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16일 일요일

영원한 소금 언약


(18:11-19) 네게 돌릴 것은 이것이니 곧 이스라엘 자손이 드리는 거제물과 모든 요제물이라. 내가 그것을 너와 네 자녀에게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주었은즉 네 집의 정결한 자마다 먹을 것이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


소금 언약은 무엇을 의미할까?


(2: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여호와께서는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고 하시면서 이 소금을 언약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신다.
소제는 알곡을 곱게 갈아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 곧 예배의 한 방법이다. 알곡을 곱게 갈은 가루에는 반드시 소금이 첨가가 되어야 했다.


왜 소제물에 들어가는 소금을 언약의 소금이라 하셨을까?  소금의 특성을 살펴보자.
대표적인 소금의 특성은 부패를 방지하며, 변하지 않으며, 값이 비싸다.


소금은 부패를 방지한다.
바다물이 오랜 기간 동안 썩지 않고 보존되는 이유는 바다물에 소금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소금을 음식물에 치는 이유는 음식 맛을 맛있게 하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음식물을 오랜 기간 동안 썩지 않고 보관하기 위해서 소금을 쓴다. 우리가 좋아하는 김치나 새우젖등은 소금으로 절여 오랜 기간 동안 보관하여 우리들의 건강을 지키고 입맛을 돗군다. 부패하지 않게 하는 소금을 정결한 언약의 표징으로 삼았다.

소금의 특성은 변하지 않는다.
소금이 물에 녹아 있으면 고체로서의 소금의 형태는 없어지고 대신 짠 맛이 남아 있지만, 물이 마르게 되면 다시 소금이 된다. 소금은 오래 있어도 변하지 않는다. 오래 전에는 바다였지만 노아 홍수 후에 온 지구가 격변하여 골짜기가 되고 움푹 파진 곳에 바닷물이 모여 있다가 증발하여 소금 덩어리가 된 곳들이 지구 곳곳에는 있다. 바위처럼 굳어진 소금 덩어리들을 암염이라고 부르며 여러 용도로 쓰이며 또한 암염을 갈아서 소금으로 쓴다. 변하지 않는 소금을 영원한 언약의 표징으로 삼았다.

고대에는 소금은 매우 값진 것이었다.
지금은 소금을 무척이나 저렴한 값을 치루고 얻을 수다. 하지만 고대에는 소금은 무척이나 비싼 값을 치루어야 가질 수 있었다. 16세기까지 소금은 가장 비싼 식재료였다고 한다. 그 비싼 소금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사람은 귀족, 왕족, 혹은 거부들 뿐이었다. 집에 소금그릇이 있다면 어느정도의 신분을 나타내었다.


여호와께서 우리와 맺은 소금언약은 무척이나 값이 비싼 약속이시다.
여호와는 우리와 같은 죄로 가득한 죄인들과의 언약을 맺으시기 위해서 매우 값진 비용을 치루셨다.
곧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대속물로 보내셨고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 죽게 하심으로 속죄의 값을 치루게 하심으로 우리는 용서함을 받았다.



소금언약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약속을 말한다.
여호와께서는 나와도 변하지 않는 매우 값비싼 소금 언약을 맺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나와는 무엇을 소금 언약으로 약속을 하셨을까?

영원한 나라의 약속
남유다의 아비야 왕은 북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면서 다윗 왕가를 영원토록 지키시겠다는 여호와의 변하지 않는 소금언약을 상기시키며 유다백성들을 위로하며 용기를 준다.

(대하13:5) 이스라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것이 아니냐

아비야 왕이 다스리는 남유다는 군인이 40만명이며 여로보암 왕이 다스리는 북이스라엘의 군인은 80만명으로 유다는 이스라엘보다 군세가 약하였다. 아비야 왕은 군사력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와 맺은 영원한 언약을 의지하며 이 언약을 소금언약이라고 부른다.


여호와께서 다윗과 맺은 영원한 약속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출19:5-6에서 맺은 언약을 근거로 한다.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지키지 못하였다. 이스라엘은 시시때때로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을 믿지 못해서 패역한 일들을 저질렀다. 그래서 결국 출애굽한 자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 갈 수가 없었고 그들의 후손이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았다. 그렇지만 후손들 역시 목이 곧은 자들이라 얼마가지 않아 주님의 명령에 순행하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며 주님의 언약 가운데 머물러 있지 못했다.


히브리 민족처럼 탄압을 받은 민족은 찿아 보기 힘들다.
여호와의 택함을 받은 자들이었지만 주님을 떠난 자들이기에 주님께서 돌보시지 않으셨다.
자신을 버린 자녀들을 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자신의 자녀들이 부모인 자신을 거역하고 배신할때의 심정은 어떠한가!


하지만 주님의 사랑은 끊어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비록 그들은 패역한 자들이었지만 주님의 사랑은 결코 소멸된 것이 아니다.


주님은 히8:8-12에서 이런 약속을 하신다. 이 말씀은 예레미아서 33:31-34에서 인용된 말씀이다.
(8:8-10)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사람들은 자신을 배반하고 또 배반하며 또 배반하는 자를 보면서 결국에는 관계를 끊어버린다.


그렇지만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택한 자녀들이 거듭해서 거듭해서 배반하고 패역한 일을 일삼아도 차마 그들을 버리고 외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기에 여호와께서는 자비하심으로 자녀들을 사랑하시고 돌보아 주심에 얼마나 감사한가!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사랑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여호와께서는 주님을 중보자로 새 언약을 맺으셨다.
(9;15)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여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은 이 땅에 오사 나에게 새언약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심으로 나의 모든 죄를  속죄하사 부활하셨다. 그것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생을 유업으로 갖게 되니 참으로 복되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토록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실 것을 소금 언약으로 맺으셨다.
다윗의 자손은 곧 주님을 믿는 주님께 속해 그 안에 주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자들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약속임을 말한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자녀들과 영원한 나라인 이스라엘 곧 하나님 나라를 약속하셨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신다면 바로 그 곳이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며, 나의 육신의 호흡을 마치는 순간 나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기업을 약속으로 받을 것이다. 이 약속은 변하지 않는 여호와께서 나에게 약속하신 소금언약이시다.
주님은 주님의 택함을 입은 나와 같은 자와도 변하지 않는 언약 소금인 새 언약을 맺으시고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생을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생활의 보장
본문의 말씀에서 여호와께서는 아무런 기업을 받지 못한 레위 지파에게 모든 거제물과 요제물을 주시며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주시며 영원한 소금 언약이라고 하신다. 여호와께서는 아무런 기업도 받지 못한 레위 족속의 자손들에게 영원한 음식의 축복을 주신다.

사람이 어떻게 먹는 것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이 된다.
지금은 형편이 많이 좋아져 먹는 것에 그리 지장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diet 한다고 하며 먹는 것을 제한하며 어떻게 하면 영양있게 먹어 아름답게 보이고 건강하고 균형있는 몸매를 유지하는 것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만큼 요사이는 풍족한 음식의 축복을 받아 먹는 것 자체보다는 어떻게 먹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지구촌의 곳곳에서는 제대로 먹지 못해서 굶어 죽거나 영양결핍으로 바짝 마른 모습들을 우리는 종종 본다. 아직도 먹는 것이 삶의 가장 최우선의 선택인곳은 너무나 많다.  지금은 보릿고개라는 단어를 거의 쓰지 않지만 불과 몇 십년전만 해도 우리 한국은 대대로 지난해 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바닥이 나고 올해 지은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먹을 것이 거의 없어 거의 굶어 죽을 지경이 되어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궁핍한 나라였다.

사람은 먹지 못하면 죽는다.
먹는 것의 보장은 우리의 삶의 가장 필요한 요소이다.

제사장이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일은 무척이나 성스러운 일이다.
아무리 성스러운 일일지라도 먹어야 할 수 있다. 제사장이 제사장의 직분을 올바르게 행하기 위해서는 음식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하고 성스러운 제사장일지라도 자신들의 가족이 굶어 죽어 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제대로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을까?  만일 먹을 것이 없다면 음식을 얻기 위해서는 세상의 방식대로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아무런 기업을 받지 못한 제사장으로 삼으신 레위지파에게 먹을 것을 주셨다.
먹을 것을 얻는 수고에서 벗어나서 제사장의 직분을 올바르게 감당할 수 있게 하셨다.

레위 지파가 특출나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족속으로 삼으신 것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으로 삼으신 레위 족속에게는 아무런 땅의 기업을 주시지 않으셨다. 오직 회막을 돌보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가장 좋은 헌물을 여호와께 드리고 난 후에는 레위 지파의 몫이 되게 함으로 레위 지파가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인도하셨다.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가 성막을 돌보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생활 보장의 축복을 약속하신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레위지파의 아론족속에 속한 특정한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삼았지만, 예수님께서 오신 후로는 주님을 믿는 모든 자녀들을 제사장으로 부르셨다.

(벧전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의 자녀인 왕같은 제사장인 우리에게도 생활보장의 약속을 영원히 약속하셨다.
왕같은 제사장이 된 우리는 여호와의 도우심을 받는다.

나의 어디가 잘 나서 여호와께서는 나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셨을까!
아무리 기를 쓰고 나를 좋게 보아도 왕같은 제사장이 될 그릇이 될 수 없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지 아니한가.

그런데도 주님은 그런 나를 보시면서도 나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나의 모든 것을 인도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시니 감사 또 감사할 수 밖에 없다.


주님은 세상에서 염려하며 안절부절하며 사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6:26,31) 공중의 나는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우리가 숨이 있어 사는 동안 이 땅의 축복을 약속하셨고 또한 그 후에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안식과 평강을 약속하셨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여호와께서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생과 일상생활에서 돌보심을 주님의 자녀와 소금언약으로 영원한 약속을 맺으셨읍니다.

주님을 믿는 주님의 자녀에게는 영원한 나라에서의 영생을 약속으로 주셨읍니다.
제가 아무리 패역한 일들을 일삼아도 주님 앞에 나아와 죄를 고백하고 용서을 구하면 자비의 여호와께서는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영생을 주시겠다고 주님을 보내셔서 영생의 약속의 중보자로 보내셨읍니다. 영원한 평강의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생을 주심에 감사를 드리며 중보자이신 주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립니다. 저의 생명의 끊나는 순간에 저의 영혼은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될것을 저는 믿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영원한 하나님이 계신 나라에서의 영생을 보장을 받을 것임을 여호와께서는 불변하는 언약을 맺으셨읍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자녀를 돌보시겠다고 소금언약을 맺으셨읍니다.
저의 인생의 광야길을 가는 동안 먹고 사는 것에 너무 많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읍니다. 저희들은 연약하여 몇끼를 굶으면 먹는 것에 연연해 하며 어떻게 먹고 살아갈까 근심하여 마음은 마릅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하늘에 나는 새들도 들판의 들풀들도 먹이고 입히며 재우는데 하물며 나의 택한 자들아 하시며 위로하시며 담대함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저의 인생의 광야길을 가는 동안 먹고 사는 것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축복해 주심을 저는 믿습니다. 너무 부하게도 너무 가난하게도 하지 마옵시고 오직 베푸신 주님의 사랑을 늘 기억하는 삶의 호흡을 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7년 7월 2일 일요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축복


(14:4-9)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는 흔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축복에 대하여 말하며 그런 축복이 내게도 임하기를 간구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어떤 축복을 의미할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여호와를 기쁘게 하는 자에게 약속된 축복의 땅이이며 그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고 말씀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오해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물질적인 축복으로만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잘 믿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축복을 받아 물질적으로 인간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것이라는 소망을 갖는다.



과연 성경에서 말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과연 어떤 땅일까?

이스라엘은 언약의 말씀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업으로 받았다. 여호와께서 약속으로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이스라엘은 대부분 사막지대이며 황량하고 메마른 척박한 땅이며 비옥한 땅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아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물질적으로 비옥한 축복의 땅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 

성경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산과 골짜기에 있다고 말씀한다.
(11:11-12)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이 성경구절을 우리가 생각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다시 작성해보자.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평탄하며 물이 풍부하며 기후도 알맞고 풍성한 곡식의 열매를 맺기에 적합하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좀 더 우리가 생각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심히 아름다운 땅으로 다가 온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기록하고 있지 않다.
산과 골짜기에 있어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어떤 땅일까?
고대의 이스라엘은 양을 치는 유목민족이다. 양을 치기에 가파른 산과 골짜기는 부적절하다. 또한 곡식을 풍성하게 수확하려면 산과 골짜기보다는 평야가 효율적일것이다. 농사를 지으려면 때에 맞춰 물이 풍부히 공급되어야 하는데 산과 골짜기는 물을 흡수하며 대부분의 물을 흘려 내려보내기에 농사를 짓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물질적인 풍요로움의 축복만을 말하는 것이 아님은 명확하지 않겠는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물질적인 풍요로움보다는 영적으로 축복받은 땅을 의미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란 여호와의 눈이 항상 함께 하며 지키시며 돌보아 주시는 땅이다.

그 땅이 비록 척박하고 황량하고 메마른 땅이지만 여호와께서 항상 함께 하시며 지켜 보시는 땅이다.
만일 골짜기와 산에 여호와의 섭리하심이 없다면 곡식의 열매를 맺기가 어려울 것이고 꿀과 젖을 만들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 사는 자들은 항상 여호와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하며 때에 맞취 비를 내리며 알맞은 더움과 추위를 공급하시는 여호와의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그곳은 절망이요  땅의 풍족한 소산을 맺을 수가 없는 메마른 황폐한 광야일 뿐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란 여호와께서 항상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는 땅을 말한다.
나의 삶이 척박하고 황량하여 어려움 가운데 있지만, 그 곳에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며 인도하신다면 바로 그 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인 것이다. 재물은 없지만 권세는 없지만 그 마음에 주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평강과 기쁨이 샘솟듯하는 곳에서 천국의 삶을 경험한다면 바로 그 곳이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재물이 많이 있어 원하는 모든 것을 살수 있으며 혹은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권력이 있다할지라도 그 안에 여호와와 함께 하는 참 생명이 없다면 진정한 기쁨과 평안이 없기 때문에 항상 불안해하며 안절부절하며 두려워 하다가 결국은 헛것을 쫓은 인생이 되어 아무런 가치가 없는 허무한 인생이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업으로 받기 위해서는 우선 여호와께서 기뻐하셔야 한다.

어떻게 하면 여호와를 기쁘게 해 드릴수 있을까?
첫째,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11:13-14)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여호와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여호와께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태어나서 얼마되지 않아 아이들은 불순종과 교만과 이기심과 거짓을 배우기 시작하며 세살 버릇이 여든을 간다고 평생을 불순종과 교만과 이기심과 거짓이 매일 밥을 먹듯이 삶의 동반자가 된다. 신앙과 지식으로 어느정도 표식이 나지 않게 덮을 수는 있지만 악한 본성이 자리잡고 있어 기회만 되면 불순종과 거짓은 슬그머니 머리를 내밀고 본연의 모습을 나타낸다.
여호와께 온전한 순종을 한다면 불순종과 교만과 이기심과 거짓은 치료될 것이다.
온전한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갖게 된다. 우리는 교회에서 순종에 대하여 수없이 들어왔다. 그래서 여호와께 순종을 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안다. 그런데 막상 여호와께서 이것을 하라고 하시면 아예 못들은 척 무시를 하거나 설마 이것을 나에게 하라고 하셨을까 하면서 갖가지 이유를 대며 부인을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하게 신뢰하지 못하기에 온전한 순종을 할 수 없다.
이유가 없는 온전한 순종은 상대방을 온전하게 믿고 신뢰할때에만 가능하다.
또한 온전한 순종은 자기의 의가 없어야 가능하다. 신실한 종은 주인의 명령에 따른다. 죽으라하면 죽을 수 있는 것은 자기가 우선인 자아보다는 주인이 최우선이기에 가능하다.
우리는 신실한 주님의 종이 되기를 원한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나의 자아가 하고자 하는대로 한다면 나는 신실한 종은 결코 될 수가 없다.
주님의 신실한 종이 되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나의 모든 자아를 주님의 십자가에 내려 놓아야 가능하다.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순종은 가장 먼저 가정을 통하여 배운다.
아이가 자라나면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법을 배운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며 남편은 아내에게 순종하며 서로 순종하는 법을 배운다. 만일 자녀가 자아가 자라나면서 부모를 온전하게 신뢰하지 못하면 그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반항하기 시작한다. 부부간에도 서로 믿고 신뢰하지 못하면 순종하지 않고 온갖 이유를 대며 자아를 나타내려 한다. 순종을 통하여 건강한 가정으로 완성되어져 간다. 믿음 역시 순종을 통하여 자라간다. 우리의 믿음이 주님안에서 온전하게 성장해 가면서 이유를 대지 않고 순종한다.

둘째, 백성을 두려워말라
가나안땅에 사는 거민들은 크고 장대한 족속들도 있었다. 그들은 네피림 후손이며 신장이 장대하였다.
정탐꾼들은 그들과 비교하여 자신들은 메뚜기 같다고 위축되어 두려움으로 가득하었다. 그들과 전쟁을 하면 질 것이 뻔하니 괜히 죽지 말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선동을 한다. 아무리 하나님의 기적적인 일들을 목격했지만 도무지 상대할 수 없는 상대를 만나자 미리 겁을 집어먹고 두려워한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하며 백성들에게 용기를 준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른 10명의 정탐꾼들과 백성들과는 완전히 상반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여호와의 관점으로 약속으로 주신 땅을 바라보았지만, 다른 이들은 세상의 관점으로 눈에 보이는대로 판단하여 자신들은 그들과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 지례 짐작하고 두려워한다.
나의 보는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나의 눈에 보이는 적들은 견고해 보이고 장대해 보인다. 그런데 그들의 실상은 헛것이다.
내 안에는 누가 계시는 가?
바로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주님께서 나와 함께 임마누엘로서 계신다.
여호와는 나와 항상 함께 하시며 나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신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왕에게 추적을 당하여 위기에 빠져 절망하여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서 여호와께 간구한다.
(55:4-5)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
우리 역시 나만의 광야길을 가는 동안 수많은 두려운 일들을 많난다.
그런데 성경은 곳곳에서 우리에게 두려워말라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신다.
우리는 삶에서 수많은 크고 적은 일들을 만나는데 대부분 어려운 일들이며 힘들게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하며 실의에 빠지기도 하며 모든 소망을 잃어버리기도 하며 심지어는 자신의 생명을 자신이 취하기도 한다. 도무지 해결 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어 죽을 날을 기다리며 절망한다. 그럴때마다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은 무엇일까? 나의 사랑하는 자여 너는 두려워말라하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던가!

주님은 우리가 인생의 광야길을 가는 동안 수많은 적들을 만나 고전을 면치못해 두려워하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신다.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43:1-2)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떄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떄로는 너무나 뜨거운 고통의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된다. 떄로는 숨이 막히도록 답답한 물 가운데로 지날 때가 있다. 홀로 있는 것과 같고 아무런 도움도 없는 절박함 가운데 있지만 바로 그 곳에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면 바로 그 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다. 여호와께서 아루런 소망도 없는 절망과 곤고함 가운데 있는 나와 함께 하시며 지키시며 도와주신다고 약속을 하신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세상의 축복과는 사뭇 다르다.
나무도 별로 없어 물이 고이지 않고 흘러 내려가는 산과 골짜기 같은 척박한 땅이어서, 그곳에 사는 자들은 여호와의 도움심을 바라볼 수 밖에 없으며, 그런 땅에 여호와의 눈이 항상 쳐다 보고 있다면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여호와께서 항상 보시며 기뻐하시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의 기업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을 받기 위해서는 여호와를 온전하게 순종함과 두려워 하지 않는 담대함을  배워 여호와를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

여호와께 온전하게 순종함은 우리의 인생의 가장 큰 숙제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실때에 아무말 없이 잠잠하게 순종할 때 여호와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시시때때로 만나는 세상의 적들을 대하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내 안에는 만군의 주이시며 창조주가 나와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여호와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세상의 축복과는 거리가 먼것을 알게 해 주셨읍니다.
말씀에 쓰인대로 젖과 흐르는 땅은 하늘에서 내리는 물을 흡수하는 골짜기와 산과 같은 척박한 땅이지만 여호와께서 항상 감찰하시고 도와주시는 여호와의 임재가 있기에 축복의 땅입니다.
여호와께서 저를 기뻐하실 때 여호와의 임재와 도우심이 항상 있는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읍니다. 여호와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는 여호와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저의 순종함과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입니다.

성령님 저를 도와 주옵소서.
온전하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게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명하실때 온갖 이유를 대지 않고 잠잠히 순종할 수 있도록 이 종을 훈련시키옵서서.
항상 제 안에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세상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도록 은혜를 베푸사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을 간직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