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26일 일요일

올바른 교회를 세우려면


(벧전3:8-12)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1)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2) 겸손하며, (3)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같지 말고, (4)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니라.
 
 
사도 베드로는 3:1-7에서 아내와 남편이 해야 할 일을 말하고 이어서 형제들에게 어떻게 믿음의 공동체를 세워 나가야 하는 지를 권고한다..
 
형제들이 모인 곳이 어디인가? 곧 교회이다
사도 베드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르고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것을 권면한다.
 
 
A.     마음을 같이하여
(고전 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2: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힌 마음이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1.     마음을 함께 나눈다
(12:15) 즐거워 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 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12: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있는 체 말라
 
2.     존경하라
(12:10) 형제를 사랑하며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3.     서로 용서하라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4.     가식적이지 말라
(벧전1:22)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한 마음이 된다는 것은 주님의 성품을 입었다는 것이다.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오래 참으며, 겸손하며, 온유하며, 인자하며, 불쌍하게 여기며, 용서하는 것은 곧 주님의 속성이다. 한마음이 되어 온전하게 형제를 동정하며 한 마음을 품기 위헤서는 내 마음에 주님의 마음으로 가득하게 되면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길수 있을 것이다.
 
 
B.     겸손하며
한글성경은겸손하며라고 번역이 되었는데 영어성경은”humble”, ” without pride”, “be friendly minded” 혹은 “Be courteous”라고 번역이 되었다. 즉 원어는겸손예의의 뜻을 함께 갖고 있다.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에서 형제를 사랑하고 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예의”:가 있어야 한다.
나이가 많든 적든, 많이 가졌든 적게 가졌든지, 교회에서는 서로를 높이며 존경하며 모든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는 예의가 있어야 한다. 함부러 행동하며 예의없이 구는 행동은 사람과의 관계 뿐 아니라 나아가서 교회가 하나됨을 해치게 된다.
 
예의는 교회 뿐 아니라, 가정에서 일터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필요하다
예의있는 사람을 보고제대로 된 사람이라고 한다. 목사가 되기 전에, 권사가 되기 전에, 장로가 되기 전에, 안수집사가 되기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사람이 되지도 않았는데 교회의 직분자가 된다면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분란만 일으키며맡겨진 양들을 제대로 돌볼 수도 없다.
 
먼저 제대로 된 사람이 되어야 함은 교회 뿐 아니라.가정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온전한 사람이라면 그 행동도 예의를 갖추고 행동한다.
예의란 남을 배려하는 것이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상대방을 살펴 주는 것이 예의이다.
말 한마디 한마디 예의를 갖추어서 조심스럽게게 말을 해야 한다.
제발 함부로 말을 하지 말자.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예의를 갖춘 그리스도의 자녀들이 있는 믿음의 공동체에 속해 있다면 얼마나 축복된 삶인가.

 
또한 주의 자녀의 공동체인 교회에서 나를 낮추는 겸손한 마음을 갖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나 잘 잘났다고 나대면 그 곳에는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불신과 불화가 조성되게 된다.
 
교회에는 많은 지체들이 모인 곳이다.
손인 지체가 있는가 하면 눈인 지체가 있으며 발가락인 지체도 있다.
모두 제각각의 지체가 모인 곳이 교회이다
 
(29:3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C.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12:17)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딤전5: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사도 베드로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아야 하기위해서 두가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하는데  첫번째로  혀를 금해야 하고 두번쨰로 거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1.      혀를 금하라
(10)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주님의 자녀로서 주의헤야 할 것은 나의 말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하는 지를 깨달아야 한다. 내가 축복된 말을 하는지 아니면 저주의 말을 하는지를 조심해야 햔다.
 
혀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자신의 마음속에 담아둔 것이 말을 통해서 나오게 된다.
불평하는 말, 남을 정죄하는 거친말, 함부러 하는 말, 아무런 뜻이 없는 공중에 흩어지는 말악한 말, 거짓된 말, 정욕이 가득한 말
그런 악한 말 대신에 사랑이 충만한 말, 여호와를 찬양하는 말, 감사하는 말, 남을 축복하는 말을 하는 복된 입술이 되어야 한다.
그런 복된 입술이 있는 곳에는 주님의 축복과 긍휼과 자비와 사랑과 용서가 흘러 나올수 밖에 없다. 가정이나, 삶의 일터에서나, 교회에서 복된 말을 하는 축복된 주님의 자녀가 되자.
 
(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3:10) 한 입에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      거짓을 말하지 말라
(10)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4:4-5)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구원얻은 자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러므로 구원얻은 성도는 거짓을 말하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거짓은 마귀의 말이기 때문이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라고 한다.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라면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그 어느 누구도 거짓말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저 또한 거짓말을 한다. 그 대상이 바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아내에게 나는 거짓말을 한다.
성경의 믿음의 선조 가운데서도 거짓을 말한 자들이 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자기의 목숨을 지키려고 누이라 속였다.
이삭 역시 자기 아내를 자기의 목숨을 보존하려고 누이라 속였다.
야곱은 형을 속였고 아버지 이삭을 속였다.
라반은 일 잘하는 야곱을 더 부려먹으려고 야곱을 속였다.
야곱의 아들들은 요셉을 종으로 팔고서 죽었다고 야곱을 속였다.
 
왜 거짓을 말하는가?
(3:4) 사람은 다 거짖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도다 할지어다.
모든 사람은 거짓의 자녀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거짓으로 서로 속이고 속는다. 이것이 인간의 연약함이다.
(딤후3:13) .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 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거짓을 말하는 많은 이유가 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은 정직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실은 조그만 불리한 상황이 오면 자연스럽게 거짓을 말하며 선의의 거짓이라 자신을 합리화한다.
선의의 거짓말도 있겠지만, 한가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성도라면 거짓을 밥 먹듯이 자연스럽게 해서는 않된다. 거짓의 근본은 마귀로부터 나오는 마귀의 성품이요 마귀의 자녀들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거룩한 성도가 되려면 거짓에 민감하게 반응을 해야 한다.
마음에 하나님으로 가득차 있지 않으면 거짓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거짓을 말하게 된다면 내 안에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다윗은 밧세바와의 간음후에 선지자 나단이 다윗의 죄를 지적하자 이렇게 고백한다.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의 혼과 영과 골수과 관절을 쪼개는 말씀의 능력으로 내 안에 있는 온갖 거짓의 성품들을 청소해야 한다말씀으로 새롭게 되어야 한다. 성령의 능력으로 내 마음이 정직해져야 한다.
 

D.     도리어 복을 빌라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주님은 만일 누가 네 왼빰을 치거든 오른 빰을 갖다 대며, 누가 너에게 오리를 가자고 억지를 부리거든 십리를 가라고 하시며 그리고서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라 하시며 어떻게 하는 것이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것인지를 가르치셨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원수를 축복하고 기도해 준다.
주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원수까지도 품고 그를 축복하고 기도해 주어야 한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원수를 축복하면 내가 복을 받게되는 것보다 더 큰 뜻이 있다.
원수를 축복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며 또한 주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인 것이다.
 
남을 축복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따라서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셨다.
그러기에 나 또한 나의 이웃들을 축복해야 한다.
 
사람들을 만나면 “God bless you” 하며 축복을 빌어주자.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말씀을 통하여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교회를 세우는 것에 대하여 배웠읍니다.
 
주님안에서 한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 한마음을 갖는 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제 각각의 의견이 있고 자신의 의견이 채택되기를 원하며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시험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교회로부터 시작하여 주님의 마음으로 한마음이 되는 것을 훈련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한마음이 되어 교회를 향하신 주님의 뜻을 더욱 알기를 원합니다.
 
한마음이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나를 낮추는 겸손함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가르치셨읍니다.
요사이의 풍조는 자신 위주의 삶을 살면서 남을 배려하기 보다는
주위의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저 자신만을 나타내려 합니다.
주님의 교회에서 겸손함이 무엇인지
남을 배려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배워 우선 제대로 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제대로 된 사람다운 사람이 없음을 우리는 많이 봅니다.
저도 그와같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이지만
주님 저희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사
이제는 주님안에서 제대로 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세 온전한 교회를 세우려면 혀를 금하고 또한 거짓을 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가장 잘못된 점이 우리의 혀를 사용하여 주님을 배반하는 패역한 말악한 말, 남을 정죄하는 말과 거짓말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저의 혀에 재갈을 물려 주옵소서.
함부러 말함으로 우선 주님을 부인하지 말게 하시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고르고 정선된 복된 말을 하기를 원합니다.
성령님 저의 혀를 제어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옵소서.
 
그리고 만나는 사랃들에게도 복을 빌어주는 복의 근원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늘 축복하시듯이 저 또한 복을 빌어 주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2016년 6월 19일 일요일

영적인 은사 방언


(고전14:1-5)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지적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많은 영적인 은사들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고린도 교인들은 주님을 잘 믿는다 하면서도 영적 교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사도바울은 많은 은사를 갖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고 권면하며 이어서 방언과 예언에 대하여 말을 한다.
다시말해 고린도 교인들은 성령의 은사의 큰 특징인 방언과 예언을 무분별하게 사용함으로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하였다. 그래서 방언과 예언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사용하여야 하는 지를 말하며 자신과 교회의 덕을 세우는데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이라면 어느 누구나 방언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방언을 소망하여 방언을 받으려고 열심히 기도원이나 부흥회를 따라 다니는 성도가 있다.
방언을 받고픈 소망이 있지만, 방언 받는 것에 두려움을 갖기도 한다.
또 어떤 성도는 방언을 이단시하기도 하여 무조건 거부하기도 한다.
어떤 교회는 방언을 최우선시 하는 교회도 있지만 또 반면에 방언을 하지 못하게 하는 교회도 있다.
그렇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방언을 금하지 말라고 하며 또한 교회와 자신의 덕을 세우는데 사용하라고 말한다. .
 
지금까지의 나의 경험에 의하면 방언은 나의 삶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내게는 너무나 귀한 선물인 영적인 은사라 생각한다. 제발 방언 받기를 거부하지 말고 방언 받기를 사모하는 성도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방언을 이미 받았다면 방언을 풍성히 사용하여 영적으로 잘 무장된 성도가 되었으면 한다.
 
방언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알아보자.
(11: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창조시대에 온 땅의 언어가 지금과 같이 여러가지가 아니라 하나인 언어를 사용하였다. 그래서 어딜 가나 서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창조거민들은 하나님을 거역하여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 성을 건설하며 이를 기념하기위해서 바벨탑을 쌓는다. 이를 여호와께서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11:6-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이후로 사람들은 곳곳으로 퍼져나가 여러 민족이 되어 각각의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유월절의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3일후에 부활하셨다. 그리고 40일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1:3)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후 승천하시고 그리고 약속하신대로 오순절날에 마가 다락방에 모인 성도 120명에게 성령강림으로 성령세례가 임함으로 각각의 방언으로 말함으로 서로는 무슨 말을 하는지를 알게 하였다. 바벨탑에서 흩으신 언어를 다시 하나로 합치셔서 주의 자녀들이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신 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2:2-4)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구약시대에는 성령은 각 사람에게 임하지 않았다. 오직 특정한 사람에게 임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하였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인해 드디어 급변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오순절 날에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강림하신 것이다.
이제는 누구도 예외없이 주님의 자녀라면 성령님이 임함으로 예수님의 영이 임한 교회가 되게 하사 구원을 얻게 하셨다.
 
성령님께서 임하심으로 주님은 내 안에 계시고 또한 내가 주님안에 살게 된 것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리고 또 놀라운 일은 성령의 임함으로 방언을 말할수 있다는 것이다.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각각의 나라에서 온 120명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복음에 대하여 자세하게 들을 수가 있었고 이로 말미암아 이들은 증인으로서 예수님의 회개의 복음은 눅24:47-48의 말씀과 같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간다..
(24:47-48)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그런데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은 행2의 방언이 꼭 우리가 쓰는 다른 나라의 방언을 의미하는 가이다.
오순절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하심으로 8절에 그들은 자신의 언어로 들었다고 하는데 이는 성령이 그들의 마음에 통역의 은사도 함께 주어 그들은 방언의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이해하였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는가.
 
하여튼 행2장에서 말하는 방언이란 다른 나라의 방언을, 그리고 고전14장에서 말하는 방언은 영적인 방언이라고 성경학자들은 말한다.
이것을 통하여 방언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음을 알게 된다. 하나는 행2에 나타난 대언방언이며 또 다른 하나는 고전14장에 언급된 알아 들을 수 없는 대신방언이다.
 
 
1.      방언은 신령한 은사이다
(고전14: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1: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사도바울이 말하는 신령한 것들 혹은 신령한 은사란 방언과 예언의 은사를 말하며 이는 믿는자들을 위한 표적이다.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방언은 성령의 임함의 증거이다,
(10:44-47)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더라. 이에 베드로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품을 금하리요 하고
 
베드로가 예수님의 복음에 대하며 전파할 때에 성령께서 임하셨다. 모든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함으로 그들은 방언을 하였다. 방언은 성령세례를 받은 증거인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서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우선 죄사함을 얻게 하는 예수님의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
 
방언은 성령세례의 증거로 나타난다. 성령세례가 임할 때 방언을 받게 된다. 사도바울이 안수할 때에 성령세레가 임하여 방언과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
(19:1-7)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2.     방언은 영적인 비밀이다
(
고전 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방언기도는 알아 듣는 자가 없다.
내 마음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고 성령께서 하시는 기도이기에 오직 하나님 만이 알아 들으신다.
방언은 사탄은 알아 듣지 못하는 영적인 비밀을 간직한 기도이다.

만일 사탄이 나의 기도의 내용을 안다면 얼마나 방해공작이 심하겠는가.
Drama를 보면 우연하게 남의 비밀의 이야기를 엿든는 장면이 나오면 어김없이 그 비밀을 자신의 어떤 유익을 위해 이후에 이용하는 것을 보게 된다사탄의 졸개들은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가 어떤 약점이 보이면 나를 넘어뜨리려고 나의 약점을 사용하여 나를 넘어 뜨리려고 한다. 내가 하는 모든 말을 듣고 방해를 한다.
 
방언기도를 마귀들은 알아 듣지를 못한다.
성령은 나를 위해서 비밀의 언어인 방언을 사용하셔서 하나님 아버지와 대화를 하신다.
나의 속사람의 사정을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는 너무나 잘 아시기에 나를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를 해 주신다.
 
(8:26)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가당신은 언제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당신 자신을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는 것을 느껴 보았는가?
 
방언을 하기 전에는 꺠닫지 못했다
그저 성령께서 나를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하시는가 보다 하고 생각하였을 뿐이다
그런데 방언을 받고서 방언으로 기도하다보면 아무런 이유없이 애통해하며 울면서 기도할 때가 있다그러면서 느끼는 것이 “아! 바로 이것이 성령께서 나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었다.
 
성령님께서는 나의 속사람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아신다
내가 얼마나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성격을 가졌으며, 더럽고 냄새나는 죄악으로 가득차 있지만, 그래도 한 구석에는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신다. 그러기에 성령께서는 내가 천국으로 잘 인도되도록 내가 더욱 더 빛의 자녀답게 살 수 있도록 나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시며 나를 위하여 간구하신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하나님의 전무후무한 기적의 사건들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증인들이었지만, 얼마 못가 그들은 옛사람의 버릇들이 다시 나타나며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기며 패역한 일들을 거침없이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대신에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따뜻한 불기둥으로 지켜주셨다. 목이 마를까 돌을 깨뜨려서 물을 주셨으며, 광야길을 가는 동안 춥지 말고 더위에 살이 타지 말라고 헤어지지 않는 옷을 입혀 주셨으며, 발이 거친 돌맹이에 다치지 말라고 헤어지지 않는 신발을 신기시고 보호하셨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애가 타셨을까거듭해서 나의 말과 명령을 거역하는 자에게는 진노의 심판을 내리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얼마못가 조금이라도 잘못을 회개하는 백성들을 보시면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께서는 재앙의 심판의 마음을 돌이키시고 깨끗하게 잊어 버리시고 축복하시며 다시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다.
 
우리 역시 이스라엘 백성과 무엇이 다른가.
늘 죄악 가운데 있는 나
그런데 한가지 다른 점은 바로 내 안에 주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계신다는 사실이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내가 죄악 가운데 있을 때마다 나를 불쌍하게 여기시며 측은하게 여기시며 나를 위하여 대신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중보하시면서 나를 구하시려고 하신다는 것이다.
 
또한 방언은 하나님을 높인다
(10: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내가 하는 방언의 내용을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방언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 방언의 내용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3.     방언은 자신의 덕을 세운다
(고전14: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자기의 덕을 세운다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덕”의 원어에는 “집을 세운다”의 뜻을 갖고 있다
방언을 하게 되면 내 안에 믿음의 집이 견고하게 세워지게 된다. 방언에는 영적인 힘이 있어 나의 믿음의 집, 영적인 집을 잘 세울수 있게 해 준다.
 
나를 내가 잘 안다. 얼마나 죄악으로 가득차 있는지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죄악 가운데 있는 내가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면 나를 깨끗하게 정화시켜 주신다.
 
방언은 나를 올바르게 세워준다.
방언은 나의 덕을 세우게 하여 나를 반석이신 주님의 터위에 나를 견고하게 세우도록 도와준다.
방언은 나의 심령을 강하게 하여 주며 담대하게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역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믿음을 더하여 준다.
 
마귀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나의 신앙의 집을 허물어 뜨리려고 한다.
매일 매일 방언을 통하여 나의 믿음이 견고한 반석위에 서도록 해야 한다. 방언은 다른 사람에게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닌, 내 신앙의 집을 잘 지우도록 도와준다. 이처럼 내게 너무나 유익한 성령의 은사인 방언을 받도록 하자
 
4.     방언을 받으라
(고전14: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고전14: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사도바울은 그 누구보다 더 고난과 환난을 받은 주님의 종이며 신약성경의 1/3이상을 쓸 만큼 주님께서 쓰신 귀한 종이다. 그런 사도 바울이 자신이 다른 이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한다.
방언은 사도바울을 지켰고 영적인 지혜와 계시와 예언과 능력과 감사를 준 귀한 영적인 보물이었다. 그러기에 사도바울은 방언을 통하여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주님의 마음을 깨닫고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고전14:39) 그런즉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시도바울은 방언을 받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지금은 때가 악하므로 세월을 아끼라면서 성령으로 가득 채워져 시와 찬양, 신령한 노래로 화답하라고 강조한다.
(5:16-20) 세월을 아끼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지금은 때가 악하다. 내일 어떤 일이 내게 일어날 줄을 모른다더 늦기 전에 방언을 하도록 하자. 그래서 나의 유익이 되며 또한 교회에 덕을 세우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자.
 
그렇다면 누가 방언을 할 수 있는가?
성도라면 누구나 방언을 할 수 있다.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믿는 사람들에게 따르는 표적의 하나가 새 방언을 말한다는 것이다. 새 방언은 어떤 언어가 아니라 지금껏 알지 못하던 하늘에 속한 언어이다.
 
그런데 왜 방언을 거부하는가?
많은 이들이 방언을 하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온갖 선입견을 갖고 있어서 방언을 하지 못한다.
마귀방언을 받으면 어쩌지 하면서 두려워하며 방언을 거부하기도 한다.
그런데 두려운 마음을 주어 신령한 하나님의 언어인 방언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마귀의 방해공작이다.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방언을 원하는 거듭난 성도가 마귀방언을 하도록 결코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것은 선하고 좋은 것이다.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방언을 거부하지 말고 아무런 두려움없이 방언 받기를 사모하자.

어떻게 방언을 하게 되는가?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방언을 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방언을 말하며” 하신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혀를 움직이면 방언이 나온다.
 
방언을 tongue이라고 한다.
방언은 “(28:11)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과 같이 더듬는 입술이다.
성령께서 나의 혀와 입술을 사용하셔서 하시는 것이 방언이다. 믿음으로 혀를 성령께 내 맡겨 내 스스로 입을 열어야 한다. 혀를 나의 의지로 통제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방법
(고전 14:14-17)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그런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방언의 특징이 혀를 사용하기에 방언을 하면서 나의 생각은 방언하는 혀와는 다르게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지적하였듯이 입술은 방언을 하면서 나의 마음 역시 주님께 나의 생각을 고정하고 기도하는 것이 올바른 방언으로 기도하는 방법이다.
입술은 방언을 말하고 마음 또한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아뢸 것을 아뢸 때 더욱 풍성한 삶의 열매를 맺을 것을 믿는다.
 
5.      어떻게 방언을 사용해야 하는가?
(고전14:5)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만일 강단에서 방언으로 설교를 하면 누가 알아듣겠는가.
교회에서 방언을 할 때에는 질서있게 해야 하며 교회에서 방언할 때에는 반드시 통역을 하라고 권면을 한다.
 
(고전14:26) 형제들아.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고전14: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교회안에서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
방언을 한다고 함부러 나대서는 않된다.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영적으로 잘 무장한 성도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영적으로 무지한 성도들도 있다. 방언이나 예언이나 이런 영적인 은사들은 반드시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질서있게 사용되어져야 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성경은 저희의 믿음의 신앙의 삶에서 방언이 중요함을 가르칩니다.
방언은 저를 영적으로 단단하게 세워 줍니다.
반석이신 주님 안에서 집을 잘 세우도록 도와줍니다.
 
주님께서는 방언을 금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는데도
많은 교회에서 많은 교인들이 방언을 받지 못하도록 거부를 합니다.
성경을 잘 못 받아드린 저희들을 용서하옵소서.
 
방언을 사모합니다.
저의 영적인 힘을 길러주는 방언을 통하여 주님의 영성과 마음을 조금씩 닮아가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