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30일 일요일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제목: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66-70)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주님을 떠나 갈 곳이 있습니까?

 

(66)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후에 사람들이 자신을 왕으로 세우려 하자 그들을 떠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자신은 생명의 떡이니 영생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사람들과 제자들은 이해할 수 없어 걸림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은 주님을 떠납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는 수많은 관계가 있습니다. 많은 이유로 만남과 헤어짐이 이루어집니다. 좋은 인연으로 남기도 하고 악연으로 남아 나쁜 기억이 남기도 합니다. 위기의 순간에 서 있는 곳에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잘 나갈 때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간이라도 빼줄 것 같이 헌신하며 교제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좋지 못한 일로 힘들게 되었다면 많은 이들은 그를 떠나 관계를 끊습니다.

많은 이들이 주님을 떠납니다. 주님을 떠난 이유도 갖가지입니다.
한때는 교회에 다녔지만, 지금은 교회를 떠나 세상의 일에 분주하여 주님을 생각할 시간도 여유도 없습니다.

연약한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만을 바라봐야 하는데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Covid-19으로 인해 교회에 가지 않고 on-line으로 예배를 1년 넘게 드렸더니 아예 교회를 떠난 이들이 많습니다.

또한, 본문과 같이 주님을 육신적인 만족을 채워줄 분으로 섬겼기에 그것이 안 된다고 생각이 되면 떠납니다.
주님께서 굶주린 많은 이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그런 주님을 보고 주님이 자신의 배고픔을 해결하실 분으로 알고 주님을 왕으로 세우려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은 생명의 떡이며 이 떡을 먹어 영생하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육신의 배고픔을 채워주러 이 땅에 온 것이 아니고 영을 살리기 위한 생명의 떡으로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6: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스라엘이 광야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매일 아침에 만나를 내려 주셔서 먹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만나를 먹었어도 결국은 죽었습니다. 주님은 이것을 지적하십니다. 아무리 맛있고 영양가가 많은 음식을 잘 먹어도 사람은 시간이 차면 죽으니 영생하도록 영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영을 살리는 영의 만나를 먹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영의 양식을 먹기보다는 육의 양식에 더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서로 좋은 것을 먹으려고 아등바등하기도 합니다. 그런 이들에게 주님은 자신은 육의 양식을 주러 온 이가 아니라 영의 양식을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하자 예수님을 떠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양식을 먹는 것보다 눈에 보이고 자신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육의 양식에 관심이 있어 영의 양식을 먹으라는 예수님을 자기 생각과 뜻과는 맞지 않아 예수님을 떠나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교회를 떠난 이들은 주님이 자신의 영을 살리는 구주로서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생명의 양식을 먹지 않으면 주님을 떠나게 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67) 너희도 가려느냐
하나님은 우리의 의견을 존중하십니다. 그래서 잘못된 선택을 하여 죄악의 길로 가지만 죄악을 후회하며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십니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주님을 떠나는 것은 나의 의지요 선택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함은 나의 몫이며 주님의 지키시는 축복이 임합니다.

 

성경을 보면 많은 곳에서 우리의 순종하며 여호와를 섬기면 축복을 주시겠다고 조건부 축복의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음을 봅니다.
(23:25-26)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희 날 수를 채우리라

또한 여호와의 말씀을 분순종하면 저주가 임함을 말씀합니다.

(28: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우리의 순종과 불순종은 나의 선택이요 의지입니다. 그에 따라 축복 아니면 저주가 임하게 됩니다.



(68)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리이까
아마 베드로는 자신의 인생을 주님께 걸었을 겁니다.
어부로 잔뼈가 굵었지만, 주님께서 부르실 때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 후로 그의 인생은 전적으로 변화를 받아 주님이 그의 인생 전부가 되었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너도 나를 떠나려느냐’ 질문을 받았을 때 베드로는 ‘우리가 주님을 떠나 누구에게로 가리이까’ 답변을 합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떠난다면 갈 곳이 있습니까? 더 좋은 곳이 있습니까?
주님과 함께하는 신앙생활보다 세상에 파묻혀 사는 것이 더 좋습니까?
주님을 떠난 삶은 곧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에 파묻힌 삶을 의미합니다. 세상 안에서 평안을 가지려 하고 안심을 가지려 하고 위안을 얻으려 합니다. 또한, 자신의 그릇된 자아로 가득하여 다른 이들을 품을 이해심도 아량도 없습니다. 그래서 삭막한 삶을 살게 됩니다.

세상에는 물론 아름다운 곳이 많이 있습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움도 있으며 또한 인위적으로 만든 아름다움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보려고 여행을 다니며 눈의 호강을 삶의 여유를 누리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창조 작품이기에 아름답습니다수많은 꽃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전합니다. 바위 사이에 있는 풀들도 바람에 흔들거리며 조화를 이룹니다. 지저귀는 새들을 보며 평화를 느끼며 쏟아지는 폭포를 보며 깊은 계곡을 보며 자연의 웅장함에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지어진 사람들도 자신의 창의력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냅니다. 음악, 미술, 과학, 학문 등을 보며 인간의 능력의 경이로움을 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님을 떠나 자연이나 인위적인 아름다움에 파묻혀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런 아름다움에 취해 그 안에만 머물러 있다면 잠시 후에 다가오는 마지막 숨을 쉬고 결코 가기를 원하지 않았던 곳에서 영생하며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품 안에 있는 인생이 참으로 복된 인생입니다.
삶이 가난하거나, 혹은 중병이 들었거나, 혹은 다른 이들로부터 업신을 받아도 그 사람 안에 주님이 주신 생명의 떡을 먹어 영생을 보장받은 이는 잠시뿐인 인생의 곤고함을 견디어 내고 나면 영원토록 평강이 있는 곳에서 머물게 될 것입니다.

부유하며 몸도 건강하고 하는 일도 잘 되며 그 안에 예수님의 생명 양식으로 가득한 인생이라면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세요. 이 땅의 삶도 윤택하고 또한 저 세상의 삶도 평강을 주셨으니 감사하고 또 감사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121:1-2)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다윗은 여러 번 자신의 생명을 취하려는 적들에 둘러싸여 위험에 처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서도 다윗은 자신의 생명을 구원할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하며 바라보았습니다. 다윗은 자신과 함께하여 자신을 구원할 여호와 하나님께 소망을 품고 간구합니다.

 

그렇게 전심으로 여호와를 의지하는 다윗이었지만 그도 연약하여 쓰러지기도 하며 죄악을 범하였습니다. 그런 다윗은 자신을 제발 버리지 말라고 간청합니다.
(27: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주여 저희를 내쫓지 마소서

 

다윗이 저처럼 연약하고 계산적인 성정을 가진 사람임을 감사드립니다. 그런 다윗이지만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늘 찾았으며 여호와를 찬양하였으며 여호와의 은혜를 바랐습니다. 위기가 올 때마다 다윗은 여호와의 도우심을 간구하였습니다. 죄악을 범하여 깨닫게 되면 여호와 앞에 바짝 엎드려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며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간청하며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며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51:9-12)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던 다윗은 제발 자신을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말고 버리지 말라고 간청을 합니다. 제발 저를 버리지 마소서 간구하세요. 저는 주님을 떠나갈 곳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저더러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르니 나를 떠나라 말씀하신다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69) 주는 누구신가?
(68-69)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제자들은 주님이 누구이신지를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은 영생의 주권자이시며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고백합니다. 비로서 제자들의 영의 눈이 뜨여진 것입니다. 주님을 육신의 만족을 채워주는 구주로 본 것이 아니라 육신 저 너머의 영생에 대하여 보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고 묻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사람들이 주님보고 세례 요한 혹은 엘리야 혹은 선지자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묻습니다. 주님의 관심은 세상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저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때로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물으십니다.

(8: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15)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여러분에게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지금 주님께서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시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참으로 나의 삶을 인도하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과연 주님은 나의 삶이 마치는 순간 나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까?
주님은 영생을 주는 생명의 떡이심을 믿으십니까?


(70) 한 사람은 마귀니라
(70)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주님을 믿는 자들이 모인 신앙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많은 이들이 교회에 옵니다. 온갖 형태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오는 모든 이들이 구원받은 자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그 중에는 주님을 배반한 가롯 유다와 같이 구원을 받지 못한 불쌍한 영혼들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이 곧 원치 않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 말씀합니다. 마귀는 베드로에게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주님을 막아 서며 그런 주님을 자신이 지키겠다는 그럴듯한 생각을 넣어 줍니다. 이에 베드로는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하나님의 일이 아닌 베드로의 마음이었으며 이는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는 마귀의 뜻이었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죽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권면하신 것입니다.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마귀는 믿는 자들이 넘어지도록 시험을 줍니다. 마귀가 하는 주된 일은 내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을 일을 생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아니면 나의 뜻인가를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마귀의 꾐에 넘어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 바로 나의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22:31-3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며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하라

마귀는 우리를 마구 흔들어 댑니다.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저를 넘어뜨리려 합니다. 저의 능력으로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바로 제 안에는 주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내주하시기 때문에 저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제가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저를 지켜 주십니다.

 

우리는 때로 마귀의 꾐에 넘어갑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세상의 사람들과는 다른 점이 있는데 곧 그것은 죄악을 범해 그것을 깨닫는 순간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면 주님 앞에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주님도 이를 아시기에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돌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

저를 버리지 마옵소서. 주님을 떠나 갈 곳이 없습니다.

오직 주 안에 꼭 거하기를 간구합니다.

주 안에서 누리는 평강 안에서 영생의 축복을 받아 영원토록 주님께 영광 올려 드리기를 간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