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6일 일요일

나는 선한 목자라


(10:14) 나는 선한 목자라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주님은 자신이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신다.
요한복음의 특징중에 하나가 주님은 자신이 어떤 분이심을 “나는…이다” 하시며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그중에 하나가 오늘의 본문과 같이 주님께서는 “나는 선한 목자이다”라고 자신이 어떤 분이심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계신다.  선한 목자는 밤에는 양을 사자나 늑대로부터 지키기 위해 우리안에 가두어 두지만날이 밝으면 양을 먹이기 위해 우리로부터 불러낸다그래서 싱싱한 초목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여 먹게 하며 건강하게 자라도록 한다

주님께서 양들 가운데 서 있으며 그 중에 하나의 어린 양을 안고 계시는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풀들로 뒤덮인 곳에서 많은 양들이 목자곁에서 풀을 먹고 있으며 온화한 목자의 품에 안긴 새끼 양은 평온함 가운데서 안식을 누리고 있다.


선한목자와 양과의 관계에 대하며 살펴보자.

1.     선한목자는 양의 이름을 각각 부르신다
(3)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선한목자이신 주님은 나의 이름을 부르신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 있어도 나의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
내가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어도나의 몰골이 형편이 없어도내가 변변한 직업이 없어도늘 사람들에게 치이고 부대껴 실의에 차 있어도사람들이 실패자라하여 가끼이 하지 않아도사람들은 나의 이름을 잃어 버렸어도 주님은 나의 이름을 부르신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나의 이름을 부르신다
수십억의 인구 중에서 선한목자이신 주님께서 나는 매우 특별하고 사랑스럽다고 나의 이름을 부르신다.

주님께서 나의 이름을 부르시는데 무엇을 망설이는가.
어서 가야하지 않겠는가!
선한 목자가 계신 곳으로.

선한목자이신 주님은 자신의 양의 이름을 부르신다.
그리고 선한목자에게 속한 양은 자신을 부르는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
(3)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4)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16)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그런데 주님께 속하지 못한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아니 들을수 없다.
만일 목자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내 양이 아니라 주님은 말씀하셨다.

내 안에서 들리는 “내 사랑하는 아들아” “내 사랑하는 딸아”하시며 부르시는 잔잔하고 따뜻한 사랑으로 가득한 주님의 음성을 들어 보았는가?

혹 들어 보지 못했는가?
들어본 적이 없다면 나의 믿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살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른다고 하는데 왜 나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가!

어떤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혹 세상일에 너무 분주하지는 않았는가!
주님 앞에 조용히 나가 나의 마음을 드려 본 적이 언제이었던가!
내가 내 말만 하고 있다면화가 나 있다면거짓을 말하고 있다면교만을 떨고 있다면남을 정죄하고 있다면정욕의 눈으로 바라 보고 있다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

물론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는 죄악 가운데 있는 나에게 말씀하신다.
중단하고 죄로부터 떠나라고 말씀하시지만 내 자아로 가득차 있는 나의 마음은 들려 주시는 사랑의 권고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기에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2.     목자는 양을 알고양은 목자를 안다
(14) 나는 선한 목자라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안다”라는 동사는 우리에게 희망과 소망과 위로를 주시는 말씀이다.
“안다”의 뜻에는 형식적으로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닌 실제적인 체험적이며 경험적인 관계로 아는 것을 나타낸다서로 부닦이고 그러면서 온갖 정이 드는 부부와의 관계처럼 주님과 양과의 관계는 실제 삶의 여러 체험을 통해서 어리석은 양이 변함이 없으신 선한 목자를 알아 가는 것이다

주님은 나를 잘 아신다나의 머리터럭이 몇개인지도 아시는 분이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바로 내가 잘 안다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죄성으로 가득차 있는 형편없는 나를 자녀로 삼고 영생의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 버리셨다나의 형질이 어떤지를 잘 아시는 주님께서 내가 세상에서 상하지 않도록 보호하시며 천성길로 인도하신다.

(7:16-17)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 아니하며 목마르지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자신의 양인 내가 굶주림때에 먹을 것을 주시고목마를 때에 바위를 쳐서 물을 쏟아 부어 주시고세상의 뜨거운 기운으로 내가 다칠까봐 내 앞에 방패를 두어 막아 주신다많은 인생의 고난길에 어쩔 수 없이 애통하며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나의 눈물을 딱아 주신다.

    
3.     선한 목자는 앞서 간다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선한목자이신 주님은 내 앞에서 가신다.
그래서 나는 단지 앞서 가신 주님만을 바라보며 따라가면 된다.
얼마나 쉬운가!

그런데 어리석은 양인 나의 모습은 어떤가.
앞서 가시는 선한목자 만을 바라보며 열심히 따라가야 하는데 조그마한 돌에 차여 넘어지기도 하고여기저기 둘러 보다가 내 맘을 끄는 곳이 있으면 딴 길로 벗어나 딴청을 하기도 한다그러다가 어느새 멀리 벗어나서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면 갈길을 잃어 버리고 여기 저기 해매는 방황의 길로 접어들게 되어 잃어버린 어린 양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실망하지 말자왜냐하면 선한목자이신 주님께서는 잃어버린 양을 꼭 다시 찿아 오시기 때문이다탕자가 세상에 지쳐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내 아버지집에는 먹을 것 거할 곳이 많은데 하며 결심하고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 갔듯이나의 결단이 필요하다이제는 선한 목자인 주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의 결단을 해야 한다.


4.     선한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
(11)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5)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18)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주님은 우리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십자가에서 버리셨다.
천군천사를 불러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려는 무리들을 치게 하리이까하는 제자들의 말과 같이 주님은 천군천사를 부르실 수 있으셨지만 그리하지 않으시고 담담하게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고 죽으셨다주님은 어리석은 양들을 위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 드리셨던 것이다.


5.     선한목자는 영생을 준다
(10)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받게 하려는 것이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오직 선한목자이신 주님에게만 영생이 있다.
과연 그것을 믿는가우리 기독교의 가장 근본적인 교리이다.
주님을 통한 영원한 생명.

많은 이들이 영생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기독교인들 중에도 영생이 있다고 믿지 않는 이들도 있다.

다른이는 그렇다 하고 과연 나는 영생이 있음을 믿는가?
육신의 죽음후에 영혼이 영원히 거할 곳이 있는지를 과연 나는 믿고 있는가.

그렇다면 왜 하루 하루를 나만을 위해 나 중심적인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영원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고 주님의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들어보자.
선한목자이시며 나를 만드신 창조주이신 주님께서 무어라 말씀하시는지를 들어보자.

마음을 정리하고 조용한 가운데 주님앞에 나아가 보자.
우리 인생의 삶은 그야말고 바로 내일 무슨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지를 알 수 없다.
오늘이 바로 나의 인생의 마지막 호흡을 하는 날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선한목자이신 주님은 어리석은 양인 우리를 먹이시며 그 품에 앉으시고 인도하신다.
(40: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

저희에게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감사드리며 존귀와 영광을 드립니다.

주님은 선한목자이십니다.
저 같이 어리석은 양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신 선한목자이십니다.
저에게 영생을 주시고 늘 푸른 꼴을 먹도록
끊임없이 생명수가 흐르는 풍요로운 곳으로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절망과 실망과 좌절과 실패를 가져다 주지만
우리 어리석은 양들은 선한목자의 품에 있는 한
우리 양들은 평온함 가운데서
인도하시며 앞서 가시는 주님을 따라 갈 수 있어서 너무가 좋습니다.

혹 뒤돌아 보시며 나의 이름을 부르시며 나를 안아 주시는
선한목자가 바로 제 곁에 계시니
저는 분명 하느님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존귀한 자녀임에 틀림이 없읍니다.

들려 주시는 선한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분명하게 듣고 순종하며 천성길로 가기를 원합니다.
선한목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축복합니다.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자비와 긍휼을 베푸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2015년 4월 19일 일요일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 주님

(9: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떄에 날 때 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맹인된 자를 고쳐주시는 장면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눈이 먼 자를 보시고 그에게 다가가서 땅에 침을 밷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신다이 말씀을 듣고 순종한 날 때부터 맹인된 자는 없었던 시력을 회복하고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맹인의 눈을 고치신 실질적인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의 육신의 눈의 약함을 고쳐주실 뿐 아니라 또한 감겨져 있는 영적인 눈도 회복될 것을 말씀하신다.

주님은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말씀을 하시고 맹인의 눈을 뜨이게 하셨다
그리고 맹인의 시력을 고치신 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9: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보는 자들은 보지 못하는 자들이 된다.
무엇을 말하는가주님은 우리의 영적의 눈을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 하며서도 우리의 영적인 눈이 감겨져 있다면 빛이신 주님의 실체를 볼 수 없지만 주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눈을 만지시면 감겨져 있던 눈이 떠져서 거룩한 빛이신 주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영적인 눈이 떠져 있는가 아니면 감겨져 있는가?
만일 나의 영적인 눈은 떠져 있다면 거룩한 주님의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적인 눈이 감겨져 있다면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심으로 나는 빛 가운데 있지만 암흑 가운데 있기에 발산하는 주님의 빛을 볼 수 없어 마치 캄캄한 어둠속에서 방황하며 있지는 않는가?

나의 영적인 눈이 뜨여져야 한다.
주님께서 나의 눈을 만져주시기를 바라자.
내가 원하여 얻어 지는 것이 아닌 전적인 주님의 은혜이다.
주님께서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주님께서 태어날 때 부터 맹인된 자를 고치신 순서를 살펴보자.

첫째주님은 그를 보셨다 (1).
주님께서 먼저 보시지 않으셨다면 맹인은 고침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주님의 그를 향한 사랑이 있었던 것이다날 때부터 맹인된 자는 어떤 기대도 갖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이미 체념한 상태였던 것이다많은 이들 역시 맹인을 보았지만 아무도 주님처럼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의 맹인이 주님을 먼저 찿아 간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맹인된 자를 찿아 가신 것이다맹인은 주님을 찿지 않았고 주님께 자신의 눈을 뜨게 해달라고 간구하지도 않았다.

(65:1)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찿지 아니하던 자에게 찿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주님께서는 우리의 아픔과 슬픔과 곤고한 것과 가난한 것을 잘 아신다.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주님께서 먼저 찿아 가신다.
방황하고 실의에 차있는 자를 주께서 택하셨다면 주님께서는 주님의 약속하신 때에 그를 찿아 가셔서 막힌 것을 뚫으시고 회복시키신다.


둘째주님은 맹인의 눈을 치료하시면서 구태여 어떤 과정을 밟으셨다.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도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말씀이신 주님은 단지 “다시 볼지어다” 말씀하심으로 그의 시력을 회복시키실 수 있으셨다.
그런데도 주님은 구태여 침을 밷고진흙을 이기고눈에 바르고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다.
분명 어떤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해 볼 수 있다주님은 어떤 것을 우리에게 알리려고 의도하셨을까?

주님은 침으로 눈 먼 자와 귀가 먹은 자들을 고치셨다.
(8:23)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7: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말씀으로만으로 고쳐 주실 수 있으신 주님께서 일부러 우리의 성질을 너무나 잘 아시기에 침이나 진흙과 같은 어떤 물질을 사용하시어 우리의 약함을 고쳐 주셨다.

사람은 무형질적인 것보다 형질적인 것을 믿는다.
보이지 않는 능력중의 하나가 곧 기도일 것이다그런데 기도를 하면서도 실은 기도한 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 이들은 많지가 않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어떤 일의 해결을 위해 중보기도를 부탁한다고 하자.
그래서 중보하는 자들이 열심히 기도를 한다후에 병이 낫거나 재정적인 위기에서 벗어 났다거나 가족의 문제가 해결을 받았다고 중보기도를 부탁한 사람이 중보기도자들에게 와서 고맙다고 말하는 것을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왜냐하면 기도는 보이지 않는 무형질의 것이기에 어려운 일의 해결의 도움을 받고도 보이지 않는 기도의 응답이라고 쉽게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그래서 말로는 중보기도를 부탁한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애당초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은 것이다

또 다른 예로는 어떤 영적인 권세가 있는 분이 대중앞에서 안수기도할 때 낫기를 원하는 아픈 곳에 손을 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을 볼 수 있다그러할 때 병이 낫고자 하는 이는 안수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내 아픈 곳을 실질적으로 만지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실질적인 우리의 믿음은 너무나 작다.
그래서 주님께서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보다 더 큰 것을 볼 수 있으리라 말씀하셨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믿음

주님은 보이는 것을 더욱 신뢰하는 그런 우리의 형질을 너무나 잘 아시기에 일부러 진흙에 침을 밷어 이겨 눈에 바르셨던 것이다그것을 본 자들은 실로 주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눈 먼자를 만지시고 치료하셨다는 것을 실질적으로 느낄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진흙하면 무엇이 떠오는가?
진흙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생명이 있는 피조물을 창조하셨다.
진흙으로 하나님께서 첫번째 사람인 아담을 만드셨고 아담이 잠든 새에 그의 갈비뼈 하나를 취해셔서 아담의 돕는 배필 이브를 만드셨다.
진흙으로 왔으니 너희는 진흙으로 돌아가리라 말씀하신다아무리 뛰어나고 대단한 자일지라고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 흙으로 돌아간다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주님께서 나를 만드신 창조주이시다는 사실이다.
창조주이신 주님께서 진흙을 이겨서 자신의 뜻대로 그릇들을 만드신다.

(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주님은 자신의 뜻대로 진흙인 눈먼의 눈을 다시 만지셔서 다시 보게 하시고 들리지 않는 귀를 다시 만지셔서 잘 들리게 하시며암 덩어리를 다시 만지셔서 원래의 상태대로 회복시키신다.


셋쨰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실로암의 뜻이 “보냄을 받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맹인은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다즉 이 맹인은 실로암의 물로서 치유된 것이 아니라 보내신 주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았다.실로암의 물이 이 맹인이 고침을 받게된 하나의 도구로 사용되었된 것이다
모든 것이 주님으로 부터 시작이 되고 주님에 의하여 끝을 맺게 된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님께서 모든 일을 행하신다.

실로암 연못의 물은 하나의 도구로 쓰였을 뿐이다.
흔히 기도하여 병이 낫게 되면 기도해준 자에게 감사하다며 사례하고 또한 기도한 자는 자신이 무어 대단한 자처럼 느끼기게 되기가 쉽다하지만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주님께서 그 병을 만지시고 고쳐주셨다는 것이다기도해준 자는 실로암의 조그마한 물 몇 방울의 역활을 한 것 뿐이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자사람은 단지 실로암 연못의 물 한방울일 뿐이다.
그 배후에 계시는 주님의 임재를 느끼자.

모든 것을 주님께 의지하고 순종하는 법을 배우자.
만일 맹인이 주께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셨을 때 순종하고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는 고침을 받지 못하였을 것이다마치 문등병 걸린 자가 주님의 종의 말을 듣지 않고 요단강가에 내려 가서 7번 씾지 않았다면 그의 문등병은 결코 낫지 않았을 것이다. 6번 목욕해도 낫지 않았을것이며 반드시 7번 목욕을 했어야 했던 것이다.

주님의 은혜가 내게로 다가오기 위해서서는 나의 순종이 수반되어야 한다.
순종하는 종을 주님께서는 기뻐하신다.
순종하는 법을 잘 배우도록 하자.

하지만 우리는 순종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나의 자아는 주님께 온전하게 순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그래서 온전한 순종하는 법을 배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종이 되라고 주님께서는 나에게 갖가지의 곤람함을 허락하신다그 곤고할 때마다 주님께 매달리는 법을 배우고 주님께 간구하는 법을 배우고 그리고 주님을 의지하며 순종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점차로 나의 자아가 깨어져 가며 나를 십자가에 철저하게 못박아 나를 버릴 준비를 해 가는 인생 여정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이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죄악중에서 거하였읍니다.

저의 눈은 세상적인 것을 보지만 주님의 영적인 놀라움의 아름다움을 아직 보지를 못합니다.
주님 저의 눈을 만져 주옵서서주님의 아름다운 세계를 보기를 원합니다제안에 계신 주님의 영으로부터 발산되는 주님의 거룩한 빛의 실체를 보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소리에 익숙한 저의 귀를 만져 주옵소서들려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듣고 순종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저 자신을 나타내고자 애쓰는 광포하며 교만하며 거짓이 있는 저의 혀를 만져 주옵소서주님의 사랑의 말을 전하는 입술이 되기를 원합니다주님의 말이 전해지는 곳곳하며 주님의 놀라운 평강이 전해지기를 원합니다.

죄악에 깃들어져 익숙한 저의 마음을 만져 주옵서서늘 세상의 것을 따라 가던 길을 멈추고 하나님의 영적인 것을 따라 가려고 합니다주님께 온전하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게 하옵소서.
주님께 순종함이 없다면 베푸시는 주님의 은혜가 온전하게 열매를 맺지 못할 것입니다 .
주님 저에게 긍휼을 베푸사 온전하게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게 하옵소서.

저는 단지 실로암 연못의 하나의 물방울 임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저는 실로 미비한 훅 불어 버리시면 없어져 버릴 미비한 존재입니다.

진흙인 저를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로 다시 빗으소서.
주님은 지금의 저를 빚으셨읍니다.
제 안의 더럽고 추악한 것들을 다시 빗으소서.
주의 영광이 저를 통하여 나타나게 하옵소서.
저를 통하여 주님 영광을 받으소서.
제가 주님을 축복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2015년 4월 12일 일요일

나는 세상의 빛이라


(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복음은 1:1-5에 이렇게 시작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을 시작하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심을 소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시며 태초부터 계신 창조주이시다
또한 말씀은 곧 생명과 빛이다곧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말씀생명 그리고 빛이심을 말한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시다.
예수님이 온 우주만물의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주이심을 믿는가?
과연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종류대로 만드셨고 특히 사람은 맨나중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음을 믿는가?
그런데 왜 사람이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었다고 믿는가?
왜 생명체의 기원이 우연한 때에 또 다른 많은 우연함의 일치됨으로 박테리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믿는가?
그렇다면 왜 아직도 과학은 이것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을까?
태초때부터 계신 주님은 창조주이시다.
창조주이신 주님께서 모든 것을 만드셨음을 믿는 것이 왜 그리도 어려울까?


예수님은 곧 말씀이시다.
우리에게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라고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구약 39권 신약 27권 도합 66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성경말씀이다.
말씀이신 예수님을 기록한 성경말씀을 믿는가?
그러면 예수님을 더욱 더 알기위해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느껴야 하는데 과연 나는 나의 삶의 얼마만큼을 예수님을 알기 위해 성경말씀을 가까이 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영생을 주신다.
예수님을 안다면 내 안에 예수님이 거하심으로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이 나에게 주어졌음을 믿는가?
우리의 삶은 지금에 국한되어 있는가인생은 누구나 태어났고 또한 반드시 죽어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입은 존재라서 육신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함께 갖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영적인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도 있다분명한 것은 사람은 누구나 영적인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낀다는 것이다.

육신의 죽음후에 과연 무엇이 있을까?
만일 사람이 육신으로만 만들어졌다면 동물들과 무엇이 다를까!
사람은 모두 죽는데 그후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죽음과 동시에 모든 것이 소멸되어 버릴까단지 기억속에 남겨져 지는가?

주님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치신다.
우리는 영생을 소유하고 있다주님을 받아들인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왔던 곳인 흙으로 되돌아가지만육신으로부터 분리된 영혼은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존재한다고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확신을 준다.
우리의 인생은 고작 90-100년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사는 것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우리는 영원을 바라보지 못하고 지금 사는 것에 급급해한다마치 지금만이 나에게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한다내가 이세상에서 누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더 잘지낼수 있을까 하며 내 중심의 삶을 살게 된다그런데 내 안에는 욕심과 거짓과 교만과 정욕과 위선으로 가득차 있어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준행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최상의 것을 누리고 산다고 해도 얼마 못가 흥미를 잊어버리고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찿으려 한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곧 없어져 버릴 허상일 뿐이다우리는 흔히 이런 소식들을 접한다권력을 가진 자 혹은 많은 재물을 가진 이들이 삶의 허망함을 느끼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식들을 듣곤 한다모든 것을 가지고 누렸던 그들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헀을까?  아마도 그들은 영원을 바라보지 못하고 허망한 현세만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왜 그들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알수 없지만 주님은 그들을 보시며 얼마다 마음이 아파하셨을까?
영원을 바라보자지금의 고난과 고통은 잠시후에 있을 영원한 영광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주님을 온전하게 믿는다면 주님의 새롭게 하는 놀라운 능력이 나를 주관할 것이다혹 내가 지치고 곤하며 어찌할 바를 모를 때에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성령은 나를 위로하시며 일어서도록 새 힘을 주실 것이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주님은 지극히 제한적인 지금의 삶 후에 있을 영원한 삶을 잘 준비하라고 말씀하신다.

영생!
주님과 함께 하는 영생!
그곳은 무엇에 얽매이지 않은 사랑으로 가득찬 자유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주님과 함께하는 영생을 소유하고 싶지는 않는가?


그리고 오늘 본문에 소개된대로 주님은 세상의 빛이시다.
주님은 어둠 가운데 빛으로 오셨다그런데 빛으로 오신 주님을 어둠은 깨달을 수 었었다.
그래서 어둠의 자식들은 빛으로 오신 주님을 받아 들일 수 없어서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그렇지만 주님은 십자가의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생명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다

빛은 어둠을 비춘다.
어둠 가운데 비치는 한줄기 빛그 빛이 닿는 곳마다 주님의 생명이 스며들어 간다.

주님은 빛으로 오셨다.
(42:6-7) 나 여호와가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을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주님은 소경된 자들을 고쳐주심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하셨다.
이들은 세상의 빛만을 본것이 아니라 빛으로 오신 주님을 보게 되었으며 그들안에 주님의 생명의 빛이 거하게 되었다어둠 가운데 있어서 참진리를 알수 없었지만 생명의 빛이신 주님께서 그들안에 거함으로 말씀이 그들을 진리로 인도하게 된것이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어둠속에서 혹 방황하고 있지는 않는가?
모든 것이 어둑 어둑하여 잘 보이지 못하고 분간할 수 없지는 않는가?
혹 나의 두 눈이 감겨져 있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나와의 주님과의 관계가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한다.
(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주님은 세상의 빛으로 생명의 빛으로 오셨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주님을 따라 주님을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에 믿음으로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게 되면 생명의 빛을 소유하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자나로부터 생명의 빛이 발산되고 있음을.
그 빛 앞에 어둠의 권세들은 물러갈 수 밖에 없다.

주님의 자녀들은 세상의 빛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많은 사람들에 비취는 생명의 빛이 되어야 한다.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여 주님의 생명의 빛을 비추어야 한다.
(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왜냐하면 주님의 생명의 빛이 닿는 곳곳마다 주님의 사랑의 권세가 임할 때 우리 아버지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이다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는 삶내가 빛으로서 사명을 잘 감당할 때 받는 기뻐하시며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그들고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은 창조주이시며 말씀이십니다.
그 안에는 영생이 있으며 어둠을 비추는 거룩한 빛이십니다.

아직 어둠에 있읍니다.
두 눈이 있지만 어둠의 권세로 일부분이 가려져 있어서
빛이신 주님의 영광을 온전하게 보지를 못합니다.
저를 도와주소서긍휼을 베푸소서.

주님의 거룩한 생명의 빛으로 가득차기를 원합니다은혜를 베푸소서.
거룩한 주의 자녀로서 주님의 생명의 빛을 비추기를 원합니다.
그 빛이 닿는 곳곳마다 주님의 사랑이 전해지는 도구로 사용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주여 저를 사용하옵소서.
저를 통하여 하나님 영광받으옵소서.

세상의 빛이시며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