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11일 토요일

가장 존귀한 어머니 마리아


(눅1: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이번 주는 어머니 주일로 기념하며 어머니의 수고와 눈물에 감사를 드립니다.

성경에는 많은 어머니들이 기록되어 있읍니다.
최초의 어머니인 하와, 석달된 아기를 강물에 떠내려 보내야 했던 모세의 어머니, 눈물로 기도했던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죽은 아이를 살려 달라고 선지자 엘리야에게 부탁하는 어머니, 세례 요한의 어머니.

많은 어머니 중에 가장 존귀한 축복을 받은 어머니는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일 것 입니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한 마리아는 큰 축복을 받은 분 입니다. 마라아의 영성을 본 받는 어머니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마리아는 어떤 영성을 갖고 있었는지를 생각해봅니다.

세상의 기준과는 다르다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마리아는 환희의 찬가에서 자신은 비천한 출신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흔히 훌륭하고 존귀한 사람은 가문과 부와 권세의 배경을 갖고 있읍니다. 이런 훌륭한 배경을 갖고 있지 않고 존귀한 자가 되면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표현을 합니다. 그만큼 배경이 뒷밭침을 하지 않으면 존귀한 사람이 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가문은 그다지 내세울것이 없읍니다. 그래서 눅1:27에 단지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라고 소개가 됩니다.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의 가문은 마1에 기록된대로 아브라함으로 후손인 다윗 왕의 혈통을 이어받은 명망이 있는 가문입니다. 하지만 마리아의 가문은 내 세울것이 없는 가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택하실 때에 마리아의 가문이나 학식이나 재력이나 권세를 보지않고 여호와께서는 마리아의 순결한 마음을 보셨읍니다.
(삼상16:7)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여호와께서는 내 안을 보십니다.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리아는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었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읍니다. 이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었읍니다.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은 순결한 마리아는 하나님을 매일 매 순간 느낄 수 있었읍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는 자들은 정결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택함을 받고 쓰임을 받습니다.
천국을 경험하는 어머니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

마리아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고 있었읍니다. 천사가 예수님의 잉태됨을 알려 주었을때 마라아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 들이고 의심하지 않고 믿었읍니다. 표징을 구하지도 않았읍니다.

누가 저에게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해 준다면 고지 곧대로 믿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표징을 구하며 확인을 하려고 합니다.

제사장 사가랴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서 아들 세례 요한을 낳을 것이라 알려 주었읍니다. 나이가 많이 들어 자식을 낳을 수 없었던 사가랴는 믿을 수 없어서 표징을 구합니다. 이에 천사는 증거로서 사가랴가 요한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말할 수 없게 합니다.

기드온의 예를 보면 비천한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소명을 전해 줍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형펀을 너무나 잘 아는 기드온은 의심하며 표징을 구합니다. 이에 여호와는 바위 위에 놓은 국물을 부은 무교병과 고기를 불에 타서 사릅니다. 그러자 기드온은 자신에게 소명을 맡기신 이가 여호와 임을 확인하고는 "여호와 살롬"이라고 하였읍니다 (삿6:24).

마리아는 천사가 전하여 준 지극히 높은 이의 아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안에 잉태함을 그대로 믿었읍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읍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현실을 생각하지도 않았으며 근심도 하지 않았읍니다. 마리아의 인생에서 갸장 큰 역동적이며 감동적인 고백이었을 것입니다.

(39) 빨리

빨리는 마리아의 흔들리지 않은 믿음의 행동이었읍니다.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빨리"라는 단어가 없어도 이 구절을 이해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읍니다. 하지만 성경은 구태여 "빨리"라는 단어를 삽입함으로 마리아의 흔들리지 않은 믿음을 표현합니다.

그 당시에 혼인한 여인이 간음을 하다 잡히면 돌로 쳐죽이는 형벌을 받았읍니다. 마리아는 혼인을 약속한 처녀가 정혼한 자가 아닌 관계로 인한 잉태함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근심하지도 않았읍니다. 왜냐하면 그녀 안에는 성령으로 잉태된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아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천사의 계시 후에 마리아는 다른 것은 생각지도 않고 빨리 천사가 알려준 대로 엘리사벳에게로 달려 갑니다. 그리고 환희의 찬가(46-55)를 부릅니다,

마리아는 세상을 바라보지 않았읍니다. 세상의 편견에 좌우되지 않았읍니다. 마리아의 마음에는 온통 잉태된 예수님으로 가득해 있었읍니다.

어머니는 세상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존귀한 생명의 잉태의 소식보다 더욱 기쁜 소식은 없습니다. 주님을 믿는 어머니의 마음에는 참 생명이 임재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집니다.


마음에 품고

(늑2: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 천사가 나타나서 아기 예수의 탄생을 말하여 줄때 하늘이 열려 수믾은 천군 천사가 찬송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합니다. 이에 목자들은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를 찿아와서 자신들이 경험한 놀라운 일들을 전해 줍니다. 마리아는 목자들의 말을 듣고 마음에 간직합니다.

(눅2:51)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12살 난 예수는 온가족이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 갔다가 예수만 남겨 두고 집으로 돌아 갑니다. 하루 후에 예수님을 찿지 못하자 예수를 찿으러 예루살렘에 다시 올라갑니다. 그리고 예수가 성전에서 선생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봅니다. 예수의 부모는 예수에게 한참을 찿았다고 하자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까" 하며 자신의 신성을 말합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 옵니다. 마리아는 아들인 예수가 한 모든 말들을 마음에 두며 새깁니다. 마리아는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아들 예수를 생각하며 늘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

어머니들은 자식에 관하여 마음에 깊이 둡니다. 아마도 어머니의 마음을 차지하는 가장 큰 부분은 바로 자녀에 관한 일들일 것 입니다.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마음에 품었읍니다.
주님은 곧 말씀 자체이십니다. 주님을 마음에 깊이 생각하며 새기기 위해서는 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말씀안에 계시는 주님의 숨결을 듣기를 간구합니다.


고난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 예수의 정결의식을 드리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성전에서 의롭고 경건한 성령으로 충만한 시므온을 만납니다. 시므온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눅2:34-35)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게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가장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마리아 이지만 모든 일들이 평안하지만 않았읍니다. 지극히 놓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잉태함을 알고 기뻐하여 환희의 찬가를 불렀읍니다. 아기 예수가 점점 자라며 여늬 아이와는 다른 인성과 지성과 지혜가 있음을 보고 마음에는 기쁨이 가득하였읍니다. 하지만 얼마못가 마리아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모진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는 모습을 보아야 했읍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을 잘 믿으면 늘 행복하고 기쁨으로 가득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려운 일도 없고 늘 모든 일들이 순조로이 나아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일지라도 고난을 받았어야 했읍니다. 가슴이 찔리는 고통을 통과해야 했읍니다.

어머니들은 많은 고통을 통과합니다. 자녀로 인해 남편으로 인해 가족과의 관계로 인해 재물로 인해 그 외에 여러가지 이유로 마음을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을 받습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마리아를 예수님은 바라 보십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순간 고통은 사라지고 평강이 옵니다.

고난은 반드시 있읍니다. 고난 가운데서 예수님과 함께 하는 평강이 임하시기를 간구합니다.
고난 가운데 계십니까. 주님을 바라보세요. 고난 저너머의 참된 평강이 다가옵니다.


부모 공경

(요19:26-27)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자녀는 어머니에게 효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셨읍니다.

십계명의 제 네번째 계명은 부모에게 순종하라 입니다. 첫번째 두번쨰 그리고 세번째 계명은 하나님에 관한 계명입니다. 그리고 네번째로 부모에 순종하라는 계명을 주셨읍니다.

부모를 순종하는 자에게는 여호와는 장수의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신5:16)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마리아의 노년은 평안하였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기 바로 전에 어머니 마리아를 사랑하는 사도 요한에게 부탁하였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순교하였읍니다. 요한은 마리아가 죽기까지 어머니로서 모셨읍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은 어머니들은 삶의 평강이 임합니다.
우리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여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잘 나 보여도 나를 나주신 나이들어 힘 없으신 부모님께 순종하고 자녀의 도리를 다하며 부모를 사랑합시다. 그런 모습을 보시고 여호와께서 기뻐하십니다.


남편들에게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은 의로운 사람입니다.
(마1: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은 자신과 정혼한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을 알고 가만히 끊고자 합니다. 자신과 결혼을 약속한 사랑하는 처녀가 잉태했다고 하니 얼마나 괘씸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었겠읍니다. 요셉이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서 잉태된 아이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된 자이며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 알려 줍니다. 요셉은 이 후에 마리아를 데려왔지만 아이를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고 돌보아 주며 보호합니다.

마리아에게는 의로운 남편 요셉이 있어 마리아를 지키고 보호하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읍니다. 존귀한 마리아에게는 존귀한 남편이 있읍니다.

모든 남편들은 자신의 아내를 돌보고 지키고 보호해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이번 주는 어머니 주일로 기념하며 보냅니다.
저를 낳으시고 기르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감사함을 드립니다. 어머니의 희생적인 숭고한 사랑이 있어서 제가 오늘에 이를수 있었읍니다.

말씀을 통하여 무조건적인 순종을 배우기를 간구합니다.
마리아는 천사가 잔헤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잉태 소식을 듣고 주변의 상황에 전혀 개의하지 않고 기쁨으로 받아들이며 생명의 환희의 찬가를 부를 수 있었읍니다.

주님의 어머니 였지만 마음을 찌르는 고난을 겪어야 했읍니다. 우리 역시 이 땅의 여정을 가면서 저희의 마음을 찌르는 고통의 시간들이 있읍니다. 주님께서 주신 인내로 견디어 내며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천국의 기쁨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고결하고 순전한 마리아의 영성을 배우며 주님을 늘 품에 안고 살아가도록 저의 삶을 인도하시며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9년 5월 5일 일요일

끊이지 않는 등불

(출27:20)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 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


여호와께서는 광야 생활을 시작하면서 성막을 만드십니다. 그리고 성막 안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읍니다. 지성소에는 여호와의 임재를 의미하는 언약궤가 있읍니다. 그리고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는 휘장이 쳐져 있읍니다. 이 휘장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때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읍니다. 성소에는 세가지의 성물이 있읍니다. 진설병을 올려 놓는 떡상, 향을 사르는 분향단 그리고 일곱 촛대가 있는 등대가 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성소에 있는 등대에 순수한 감람유로 만든 기름으로 등불을 밝히고 끊이지 않도록 명령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광야의 길을 가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순결한 기름으로 성소에 있는 등불을 끊이지 않고 항상 켜놓으라 명하십니다.


순결한 기름
(레24: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불을 켜기 위하여 감람을 찧어낸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여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

등잔불을 켜기 위하여는 기름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공교하고 아름다운 등잔이라도 기름이 없으면 불을 켤 수 없읍니다. 언제라도 등잔을 밝히기 위해서는 기름이 항상 준비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열처녀의 비유를 들며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시며 기름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마25:1-3) 그 떄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이하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괴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놓고 함께 가져갔더니

열 처녀 가운데 다섯은 미련한 자요 다섯은 슬기로운 자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미련함과 슬기로움의 기준은 세상에서 말하는 기준과는 사뭇 다릅니다. 주님의 나라에서 미련함과 슬기로움의 기준은 세상의 재물이나 권세나 지식이나 명예가 아닙니다. 단지 기름이 준비되어 있으면 슬기로운 자요 기름이 없으면 미련한 자라고 합니다.

미련한 자는 등불에 쓸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자를 말하며 슬기로운 자는 등불에 쓸 기름을 준비한 자를 말합니다.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등불의 불을 밝혀야 하는데 기름이 없으면 등을 갖고 있다하더라고 불을 밝힐 수 없읍니다. 등불을 밝힌 자들만이 혼인 잔치에 들어가서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읍니다. 만일 내게 기름이 없어 등불을 밝힐 수 없다면 비록 등을 갖고 있지만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없어 성문 밖에서 슬퍼서 이를 갈고 원통해 할 수 밖에 없읍니다.

천국은 지식이나 명예나 권세나 재물로 가는 곳이 아닙니다. 가진 것 없고 곤고한 삶을 살지라도 그 사람 안에 등불을 밝힐 기름이 준비되어 있으면 슬기로운 자로서 천국을 소유한 자입니다.

기름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믿는 자에게 성령의 기름이 준비되어 있으면 그는 슬기로운 자이며 신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합니다. 그렇지만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성령의 기름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그는 신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없읍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성령의 기름이 준비되어 있는지를 항상 살펴 보아야 합니다. 나의 마지막이 언제 임할 지를 저는 알 수 없읍니다. 갑자기 세상의 마지막을 맞이 할 때 내 안에 성령의 기름이 없으면, 저는 아무리 교회에 규칙적으로 열심히 나갔어도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읍니다. 주님은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하십니다. 주님의 자녀됨을 인정받지 못한 자들은 신랑의 혼인 잔치에 참여 할 수 없어 성 밖에서 이를 갈며 슬퍼할 수 밖에 없읍니다.

성령의 기름으로 내 마음의 등을 항상 켜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빛의 자녀로 살아가야 합니다.
떄로는 좌절과 실패와 슬픔을 경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믿음을 버려서는 않됩니다. 그럴수록 어려운 광야길을 가는 동안 나와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는 야훼 주님의 임재에 감사하며 끊임없이 주시는 성령의 기름으로 내 안의 불을 환하게 비쳐야 합니다.

내 안에서 성령의 불이 지속적으로 비추어 준다면 우리는 고난의 광야길에서 주님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생수를 주시고, 만나를 주시고,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지키시는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고 불평만 하다가는 주님의 임재를 느낄 수 없어 결국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됩니다.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신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기름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등을 밝힐 기름이 준비되었읍니까?

순결한 기름은 이렇게 얻어집니다. 우선 잘 익은 olive들을 수확해서 고루 고루 빻습니다. 그리고 껍질들을 걸러 내면 순결한 기름이 만들어 집니다.

껍질은 내 안에 있는 죄성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시간이 아직도 남아 있을 때에 등을 밝힐 순결한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정한 기름을 드리기 위해서는 내 안에 있는 죄의 껍질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갈5:19-21에서 성령의 열매와는 반대가 되는 육체에 속한 성품들을 언급합니다. 이러한 육체에 속한 죄성들을 빻아내야 합니다.

(갈5:19-21)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와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내 안에 자리잡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게 하는 불순한 죄성들을 빻아 걸러내어 성령의 도우심으로 순결한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불순불들을 성령의 물로 씻김을 받고 성령의 불로 태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정결한 기름으로 주님께 드리는 둥을 켤 수 있읍니다.


등불을 켜되

순결한 기름으로 붙여진 등불은 성막 안을 환하게 비춥니다. 어둠을 비추며 감추어진 것들을 드러내는 빛은 주님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빛이라고 요8:12에서 선포하십니다.
(요8: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구약에는 아론의 혈통을 받은 자손들만이 성소 안의 등불을 밝힐 수 있었읍니다. 하지만 에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 후에는 주님을 믿는 자녀들은 모두 제사장이 되었읍니다. 주님의 인침을 받은 주님의 자녀들은 제사장이 되었기에 등불을 밝혀야 합니다. 우리는 등불을 밝혀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빛이 비쳐지는 곳에 어둠은 물러갑니다. 빛으로 충만한 주님의 자녀들이 있는 곳에는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빛 가운데서 행하세요.
(요일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모든 죄에서 사함을 얻은 자들은 빛 가운데서 행하여야 합니다.


끊이지 않고

등불의 불은 꺼지면 않됩니다. 끊임없이 등잔의 불은 사방을 밝혀야 합니다.

광야길을 가면서 무엇이 중요합니까?
곡식이 많은 것이 중요합니까? 곡식이 창고에 많아서 다 먹지 못하면 그 곡식은 결국은 썩습니다.
집이 큰 것이 중요합니까? 비록 남루해 보일지라도 밤에 두 발을 쭉벋고 편히 쉴 장막이 있으면 충분합니다. 좋은 차가 중요합니까? 좋은 차가 없어도 이곳 저곳을 다니기에는 건강한 두 다리로 충분합니다. 금은이 있어야 합니까? 금은은 없어도 사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광야를 지나면서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광야를 갈 수 없습니다. 광야 길에서 저와 동행하시는 주님을 만나세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나를 버리는 훈련입니다. 나를 버림은 곧 나의 뜻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나의 자아의 겸손함을 배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듯이, 나 또한 주님을 위하여 죽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죽여야 합니다.

나는 죽고 주님께서 사신 광야길.
야훼이신 주님과 함께 하는 광야 길에는 주님의 축복이 있읍니다.
생수를 마시고, 매일 필요한 생명의 떡인 주님의 말씀을 먹으며, 구름 기둥으로 불 기둥으로 지켜 주시는 길에 옷과 신발이 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광야길을 축복으로 인도하시는 야훼이신 주님의 은총으로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기름으로 충만하여 끊임없이 어둠을 밝히시기를 축원을 드립니다.
광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주님과의 동행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연단과 고난의 광야 가운데 있지만 저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잠잘 곳을 예비하시고 주님을 바라 볼 수 있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들 드립니다.

어둠 가운데서 길을 훤히 비추는 등잔의 불이 끊어지지 않기를 간구합니다.
광야 길을 가는 동안 주님의 임재를 더욱 깊이 느끼기를 간구합니다.
광야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더욱 알기를 원합니다.
광야를 가며 참된 저의 모습을 보게 하소서.

저의 눈을 열어 주옵소서. 방황하지 말고 불평과 불만하지 않게 되기를 원합니다. 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빛의 자녀로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만을 바라보기를 간구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에서 저를 십자가에 내려 놓는 훈련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저와 항상 함께 하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법을 깨닫도록 인도하옵소서.

오늘도 저를 광야 길로 이끄시니 감사합니다 .
야훼이신 주님께서 저와 함께 하신것 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