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5일 일요일

거듭남

(3:3-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 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의 대표적인 구절인 요3:16에서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하며 주님께서 주관하시는 영생에 대하여 말씀한다.

영생이 무엇인가?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으며각각의 종교는 영생에 대한 질문과 해답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우리는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데 죽은 후에 또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아니면 영과 육이 함께 소멸되어 버릴까하는 질문을 가져 봤을 것이다.

영생에 대하여 주님은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귀한 가르침을 주신다.
니고데모가 한밤중에 주님을 찿아 온 것은 마음속에 있던 한가지 의문점인 영생에 대하여 주님께 물어보기 위함이었다니고데모는 주님을 만나서 이렇게 대화를 시작한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그러자 주님은 이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으시고 니고데모가 마음속에 갖고 있었던 “영생”에 대하여 답변을 하신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거듭나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육신적으로만 생각하였기에 나이들은 자신이 어떻게 다시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가서 다시 태어 날 수 있느냐고 주님께 질문한다주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신다.

니고데모는 성경에 정통한 선생이었다.
많은 성경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영적인 참생명에 대하여는 무지하였다.
거듭난다는 것을 육신적으로만 생각을 하며 영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3:6-7)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니고데모와 같이 우리 역시 거듭난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그래서 거듭남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거부반응을 갖고 광신자취급을 하며 부인하려고 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개인의 경험이 수반되어야 하는 설명하기 어려운 영적이며 극히 주관적인 사건이다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영적인 사건인데 이를 지식적으로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다하지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에 대한 지식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살펴 보자.  

(3) Jesus said in reply to him, Amen, amen I tell you, unless one is begotten from above he cannot see the kingdom of God.

“진실로”로 번역이 되었지만 “아멘”으로 번역되었다
아멘은 “정말 그렇습니다”의 뜻을 갖는다주님은 말씀의 진실성을 스스로 거듭해서 보증하신 것이다.

“’거듭나다’를 영어성경에서는 ‘begotten from above’로 번역을 했다.
‘거듭해서’의 원어의 뜻에는 ‘위에서’ 혹은 ‘새로이’의 뜻을 갖는다.
또한 ‘나다’로 begotten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be born’ 즉 어머니로부터 출산된다의 뜻보다는 아버지로부터 낳아지는 것을 의미한다즉 거듭나는 것은 위로부터 즉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임하는 전적인 은혜를 의미한다.[1]

이어서 주님은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Amen, amen, I tell you, unless one is begotten of Water and Spirit he cannot enter the kingdom of God.

3절과 5절을 비교해서 보자.
Amen, amen, I tell you, unless one is begotten from above (of Water and Spirit) he cannot see (enter) the kingdom of God.

주님은 ‘거듭나다’를 ‘물과 성령으로 나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보다’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다’로 바꾸셔서 말씀하신 것을 알 수 있다다시말해 거듭난다는 것은 곧 위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로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나는 것을 의미한다그리고 거듭나게 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물과 성령에 의해 거듭남에 대한 여러가지 주석들이 있다.
 Calvin은 세례요한의 선포에서 성령과 불의 관계와 같이 물과 성령은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어떤 해석자들은 최초의 요한교리문답에서 성령을 통한 중생이 강조되었는데 영생이 어떻게 얻어지는 것을 나타나기 위해  “물과”가 초대교회들에 수용이 되도록 삽입이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어떤 해석자는 물과 성령의 연결은 에스겔과 다양한 외경들에 의해 입증되듯이 유대인의 의식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특히 쿰란 공동체는 성령의 깨끗하심과 소망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실제적인 침례와 회개에 결부시키려고 했다저자는 ‘십자가를 통과하신 주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세례 받는 자는 성령에 의한 새로운 피조물이 되며하나님의 나라를 보게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소유한다.’라고 해석을 한다.” [2]

이런 주석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성경을 더욱 깊이 지식적으로 이해하도록 도운다.
그 중에서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함은 구약에도 잘 예시되어 있다고 해석한 이 주석이 내 마음에 와 닫는다.

“’물과 성령’은 씻어 정결케 하는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을 가르키는 비유적 표현이다55:1-3와 같이 물과 영은 새롭게 하고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활동을 나타내는 두 상징이며때로는 겔36:25-26에서와 같이 둘이 같은 문맥에서 사용된다.[3]

이 주석을 바탕으로 물과 성령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어 보자

(55:1-3)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돈 없는 자도 오라너희은 와서 사 먹되 돈 없이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너희가 어찌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내게 듣고 들을지어다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36:25-27)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히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지키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13: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거듭나기 위해서는 우선 나의 죄가 깨끗하게 씻겨져야 한다.
나의 더러운 죄가 십자가의 주님의 보혈로 깨끗게 되면 주님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며 천성에 이르도록 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신다주님께 나의 죄를 고백하고 주의 보혈로 씻겨 달라고 간구하자.

주의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로 죄사함의 역사가 있은 후에 날마다 죄로 더럽혀진 나를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
물에는 더러워진 것을 깨끗게 하는 특성이 있다구약의 제사를 보면 번제드릴 짐승을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씼어 번제로 드렸다하나님은 정결하고 깨끗한 예물을 받으신다성령의 생수는 늘 죄 가운데 있어 더러운 나를 씻기어 정결케 한다그리고 새 영이 내 안에 거하시므로 나의 굳은 마음을 제하시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만드신다

성령의 생수는 사람의 더러운 죄를 씻긴다.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다베드로는 주님께서 자신의 발을 씻기는 것이 너무나 과분하여 주님께 절대로 씻지 못하게 말하자 주님은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신다그러자 베드로는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달라고 말한다주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라고 말씀하신다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것은 제자들에 남아있는 죄를 깨끗하게 씻겨 주신 것이다.

 매일 매일 더럽혀진 나의 발을 성령의 생수로 닦아 내자.
나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사 나의 모든 주홍과 같은 죄를 생명수로 깨끗하게 씻겨 주시고 눈과 같이 희게 하실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삶의 철저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가르치셨다18:3에서와 같이 사람이 변하여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주님은 우리들에게 가르치신다. [4]
세상을 따라 가려는 속성이 있는 나의 삶이 변화되어야 한다.세상에 속해 있어 굳어진 마음을 생명수로 깨끗히 씻어 부드럽고 온전한 마음을 가진 어린아이와 같이 나의 심령이 바뀌어져야 한다.


아무리 좋고 훌륭한 주석이라도 영생거듭남에 대하여 실질적인 이해를 주지 못하는 것 같다왜냐하면 거듭남으로 영생을 소유하는 것은 극히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영적체험이기 때문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하였는가?
죄의 사함을 받은 체험을 하였는가?
내 안에 있는 죄들이 성령의 생수에 의해 깨끗하게 씻겨지는 역사를 경험하였는가?

어떤 이들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생생하게 기억하지만또 어떤 이들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자들도 있다물론 성령의 체험을 해야지만 거듭난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나의 인격을 존중해 주시기 때문에 잔잔하게 성령님의 거듭남의 역사가 있기도 한다.

거듭남에는 출산의 고통이 따른다고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한다.
육신이 새롭게 어미의 뱃속으로부터 태어날 때 아이는 세상에 나와서 우는 것처럼 영도 새롭게 태어날 때 영도 운다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할하신 주님을 나의 구세주로 받아 들일 때 성령이 내안에 들어오심으로 나의 영은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이때 너무나 심각한 죄의 용서함을 받은 기쁨과 감사로 나의 영과 육은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게 된다.몇날 며칠을 주님의 이름만 불러도 감사하여 눈물을 흘리는 이것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을 한다

저의 경험을 나누었으면 한다저의 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다.
저는 주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하였다.
어떤 마음을 가난하게 하는 영성 program에 참여하게 되었다세번째 날 저녁식사후에 모두 자는 시간에 따로 특별한 기도모임이 있으니 같이 참석하자고 권유하는 형제와 나와 또 다른 형제가 함께 참여하였다그곳에는 그 기도모임을 위해서 올라온 약 20명정도가 있었다고 생각되는데 모두 빙 둘러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다점점 기도가 무르익어 가자 바로 내 곁에 있었던 형제의 입에서 하얀 거품이 나오기 시작하였다그러면서 나도 기도의 세계에 들어 가게 되었는데 나의 죄로 인하여 견딜수 없던 나는 바닥을 뒹굴게 되었다몇바퀴를 뒹굴었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정신차리고 보니 옷핀으로 붙인 내 명찰과 안경은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었다그 이후로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를 모르겠다 3-4년을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거의 매일 울었던 것 같다그런데 주님안에서 흘리는 눈물에는 한가지 특징이 있다아무리 울어도 눈이 붉게 충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혜의 사건 이후로 나의 삶은 참으로 많이 변했다말씀 앞에 온전하게 서려고 애쓰는 주님의 종이 되기를 소망한다아직도 나의 옛본성과 옛성품이 머리를 디밀고 나타나기도 한다이 죄악된 본성은 내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끊임없이 나를 주님으로부터 끌어 내리려고 할 것이다하지만 한가지 믿는 것은 그런 위기의 순간마다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는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이며 믿음을 지켜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시는 천성에 이르도록 은혜를 베푸실 것을 확신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변한다.
주님을 만난 니고데모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을 것이다.
한밤중에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워서 주님을 찿아왔지만 영생에 대한 해답을 가진 후 그는 변한 삶을 살았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주님을 정죄하자 주님을 변호하였으며죽으신 주님을 위하여 많은 양의 몰약과 침향 섞은 장례용품을 준비하였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증거는 변환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타락한 자로 살았지만 주님을 만나 거듭난 자는 변화된 삶을 산다.
탕자처럼 살았어도 주님을 만났다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요한복음은 주님께서 주관하시는 성령과 영생에 대하여 말씀한다.
주님은 거듭해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고 말씀하신다.
거듭나는 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구원함을 받아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은 거듭해서 우리에게 천국을 소유한 천국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거듭남의 은혜는 저의 어떤 선행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 전적으로 위로 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많은 이들이 아직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의 체험을 하지 못했고
또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의 확신도 없읍니다.
아직 영생을 소유하지 못했읍니다.

저희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수많은 날들을 주님의 교회에 왔지만 영생에 대한 믿음의 확신이 없읍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의 역사가 저희에게 임하기를 원합니다.
영으로 다시 태어나는 기쁨의 순간을 체험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천국을 소유한 천국백성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전한 마음으로 바뀌어 진다고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저의 마음이 어린아이와 같이 순전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늘 죄의 더러움으로 더럽혀진 저의 발을 생수로 깨끗하게 씻겨 지기를 원합니다

저를 불쌍하게 여기소서.
주의 긍휼로 저를 덮으소서.
주의 얼굴을 저로부터 돌리지 마옵소서.
죽은 저의 영혼을 새롭게 하옵소서.
주의 보혈의 능력으로 값없이 주시는 생명수를 들이키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References

[1] George Beasley-Murray, Word Biblical Commentary 36 요한복음 (서울솔로몬, 2010), 185,
[2] George Beasley-Murray, Word Biblical Commentary 36 요한복음 (서울솔로몬, 2010), 190-192,
[3] Joel B. Green & Scot Mcknight예수 복음서사전 (서울요단, 2008), 15,
[4] Joel B. Green & Scot Mcknight예수 복음서사전 (서울요단, 2008), 16

2015년 1월 18일 일요일

제목: 혼인잔치에서 첫번째 표적을 베푸신 주님


(2:1-11) 사흘째 되는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계시고….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표적은 권세있는 행동 혹은 이적의 뜻을 갖는 “두나미스”의 원어를 사용한다이로부터 Dynamite가 파생되었다.

예수님은 여러 표적을 행하셨다.
“복음서에서 나타난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표적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약속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실현된다는 것을 입증한다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은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표현하며 또한 긍극적으로 재림하시는 예수님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 준다.

주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첫번째 표적을 베푸신다.
곧 결혼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표적이다주님은 여섯개의 물항아리에 가득 들어 있던 물을 극상품의 포도주로 바꾸신다예수님의 비유에서 혼인잔치는 하나님의 나라와 연관이 되어있다.

이 가나의 결혼잔치의 배경을 눈에 그려보자
예수님의 어머니도 참석하였고 또한 예수님도 초청을 받았으니 이 혼인잔치는 아마도 예수님의 친척의 결혼이었을 것이라 추측을 해보자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이 혼인잔치에 참여하셨다예기치 못한 예수님의 제자들의 무리로 인해 준비한 음식이나 포도주가 모자랐으리라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예수님이나 제자들은 재정적인 부요함이 없었기 때문에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여했지만 어떤 선물도 준비할 수 없었을 것이다어머니 마리아는 이를 간과하고 친척들 보기에 민망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사정을 알렸을 것이다어머니 마리아가 걱정을 하면서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한다이때 예수님은 “이 일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읍니까”하고 거절을 하지만 곧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의 요청대로 표적을 베푸신다주석에는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단호한 거절보다는 보다 부드러운 어조를 갖고 있다이 말의 뉴앙스는 불일치보다는 일치를 표현한다고 본다즉 “왜 저에게 포도주의 부족함을 말씀하십니까저 역시 잘 알고 있읍니다”라고 예수님은 표현을 했다고 해석한다여하튼 예수님은 여섯 항아리에 있는 많은 물을 변화시켜 포도주로 선물했다.


왜 주님은 첫번째 표적을 결혼잔치에서 하셨을까?  

성경은 결혼에 대하여 몇군데에서 말씀하신다
아가서에는 모든 처녀들이 동경하는 흰말을 타고 오는 왕자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왕과 처녀와의 아름다운 사랑과 결혼을 통하여 비록 해에 그슬려서 거뭇 거뭇 보잘것 없는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주님과의 관계를 말한다

선지자 호세아와 부정한 창녀와의 결혼을 통하여 늘 죄악가운데 있는 나와 같은 자를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는 주님과의 관계를 나타낸다
자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믿음을 지킨 룻과 보아스의 결혼으로 다윗왕의 후손으로 오신 주님,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결혼잔치에서 표적을 베푸시며 주님의 사랑을 선포하신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신랑이시며 재림주와의 영원한 혼인.
성경에서의 결혼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로 표현을 하며 내가 못나고 늘 죄악 가운데 있지만 그런 나를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인내과 자비와 은혜의 사랑을 경험하라고 결혼을 주셨다.
결혼은 사랑을 훈련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단지 남편과 아내로서의 연합만을 의미한다고 보지 않는다.
결혼을 통해서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주님은 우리에게 두가지 계명을 주셨다.
첫째는 하나님을 나의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고둘째로는 내 이웃을 사랑하라 라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기를 원하신다.
어려서는 부모의 사랑을 입었고장성한 후에는 사랑을 받고 나누어 주는 것을 배우게 된다.
결혼을 통하여 사랑을 배우게 된다여러가지 이유로 실패한 사랑을 통하여 오직 의지할 이는 주님이시며 주님만을 사랑하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결혼은 나의 인내를 시험하는 곳이며감사를 느끼며또한 사랑을 체험하는 곳이다.
남자와 여자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어가며 이타적인 사랑을 배우게 하는 결혼.
긍극적으로 성도는 신부가 되어 신랑이신 주님과 영원토록 연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시다.
주님은 신랑으로 오셨다그리고 마지막 날에 신부인 주님의 자녀들과의 결혼잔치가 기다리고 있다.


두번째는 물과 포도주를 담은 돌항아리이다.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물을 담았던 돌항아리를 생각해 보자.
이 표적에서 사용된 돌항아리가 정결의식에 사용되는 것이라고 성경은 특별하게 언급한다.
주님께서는 정결의식을 위하여 준비된 물을 메시야 시대의 도래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바꾸신 것이다.
유대의 정결의식을 위해 준비된 물은 옛질서를 나타내고예수님에 의해 제공된 포도주는 새질서를 나타낸다.
주님은 비유를 드시면서 옛 포도주는 옛 포대에 새 포도주는 새 포대에 담야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돌항아리 자체는 변하지 않았지만 내용물은 물에서 포도주로 변하였다.
돌항아리는 유대 정결의식을 위해 사용된 물과 예수님에 의해 제공된 포도주를 경험한다.
우리의 몸은 옛 성품을 갖고 있다그렇지만 예수님안에 거하게 되면 나의 옛 성품 옛 질서는 변화하여 새로운 질서로 재창조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게 된다.


세번째는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을까?
물을 담았던 돌항아리를 생각해 보자이 항아리는 6절에 유대교의 몸을 정결하게 씻는데 쓰였던 물을 담은 항아리라 설명을 한다그리고 그 당시 정결예식에 쓰였던 항아리는 보편적으로 약 20-30 gallon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주님은 모두 합치면 약180 gallon즉 약 900병의 포도주이다연회에 가보게 되면 보통 8명이 앉는 table 1-2병정도의 wine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그렇다면 900병의 wine은 약 5,000정도의 하객을 접대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은 많은 양의 포도주를 신랑에게 선물한 것이다그것도 매우 적절한 때에 주님은 주신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도 주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볼 수 있다남자만 5,000명이니 여자와 어린애까지 합치면 대략 20,000명정도의 인원에게 주님은 모두가 풍족히 먹고도 12바구니에 채울만큼 풍족하게 주셨다.
주님의 은혜는 부족함이 없는 차고 넘치는 충만함을 표현한다.

주님이 주신 은혜는 선물이다.
선물은 갚지 않아도 된다적절한 때를 맞취 선물로 주신 주님의 은혜를 우리는 갚을 수 없다.

주님의 은혜를 받았는가?
너무나 커다란 주님의 은혜의 풍성한 바다에서 기쁨으로 즐기어 보자.
앞으로 메시야가 재림하실때 신랑이신 주님을 신부로서 맞이하여 풍성한 은혜의 축복을 받자


넷째,이 표적의 사건으로 제자들은 예수가 메시야임을 믿게 되었다.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이 가나안의 혼인잔치의 표적은 주님은 자신의 신적인 권능을 나타내 보이셨으며제자들에게는 자신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야임을 믿게하는 믿음을 심어준 사건이었다제자들은 주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의 사건을 통해서 주님께서 메시야이심을 믿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 행하신 이 사건을 목격한 이들은 제자외에 종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이 포도주로 변화하였듯이 이 특별한 종들 역시 은혜를 받아 변화된 주님의 자녀가 되었으리라 짐작해본다.  많은 이들이 주님의 만드신 포도주를 맛볼 수 있었지만 그 중에서 주님께서 베푸신 특별한 은혜를 경험한 이들은 주님의 제자들과 항아리에 물을 채운 종들이다이들을 제외한 이들은 주님께서 그 곳에 계셨지만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직접 볼 수 없었다.
종들은 주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직접 보고 놀라지 않았겠는가!
자신이 직접 채운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으니 기절할 정도로 놀랐을 것이다주님을 직접 만난 이들은 그 후로 주님에 대하여 더욱 관심을 가졌을 것이고 주님을 만난 이 사건을 잊지 못했을 것이다나 역시 물을 채운 종이었으면 한다주님의 따뜻한 사랑의 말과 권위있는 행동 하나 하나를 바로 옆에서 지켜 볼 수 있었던 종들은 이 사건에서 가장 축복받은 이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주님을 직접 만나는 체험이 있어야 한다.
주님의 영광을 본 자들은 주님을 믿는 믿음을 갖게 된다.
주님은 원하는 자에게 찿아 오신다지금도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시며 내가 나의 마음의 문을 열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두드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빗장이 쳐져 있던 마음의 문을 열게 되면 그 순간 광명한 거룩한 빛이 내 안에 들어오게 되며 많은 은혜의 축복으로 가득차게 된다.


주님은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을 통하여 주님의 창조적인 영광을 드러낸다.
신랑으로 오실 주님은 신부와의 혼인잔치를 예표하셨으며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나의 죄악된 옛언약은 변하여 새언약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되며 주의 자녀들에게는 풍성한 은혜를 약속하셨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 주님께서 첫번째로 행하신 표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에는 어떤 뜻이 분명하게 숨겨져 있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가는 동안 수많은 일들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읍니다.
그 가운데서 저희에게 행하시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가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옵소서.
인도하시는 대로 이끌려 가는 삶이 가장 인생이 즐길수 있는 축복임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 느껴 믿음을 가진 제자들이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행한 종들과 같이
주님께서 역사하는 것을 직접 보고 주님께서 나의 구세주이시요 메시야이심을 믿는 믿음의 은혜를 받게 하옵소서.

주님의 생수로서 저를 깨끗하게 씻기시고 주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저를 새롭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저와 함께 하시면 저의 모든 죄악되고 부정하고 불결한 옛성품은 사라지고
거룩한 새성품과 새질서가 저를 안위케 하십니다

모든 것을 품는 주님의 사랑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
제 것을 내려 놓고 남의 것을 헤아릴 수 있는 주님의 사랑을 배우기 소망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한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제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사랑으로 가득한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체험하는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주님과 함께 함으로 받는 은혜의 축복은 차고 넘치도록 부어 주십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저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바로 제 곁에서 바로 제 안에서 계시는 주님을 느끼며 살아 가도록 저의 영이 깨이도록 은혜의 단비로 적셔 주옵소서.

세상은 주님께서 향하는 우리를 쉬지않고 헤치려고 합니다 .
하지만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님의 능력이 저를 지키시고 저를 인도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인내하며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있읍니다 .
은혜와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5년 1월 11일 일요일

예수님의 근원

(요1:1-5)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은 특이한 복음서이다.
예수님의 생애를 함께 경험한 한 것에 대하여 기록한 성경말씀을 복음서라 한다. 복음서에는 모두 4복음서가 있는데 그중에 마태복음,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이 서로 내용이 비슷하다고 해서 공관복음이라 하고 요한복음은 특별한 복음서라 해서 제4복음서라 부른다.
저자는 사도요한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몇몇의 성경학자는 사도요한이 아니고 그의 제자일수도 있다고 제기한다. 요한복음뿐 아니라 대개의 성경의 저자는 확실하게 들어나지 않는다. 원저자인 성령께서 예수님을 조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라 생각이 든다.

공관복음과 구별되는 요한복음의 특징으로는
1)     성령의 사역에 대하여 많이 설명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아라.
        유일하게 보헤사 성령님에 대하며 말한다.
2)     주님을 말씀으로 표현한다.
3)     7가지의 이적이 나타나며 각각의 이적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속성을 표현한다.
        가나의 혼인잔치의 기적을 통하여 신랑이신 주님의 공생애의 사역이 시작된다.
        나사로의 기적을 통하여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을 나타낸다.
4)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일곱번 “나는….이다”의 용법으로 말씀하신다.

  •         나는 생명의 떡이라,
  •         나는 세상의 빛이라.
  •         나는 참 포도나무라.

5)     예수님의 사역이 세번의 유월절 절기를 통하여 나타남으로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3년으로 추측하게 한다.
6)     예수님을 묘사하는 다양한 명칭들이 나온다.
        말씀. 독생하신 하나님, 독생자, 하나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 선생, 예언자, 선지자, 이스라엘의 왕, 유대인의 왕, 하나님의 어린 양,


사람은 어떤 위대한 인물이 있다면 그 사람의 근본을 알기를 원한다. 사람의 뿌리가 어디로 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알기 위해 족보가 있다. 하지만 그 뿌리도 몇 세대위로 올라가면 점차로 희미해지며 결국은 어떤 시조에 다다르고 더 이상 위로 추적이 불가능해 진다.

성경을 기록한 성경저자 역시 예수님의 근원에 대하여 알기를 원한다.
그래서 마태복음에는 아브라함과 다윗왕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고, 누가복음에는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 그리고 요셉의 아버지 헬리…그리고 결국은 아담에까지 이르고 그 위로 하나님에게까지 연결이 된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근원이 바로 태초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성경말씀은 모두 주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중에서 특히 요한복음 1장 1-5절에서 주님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말씀한다.  주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우선 주님의 근원의 속성이 무엇인지를 알고 믿어 축복받은 성도이기를 축원한다.

1.     태초에 말씀으로 계신 주님
예수님의 근원에 대하여 말한다.
(요1:1-2)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

그런데 요한복음은 창1:1의 태초에 하나님을 말씀으로 바꾸어서 시작한다.
태초에 이미 계신 말씀이시며 하나님이신 주님. 예수님은 이미 태초에 계셨으며 말씀으로 계셨다.

태초에는 시간도 물질도 공간도 아무것도 없었는데 말씀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는지 우리는 모른다.
말씀이 어떤 물질적인 형상을 의미하는지, 태초라는 시간이 언제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태초에는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시간이란 관념이 없었고 혹 같은 시간을 사용한다 할지라도 그 시점이 언제인지는 알 길이 없다.

요한복음1:1과 창1:1에서 말씀하시는 진리는 우리의 지식을 초월하는 개념이다.
이것은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이다. 예수님의 기원이 태초인 영원전부터 계셨으며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 말씀으로 계셨음을 어찌 우리 인간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의 근원을 사람의 뿌리를 찿아 가듯이 찿아 올라 갈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예수님께서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시며 곧 하나님이시다” 라는 말씀이다.
더 이상 어떤 해석이 사실 필요하지 않다. 그 너머로 유추해서 해석한다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는 열려 있지 않은 하나님의 비밀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혜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하나님의 비밀인 것이다.

우리는 태초가 언제인지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무도 태초 때를 본 이가 없기 때문이다. 태초가 언제인지를 규명하겠다고 애쓰는 것 자체가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닌가?

성도의 자세는 있는 그대로를 믿고 받아 들이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생각한다.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하셨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땅에 오셨다. 흑암속에 있는 자들에게 빛을 비추사 영원한 생명을 갖게 하셨다. 이를 어찌 인간의 지혜로 풀어 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태초 때를 보지 못했고, 육신의 옷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지 못했지만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믿을 때 빛이신 말씀이 생명으로 나에게 다가오셔서 영원한 생명으로 나를 재창조하신다.

말씀은 지금도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조명하신다.
말씀은 진리이기에 모든 세상의 속되고 거짓된 것은 들어날 수 밖에 없다.

나를 진리이신 말씀앞에 비추어 보자.
내 안에 있는 세속적이고 부정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를 말씀은 나의 영의 눈을 열어 보게 하신다.
(시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2.     창조주이신 주님
주님은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창조하시는 과정이 나온다.
첫째 날부터 다섯째 날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살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필요한 모든 물과 공기와 식물과 어류와 새와 동물들을 만드시고 보기에 좋았더라 하시며 흡족해 하신 하나님께서는 여섯째 날에 인간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그런데 사람은 이런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믿지를 않는다.
인간이 어느 순간 갑자기 시작된 것을 인간의 지식과 상식으로는 믿을 수 없어 인간의 시작을 인위적으로 접근한다. 진화학자들은 어떤 환경이 갖추어 졌을 때 어떻게 해서 단세포가 생겨나 그것이 점점 자라나 변이되어 어떤 개체들이 되고 그 중에서 특별한 개체가 특별한 진화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인류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 학설을 믿는다. 하지만 현재의 과학의 수준으로는 무균인 상태에서 아무리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할지라도 아직도 단세포조차 만들 수 없다.

우주에는 수많은 은하가 있고 각각의 은하에는 수를 셀 수 없는 별들이 있으며 각각의 별들의 거리는 너무나 멀다. 우주의 크기는 아직도 규명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세상에 속한 학자들은 우주가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큰 폭발이 일어나서 오랜 진화기간을 거쳐 별들이 생겨났으며 지금도 끝을 알 수 없는 곳으로 팽창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성경 창세기에는 모든 피조물들 즉 별이나 지구나 태양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곤충이나 어류들이 진화의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닌 원래 완전한 모습으로 창조되었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믿을 수 있겠는가?
뜨거운 별이 갑자기 생겨나서 오랜 시간이 흘러 별이 식은 후에 갑자기 어떤 단세포로 시작되어 많은 종류로 되었고 그 중에 어떤 것은 원숭이가 되었고 또 원숭이의 어떤 종이 더욱 발전하여 지금의 인간의 모습으로 진화되었다는 것을 어처구니 없는 것을 믿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완전한 모습의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사역에는 어떤 오류가 없기 때문이다.

말씀이신 주님은 창조주로서 태초에 모든 피조물의 창조사역을 완벽하게 오류없이 주관하셨다.
지금도 저는 가끔가다 생각한다. 왜 대개의 동물들이나 어류나 새나 곤충은 눈은 두개이고 코는 하나이고 머리는 하나일까?  피를 돌리는 심장이 있고 혈관이 있고 숨을 쉬는 폐가 있다. 먹고 소화시키고 배설하는 과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숨을 쉬는 피조물이 같고 있는 공통점이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을 작품으로 만드신 창조주는 한분이신 주님이기에 모든 피조물들이 일관성을 갖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본다.

주님의 창조사역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진행형이다.
창조때에 관여하신 주님은 지금도 모든 피조물의 으뜸인 우리 가운데서 창조사역을 지금도 계속하고 계신다.
아담의 원죄를 물려받은 피조물은 허무한데 굴복하여 죄 가운데 거한다.
(롬8: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그런데 주님은 주님안에 있는 자들을 주님의 물과 성령의 능력으로 죄의 옷을 입은 우리를 깨끗게 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신다.
(고후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보라 이전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임을 믿고 고백하고 시인하여 주님께서 받아 주셔서 주님안에 거하게 된다면 나의 지난 날의 세속적이고 부정한것들은 깨끗함을 입고 주님께 속한 영적인 것으로 변하게 되어 의로운 옷을 입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3.     생명이신 주님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생명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생을 의미한다. 그리고 영생의 중개자는 바로 주님이시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생명과 관계된 단어를 떠올리면 사망과 부활이 연관되어 있음을 느낀다.
육신을 입고 오신 주님은 인간이 겪는 고통을 겪어가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후에 부활하셨다.
음부에 내려가셔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영원한 생명을 자녀들에게 주실 수 있는 권리와 권세를 갖고 계신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
하지만 주님을 믿는자는 주님께서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듯이 우리 또한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될 것을 확신한다.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주님은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광야에 몰려든 허기진 수많은 사람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다.
주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주님 자신이 생명의 떡임을 가르쳐 주셨다.
(요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6: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요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의 없느니라.

주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라” 말씀하신다. “나의 살과 피를 먹게 되면 영생을 얻게 된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주님은 죽은지 사흘이 되어 시체썩는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을 베푸신다.
(요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주님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시자. 그러면 나사로를 살리신 부활의 능력과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나의 죽은 몸도 부활시켜 영생을 주실 것이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중생의 역사가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의 주된 관심은 바로 영생을 주시는 분이 곧 주님이시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물과 성령으로 중생하는 자에게는 주님께서 영생을 약속하신다.
당신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는가?
주님과 함께 하는 영생을 소유했는가?


4.     빛이신 주님
주님은 빛이시다. 너무나 밝고 밝은 주님의 영광의 빛.
말씀이신 빛이 태초에 흑암가운데 오셨고, 타락한 인간의 흑암 가운데 계속 비추어 졌다. 더욱이 그 빛은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중에 보다 밝게 비추어졌으며, 종교암흑시대에도 비추어졌으며, 지금 우리에게도 주님의 거룩한 빛은 성도위에 비추고 있다. 앞으로 주님의 재림시 더욱 밝은 영광의 빛을 발할 것이다.

빛이신 주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을때 흑암에 있는 자들은 눈이 가려져 있어 그 영광의 빛을 볼 수도 깨닫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빛으로 오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 버렸다. 죽으신 주님은 부활하사 영광의 빛으로 비추신다.

지금 역시 대다수의 사람들은 흑암 가운데 있어 빛이신 주님을 보지 못한다.
그런데 주님의 영광의 빛을 볼 수 있는 은총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어졌다.
우리는 원래 어두움 가운데 있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택하심의 은혜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믿는 순간 우리에게 주님은 빛으로 들어 오신다. 나를 덮고 있었던 모든 흑암은 너무나 강렬한 주님의 영광의 빛이 비추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주님은 길에서 만난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기적을 베푸신다. 그러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9: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내가 세상에 속해 있다면 나의 육신의 눈은 사물을 볼 수 있을지라도 나의 영의 눈은 감겨져 있어 영적인 캄캄함 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주님을 만나게 되면 빛이신 주님의 내 안에 거하며 나의 영의 눈은 뜨이게 되어 그전에 볼 수 없었던 주님의 은총들을 볼 수 있어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자연의 피조물들이 몸짓을 보며, 환희의 소리를 듣게 된다.

주님을 만난 경험을 은혜라 표현을 한다.
주님을 만나 은혜의 경험을 한 자들의 대부분은 은혜를 받은 후 처음 본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잎사귀, 따가운 햇살, 새들의 지저귐, 시원하게 내리는 비 이런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보이며 하나님께 감사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주님을 만난 은혜의 체험을 하였는가?
빛이신 주님. 생명이신 주님, 창조주이신 주님, 태초부터 말씀으로 계신 주님을 만난 은혜가 있는가?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는 감사하고 또 감사할 수 밖에 없는 놀라운 경험을 해 보았는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요한복음 1장의 말씀을 통해 주님의 근원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었읍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태초부터 말씀으로 계신 주님은 곧 하나님 이셨읍니다.
또한 주님은 지금 우리가 만지고 보고 느끼는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주님의 창조사역은 계속되고 있어
저와 같이 미련하고 속된 피조물을 변화시켜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창조하셨읍니다.

주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읍니다.
영생을 주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나의 구주임을 마음으로 믿어 고백하고
다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난 자들에게
주님은 영생을 선물로 주십니다.

주님은 어둠을 밝히는 영광의 빛이십니다.
어둠속에 있어 아무것도 볼 수 없어 방황하고 넘어질 수 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빛이신 주님께서 제 안에 계시며
저의 길을 비춰주시며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드리며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