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22일 일요일

생명의 떡을 먹어라


(6:48-51)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주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신다.
영어성경에는 “I am the Bread”라고 번역되었는데 주식인 빵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이 빵을 둥글게 구었으며 빵 중심에는 구멍 하나를 내었는데 이는 빵을 절대로 칼로 자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명의 떡이라 말씀하시기 전에 주님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물질적인 풍요로움에만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과연 주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믿으면 물질적인 풍요로움의 축복이 임하게 될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을까?

흔히 성도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이 땅의 축복을 생각한다.
내가 적게 하나님께 드렸어도 오병이어의 기적이 되어 후히 되돌아 올것을 기대한다.
물론 주님의 은혜가 임하면 물질적인 축복이 임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주님은 오병이어의 사건을 통해 물질적인 풍요로움의 축복보다 더 깊은 진리를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신다오병이어의 사건 이후로 주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심을 거듭해서 강조하신다.

우리와 같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물질적인 풍요로움으로 생각한 사람들이 주님을 찿는 이유가 표적을 보고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먹고 배불렀기 때문이라 말씀하신다 (26). 이어서 물질적인 양식은 얼마못가 썩게 되지만 인자가 주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말씀하신다그러자 사람들은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보자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가르켜 주신다 (29).

그러자 사람들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임을 알 수 있는 표적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
그러면서 출애굽 때에 하나님께서 만나를 매일 주셨듯이 당신 역시 매일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줄 수 있느냐고 물어본다즉 사람들은 물질적인 관점에서 주님에게 물어보았던 것이다.

우리는 언제 주님을 찿는가?
우리 역시 주님을 물질적인 풍요로움이나 나의 어떤 필요함의 해결할 분으로서 생각하지는 않는가?
아마 대부분은 우리의 삶이 척박해지고 막막하고 해결할 방법이 없을때 주님을 찿게 된다
나의 형편이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느낄때는 주님을 찿아갈 이유를 찿지 못해 피상적으로 습관적으로 주님을 대한다.  하지만 절박한 순간이 오면 그때에 비로서 주님을 찿아 울고 불고 생떼를 쓰며 난리를 친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다보통때는 본체 만체 하다가 어떤 일이 닥치면 도와달라고 애걸하며 위협도 하며 도움을 청한다그래서 도움을 주어서 해결이 되면 언제 그랬느냐고 모른체하고 갚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그것이 인간의 본모습이지 않는가!

주님은 물질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영적인 관점에서 대답하신다.
사람들이 만나를 먹었어도 결국은 모두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을 먹게 되면 죽지않고 영생한다고 설명해 주신다자신은 생명의 떡이며 자신에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도 아니할 것이며 영원토록 목마르지 아니할 것을 말씀하신다 (35).


생명의 떡은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생각해보자.

1.     주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심을 말씀하신다.
요한복음에는 나는 …이다의 용법이 일곱번 나온다.
이는 요한복음의 특징으로서 주님은 자신이 누구이심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다.
그 중에서 나는 생명의 떡이다는 첫번째로 사용되었다.

(6:35) 나는 생명의 떡이다.
(8:12) 나는 세상의 빛이다
(10:7) 나는 양의 문이다.
(10:11) 나는 선한 목자이다.
(11:25) 나는 부활이다.
(14:6) 나는 길이다.
(15:1) 나는 참 포도나무다.

“나는 …이다”의 용법은 주님의 속성에 대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주님은 곧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며 우리는 생명의 떡이신 주님을 매일 먹어야 한다.


2.      = 만나 = 주님의 살
유대인들은 만나를 토라라고 생각하였다.
유대교사들은 토라를 “떡” “만나”로 표현했으면 만나를 토라와 동일시 하였다.
하나님은 40년동아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 머물게 하시며 매일 이른 아침에 만나를 거두게 하셨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토라를 매일 먹게 하셨던 것이다그래서 이들은 말씀 중심으로 살아 갈수 있었으며 그 전통이 내려와서 지금까지 정통 유대인들은 말씀 중심의 삶을 살려고 한다.

만나는 매일 내렸다.
백성들은 아침에 나아가 하루 먹을 양식을 거두어 들어야 했다만일 게을러저 늦게 나가면 만나는 사라져 버려 그날 굶어야 했다.

우리는 음식을 매일 매일 먹어야 한다.
음식은 나의 삶 전체에 가장 필요한 요소일 것이다사람은 음식없이 살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인 주님의 말씀을 매일 먹지 않고 참생명을 얻었다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나의 하루를 보내는가?
주님께서 말씀하신  나의 살을 먹고 나의 피를 마시라 하신 뜻은 영적으로 먹고 마시라는 뜻일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나는 세상의 것을 먹고 마시는 데 할애하며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심에는 얼마되지 않은 시간을 쓴다나는 그만큼 참음식과 참음료를 먹고 마시지를 못하는 것이다.

나의 영혼에 필요한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심에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사람들과의 관계에 사용한다그 결과 마음은 상처를 입고 사람들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고 절망감에 내 마음은 깊은 상처를 입는다깊은 상처를 입은 나의 마음은 healing이 필요하다.

우리는 세상의 물질적인 것을 얻으려고 추구한다.
하지만 세상에 속한 물질적인 것으로는 나의 영혼의 갈급함을 채워 줄 수 없다.
음악의 아름다운 선율을 들으며 마음의 안정을 취하려고 한다하지만 어떤 음악은 너무나 시끄럽고 사악하여 음악을 들을수록 내 마음은 혼돈으로 채워지며 사망의 생각으로 가득하게 된다.
아름다운 그림을 통해서 나의 마음이 아름다움으로 가득하기를 원한다잠시의 안락을 줄 수 있지만 곧 세상의 것들에 파묻히다 보면 잊혀지고 말며 무엇보다 그림속의 광경은 어느 한 순간의 허상의 세계일 뿐이다.
명예를 얻으려고 한다명예가 오래가던가얼마지나지 않으면 곧 잊혀질 허무한 것일 뿐이다.
재물을 얻으려고 한다재물이 쌓일 수록 내 안에는 욕심이 더욱 자라나며 교만과 이기심으로 가득차게 된다.
또 어떤 이들은 마약을 통하여 마음의 안식을 취하려고 한다하지만 마약은 헛된 망상의 찰라적인 기쁨만을 주며 결국은 그 인생을 철저하게 파멸시킨다.
권력을 가질 수록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더 크고 강력한 권력을 원한다하지만 어느 순간 생각지도 않은 방법으로 또 다른 영리한 대적이 자신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를 대신한다권력은 결코 오래가지 못하며 자신이 다른 이로부터 권력을 뺏고 뺏는 형태가 반복이 되며 처참한 말로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세상의 것은 결코 참 평안을 주지 못한다.
참평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찿을 수 있다
참평안을 갖기 위해 나의 마음속에는 주님의 것으로 채우고자 하는 얼마만한 열정이 있는가?
내 마음속에 내 중심적인 것으로 꽉 차있지는 않는가?
주님 중심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해야 할 일은 생명의 떡인 주님의 말씀 앞에 나아가야
한다.

겸손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말씀앞에 나아가서 말씀안에 녹아 있는 주님을 만나 주님의 살과 피를 내 것으로 먹고 마셔야 한다캐고 또 캐도 달고 부족한 오묘한 말씀의 세계안으로 들어가 보자그 곳에 마음의 안식과 평강을 누려보자말씀의 능력이 내게 임하여 의로운 의의 옷을 입고 새로운 피조물로서 매일 매일을 거듭나보자.

주님은 자신에게 오는 자에게 생명의 떡을 먹게 하시고 생명수을 마시게 하신다.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 돈 없는 자도 오라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3.     떡을 먹어라
주님은 지금도 우리가 생명의 떡을 먹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49절부터 58절까지 55절을 제외하곤 매절마다 “먹어라”하시며 강조 또 강조하신다.
광야에서 사는 사람들은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다하지만 생명의 떡이신 주님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며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소유하게 된다.

매일 매일 생명의 떡이신 주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말씀은 주님께서 원하신 거룩한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실 것이며 생명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78:24) 그들에게 만나를 비 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을 그들에게 주셨나니

하나님은 하늘 양식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하늘 양식인 주님의 말씀을 매일 먹자.
주님은 생명의 떡인 말씀을 우리에게 매일 먹으라고 거듭해서 말씀하신다.
말씀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길을 제시할 것이다.
말씀안에 있는 주님을 만나보자.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이야기가 써있는 말씀안에 들어가 보자.
참생명과 참평강이 있는 말씀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께서 생명의 떡을 먹으라고 우리에게 거듭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만큼 떡인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이 우리의 삶에는 가장 중요한 것인데도
우리는 생명의 떡이신 주님의 말씀을 먹고 마심에는 등한시 합니다.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엉켜있는 삶의 질서가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세상속에 속한 나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서 주님 중심의 삶으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늘 생명의 떡을 먹고 마시기를 참으로 간구합니다.
저의 마음에서는 원하지만 저의 육신은 세상의 소욕을 쫓아 감으로 늘 쓰러지고 실패합니다.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생명의 말씀을 더욱 더 가까이 하기를 원합니다.
말씀안에 계시는 주님을 찿아가며
주님께서 무어라 말씀하시는 지를 듣고 순종하여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다윗과 같은 인생을 살기를 원합니다.
비록 다윗도 저희와 같은 성정을 지녔기에 늘 실수하고 죄를 지었지만
그 마음 중심에는 주님께서 계셨기에 곧 죄를 회개하고 주 앞에 엎드릴 수 있었읍니다.

제 마음 가득히 주님의 말씀으로 채워지기를 원합니다.
말씀의 능력으로 변화된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저를 인도하옵소서.
주의 긍휼이 차고 넘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2015년 2월 15일 일요일

네가 낫고자 하느냐?

(5:5-9)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온갖 질병으로 우리는 힘들어 한다.
불치병으로 고생하며 삶을 마감하기도 한다병은 나의 삶에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은 병에 걸린 이유가 죄의 결과라고 믿는다그래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은 어떤 사람이 불치의 병에 걸렸다면 그를 보며 그리 못되게 굴더니 그런 몹쓸 병에 걸렸다고 하며 그 병이 원인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걸렸다고 단정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병에 걸린 이유로는 죄의 결과일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해 주신다.

(9:1-3)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가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니라.

주님은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신다.
참고로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베데스다 연못의 크기는 100m x 60m의 크기인 저수지 용도로 쓰인 연못이다.
이 연못 주위로 병이 낫고자 하는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 연못에 가끔 가다가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이 연못을 빙둘러서 온갖 병자들과 가족들이 있었으니 많은 이들이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 가운데 38년된 병자가 있었다. 38년간 가족으로부터 버림 받고 걸을 수도 없어서 매일 매일 구걸하며 목숨을 연명하던 사람이었다.낫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 베데스다 연못에서 물이 동하기를 기다리지만 정작 물이 동할 때에 누구하나 그를 도와주는 이가 없어서 물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런 그를 주님을 찿아 오셨다.
주님은 베데스다 연못가에 모인 수많은 사람중에서 38년간 병자에게 다가 오신다.
38년간 거지였으니 그의 삶의 대부분을 거지로서 산 것이다.
초라하고 남루하고 냄새나는 그를 주님은 찿아 오신다.

주님은 그에게 다가가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낫고자 하는 믿음을 갖고 있던 자에게 다가 오셔서 말씀의 대화를 열기 시작하시는 주님
아마도 그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다정한 말이며 위로의 말이었을 것이다.

주님은 나에게 먼저 다가 오신다.
부끄러운 죄로 인하여 사람을 기피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나에게 물을 달라” 하시며 대화를 시작하셨듯이 주님은 지금 역시 나에게 말씀하시면서 다가 오신다.
내가 분노에 차 있다면 사랑의 주님께서 무어라 말씀하시는지를 들어보자.
내가 절망에 있다면 소망의 주님께서 나에게 다가 오셔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지 들어보자.
내가 깊은 어두움에 있다면 빛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주님의 음성에는 거부할 수 없는 따뜻한 위로가 있다

따뜻한 말 한마디 들어 보지 못했던 38년간 병자였던 이 사람.
추위에 몸을 녹일 옷 하나 변변한 것이 없어 늘 추위에 벌벌 떨어야 했다.
먹을 것을 자신의 힘으로는 구할 수 없으니 남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먹어야 했으며 그나마 그것도 누가 갖다 주어야 했으니 굶는 날도 허다하였을 것이다자신에게 말을 거는 이도 거의 없지만 늘 듣는 말은 거칠고 무시하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가족에게도 버림받아 물이 동할 때 자신을 들고 물에 넣어줄 수 있는 사람들도 없었다버림받은 외로운 인생이었던 것이다누구하나 그를 가치있는 인생으로 생각하는 이도 없다

자존심은 버린지 오래되어 자존심이 무엇인지도 가물 가물 거린다.
물에 들어가는 꿈도 이제는 포기하였다지난 38년간 자신도 물에 들어가기를 그토록 염원하였지만 결코 자신의 힘으로는 물에 들어갈 수 없음을 이제는 안다그래서 물이 동할 때면 물끄러이 다른 이들이 기를 쓰고 들어 가는 모습들을 먼 발치에서 보며 혹 그가 나음을 입었으면 부러워할 뿐이다.

절망했다는 것은 아직 소망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절망을 넘어서 모든 것을 체념한 이 사내에게 주님은 다가 오시고 꿈을 선물하신다.
누가봐도 그는 철저하게 낙오된 인생이었으며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존엄성도 갖지 못했던 38년간이나 구걸하는 것이 당연함이 되어 버린 이 사내를 주님은 찿아 오신 것이다.
주님을 만나게 되면 내가 갖고 있던 절망은 저멀리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에 소망과 꿈과 기쁨으로 바뀌어 진다나의 불완전함은 완전함으로 회복되며 나의 자아를 되찿게 된다


나는 어떤가?
나의 상태가 38년간 지겹도록 고질적인 병을 앓았던 이 사내보다 나은가?
고질적인 병을 오래 앓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 대부분은 질병과 직접적인 간접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육신적인 질병영적인 질병.
일시적인 질병도 있지만 어떤 병은 오래된 고질적인 질병이기도 하다.

거듭남의 커다란 은혜를 받았지만 아직도 내게는 깨어지지 않은 태어나서부터 형성된 나의 자아의 틀이 자리 잡고 있다주님은 나를 잘 아시기에 내가 갖고 있는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주님은 “네가 낫고자 하느냐?”하고 물으신다.

나의 의견을 물으시는 것이다주님은 나의 동의가 있어야지만 나를 회복시키시는 고마우신 분이시다.
일방적으로 자신의 뜻대로 하시는 절대자가 아니시며 먼저 나의 의견을 묻고 내가 동의하면 나를 고치신다.
주님앞에 나아갈 때 나의 결단이 필요한 이유이다.

낫고자 결단하고 주님께 대답하자.
주님 제가 낫기를 원합니다.
저의 병든 것들을 창조때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상태대로 회복시켜 주옵소서.
주님 제가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저를 어미의 태중에서 만드시고 기뻐하신 모습대로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를 만져주옵소서.

주님은 깊은 병이 오래 들어 초라한 38년된 자를 완전한 모습으로 회복시켜 주셨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주님께서 소망이 없었던 자의 마음을 열어 놓으시며 육신적인 치유를 하셨으며 동시에 그의 영혼의 문제도 회복시키셨다.

38년간 병을 앓아 왔지만 주님께서 그를 만지심으로 영과 육의 병이 난 후에 그는 변화하였다
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이 시작되었된 것이다주님께서 고쳐 주셨다는 의미는 그의 삶 전반에 걸쳐 회복의 은총이 함께 임하였다고 믿는다주님께서는 그의 육신적인 결함만을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그가 홀로 일어나서 걸어가며 살 수 있는 은총도 함께 은혜로 주셨다고 나는 믿는다주님을 만나 축복의 은총을 입은 그는 일어나서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자유를 선물로 받았고더 이상 먹기위해 비굴하게 자신의 목숨을 연명하지않아도 되었다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힘으로 일을 하여 먹고 살수 있게 되었으며 따뜻한 곳에 잠을 청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그는 사람들이 무어라해도 주님께서 자신을 낫게 하셨다고 담대하게 사람들앞에서 증언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을 것이다.

일어나 걸어라.
주님께서 우리의 육신의 질병을 고쳐 주신다.

현대의학으로 치료할 수 있는 병에는 한계가 있다
현대의학의 능력의 한계를 뛰어 넘는 질병으로 인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가올 죽음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생명의 끝남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는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질병앞에 사람들은 절망하기도 하고불만을 표현하기도 하고또 어떤 이는 기적을 바라기도 한다그러면서 자연적으로 느끼는 것이 죽음에 대한 생각일 것이다.

병에 걸리게 되면 사람들은 낫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낫기를 열망하여 지붕을 뚫고 주님이 계시는 곳으로 내려 오기도 한다.
낫기를 열망하여 주님의 옷자락이라도 잡기를 원한다.
육신적인 질병은 그토록 낫기를 원하며서 정작 더 중요한 영혼의 질병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일어나 걸어라.
주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질병을 고쳐 주신다.
나에게는 고질적인 영적인 질병이 있다.
눈은 있지만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없다.
생각하는것이 삐뚤어져 있어 주님의 마음으로 옳바르게 생각하지를 못한다.
자아가 너무나 강하여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나타나실 여유가 없다.
참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에 내 고집대로만 할려고 한다
두 다리가 있지만 정욕의 길로 가는 것이 너무 편하여 넓은 길로만 갈려고 한다.

내 안에 있는 영적이 질병이 고침을 받아야 한다.
영적인 질병의 근원은 죄다.
(5:14) 그 후로 예수께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주님은 지금도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렇다면 일어나 걸어라.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일어나서 걸어라.
죄로부터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라.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무엇이 죄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주님과 함께 동행한다면 기쁘고 즐거운 삶으로 회복될 것이다.
주님의 회복이 임하게 되면 주님은 나의 죄악된 모습을 회복시키신다.

슬픔이 있는 곳에 이해할 수 없는 기쁨이,
죽음이 있는 곳에 다시 살아나는 생명이,
불의가 있는 곳에 거짓과 교만이 없는 의가,
절망이 있는 곳에 앞을 내다보는 소망이,
가난이 있는 곳에 많은 열매를 맺는 부요함이,
질병이 있는 곳에 나음이,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의 빛이,
다툼이 있는 곳에 불평과 불만이 없는 평강이,
미움이 있는 곳에 모든 것을 덮어 주는 사랑이,
불신이 있는 곳에 믿음이 있게 된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걸어라.
주 앞에서 일어나 주앞에서 걸어 가는 인생은 실로 축복된 인생이지 않겠는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제가 낫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손길이 제게 임하면 저의 병든 육신은 나음을 입을 것이고,
불의와 아픔과 절망과 교만과 거짓이 있는 곳에
주님의 의와 진리와 사랑과 평강이 있을 것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은 은혜로 저의 죄악된 본성을 치료해 주옵소서.
저를 회복시키사 원래의 아름다운 모습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를 원합니다.
회복되지 못한다면 매일 매일의 삶이 화가 될 것입니다.
저를 회복하옵서서.
저의 무너진 심령을 새롭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