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5일 월요일

성만찬

 

제목성만찬     
(고전11:23-26)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원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돌아가심을 그가 오실 떄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에수님은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이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하십니다.

성만찬은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한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과 연관이 있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해방된 광복절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힘으로는 애굽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고 노예로 오랜 생활을 하다 보니 감히 독립할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강권 적으로 구원을 베푸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10가지의 재앙을 통하여 마침내 430년간 이스라엘을 속박했던 애굽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마지막 10번째 재앙으로 애굽의 모든 사람과 가축의 첫 번째 난 것을 치십니다.

(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은 애굽으로부터 자신들을 살리신 유월절을 기념하기 위하여 무교병과 흠이 없는 일 년 된 어린 양으로 음식을 나누며 또한 어린 양의 피로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이스라엘의 집은 이것이 표적이 되어서 해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 양의 피가 칠해진 집 안에 거하는 이들은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사람일지라도 이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해를 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후로 이스라엘은 유월절을 기념하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시고 지켜주심을 감사하였습니다.

출애굽을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제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완성될 약속의 성취시간이 가까이 왔습니다.

자신이 곧 십자가에 달리어 돌아가실 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자기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을 모으고 최후의 만찬을 하시며 예수님은 한 가지 특이한 것 곧 성만찬을 제정하시고 기념하라고 하십니다.

성만찬에 관하여 세 공관복음서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죽음을 통하여 이루어질 새언약을 가르치십니다.
(26:26-28)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14:22-24)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2:19-20)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새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성만찬을 베푸시며 유언을 하십니다. 자신의 몸을 의미하는 떡과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의미하는 잔을 주시며 새언약이라고 말씀하십니다새언약은 예레미야서에 언급되어있습니다.

(31: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1:33)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은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애굽에서 구하여 내셨지만, 배역을 하며 여호와와의 언약을 깨뜨리는 이스라엘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을 맺으십니다. 하나님의 법을 주님을 믿는 자녀들의 마음에 두어 곧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되시며 그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54-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이 말씀들을 통하여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 주님의 자녀들에게 새언약 곧 여호와의 법이 내주하여 곧 임마누엘의 주님이 주님의 자녀 안에 거하시며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영생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유월절은 주님을 믿는 주님의 자녀들인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대속의 은혜를 줍니다. 유월절에 어린양이 사람을 대신하여 죽음으로 죄 사함을 받은 것처럼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가심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주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은혜로 받았습니다.


이를 기념하는 성만찬을 통하여 우리를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우리를 살리시려고 약속을 지키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떡을 가지사
(24)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원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흠이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희생제물로 드리셨습니다.
(3:1)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제물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화목제물로 흠 없는 정한 동물로 드렸습니다. 또한 유월절을 기념하는 떡에는 누룩이 없습니다. 누룩은 죄와 부패를 의미합니다. 죄와 부패함이 없으신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 어린양으로 드리셨습니다.

(9:12)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꺽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
구약시대에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해질 녂에 흠이 없고 정한 어린 양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뼈를 하나도 꺽지 않았고 고기를 먹고 남으면 모두 불살랐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해질 녂에 돌아가실 때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았습니다.
(19:33-34) 예수께서 이르러서는 이미 돌아가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꺽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십자가에 달린 이들은 2 – 3일에 걸쳐서 고통을 받으며 서서히 죽어갑니다. 십자가에 달린 이가 더는 고통 없이 빨리 죽도록 다리를 꺾었습니다예수님 곁에 달린 두 죄인은 다리를 꺾었지만 예수님은 예상과는 달리 오전 9시에 달려 오후 3시 곧 해질 녂에 일찍 죽었기에 다리를 꺾을 필요가 없었습니다예수님의 뼈는 하나도 다치지 않고 온전하였습니다. 이는 구약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함이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며 예수님의 몸은 끝에 날카로운 것이 달린 채찍에 맞아 온몸이 뼈가 보일 정도로 찢겼으며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으로 온통 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후 창으로 옆구리를 찔려 몸에 있던 모든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이사야서 53장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며 나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도다

출애굽을 한 후에 굶주린 이스라엘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매일 새벽 만나를 내려 주십니다. 게으르지만 않으면 먹고 사는 것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예수님은 말씀을 들으러 온 많은 이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이유는 우리가 조그만 것을 바치면 뻥튀기 축복이 임하는 값싼 축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만나를 주신 여호와께서 이제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을 먹어 영적으로 부유한 자가 되어 영생을 소유한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6:48-51)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떡을 들어 나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희생제물로 드린 예수님이 내 몸 안에 계심을 믿으십시오예수님의 살을 먹음으로 나의 모든 허물과 죄악이 용서함을 받았으며 이제 영생이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온몸으로 바로 저를 죄로부터 용서하시고 살리시기 위하여 희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나누어 주며 자신을 기념하라고 명하십니다.



잔을 가지시고
(25)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잔에 담긴 포도주는 십자가에 달려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피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음으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성경에서 피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나의 죄를 전가 받은 동물의 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피를 제단에 뿌리는 것은 나의 죄를 제단에 뿌리는 것입니다. 뿌린 피가 제단의 불에 타는 것은 나의 죄가 타버려 속죄함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24: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피의 제사가 있어야 했습니다. 사람의 피 대신에 정한 동물의 피를 여호와 전에 드리는 의식을 통하여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죄를 지을 때 마다 사죄함을 받기 위해서는 동물의 피가 필요했습니다. 또한 제단에 가서 피를 흘려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옛언약으로부터 새언약을 성취하셨는지를 9장에서 말씀합니다.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옛 언약에서는 죄를 지을 때마다 죄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피의 희생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피로 새언약을 완성하셨습니다새언약으로 누구나 죄의 용서를 받을 길을 여셨습니다.

주님의 피를 의미하는 잔을 들어 나의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았음을 믿으십시오. 주님께서 나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모든 피를 쏟으셨습니다.



전하라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돌아가심을 그가 오실 떄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성만찬을 제정하사 영원한 영생의 약속을 주신 주님을 기억하며 전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누어 먹은 우리는 우리 모두를 위하여 채찍에 맞아 모든 살이 찢기셨으며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창으로 옆구리를 찔려 모든 피와 물을 쏟으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여야 합니다.


9:15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9:15) 그는 새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호와께서는 새 언약을 주님을 통하여 이루셨습니다. 나를 살리시려고 몸이 찢기며 피를 쏟으시며 새 언약을 이루시어 영원하신 기업의 약속을 주신 너무나 크신 사랑을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에 성만찬을 베푸시며 떡과 잔을 나누며 유언을 하십니다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자신을 희생하시어 자신의 몸과 피를 나누어 주시고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죄로부터 유월 시키시고 저희 안에 내주하시며 영생을 주셨습니다. 이를 기념하는 것이 성만찬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예수님의 살과 피를 의미하는 떡과 잔을 주시며 기억하고 기념하라 명하신 주님.
저를 살리시려고 모든 살이 찢겨 나가는 고통을 참으시고 모든 피와 물을 쏟으신 사랑의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살과 피를 주시어 저는 살아나 영생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임마누엘의 약속을 통하여 제 안에 계신 주님의 법으로 저는 회복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회복이 임하기를 간구합니다.
복음의 가장 중심에는 십자가에서 이루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득하기를 간구합니다.

예배의 회복이 임하기를 간구합니다.
나를 위하여 살이 찢기시고 모든 피를 쏟으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예배의 회복이 있기를 간구합니다.

거룩한 삶의 회복이 임하기를 간구합니다.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나 거룩한 삶을 향해 나아가는 삶의 회복이 있기를 간구합니다.

저에게 살과 피를 주시며 저를 살리신 주님의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는 도구로 저를 사용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1년 1월 18일 월요일

피할 길을 내사

제목: 피할 길을 내사

(고전10:12-13)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감당할 시험
시험을 우리는 Temptation, Trial 혹은 시험, 연단이라 표현을 합니다.

시험은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삶이 내 생각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된다면 시험받을 일이 전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시련은 끊임없이 다가옵니다. 두 가지의 시험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나의 그릇된 자아로부터 시작된 시험이며 또 하나는 나의 믿음이 더욱 굳건하게 서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해할 수 없는 연단입니다.

욕심으로 잉태된 시험 (temptation)
우선 나의 그릇된 자아로부터 시작된 시험을 봅시다.
(요일2:15-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마귀가 우리를 아주 쉽게 뒤흔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마귀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우리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함으로 시험에 들게 합니다. 마귀는 이 세가지를 갖고 예수님을 유혹하며 시험하였습니다. 우리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이 세가지로 늘 유혹을 받으며 시험을 받습니다.

재물이 많은 이들은 늘 풍요로운 생활에 젖어 있다 보니 자신보다 가난한 자들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은 아무렇지 않게 행동을 하는데 다른 이들은 상처를 입습니다. 또한, 자신보다 더욱 부유한 자가 으스대며 업신여길 때 마음에 시험이 듭니다. 또 재물이 없는 이들은 나보다 재물이 많은 이들이 나를 조금이라도 얺찮케 대하면 저 사람이 재물이 많다고 나를 함부로 하나 하며 마음에 시험이 듭니다


권세가 있는 자들은 권세를 누림에 익숙해져 아래 사람들을 함부로 대해도 마음에 부담을 갖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신보다 더욱 권세 있는 자가 자신을 억누르고 함부로 대할 때 마음에 시험이 듭니다. 또한, 권세 있는 자의 아래에 있는 자들은 위에 있는 이들이 억압적으로 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어 자신을 죽여야 하는 시험을 받지만, 마음에 앙심을 품습니다.

어떤 이가 나보다 잘 나 보일 때 마음에 시험이 듭니다. 그래서 나도 잘나 보이려고 온갖 수단을 씁니다. 자신이 잘나 보이도록 변해 갈 때마다 자신도 다른 이들의 마음에 시험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습니다.

내 안의 잘못된 자아로부터 시험을 받는 이들에 성령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13-15)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시험을 받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는 나의 욕심으로 인하여 시험을 받습니다.

욕심의 근원은 무엇인가요?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이 나의 마음에 욕심을 심어줍니다.

갖지 말아야 할 것을 가지려 하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하고 겸손하지 않게 합니다. 나의 마음에 욕심이 자리 잡아 욕심쟁이가 되면 조그마한 욕심이 또 다른 욕심을 부르고 결국은 더 큰 욕심을 가지려고 발버둥을 치게 되어 사망이 주인 노릇을 하게 됩니다.

이런 시험은 나의 잘못된 마음의 그릇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나의 욕심을 하루빨리 버려야 합니다. 욕심으로 시작된 시험은 나를 점점 사망으로 인도하는 잘못된 시험입니다. 자신의 욕망으로 시작된 시험은 주님께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고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며 절제된 행동을 할 때 그는 그 시험에서 벗어나게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연단 (trial)
그런데 어떤 시험은 나의 잘못된 자아와는 연관이 없이 다가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연단이지요.
왜 이런 일들이 내게 임하였을까? 마치 욥이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난 시련을 겪었듯이 왜 이런 어려운 일들이 나를 힘들게 할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욥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받았습니다. 순식간에 모든 것, 가족, 재산, 명예를 잃었습니다. 너무나 괴로운 욥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6:2-3)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바다의 모래보다 무거울 것이라

이해할 수 없는 연단은 참으로 견디기 어렵습니다.
어떤 때는 억울한 사건을 통하여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일을 겪기도 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 죽고 싶을 만큼 어려워하기도 합니다. 단지 주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말할 수 없는 고통받는 자들도 있으며 순교하기도 합니다. 때론 원하지 않는 죽을 병을 만나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재정적으로 너무나 막막하여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가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연단의 기간은 축복의 기간입니다. 바로 연단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다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다가왔을 때 기뻐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으로 내게 연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게 다가온 어려운 시험들이 내가 감당할 만하여 허락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연단의 시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하여 연단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저에게도 수많은 시련과 시험이 있었습니다.
힘들었던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어려움이 내게 다가왔을 때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였던 적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들었던 어려움의 시간은 지나갔으며 지금은 기억의 한자리에 겨우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짧지 않은 인생에서 겪었던 시험들은 지금은 저의 기억의 끝자락에서 겨우 생각해 낼 만큼 제가 감당할 수 있었던 어려움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성정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제가 견디어 낼 수 있는 어려움만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그보다 힘든 어려움이 저에게 다가왔다면 저는 도무지 견디어 내지 못하고 파멸의 길로 갔을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에 의심을 주며 혼란을 줍니다.
(고후2:11) 우리로 사탄에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다.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 때로는 까불림을 당해 주님을 부인하여 세상의 소욕을 따르는 삶을 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주님 앞에 서서 시험에서 이길 수 있도록 주님께서는 바로 저를 위하여 증보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구해야 하며 또 시험에 들었다면 시험에서 이겨낼 수 있도록 주님께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제 안에 계신 주님께서 자비와 긍휼을 베푸실 것입니다.

임마누엘이신 주님께서 저와 항상 함께하시기에, 견디기 힘든 연단의 과정이지만 주님의 도우심으로 너끈히 넉넉하게 견디어 내며 주님 앞에 더욱 가까이 나아 갈 것입니다.


(13) 하나님은 미쁘사 (GOD is faithful)
우리는 누군가가 믿을만하며 신실하다면 미덥다고 합니다.
우리가 연단에서 이길 수 있음은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녀를 지키시며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시며 진실하신 즉 미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7:9는 미쁘신 하나님의 속성에 대하여 잘 표현한 말씀입니다.

(7: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사탄은 만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를 순식간에 넘어뜨릴 수 있습니다.
(1: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1:19) 거친 들에서 큰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사탄은 순식간에 파괴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탄에게 멸망하지 않도록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잘 아십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신의 자녀가 무엇을 먹으면 나쁜지를 알고 주지 않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키십니다.


(13) 피할 길을 내사
너무나 힘든 상황에 부딪히게 되면 앞뒤로 꽉 막혀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절망만이 나를 휘돌아 가며 감싸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의 앞뒤가 꽉 막혀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주님께서는 피할 길을 예비하시고 인도하신다고 말씀을 합니다.

(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는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까?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겪는 고난을 겪으셨기에 우리가 받는 고난을 이해하십니다. 얼마나 뼈를 깎는 고통이 있는지, 나의 마음이 갈기갈기 씻겨져 나가는지, 모래를 씹는 것과 같은 고통을 주님은 아십니다. 우리가 받는 고통의 아픔을 너무나 잘 아시는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녀인 우리를 도우십니다.

비록 보이지 않으시는 주님이시지만 바로 제 마음에 주님께서 임재하시기에 우리는 조금이나마 주님을 느낍니다. 주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고통 가운데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의 고통을 잘 안다. 많이 아프냐. 내가 너를 낫게 할 것이다. 너를 가로막은 것들을 내가 깨뜨리고 피할 길을 예비하였으니 조금만 더 참자 인내하자. 내가 너의 함께 하지 않느냐. 나는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니라.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당시 최강의 군대인 애굽 군대가 뒤를 쫓아 맹렬하게 죽이려고 추격해 옵니다. 쫓기며 가다 보니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뒤에는 당시 최강의 애굽 군대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갈 수 없고 뒤로도 갈 수 없는 진퇴양난입니다. 이스라엘은 살려 달라고 울며불며 차라리 애굽에 있었으면 이런 고난은 겪지 않을 텐데 하며 불평을 쏟아 냅니다. 이제 애굽 군대의 창칼에 무참하게 죽어야 할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여호와께서 역사하십니다. 아니 그 이전에도 여호와께서는 항상 함께하셨지만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명하십니다.
(14:16)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홍해 바다가 둘로 나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둘로 갈린 바닷길로 이스라엘은 전원 무사하게 건넙니다. 하지만 뒤를 쫓아오던 애굽 군대는 바닷길을 막으신 여호와의 권능으로 인해 몰살합니다. 그 뒤로는 이스라엘은 애굽 군대의 추격을 더는 받지 않고 그토록 자신들을 얽매였던 애굽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앞뒤 좌우로 꽉 막힌 이스라엘에 피할 길을 터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다가 둘로 갈라진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바닷길을 터주셨습니다.

삶의 위기에 계십니까?
한 가지를 확신하십시오. 바로 내 안에 여호와께서 내주하시는지를 마음에 확신해 보시기 바랍니다.
(33: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만일 여호와께서 내 안에 임재하시면 반드시 주님께서는 나를 가로막는 바다를 가르시고 나의 대적들을 멸하시며 피할 길을 마련해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그저 생각 안에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실질적으로 관여하시며 섭리하시며 나를 살리시는 구세주이십니다.

얼마 전에 저는 암에 걸린 고난의 시간을 겪었습니다.
암은 극심한 고통을 줍니다. 처음에는 암에 걸렸는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찌르는 고통을 주며 자신의 존재를 나타냅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 암에 걸렸다고 보고합니다. 그러면서 인생을 뒤돌아보며 전과는 다르게 죽음이 보다 실질적으로 가까이 다가왔음을 느낍니다.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주님께서는 저를 다시 살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주님께서는 저의 육신을 다시 살리시며 위로를 하셨습니다.

암에 극심한 고통이 따르듯 고난에도 엄청난 고통이 따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난은 나의 마음을 꼭꼭 무자비하게 찔러 댑니다. 나의 마음을 사정없이 찔러 대는 고난을 겪으며 주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바로 임할 수도 있지만 대개 바로 임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회복이 됩니다. 저를 고치시기 위하여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고난을 받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1:2-4)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고난 가운데 계십니까?

조급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울며불며 안달한다고 해서 고난은 절대 떠나가지를 않습니다. 고난은 그 자리에서 요동하지 않고 꿈쩍하지도 않습니다. 주님께서 역사하실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피할 길을 내시고 인도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흔들림 없이 굳게 믿으십시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9:11-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니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찿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저에게 임한 고난은 재앙이 아닙니다.
고난은 결국 저에게 평안과 희망을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저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하는 여호와 앞에 나아가서 간절히 구하여야 합니다. 주님을 찾으셔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길에서 저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실체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27:3)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리로다

얼마전에  커다란 포도원 근처에 가게 되었는데 Covid로 인하여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워 물을 주지 않아 포도나무들이 말라 비틀어져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포도원의 포도나무들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때에 따라 물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포도원 지기가 되시는 주님께서 가지인 저에게 때를 따라 물을 주시며 간수하시며 저를 지키십니다. 그 어떤 것도 저를 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신 주님께서 바로 제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고난이 다가올 때 감사하십시다. 바로 저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제가 주님 앞으로 가까이 오게 하는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저에게 고난과 연단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주님의 자녀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견디기 힘든 연단의 시간이 왔습니까?

좌절하지 말고 주님을 믿고 간절히 구하다 보면 어느새 고난에서 벗어나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고난이 와도 감사하며 기쁘게 받아들이세요. 주님께서 고쳐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상하지 않도록 밤낮으로 간수하며 물을 주시며 마르지 않도록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때로 찾아오는 결코 원치 않는 고난과 연단의 시간이 있습니다.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들어 맥이 빠지고 살고자 하는 의욕도 없어집니다. 어떻게 견디어 내야 하나 이 일을 어찌 해결해야 하는지 막막합니다. 도움을 청할 데도 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데도 없습니다. 아무도 저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습니다.

제가 간청할 데라고는 주님밖에 없음을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주여 이 고난에서 벗어나도록 인도 하소서.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말씀에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을 허락하시며 또한 피할 길을 내준다고 주님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주님 이 약속의 말씀대로 저를 연단의 시험으로부터 건져 주시고 피할 길로 인도 하소서.

때때로 말라 비틀어지지 않도록 흡족한 물을 주시며 밤낮으로 지켜 주시는 주님께서 저와 늘 함께하시며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저는 참으로 주님의 영광을 받은 축복받은 자입니다. 주님 저를 통하여 영광 받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