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5일 일요일

나의 영을 부어주리니




(요앨2:28-29)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오늘은 성탄절이다.
성탄절이면 무엇이 기억나는가? 선물이지 않겠는가.
제 아내가 선물을 좋아 하는데 잘해 주지를 못해 항상 미안하다. 물질적으로 마음껏 해주지 못해 사랑과 감사와 배려와 같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선물을 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셔서 구원을 받게 하셨다.
또한 구원받은 우리의 삶이 더욱 풍성하도록 성령의 선물들을 풍성하게 주시기를 원하신다.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에 대하여 말씀을 한다.
오늘 성탄절에 귀한 선물을 넘치도록 풍성하게 주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감사를 드리자

두 가지 선물이 있는데 하나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선물이며, 다른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선물이 있다. 오늘의 본문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은 영적인 선물이다.  영적인 선물 곧 성령의 은사는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성도로서의 삶에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연약한 나를 도운다.


요엘의 뜻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
요엘서에는 여호와의 날이 임하기 전에 임할 징조에 대하여 말씀을 한다.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전에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인 여호와의 영이 임하여 온 만민에게 부어줄 것이라고 예언을 한다.
요엘서의 이 말씀은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에서 나타난다.
초대교회 당시 지금과 같은 큰 교회는 없었다. 대부분 가정교회에서 예배의 모임을 가졌는데 예언이 있었으며, 방언이 있었으며, 신령한 찬양이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질서있게 하나님의 주신 선물인 은사를 서로 나누며 서로 위로하며 권면을 하며 교회의 덕을 세웠던 것이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같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서는 성경의 말씀과 같이 성령의 나누어 줌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데, 실지로 우리의 예배 모임가운데 이러한 성령의 은사의 역사가 일어나는가?  아마 이단이라고 정죄를 할 것이다. 성경말씀을 이론적으로만 문자적으로만 이해를 하는 것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행2:16-21과 비교해보자.
(2:16-21)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후에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전 곧 마지막 날이 이르기 전을 말한다.
말세라고 행전에는 기록되어 있다. 땅에는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 있고, 하늘에는 어두워진 해와 핏빛으로 변한 달이 있는 요한 계시록에 묘사된 주님의 재림이 있는 마지막때이다.
 
내 영
성령을 말한다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모든 육체를 말한다.  하나님의 선물은 어떤 특정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보편적인 은혜이다.
나도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고, 당신 역시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다. 예언하고, 꿈을 꾸고 이상을 보는 것은 모든 믿는 자들이 경험할 수 있는 성령의 선물이다. 만일 아직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말고 하나님께 간구하자그러면 후히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반드시 성령의 유익한 은사들을 주실 것이라고 확신을 한다.
 
장래일을 말하며 (Prophesy)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쓰여져 있는 고전14장을 보자.
(고전14:3)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예언은 교회를 견고하게 세우기 위한 권면과 위로이다.
무당이 하듯이 기복적인 관점에서 장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고전14:24-25)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받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예언이란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에언을 통하여 주님의 사랑과 권면과 위로가 나타나는 것이다.


예언의 한 예
너는 나의 자녀이고 나는 너로 인하여 기뻐하노라.
아버지는 그의 자녀들을 아시고 그 자녀들 각각을 돌보신다.
너의 두려움을 내게 알려라. 너를 나의 돌봄가운데 맡겨라.
너를 향한 노가 나에게는 없다.
나는 너를 나의 아들같이 가르치고 나를 너의 아버지로 알기 원한다.
나로 너에게 나타나게 하고 내가 너안에 있음을 나타나게 해다오
내가 너를 완전하게 사랑하도록 해다오.
나의 말을 두려워 말라. 너의 마음을 내게서 받아라
너 스스로를 내게 주면 나는 너를 붙잡아 줄 것이고 너를 이끌 것이며 네가 나의 돌봄을 알 수 있으리라. 주님이 말씀하신다.”
 
(고전14: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고전14: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예언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에게 예언의 은사를 주셨다. 내가 있는 곳에서 권면과 위로를 하라고 예언의 은사를 주신 것이다. 사랑의 말을 하도록 하여야 한다. 잘못을 지적하는 정죄의 말보다는 위로하며 감싸주며 배려해 주는 권면의 말을 통하여 나의 이웃들을 세워주워야 한다.
 
꿈을 꾸며 (shall dream dreams)
꿈을 꾼 자의 대표적인 자는 요셉.


요셉은 꿈을 꾼자이다.
어려서부터 꿈을 꾸었고 꿈에 자신이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를 말하여 주었고, 어려서부터 꿈을 꾸었기에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선물 함께 받았다. 감옥에서 왕의 시종 둘의 꿈을 정확하게 해석함으로 인해 왕 앞에 설 수 있었고, 왕의 꿈을 완전하게 해석함으로 요셉은 총리로 부름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도구로 쓰임을 받았다.
꿈을 통해서 어려운 일을 미리 알고 피할길을 내주시는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기도 한다.
마지막 때에 사방이 우겨쌈을 당하여도 피할길을 알려 주시는 성령님.
다니엘은 자신이나 다른 이가 꿈을 꾼것을 주님의 뜻대로 해석을 할 수 있었다.
(7:1) 바벨론 벨사살 왕 원년에 다니엘이 그의 침상에서 꿈을 꾸며 머리 속으로 환상을 받고 그 꿈을 꾸며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하나님께서는 나와 그리고 나와 관련된 사람들을 돌보라고 꿈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우리 모두는 꿈을 꾼다.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것이다.
 꿈은 나의 삶에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꿈에는 개꿈이 있는가하면 어떤 뜻을 품고 있는 영적인 꿈도 있음을 우리는 잘 안다.
어떤 꿈이 나의 머리속에 남아 있다면 어떤 뜻을 갖고 있는 영적인 꿈인 경우가 많다.
꿈이라고 무시를 하지 말자. 어떤 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달린 것이다. 나의 뜻대로 꿈을 해석하지 말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꿈을 해석해야 한다.
(2:18-19)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사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벨론의 다른 지혜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를 그들고 하여금 구하게 하니라.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이상을 보며 (shall see visions)
이상은 하나님께서 행하시고자 하는 것을 나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Vision은 아마 하나님과 교통하는 첫번째 단계일수도 있다
성경에는 이상을 본 선지자들이 있다. 사도 요한, 에스겔, 다니엘, 아모스. 
(1:1-2)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들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1:4) 내가 보니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방에 비치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12:10) 내가 여러 선지자에게 말하였고 이상을 많이 보였으며 선지자들을 통하여 비유를 배풀었노라.


이상, 계시, 예언, 꿈 혹은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과 대화를 하신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말씀하실때 사용하시는 방법들이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은 선물을 주셨는데 곧 예언을 하며, 꿈을 꾸며, 이상을 본다.
내가 선지자와 같이 특별한 사람이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은사는 믿는 모든 자에게 주신 것이다.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자.
성령의 은사는 믿는 모든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이며, 나의 삶을 유익하게 하며 또한 나와 관련된 사람들의 삶에 유익을 준다. 가정에서나 삶의 일터에서나 교회에서 성령의 은사가 충만하게 나타나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한 축복된 인생이기를 축원을 한다.
(고전12:7-11)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도믄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무엇보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가장 필요한 선물을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자.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는가?
바로 우리 자신을 주님의 기뻐하시는 산제물로 드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산제물로 예물을 드릴 수 있도록 주님께서는 귀한 선물들을 많이 준비하셨다.
주님꼐서 주시는 귀한 선물을 차고 넘치도록 받는 축복이 임하기를 간구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주님께서 탄생하심을 기념하며 송축하는 날입니다.
일년 365일 중에서 가장 기뻐해야 하는 날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저는 구원을 받은 날이기도 합니다.

베푸신 주님의 사랑의 은혜가 너무나 크십니다.
저를 사랑하심으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을 주셨읍니다.
그 사랑이 영원하게 간직되도록 저에게는 주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선물로 주셨읍니다.
제가 이 땅에서 거룩한 산제물로 드려지도록 주님은 너무나 귀한 성령의 선물을 주셨읍니다.
주님을 더욱 알아 가도록 귀한 선물을 주셨읍니다.
주님을 더욱 닮아 가도록 귀한 선물을 주셨읍니다.
주님의 사랑을 전하도록 귀한 선물을 주셨읍니다.
 주님의 영으로 충만하기를 간구합니다.
오늘 하루 주님을 생각하며 저에게 베풀어 주신 주님의 사랑과 헌신과 자비와 긍휼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거룩한 산제물로 주님의 영광이 되도록 귀한 선물을 차고 넘치도록 부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 모든 영광을 드립니다.
저의 감사와 영광을 받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16년 12월 24일 토요일

성탄절에 드리는 기도


긍휼의 여호와 하나님
 
오늘은 주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입니다.

진노의 자녀인 저희들의 죄를 위해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사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망으로부터 부활하시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시고 지금도 저를 위하여 주무시지도 졸지도 않으시고 저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주님께 모든 영광을 드리며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그 어떤 날보다 주님을 생각하며 기뻐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주님을 싫어하고 미워하여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예수님을 단지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굴뚝으로 기어 들어와 선물을 주는 빨간 모자와 빨간 망토를 입은 산타 할아버지로 바꿨으며, 서로 서로 선물을 주고 받으며 세상향락을 먹고 마시며 즐기며 세상에 취하는 하루로 전락을 시켰읍니다. 또한 주님을 믿는 자들도 저들과 같이 동요되어 이런 세속적인 것들에 영향을 받아 주님의 모습을 올바르게 보지 못합니다.  

주의 인자는 영원합니다. 저희들에게 주님의 긍휼을 베푸소서.
 

주님께서는 진노의 자녀들을 살리시려고 이 땅에 빛을 비추셨읍니다.
진노의 자녀에게는 영원한 불못의 형벌이 있는 깊은 어둠의 사망이 기다리고 있읍니다. 그런 어둠 가운데 있는 진노의 자녀를 살리시기 위해서 주님은 빛으로 오셨읍니다. 너무나 밝아서 죄인인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거룩한 빛을 이 땅에 비추셨읍니다사망의 캄캄한 어둠 가운데 있던 저희들에게 빛을 비추사 그 빛 가운데 거하는 자들에게 구원을 베푸사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주셨읍니다 

주의 인자는 영원합니다. 저희들에게 주님의 긍휼을 베푸소서.

 
주님께서는 진노의 자녀들을 살리시려고 말씀으로 이 땅에 오셨읍니다.
말씀안에는 주님의 사랑과 열정과 긍휼과 용서와 공의의 심판이 있읍니다. 말씀으로 주님은 온 땅의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하셨읍니다. 말씀으로 주님은 저희를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단 하나뿐인 특별한 개성을 지닌 아름다운 피조물로 지으셨읍니다. 말씀안에 계신 주님을 찿기를 원합니다지혜를 주사 말씀안에 계신 주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말씀이 열리는 곳에 주님의 밝은 빛이 거한다고 하셨사오니 저희에게도 주님의 말씀이 열리게 하사 주님의 밝은 빛 가운데 풍성하게 거하도록 긍휼의 베푸소서 

주의 인자는 영원합니다. 저희들에게 주님의 긍휼을 베푸소서.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사람의 올바른 본을 보이시려고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읍니다. 죽은 친구인 나사로를 부르며 애통해 하시며 눈물을 흘리며 친구를 사랑하셨읍니다.
사람들이 사람같이 보지 않는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며 죄인을 사랑하셨읍니다.
형제들을 사랑하고 그래서 자신의 영광의 제자로 삼으셨고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시면서도 어머니를 생각하며 사랑하셨읍니다.  비록 이웃들이 자신을 참소하고 욕을 하고 채찍으로 때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였어도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긍휼의 사랑을 보이셨읍니다 

주의 인자는 영원합니다. 저희들에게 주님의 긍휼을 베푸소서.
 

주님께서는 종의 모습으로 섬기려고 이 땅에 오셨읍니다.
저희가 주님을 섬겨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주님은 몸소 종의 모습으로 저희를 섬겨 주셨읍니다. 
병든 자를 치료하시고, 귀신들린 자를 낫게 하셨으며, 억울한 자들의 억울함을 해결하셨읍니다가난한 자들을 먹여 주셨으며, 사망의 냄새가 나는 죽은 자를 살리셨고, 말씀으로 진리를 가르치시고, 세상이 정한 죄와는 사뭇 다른 하나님께서 정하신 죄가 무엇인가를 우리로 깨닫도록 하셨읍니다.  종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을 따라 주님의 나를 낮추는 겸손함을 배우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욕심이며 교만함이라는 것을 주님은 우리들에게 가르치셨읍니다 

주의 인자는 영원합니다. 저희들에게 주님의 긍휼을 베푸소서.

 
주님은 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십니다.
성경에 이른대로 곧 다시 오실 왕의 왕이신 주님을 기다립니다.
그 날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매일 매일을 주님과 동행하며 신부로서 언제든지 다시 오실 신랑이신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기를 원합니다 

주의 인자는 영원합니다. 저희들에게 주님의 긍휼을 베푸소서.

 
제 안에 계신 주님의 영이신 성령님 저를 도우소서.  
천성은 우리가 생각하듯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왔올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의 인자는 영원합니다.
저희들에게 주님의 긍휼을 베푸소서.
긍휼의 주님. 저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6년 12월 17일 토요일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8:26-27)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의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세상 모든 사람의 특징 중의 하나가 수많은 경우에 간구를 한다.

갑자기 닥친 죽음의 공포앞에서, 절망 가운데 빠져 있을때, 나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을때, 당한 일이 너무나 억울할 때, 그 어떤 것에 나를 도와달라고 간구를 하며 위안을 가지려고 한다.

본문의 말씀은 올바른 간구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주님의 자녀의 가장 큰 권리중의 하나가 나의 사정을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나를 위하여 간구하신다라는 이 말씀을 많이 들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자.
첫째는 성령께서는 연약한 나를 도우시며, 둘째는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며, 셋째로는 성령께서 나를 위하여 탄식함으로 간구를 하신다는 것이다.


첫째, 연약한 나를 도우시는 성령
우선 내가 인정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은 연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육신적으로 영적으로 연약하다.
육신적으로 나는 깨어지기 쉬운 그릇과도 같다.
건강한 듯 생각하지만 실은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만나 깨어질 지도 모른다.
나의 마음은 어떠한가?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마음이 흔들리며 두려워 하고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음속에서는 죄라고 알고 있지만, 죄인줄을 알면서도 어쩔수 없이 죄의 유혹에 넘어가는 연약한 존재이다.


전도서 6:12의 말씀과 같이 우리의 행하는 모든 일들 가운데 무엇이 선한지를 모른다.
(6:12)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를 누가 알며 그 후에 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그런데도 우리는 헛된 것들에 가치를 두고 우리의 마음을 쏟음으로 때로는 얻기도 하지만 결국은 얼마못가 모두 잊혀져 버릴 것이다.
아무도 나의 연약함을 잘 알지 못하고 인정도 하지 않는다.
누가 나의 연약함을 알아 주는가주님께서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신다.
또한 주님은 나의 연약함을 대신 지셨음으로 우리는 담대하게 나의 연약함을 간구할 수 있다.
(8:17)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둘째,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어떠한 내용을 갖고 기도하는가?
대부분의 우리의 기도의 내용은 주로 나 개인의 어떤 유익을 위하여 기도한다.
이것을 해주세요. 저것은 너무나 힘이 드니 피하게 해주세요. 지금 병으로 인해 죽게 되었으니 병을 낳게 해주세요. 낳게 되면 주님의 자녀로서 열심히 주님을 섬기겠읍니다. 자녀들이 좋은 학교를 가야하니 지혜를 주옵소서. 돈을 더 벌어 떵떵거리며 살게 해주세요.
그렇게 기도했더니 기도한 모든 내용들이 응답을 받았는가?
주님의 뜻을 간구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가?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일5: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이심이라.
주님안에 온전하게 거한다면 우리의 구하는 것은 더이상 나의 어떤 정욕이나 욕심을 따라 구하지 않게 되고, 오직 주님의 마음으로 기도하며 주님의 뜻을 구하게 된다 그런 주님의 뜻대로 하는 모든 기도는 주님께서 응답을 해주신다.

마땅히라는 단어를 주목해 보자.
우리가 마땅하게 온전한 기도를 드리지 못할 것을 주님은 당연하게 알고 계신다.
주님의 뜻대로 기도를 하면 응답을 받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우리는 주님의 뜻대로 기도를 드리지 못한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 지를 마땅히 모른다. 또한 이를 주님께서 잘 알고 계신다.
내가 갖고 있는 죄에 대하여 마땅히 기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마땅하게도 나의 죄의 문제에 대하여 제대로 심각하게 기도를 하지 못한다.
죄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리하게 한다.
죄는 곧 나와의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다른 문제보다 더욱 심각한 내 안에 있는 죄의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께 매달리며 간구를 해야 하지만 우리는 마땅하게도 나의 죄의 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탄식하며 제대로 간구를 하지를 못한다.
언제 애통해하며 간구하였는가?
만일 있었다면 왜 애통해하며 간구하였는가?
나의 병 때문에, 아니면 나의 배우자 때문에, 아니면 나의 자녀때문에, 아니면 삶이 너무나 힘이 들어 애통해하며 간구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나의 죄의 문제로 인해 애통해하며 간구해보았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우리는 나의 죄로 인해 어느 정도는 애통해하며 간구하였을 것이지만 말할 수 없는 탄식함으로 기도를 해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죽을 병에 걸렸지만 기적적으로 회복되었을지라도, 억울하게 당한 것이 판명이 되었을지라도, 어려운 재정적인 압박으로부터 벗어 났을지라도 만일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면 나는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마땅히 어떻게 올바르게 간구를 해야하는 지를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실망하지 말자. 그것이 곧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본성이며 주님도 알고 계신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마땅히 제대로 간구하지 못하는 것을 잘 알고 계시기에 주님의 영이신 성령을 나에게 보내주셔서 내주하도록 하셨다. 주님께서는 나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나를 위하여 중보하시도록 하셨다. 성령께서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는 죄의 용서를 구하는 간구를 나를 위하여 대신해서 하신다.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나의 죄의 심각한 문제에 대하여 말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어쩔수 없는 나를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이 종을 살려 달라고 간구를 하신다.

셋째, 성령께서 나를 위해 탄식하시며 간구하신다.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나를 위하여 탄식하시며 간구하는 것을 느끼는가?
나의 육신에 이상이 있을 때 감지를 하듯이 나의 영 또한 내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나의 죄악으로 인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실 때 나의 영과 육은 어렴풋이나마 느낄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조그만 가시에 찔렸을때나 손가락의 손톱 주위의 살이 터서 조금이라도 갈라지면 온몸이 불편해하며 감지하지 않던가. 몸속에 조그만 암덩이가 생겨나면 느끼지 못하지만 몸은 쉽게 피곤해하며 마르고 여의어 간다. 몸이 자신의 어딘가에 이상이 있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나의 육신은 어느 부분에 이상이 있으면 신호를 보내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나의 영 역시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하겠는가.
내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나를 위하여 탄식하실때 만일 나의 영이 맑고 청결하다면 성령의 탄식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우리의 영은 탁해져 있고 죄로 덮혀 있고 세상의 소음으로 가득하 있기에 성령의 탄식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 찌들리고 육신의 말초적인 감각에 의존을 해서 나의 영은 많이 무디어져 있지만 그래도 나의 영은 나의 육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하다. 나의 영은 늘 주위를 늘 감지하고 나에게 경고하며 알려 준다. 그래서 우리의 영은 깨어나야 한다. 세상의 소음으로 가득한 곳에서 고요함 가운데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주님께 나의 영혼의 주파수를 맞추면 내 안에서 들려주시는 성령님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나의 영이 잠자고 있다면 경고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은 자명하지 않겠는가!
나의 육신은 모르지만 나의 영은 위험을 감지하기도 하여 그곳에 가지 못하도록 한다.
어떤 사람을 만날때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의 영이 상대방의 영의 상태를 알고 나에게 알려 준다.
어느 곳을 가면 오싹한 느낌이 든다. 곧 나의 영이 주위의 상태를 감지하고 나에게 조심하라고 경고를 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노래한다.
(57:6-8)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나의 영광아 깰지어다 (Awake my heart).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나의 영광아 깰지어다라고 번역이 되었지만, 나의 마음 곧 영혼의 뜻을 갖고 있어 나의 영혼아 깰지어다로 번역을 할 수 있다.  나의 적들은 나를 해치려고 그물을 준비하고 웅덩이를 파고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내 마음에 계시는 성령께서는 나의 영을 통하여 위험을 감지하도록 하시고 피할 길을 열어 주신다. 그래서 나의 영혼이 깨어야 한다. 나의 영혼이 깊은 잠을 자고 있다고 아무리 성령께서 나에게 위험하다고 말씀을 하셔도 들을 수가 없어 속절없이 위험 가운데 노출되고야 만다.

때로 우리는 기도하다가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 괜히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 하며 간구를 한다.
내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실때 나의 영 역시 감지를 하고 반응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많은 성경주석가들이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애통해 하며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방언이라고 해석을 한다. 저는 이 해석에 동감을 하며, 나의 육신이 성령의 탄식함을 표면적으로 나타내는 곳이 혀를 사용하는 방언이라고 생각을 한다.
모든 피조물은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께 감사의 표시를 한다.
나무들은 자신을 지으신 여호와를 바라보며 푸른 잎사귀를 내며 열매를 맺으며 기쁨의 소리를 발한다
동물들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자연의 법칙에 억지를 부리지 않고 순응을 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 역시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좋던 거부하던 어떤 반응을 한다.


육신 중에서 나의 감정이 표출되기 가장 쉬운 곳이 바로 혀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혀를 사용한다 
음식을 먹을 때나 말할 때나 침을 삼킬 때나 수없이 혀를 사용한다.  


아마도 몸의 많은 기관중에서 가장 바쁜 곳이 두뇌 다음에 혀일 것이다.
혀를 사용하여 우리는 악한 말, 저주의 말, 거짓말, 정욕의 말, 탐욕의 말, 정죄의 말, 포악스런 말을 한다.
하지만 같은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기도하며, 남을 위로하며, 주위를 밝게하는 따스한 말을 한다, 혀를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자들은 손짓 발짓 몸짓을 통하여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께 감사함을 표현한다.
성령께서는 그런 나의 혀를 사용하신다.
성령께서 선과 악이 공존하는 혀에 은사를 부어 주셨는데 바로 방언의 은사, 예언의 은사, 권면의 은사, 찬양과 감사의 은사를 주셨다. 많은 은사 가운데 성령께서 나를 위하여 중재하시는 통로중의 하나가 나의 혀를 사용하는 방언이라고 생각을 한다.
 (26)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고전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마땅히 주님의 뜻대로 기도를 하지 못하지만 나의 영은 방언을 통하여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께 간구를 한다.  방언을 통하여 성령께서 나를 위하여 변호하는 것이라 나는 믿는다.  방언기도는 성령님께서 나의 입장이 되셔서 나를 변호하며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를 하는 기도이다.
방언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자.
육신을 갖고 있는 우리는 어떤 것이 나의 삶에 유익이 있을 때 가지려고 노력을 하며 나에게 손해를 줄때에는 멀리하려고 한다. 나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과는 어떻게든 잘 보여 관계를 맺으려고 하지만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과는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 할지라도 멀리한다.
교회에 다니는 성도라면 방언에 대하여 들어봤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방언을 소망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이단시 하며 배척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방언이 나의 삶에 유익일 줄까 아니면 해를 끼치는가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나의 삶에 유익을 준다면 받기를 소망해야 할 것이고, 반대로 해를 준다면 버려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방언은 좋은 것이다.
영적인 선물인 방언은 나의 삶에 유익을 주면 주었지 결코 해를 주지 않는다.
그런데 왜 거부를 할까?
못하는 것이 무슨 자랑거리라도 되는가?
방언을 못하는 자들이 왜 방언을 하는 자들을 이단시할까?
물론 방언를 하지 못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을 한다.
하지만 믿는 자녀라면 당연히 방언을 간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방언은 성령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방언은 하나님께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고 하는데 성령께서 나를 위하며 탄식하며 간구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을 한다. 성령께서 방언의 은사를 주신 이유는 바로 나의 지식과 능력의 제한을 받지 아니하고 초월하여 하나님과의 대화의 관계를 맺게 한다.
방언을 통하여 영적인 세계가 열린다고 나는 믿는다.
물론 방언이나 은사들을 무분별하게 사용하여서 세상의 지탄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은사를 선물로 받은 자들은 교회에서나 모임이나 삶의 일터에서 교만하게 자신을 나타내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하며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믿음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이 방언을 한다고 하며 대단한 영적인 자라고 자부를 한다. 제발 착각하지 말자. 방언을 한다고 해서 나의 영적인 상태가 충만한 것은 결코 아니다.
방언을 하는 자녀라면 더욱 풍성한 방언의 은사를 받기를 간구해야 할 것이며, 만일 방언을 하지 못하는 자녀라면 방언의 은사를 부어 달라고 간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좋고 유익한 것을 달라고 간구하는 자에게 선물로 주실 것이다.
(7:11) 너희가 악한 자라고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고전14: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전 14:39) 그런즉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하나님 아버지
저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그저 저의 유익과 정욕을 위하여 간구를 할 뿌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간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땅하게 온전하게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저희의 사정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 저를 도우라고
주님의 영이신 성령을 저의 마음속에 내주하시도록 은혜를 베푸셨읍니다.

제 안에 계신 성령께서 저의 죄의 문제에 대하여
저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함으로 중보를 하십니다. 
저는 제가 갖고 있는 죄의 심각성에 대하여 마땅히 잘 알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관계의 단절을 가져오는 죄에 대하여 무지하며 무감각해 있읍니다.
저의 영혼을 꺠우소서.

주님의 생명의 호흡으로 저를 새롭게 하옵소서.
죄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을 하여 죄로부터 자유를 누리기를 간구합니다.
저희 영혼이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도록 성령이여 은혜를 베푸소서.

성령님께서 탄식하시면 하실수록
저의 영혼은 주님 앞으로 점점 더욱 가까이 갈 것을 확신합니다.
저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시는 성령님의
임재함을 환영하며 마음껏 저를 인도하옵소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은
하나님께서 제게 베푸시는 최상의 호의이며 말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