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18일 일요일

이 일을 기억하고 돌아오라

(44:21-23)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나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네 허물을 빽뺵한 구름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 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숲과 그 가운데의 모든 나무들아 소리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였으니 이스라엘 중에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로다.

이사야서에는 늘 죄악을 범하는 자녀이지만 그런 자녀를 택하시고 구속하시고 품에 앉으시는 여호와의 절절한 사랑이 잘 그려져 있다.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두 가지를 요구하신다. 기억하라그리고 내게로 돌아오라’.
기억하라
(21)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은 과거의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간다.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일을 기억하라고 하신다. 곧 여호와께서 나를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나의 더럽고 추악한 모든 죄들을 용서하신 여호와이심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신다.
창조주이신 여호와
(21) 내가 너를 지었으니
모든 고난이나 역경 가운데서도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기에 모든 것을 인도하실 주권이 있으시다. 나를 지으시고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여호와.
창조주 여호와를 만났는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난단 말인가?” 혹 이렇게 생각을 하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는 매일 매일 창조주이신 여호와를 만날 수 있다
나의 눈이 띄이기만 하면 바로 내 주위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산과 들과 강과 바다 가운데 있는 모든 것들이 여호와의 창조 작품들이다. 꽃을 보아도, 곤충을 보아도 그 가운데서 세심하게 만드신 여호와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밤에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수 많은 별들 가운데서도 여호와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가! 
멀리가지 않고 바라 나를 바라보자. 내 안에는 너무나도 정교하게 만드신 하나님의 손길이 구석 구석에 배여 있다.
여호와의 셀 수 없는 작품들 가운데 심히 좋았더라 하시며 기뻐하시며 만드신 바로 나.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소중한 존재인 나를 살리시려고 여호와께서는 주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나를 구원하사 여호와께서 계신 하늘나라로 나를 인도하신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가?
저는 믿음의 근간이 바로 창1:1의 말씀이라 생각을 한다.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이 믿어지는가? 만일 믿어지지 않는다면 믿음은 흔들릴 수 밖에 없다.
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가 믿겨 진다면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사건들이 믿어된다. 말씀으로 온 만물을 창조하신 사건, 온 땅을 뒤덮어 모든 호흡하는 것들은 멸절된 홍수의 사건, 바다가 둘로 갈라진 사건, 해가 뒤로 10° 물러선 사건, 주님께서 처녀의 몸으로 이 땅에 오사 복음을 전하시고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시고 삼일후에 부활하신 사건, 초대교회 당시에 수많은 성도들이 단지 주님을 믿는다며 순교를 했던 일들, 그리고 나의 삶 가운데 이해할 수 없는 수 많은 일들을 통해서 지금 나 같은 자도 주님을 믿게 된 사건. 창조주이신 여호와를 믿으면 수많은 이해할 수 없는 기적들이 믿어지게 된다

그렇지만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로서 여호와가 믿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나 뿐 아니라 모든 주님을 믿는 자녀의 죄를 구속하셨음을 믿을 수 있겠는가?
창조주 여호와를 만나자.
믿어지지 않는다면 성령님께 믿어지도록 도와달라고 간구를 해보자.
욥은 어느날 갑자기 사랑하는 가족들과 재물과 건강 모두를 잃어버린다. 사람들은 그런 재앙을 만난 욥이 어떤 죄악이 있어 그런 재앙을 만났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친분을 쌓았던 친구들에게 항변을 하지만 자신의 비참한 심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이들은 없다. 욥은 이유를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만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밑바닥까지 내던져서 세상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비웃음을 받았다. 그래도 욥은 그런 저주의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믿음을 지켰다.
그런 욥을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만나 주신다.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을 만든 창조주 여호와라고 말씀하신다.
(38:3-4)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욥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났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기란 어려운 일이다. 주위의 모든 이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심지어 함께 오래한 친구들로도 욥의 어떤 죄악된 일로 인해 고난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단정을 한다. 가정과 재물과 건강 모든 것을 짧은 기간동안 잃어 버린 욥은 번민과 외로움과 좌절하지만 고통을 통하여 마침내 욥은 하나님을 창조주 여호와로서 만났다. 창조주 여호와를 만난 욥은 이렇게 고백한다.
(42:5-6)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좌절하여 모든 소망을 잃어버린 욥은 비로서 창조주 여호와를 만난 것이다. 욥은 깊은 어둠속에서 비추는 한줄기 빛을 만난 것이다. 그토록 사랑하던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여호와이심을 비로서 깨달은 것이다
나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서 좌절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상심한 나를 쳐다 보고 계시는 여호와.
주위를 둘러보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에 걸려 넘어진다. 그런데 어느새 다가와서 내 손을 잡아 일으키시고 빛이 비추어 나를 인도하는 여호와의 손길이 지금껏 내게는 있어왔다. 내가 아는 여호와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나는 어떤 여호와를 만났는가

또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여호와께서는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이다.
(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죄가 얼마나 많은지 빽빽한 구름이라고 표현을 한다. 너무나 많은 죄들로 엉켜있어 새카만 구름들이 뒤덮여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아무리 죄악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지만 어느새 죄란 놈은 바로 내 눈앞에서 얼쩡거리며 나를 넘어뜨리려 한다.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여 깨끗하게 되었지만 얼마못가 다시 죄악 가운데 거하는 존재가 바로 나이다. 그런 나를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나의 모든 죄들을 이미 십자가에서 용서하시고 안개같이 없이 하셨다.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진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 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나의 모든 죄들 과거에 지은 죄들 그리고 앞으로 지을 죄들까지 모든 죄들을 눈과 같이 양털과 같이 희게 하신 여호와를 늘 기억하고 감사하자.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말자.
(51:3)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비록 죄들이 내 주위에 가득하지만 그 가운데서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살기에 힘쓰자.
 

돌아오라
구속함을 입은 영혼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곧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한다.
(22)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라
죄 가운데 있다가도 주님의 돌아오라는 말씀을 듣고 돌아가자. 내게로 돌아오라는 여호와의 말씀은 얼마나 우리에게 위로를 주며 용기를 주는가!
허구한 날들을 우리는 죄 가운데 있다. 그 죄 가운데서도 나에게 들려주시는 내게로 돌아오라는 주님의 음성.
주님 앞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죄에 대한 회개이다. 회개가 없으면 절대로 주님 앞으로 돌아갈 수 없다.
(24: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3:19)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생각으로 죄를 지을 때마다, 입으로 죄를 지을 때마다, 손과 발로 죄를 지을 때마다 주님 이름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자. 사랑과 긍휼과 자비가 많으신 주님께서 그런 나를 보시며 나의 죄들을 빽빽한 구름이 바람이 흩어지듯이 없이하시고 다시는 기억도 하지 않으실 것이다.
주님앞으로 돌아가는 인생은 참으로 복된 인생이다.
우리 모두 주님의 축복을 받은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지금 주님께서 부르신다.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죄를 떠나 내게로 다시 돌아오라.
너는 나의 사랑하는 자녀이니 내게로 돌아오라.
내 품에는 쉴 곳이 많이 있으니 내게로 와서 편히 쉬라.
곤고한 짐을 진 자여. 네 짐을 내려 놓아라. 호흡이 끊어지면 없어질 짐들을 왜 그리 힘들어 하느냐.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너는 내게로 오라.
네가 죄 가운데 있을 때에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는 그것을 기억하라. 내가 너를 구속하기 위해 하늘의 영광을 잠시 미루고 이 땅에 와서 십자가를 짐으로 너의 모든 죄악들을 없이하고 용서하였다는 것을 기억하라.
나의 큰 팔에 안기라. 나는 너를 늘 기다리고 있다. 내 품은 따뜻하고 평안을 줄 것이기에 너는 내 안에 항상 거할지라.
(3: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이니라.
여호와의 절절한 사랑의 고백앞에 저의 마음이 녹는다. 여호와께서 우리보고 나는 너의 남편이라고 하시며 제발 나에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주님 앞으로 돌아간 인생들은 참으로 복된 인생들이다.

주께로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은 노래하라고 말씀하신다
(23)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노래할지어다
하늘과 땅이 노래하듯이 산과 숲과 모든 나무들이 창조주을 찬양하듯이 나를 만드신 주인이신 여호와께 소리높여 노래하자. 전심을 다하여 찬양을 할 때 여호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신다. 나의 드리는 찬양을 통하여 여호와여 영광을 받으소서. 안개가 없어지듯이 저의 모든 허물과 죄악들을 없이하시고 기다리시는 여호와 앞으로 나아가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찬양을 드리는가?
교회에서 어떤 내용의 노래들을 찬양하는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야 한다.
대부분 나 중심의 찬양을 드린다. ‘주님이 주어가 아니라 가 주어이다.
주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기보다는 나를 안위하는 감성위주의 노래들을 많이 한다.
제발 주님께서 하신 일들을 찬양하며 주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찬양하자. 주님을 올려 드리며 주님께 모든 영광을 드리는 찬양을 주님은 기뻐하실 것이다. 주님은 우리 모두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지 않은가!
요사이 교회에서는 참으로 씨끄럽게 찬양을 한다. 얼마나 음악소리가 큰지 바로 내 옆에서 드리는 아름다운 찬양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조명은 또 얼마나 화려한가. 마치 무대 공연을 보는 듯 하다. 주님을 기억하게 하는 십자가는 보이지 않고 커다란 screen들이 전면을 비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찬양일까?
시끄러운 가운데 찬양을 드리면 마음의 여운이 어떻게 남든가? 잔잔한 가운데 주님 앞으로 나아가게 되던가? 주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거룩하신 분을 내 감성에 내 기분에 맞취서 노래하는 것이 올바른 예배의 모습은 아니다. 모든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진심으로 감사하며 노래하여 주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이 올바른 찬양일 것이다.

 
모든 것들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여호와여

저에제 귀한 주님을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저의 주님께 드리는 노래를 받으소서. 할렐루야.
저의 온 몸의 세포들이 창조주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저를 구속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놀라운 세계로 인도하실 주님을 두손 높이 들고 찬양을 드립니다. 받으소서. 할렐루야.
천지의 주재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모든 호흡을 하는 존재들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하늘을 여시고 주님의 거룩한 빛을 비취주심에 감사드리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주여 주님을 찬양합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드립니다. 여호와여 영광을 나타내시옵소서.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