르치십니다. 아무리 적은 믿음일지라도 환경을 보지말고 의심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평안 가운데 담대하게 주님을 바라본다면 겨자씨는 심어져 큰 나무로 자라날 수 있을 것이며, 매우 적은 누룩이지만 빵을 전부 부풀리는 것과 같이 내 주변에 하나님의 나라가 크게 자라날 것입니다. 또한, 적은 믿음으로도 주님만을 온전하게 믿는다면 물 위를 걸어가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실질적으로 있다고 믿으며 믿는 것입니다. 주님은 보이지 않지만 제 마음에 계심을 믿습니다. 제 안에 계시는 주님께서 저를 믿는 자로 인치시고 세상 끝날 까지 저를 인도하실것을 저는 믿습니다. 이 땅에 살며 때로는 어려움이 있을때에 주님의 섭리하심으로 놀라운 회복의 은혜가 임할 것을 저는 믿습니다.

 

 

두번째,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가르치셨습니다

(17)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무화과나무에 대하여 11-14 그리고 20-26절에 나누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 15-19절에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것을 깨끗하게 치우는 성전정화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무화과나무 사건 사이에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성전 안에서 장사하며 성전을 더럽히고 있는 자들을 쫓아내시며 (17) 내 집은 기도하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시며 성전은 기도하는 곳이라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성전입니다. 주님의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무화과나무 사건 바로 전에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 지를 말씀하십니다. 기도할 때 믿음을 갖고 기도하라고 권면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 가를 가르치시기 위하여 무화과나무를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마지막 유월절을 보내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오셨습니다. 이제 곧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했습니다. 그런 주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의 기도의 중요성을 말씀해 주고 싶으셔서 제자들에게 산교육을 시키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앞으로 자신이 없는 제자들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믿음의 기도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의 기도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필요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해야 하는 기도제목이 많이 있습니다.
드리는 모든 기도가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기도는 기도 응답이 없는 형식적인 기도이며 아무런 효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믿음을 갖고 하는 기도에는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 저희의 삶을 변화시키며 승리하도록 인도됩니다.

주님을 믿는 자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주님께 나의 믿음이 적은 것을 도와 달라고 간구하세요.
주님께 겸손하게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구하세요.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Have mercy on me!

믿음을 갖고 드리는 기도에는 찌질한 나의 삶을 회복케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작은 믿음을 가졌기에 환경을 보며 의심을 갖고 기도를 합니다. 작은 믿음을 가졌기에 살려 달라고 기도는 했지만 금새 잊어 버리고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의 영향을 받아 다시 주눅들어 합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께서 바로 옆에 아니 내 안에 계시는데도 이를 잠시 잊고 환경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주님께 간절히 구하십시오.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어쩔 수 없이 연약하고 적은 믿음을 가졌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긍휼로 저를 덮으소서. 나를 덮고 있는 상황을 보지 말고 제 안에서 섭리하시는 주님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적은 믿음을 은혜로 베푸소서.

주님께서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나를 붙드시고 다시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내가 너희와 늘 함께하는데 무엇을 염려하고 근심하느냐.

세상이 너를 덮치려고 할지라도 너는 내가 너와 함께 함을 믿고 세상을 이겨 나가라.


세 번째, 말의 권세
또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은 말의 권세로서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셨습니다. 이는 곧 믿는 자들인 저희에게도 입술의 권세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8:20-21)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맺으리라
(14:28) 그들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말에는 나의 삶을 변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을 제발 함부로 하지 마세요. 내가 한 말은 공중으로 흩어지지 않고 다시 저에게로 되돌아 올 수도 있음을 명심하십시요.  내가 하는 말에는 말의 권세가 있어 나의 삶을 바꿀수 도 있습니다.  나의 입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또 한편으로는 저주하기도 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저는 무척이나 적은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넘실대는 파도를 만나거나, 세찬 바람에 몸이 휘청거리게 되면 나도 모르게 주님을 믿는 마음이 위축되어서 제 안에 계신 주님을 온전하게 의지하지 못하고 파도를 보고 바람을 보고 겁을 먹고 두려워하게 됩니다.

!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해결의 실마리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고 사방에서 저를 죽이려고 올무가 처져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의지할 이는 주님밖에 없습니다.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저는 어쩔 수 없이 환경에 위축되는 적은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래도 제 마음 한구석에는 주님을 바라보는 마음이 있습니다. 제가 환경을 보지 않도록 저의 믿음이 자라게 하옵소서. 베드로가 주님 만을 볼 때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파도가 넘실거려 두려움이 있었지만, 빛이신 주님을 향하여 물 위로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람과 파도에 마음이 뺏겼을 때 빛이신 주님은 보이지 않고 캄캄한 흉용 한 물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언제든지 주님만을 바라보게 저의 시선과 마음이 주님께로 고정되기를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다른 것을 보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주님께로 걸어가기를 원합니다. 그곳이 넘실거리는 파도가 이는 물위일지라도, 매우 뜨거운 불 속에서라도 주님만을 바라보며 걸어가기를 원합니다.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는 주님의 자녀입니다. 주님과 함께 가며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의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저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