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9일 일요일

마침 광풍이 내리치매

(눅8::22-25)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이 말씀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도 기록되어있다
(8:23-27)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4:35-41)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이 세 말씀을 종합해보자.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셨다.
마침 광풍이 닥쳐 와서 사나운 물결로 인해 물이 배 안에 가득하였다. 배가 좌초될 위기에 빠졌다.
예수님께서는 깊이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은 무서워하였다.
제자들은 곤히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깨웠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죽게 되었으니 살려 달라고 예수님께 간청을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 어찌 무서워하며 두려워하며 믿음이 없느냐고 꾸짖으신다.
예수님은 바다와 바람을 꾸짖으시며 잠잠하고 고요하라고 명령하신다.
바람이 그쳤고 바다는 아주 잔잔하여졌다.
제자들은 놀라서 바람과 바다를 순종시키시는 예수님을 심히 두려워하게 되었다.


(23)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광풍은 예고된 것이 아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가 있는 호수 한 가운데에 마침 광풍이 내리쳤다. 광풍으로 물결이 사납게 일어 물로 가득찬 배가 이리저리 마구 흔들리며 배에 탄 이들을 정신없게 만든다. 만일 광풍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결코 배를 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역시 살면서 전혀 생각하지 못한 때에 견디기 어려운 환난을 만난다.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 너무나 힘든 상황을 직면한다. 심한 파도와 바람으로 이리 저리 마구 흔들리며 죽을 것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나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들을 만난 것이다.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마치 나를 돌보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낀다.



(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4:38)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제자들은 자신들이 위험 가운데 있자 왜 주님은 잠만 주무시고 계시는가 하며 주님을 깨워 우리가 죽게 된것을 돌보지 아니하십니까?” 하며 주님께 하소연하듯이 말한다



주님의 제자들은 나름대로 주님의 제자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밤새도록 고기 한마리 잡지 못하다가 주님이 말씀하신곳에 그물을 내리자 너무나 많은 고기가 잡혔으며, 주의 복음이 선포되며 죄 사함이 있으며 문둥병자와 귀신들린자들과 중풍병자가 나음을 입는 역사가 일어나는 곳에 주님과 함께 한 제자들이다. 주님과 함께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런데 큰 위험에 직면하자 현실을 바라본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탄 배에 함께 계시는 데도 불구하고 죽게 되었다고 호들갑을 떨며 곤히 주무시고 계시는 주님을 깨워 살려 달라고 간청을 한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타셨기에 그 배는 결코 침몰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예수님께서 하셔야 일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배가 뒤집혀 버릴 것 같은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와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예수님께서 함께 배 안에 계셨지만 자신에게 닥친 현실만을 바라본 것이다.
주님은 그런 제자들을 보시면서 어찌하여 믿음이 적냐고 물으신다.



나 역시 살면서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갑작스럽게 만났을때 초죽음이 되어 주님께 살려 달라고 간청을 하지 않았던가. 우리 대부분 나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었던 일들을 겪지 않았던가. 혹 지금 그런 일들을 만났는가? 병에 걸려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살려 달라고, 재정적인 압박에 풍족한 재물을 달라고, 자식의 일로, 형제간의 일로, 사람들과의 관계의 어려움으로 죽게 되었으니 주님께 제발 살려 달라고 간구하지는 않는가? 
불안하고 근심하며 무서워하며 주님 저의 도움이 어디에서 옵니까. 지금 주무시고 계십니까.  어찌하여 저의 형편을 돌보지 않으십니까. 제가 지금 죽을 것 같은 고통 가운데 있읍니다. 저를 살려 주세요하며 간청을 할 것이다.

그렇게 안절부절하는 나를 보시면서 주님께서는 분명히 너는 어찌 그리 믿음이 없느냐. 내가 너와 함께 하는데 너는 왜 그리 두려워하는가. 나의 사랑하는 자녀야 너는 두려워 하지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하시며 분명하게 말씀하실 것이다.

(24) 예수께서 잠을 꺠어
그런데 주님의 자녀들은 반드시 주님께서 주무시는 것과 같은 침묵하시는 기간을 통과해야 한다.
지금 광풍이 몰아치는 아무도 없는 광야의 길을 가고 있는가?
주님 왜 제게 이런 일들이 있읍니까? 주님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마치 여호와께서 주무시며 내가 홀로 있는 것같은 느낌이 들며 주님께서 나를 버렸다고 생각이 든다.
우리와 같은 부침이 있는 삶을 살았던 시편기자는 이렇게 여호와께 고백을 한다.
(10:1)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시44: 23-26)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 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주님께서 침묵하시는 이유는 반드시 있다.
곧 나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다.
침묵의 기간을 통해서 나의 잘못된 죄악의 모습을 되돌아 보게 하시며 또한 침묵의 훈련을 통해서 나를 더욱 주님을 알아가는 깊은 영적인 존재가 되도록 훈련을 시키신다.



나의 눈에는 여호와께서 침묵하시는 듯 하지만 주님은 결코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나를 인도하신다.
(121:3-4)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한가지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데도 제자들이 탄 배에 심한 광풍이 내리쳤다. 그것도 배에 물이 가득차서 거의 파선할 지경에 이르기까지 광풍은 몰아쳤던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광풍을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본문의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 배에 나와 함께 하실 지라도 광풍은 내리 칠 수 있다고 말씀을 한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교회가 늘 잔잔하던가?
열심히 교회에서 헌신하며 주님을 사랑하는데 근심이 없을까?
주님께서 나와 항상 함께 하시는데 나는 늘 고요하고 평온한가?
주님께서 나의 이웃에게도 함께 하시는데 그들은 늘 바람도 없이 걱정도 없을까?
광풍이 내리치는 가운데서도 마구 흔들리는 배 가운데서 평안히 주무시는 주님.
나도 광풍 속에서도 편히 잘 수 있는 주님의 평강의 마음을 늘 갖기를 간구한다.
어찌보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심한 광풍은 한참후에 뒤돌아 보았을때 기억에도 가물 가물한 지극히 적은 부분일 수도 있다.  너무 안절부절거리며 호들갑 떨지 말자. 담대하자. 두려워하지 말자.

주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


주님께서 내 안에 함께 계시는데 무얼그리 걱정하며 근심하랴.
주님께서 우리에게 늘 말씀하시듯이 두려워 하지 말자. 어떤 상황에서든지 기뻐하며 감사와 모든 영광을 주님께 드리자.  나를 살리시려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십자가에 내어 드린 가장 친한 친구이시며 나의 사랑하는 왕이신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지 않던가. 
마침 광풍이 내리치지지만 그곳에는 주님도 나와 함께 하신다.
비록 주님께서 주무시듯이 잠잠하시듯 하시지만 그렇지만 주님은 결코 주무시지 않으신다. 주님께서는 나의 잘못된 것들을 고치시고는 결정적인 순간 나를 도와 순식간에 바람과 파도는 잔잔하여져서 나는 다시 안전한 포구를 향한 인생의 항로를 갈 것이다.


(25)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나는 주님을 어떤 주님으로 알고 있는가? 단지 사랑의 주님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는가?


자연을 복종시키는 예수님을 두려워 해야 한다.
흉용하게 뛰노는 바다와 바람을 보시며 예수님은 꾸짖으시며 잠잠하라 명령하신다.
그러자 그토록 배를 삼킬듯이 흔들어대던 바다와 바람은 아무일이 었었듯이 즉시로 잠잠해 졌다.
바다와 바람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한 것이다.



(8:26)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잠잠하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바람과 바다.
권위의 말씀앞에 순종하는 광풍. 그토록 흉융하게 뛰놀던 광풍이 주님의 말씀 앞에 잔잔하여 진 것을 제자들은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런 주님을 놀라서 두려워할수 밖에 없었다.



나는 어떤 주님을 보았는가? 나는 어떤 주님을 알고 있는가?
성경에는 말씀으로 자연을 복종시키시는 주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자연을 복종시키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한 분 뿐이시다.







지금도 우리는 자연의 위력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몰아치는 폭풍우를 제지할 수도 방향을 바꿀 수도 없다.
몇년전에 갑자기 들이닥친 쓰나미를 멈출수 없어 그저 속수무책으로 덥쳐오는 물결에 휩쓸릴 수 밖에 없었다.  지진으로 마구 요동히는 땅을 억제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다.
뜨거운 화산재와 용암으로 흘러 내리는 화산의 활동을 멈출수 없다.
과학이 발달하였어도 자연의 몸부림에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캄캄한 밤에 밖을 나가 하늘을 바라 보라. 얼마나 많은 은하들이 있으며 각각의 은하에는 얼마나 많은 별들이 있는가.  지름이 크고 아무리 해상력이 뛰어난 망원경으로도 별의 수를 셀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하늘의 극히 일부분만을 보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는 얼마나 크고 깊고 넓고 광대한지를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우리의 지식의 한계 저너머에 계신 하나님의 지식의 광활함.
산과 바다와 별들과 해와 달을 창조하신 창조주.
땅과 바다에 사는 수많은 각각의 생명체를 지으신 주님.
그런 주님을 경외함으로 두려워하는가?



그런데 우리는 모든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주님을 너무나 과소평가를 하며 함부로 대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일이 잘 안될때 ‘Oh my god’하지를 않나 때로는 ‘jesus’하며 욕을 해댄다.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주님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는 것이다. 만일 자신이 함부로 말하는 주님이 어떤 분이심을 제자들처럼 두 눈으로 직접 보았더라면 결코 그렇게 함부로 말하며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님의 실체를 만난 주님의 제자들은 비록 주님을 친구처럼 형제와 같이 가까이에서 함께 하였지만 자연을 복종시키시는 주님을 보고 두려워하며 경외할 수 밖에 없었다.



제발 주님의 이름을 망령되지 부르지 말라.
주님은 자연을 복종시키시는 창조주이시며 모든 주권을 갖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주님의 이름은 너무나 귀한 이름이다귀한 이름을 바로 내게도 주셨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는 모든 상황 가운데서 건져주시고 높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91:14)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주님께서는 나를 어제부터 영원토록 나를 지켜 보고 계시며 나의 상황을 아시고 바꾸신다. 주님의 선하신 뜻대로 주님께서는 ‘잠잠하라’하시며 내가 지금 처한 환경을 바꾸실 것이다. 그런 주님을 우리는 경외하며 두려워하며 섬겨야 할 것이다.
자연을 복종시키시는 권능의 주님.  주님 앞에 우리는 무릎을 꿇고 두려워하며 경외하여야 한다.
주님은 창조주이시며 모든 주권을 갖고 계신 통치자이시다.


본문의 말씀과 일치하는 상황이 시편에 기록이 되어 있다.
(107:23-31) 배 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서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라.
시편에 기록된 말씀과 같이 비록 광풍을 만나 정신이 혼미하여 비틀거리며 혼돈 가운데 있는 고통 가운데서도 주님께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광풍을 잔잔하게 하사 내가 바라는 평안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을 가르쳐 주신다.
항구는 내가 가고싶은 곳인 천국이다.
나는 천국을 가기를 소망한다. 천국을 가기를 소망하는 내가 때로는 내리치는 광풍을 만났을 때에도, 주님께서는 바다야 바람아 잠잠하라 하시며 나를 건지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심을 나는 믿는다.



기적을 베푸시는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기적을 베푸시며 나를 인도하신다.
광풍이 몰아치는 가운데서도 기적적으로 나를 지키시며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축복이 늘 함께 임하시기를 간구를 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때로는 인생의 뜻하지 않은 광풍를 만나 배에 물이 가득하고 마구 흔들릴 때에 제가 죽게 되었는데 주님은 잠만 주무시고 계시냐고 따지기도 하였읍니다 어려움의 고통으로부터 저를 살려 달라고 떼를 쓰고 울며 불며 간청을 하기도 하였읍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저를 보시면서 너는 왜 두려워하며 무서워 하는가 하시며 저를 덮치는 성난 바람과 파도를 향하여 잠잠하라 명하셨읍니다 그토록 저를 집어 삼키려는 파도가 아무일 없었듯이 잠잠해지고 제 마음에는 평강이 자리잡습니다. 이런 일들이 한 두번이 아니고 저의 삶 전반에 걸쳐 일어났읍니다.
그런 권능의 주님을 체험할 있도록 은혜를 베푸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잠잠하라 명하시는 주님을 두려워하며 기쁨으로 경외 합니다.


광풍이 내리치는 가운데서도 주무시지 않으시고 바람과 파도를 잠잠케 하시고 저를 건지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저의 마음을 다하여 저를 살리신 주님께 영광을 드리며 찬양을 합니다.
저의 간구를 늘 들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7년 3월 5일 일요일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5:17-26)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어놓고자 하였으나(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이 말씀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도 기록이 되어있는데 마가복음에 보다 상세하게 상황을 말씀한다.
(2:3-5)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내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1. (20)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 말씀에서 주목하여 볼것은 중풍병자를 메고 온 네 사람의 친구들이다. 중풍병자를 메고 온 친구들은 사람이 많아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자 포기하지 않고 지붕위로 올라가서 지붕을 뚫고 친구인 중풍병자를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달아 내린다.

Florida Orlando Holyland가 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의 생활의 모습을 민속촌과 같이 전시해 놓았다. 골고다 동산, 성막과 성막의 성물들, 제사장의 의복등을 재현해 놓았는데 그 가운데 예루살렘 성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당시의 집들은 대개 직사각형으로 돌로 벽을 만들었고 나뭇가지와 진흙으로 만든 지붕은 평평하며 지붕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예수님이 주의 도의 말씀을 전하는 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걸을 수 없는 중풍병자를 맨 네 친구들은 도무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자 한가지 계획을 한다.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뚫고 친구를 달아 내리겠다고 기발한 생각을 한다.  나의 친구를 위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라는 말씀은 세 복음서에 동일하게 기록이 되었있다.
(2: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9:2)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주님은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고치신 것이 아니라, 지붕을 뚫고서라도 예수님 앞에만 서면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시고 고쳐 주신다. 아마도 네 명 모두 귀한 믿음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한명 아니면 두명의 믿음이 있으면 된다.

백부장의 예를 보자.
신실한 백부장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종이 병이 들어 죽게 되자 그가 나을 수 있는 온갖 방법을 찿아본다. 그러다가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찿아 가서 간청을 한다. 이에 예수님이 백부장의 집으로 가려고 하자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집에 오심을 감당할 수 없으니 말씀만 하여 하인을 낫게 해달라고 간청을 한다.

(7: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7)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9-10)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주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주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종을 고쳐주셨다.
백부장의 하인이 병이 낫게 된 것은 하인의 믿음이 아니라 신실한 백부장의 믿음으로 고침을 받았다.

성경에는 기록이 되어 있지는 않지만 친구들은 주님의 큰 축복을 받았음에 확신을 한다.
주님을 만나 주님께서 고쳐주시는 사건을 직접 두 눈으로 경험하였으니 그들의 마음속에는 주님이 분명하게 새겨졌을 것이다. 비록 그 후에 주님을 배반하고 십자가에 죽게 하였을지도 모르지만 곧 회개하고 다시 주님 앞에 나아와서 육신의 연약함을 치료하시고 영혼의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안에 머무르며 생명이 다할 때까지 신실한 믿음생활을 하였을 것이다.

나를 위하여 울어줄 수 있는 친구 한명이라도 있다면 그것이 곧 축복이다.
내게는 귀한 친구들이 있는데 그들은 늘 신실한 친구이며 내가 곤고함 가운데 있을때에는 나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며 나를 보살피는 친구들이다.  주님은 나의 친구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곤고함을 고쳐주신다.

본문의 말씀과 같이 친구의 믿음을 보시고 주님은 나의 영혼과 육신을 고쳐주신다.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중보기도해 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가?
만일 없다면 주위를 살펴보아 나를 위해 진심으로 중보기도해 줄 수 있는 의인을 찿아라.

(5:15-16)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의인을 친구로 두었다면 참으로 그는 복을 받은 자이다.
그가 나를 위하여 자기 일처럼 간구하며 기도할 것이다. 그의 기도를 통하여 많은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기도만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나 또한 그 누군가에게는 그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나의 일처럼 중보기도해 줄 수 있는 진솔한 친구가 되자. 그것을 보시면서 주님은 기뻐하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좋은 친구가 있다.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나를 친구라 부르신다.
(15:12-15)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세상의 친구들은 때로는 나를 배반하기도 하고 뒤통수를 치기도 하고 이용하려고 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심으로 나에 대한 크신 사랑을 나타내셨으며 그런 주님을 따르는 자를 친구라 부르시며 영원토록 신실하시며  배반하지 않으시고 나를 지키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2. (23) 어느 것이 쉽겠느냐
주님은 우리에게 어느 것이 쉽겠느냐하시며 물으신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시기를 원하시는가?

주님께서는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을 사람들이 듣기를 원한다는 것을 아신다.  그런데도 주님은 일부로 네 죄 사함을 입었느니라말씀하신다.  그리고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일어나 걸어가라어느것이 쉽겠느냐 하고 물으신다.

우리는 어떤 것에 더욱 마음이 끌리는가?
죄를 사한다는 것은 나의 내면의 문제이다. 그리고 일어나 걸어가라는 보이는 육신의 문제를 의미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내면의 문제와 육신의 문제중에 어느 것이 더욱 중요한가를 물으신다.

영혼의 풍요로움과 육신의 풍요로움 중에서 우리는 무엇을 더욱 원하는가?
그런데 주님은 거듭해서 나의 죄의 문제를 다루신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영생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육신의 풍요로움은 잠시뿐인 영광임을 알려 주신다.

주님은 온갖 육신의 풍요로움을 모아놓은 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12:19- 20)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찿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만일 내가 불치의 병에 걸렸다고 생각해 보자.
주님께서 나를 보시면서 네 죄가 사함받았다라는 말씀과 네 병이 다 나았으니 침상에서 일어나 걸으라라는 말씀 중에 어떤 말씀이 내게 다가오는가?

아마도 네 병이 다 나았으니 일어나 걸으라하시는 말씀이 내 귀에 더욱 속속히 들어 올 것이다.
병이 기적적으로 나았다고 해서 영원하게 살지는 못한다. 언젠가는 죽으며 죄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것이다.
육신의 기적적인 나음이 지금의 내게 절실할 지라도 나의 영혼을 위해 나의 죄를 사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마음이 앞서야 할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주님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주님은 사람과 사탄은 할 수 없는 죄를 사하시는 능력과 불치의 병을 낫게하시는 능력을 갖고 계시며 그 일은 주님께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말씀하시듯이 주님에게는 쉬운 일이시다. 주님은 이를 증명해 보이셨다. 주님께서는 이 중풍병자의 사건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죄를 사하시는 능력이 있으심과 보이는 육신의 질병을 치유하시는 능력이 있음을 많은 이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이심을 두 눈으로 보아야만 믿는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이셨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주님께서는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영혼과 육신의 문제를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중풍병자를 메고 와서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뚫고 달아 내린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영과 육을 고치셨읍니다.

친구들에게는 주님 앞에만 나아가면 이 친구가 낫겠다는 믿음이 있었읍니다.
그래서 네 친구들은 무겁지만 낑낑거리며 온 힘을 다하며 메고 지붕에 올라서서 지붕을 파헤쳐서 중풍병자를 주님 앞으로 내렸읍니다.

그것을 보신 주님께서는 친구들의 귀한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의 영혼과 육신의 아픔을 치료하셨읍니다.

저도 그런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친구가 되기를 원합니다.
무겁지만 힘들지만 그럼에도 아픈 이를 위해서 지붕을 뚫는 수고를 하여 주님 앞으로 데려 가는 진실한 친구가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저에게도 아플 때에 저를 메고 저의 힘으로는 주님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저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읍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주님에게는 사람의 죄를 사하실 수 있는 능력과 우리 자신이 해결 할 수 없는 불치의 질병을 치유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심을 보이시며 하나님 아들이시며 만주의 주이시며 창조주이시며 메시야 이심을 증명해 주셨읍니다.

바로 그 주님께서 저의 마음에 성령으로 오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제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저의 연약한 영혼과 육의 아픔을 치유하시고 영생을 주셨음을 확신하며 믿는 믿음을 갖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모든 영광을 받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