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6일 토요일

묵은 누룩

(고전5:6-8)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누룩은 빵을 만들거나 혹은 여러 술을 빚을 때 사용됩니다. 누룩은 많은 종류가 있으며 대개가 곡식가루를 숙성해서 만든 누룩곰팡이를 곡물과 섞어서 만듭니다. 밀가루를 적당한 물로 반죽하고 누룩을 넣어 섞어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부풀어 오르게 되면 구워서 빵을 만듭니다.

성경에서 누룩은 대부분 외식, 거짓 교훈등과 같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여졌으며, 본문에서는 죄악의 의미로 쓰여졌읍니다. 매우 소량의 누룩이지만 밀가루 전체에 영향을 줍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뜨이지않는 조그만한 죄가 있는 곳 전체에 영향을 줍니다.


저의 영과 육을 살리고 죽이며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누룩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겠읍니다.
(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않도다

사도바울 당시 교린도교회는 많은 은사와 은혜가 넘치는 교회이었지만 죄악을 용납하였기에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합니다.

지금의 우리도 다르지 않지요.

대형 교회에 다니는 이들은 나는 이런 큰 교회를 다닌다고 자랑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대형 교회가 조그만 교회보다 훨씬 영적이며 기독교적이며 주님의 임재가 있어야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들을 합니다. 그렇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큰 교회일수록 속으로 곪은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닙니다. 곳곳에 더러운 것들이 고여있고 엮겨운 냄새가 납니다. 주님이 주인이 아니라 사람들이 주인 행사를 합니다. 교회가 클수록 교회 재산을 마치 자신의 것인양 사유화한 교회들도 우리들의 주변에는 많이 있읍니다. 오히려 보잘것 없으며 성도도 얼마되지 않는 자그마한 교회가 훨씬 깨끗하고 건강한 교회일 경우가 많습니다.

죄악을 묵인하고 용납하고 있는 교회는 잘못되었지요.
겉으로는 번지르르 하지만 실상은 누룩으로 가득한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에 다니는 자들은 이런 마음을 품을수도 있읍니다. 교회에서도 이런 크거나 혹은 적은 죄악들도 묵인되고 받아 들여지는데 하물며 내가 지은 죄악 쯤이야 어쩌랴 하며 합리화합니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죄로 시작하였지만 점차로 무뎌져 더 큰 죄로 만연하여 자신 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죄로 섞어 부패하게 만듭니다.

조그마한 누룩이 밀가룩 반죽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같이, 받아 드려진 조그마한 죄악으로 인해 온 교인들을 부패된 죄악으로 만연케 하여 죄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도록 면역이 되게 만들어  죄를 죄악으로 여기지 않게 됩니다. 죄에 대하여 둔하게 되면 나의 영과 육은 죄로 부풀어 오를수 밖에 없으며 그 사람은 어둠의 자식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적은 누룩을 용납하고 받아 들이는 교회들은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곳에 모인 주님의 자녀들을 더 이상 잘못된 길로 함께 멸망으로 인도하여서는 않됩니다. 공의로우신 주님의 심판은 매우 엄정하기 때문이며 반드시 책임을 물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회개하는 자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지만 한가지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용납하시지 않고 반드시 죄 값을 치루게 하십니다. 만일 죄악으로부터 떠나지 않고 묵인하며 용납하게 되면 결국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매우 적은 양의 누룩이 밀가루에 섞이게 되면 밀가루 반죽이 부풀리게 되어 빵을 만듭니다. 누룩이 밀가루에 섞여 반죽이 되면 누룩가루를 흔적조차 찿을수 없지만 그 영향은 잠시 후에 나타납니다. 마찬가지로 매우 적은 것 같은 죄라 대수롭지 않게 가볍게 여기지만 얼마안가 내 안을 온통 휘저어놓아 결국은 나의 소중한 인생을 파멸의 길로 이끕니다.

우리 속담에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다가 있읍니다. 가랑비는 가늘게 내리는 비입니다. 오는 것 같지 않게 아주 조금씩 살며시 내리는 비입니다. 가랑비가 오는 길을 오래 걷다 보면 어느새 온 몸을 감싼 옷이 젖어들게 됩니다. 대수롭게 여기지 않던 것들을 계속해서 용납하고 용납한다면 결국은 것잡을 수가 없게 됨을 말하고 있읍니다.

우리의 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죄들은 죄라고 금방 표시가 납니다. 그런데 어떤 죄들은 죄같은 모양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교묘하게 숨겨져 있어서 죄라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면 그동안 습관처럼 해오던 것이어서 죄라고는 생각 조차 하지 않습니다.

늘 거짓을 일삼고 사는 이들은 처음에는 거짓이 죄임을 압니다. 하지만 거듭되면 거짓에 면역이 됩니다. 그래서 거짓을 말하는 것이 당연시 되어 거짓의 죄악에 대하여 무뎌지게 됩니다.

요사이는 좋은 세상이 되었지요. 갑질을 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표면에 떠오릅니다. 전에는 감히 갑질을 당한다고 말할 수 없어 그동안 감추어져 있었읍니다. 그런데 세상의 풍조에 힘입어 갑질을 당했다고 떳떳히 표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읍니다. 갑질을 일삼고 살았던 사람은 갑질하는 것이 죄라고 여겨지지 않고 당연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만 정작 자신의 눈에는 당연하며 설령 죄라고 생각해도 그리 심각한 죄로 받아 들여지지 않습니다.

갑질은 세상보다는 교회 안이 더욱 심합니다. 갑질은 자신만 아는 교만과 위선으로 인해 다른 이의 인격을 무시하여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에 역행하는 죄입니다. 

어떤 대형 교회에서 사업이 어려운 이가 장로로 피선이 되었는데 당신은 삶이 곤궁하니 피선 장로에서 알아서 사퇴하라고 당회에서 말합니다. 그것은 덕을 세우라는 교회를 어지럽히는 죄악인데도 담임목사를 포함한 교회의 지도자들은 뻐젓하게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만일 주님이 그 교회에 계신다면 주님은 결코 장로의 직분을 받으실 수 없으십니다. 주님은 자신의 tax를 낼 돈이 없으셔서 물고기가 입에 문 동전으로 내실 정도로 가난하셨읍니다. 배우신 것도 없으셨읍니다. 학교도 가지 않으시고 단지 목수일만 배우셨읍니다. 단지 믿음만이 있으셨읍니다. 어떻게 그런 이에게 장로의 직분을 주며 담임목사로 세울 수 있겠읍니까. 외모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세우며 갑질하는 교회는 진실로 회개해야 합니다. 아무리 교회가 커도 그런 교회는 허울좋은 종교적인 집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교인들 가운데서도 세상에서 교회에서 갑질을 하는 이들이 많이 있읍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뿐 아니라 사실 우리는 나 자신도 알게 모르게 갑질을 합니다. 나보다 못해 보이는 자들을 함부로 대하며 인격을 모독하며 갑질을 행하지요. 이런 남을 무시하며 업신여기는 죄악의 시초는 매우 작은 죄였읍니다. 작은 죄들을 계속해서 받아들여 죄에 둔감해지고 당연시되고 결국은 큰 죄악을 만들어 냈읍니다. 매우 적은 양의 누룩은 많은 양의 밀가루 전체에 영향을 줍니다.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누룩이지만 온 밀가루 반죽을 부풀립니다.

내 안에 아무리 사소한 죄일지라고 거듭해서 받아 들인다면 결국은 나의 온 몸과 영에 영향을 줍니다.
가랑비를 맞듯이 처음에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죄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은 분명하게 내가 죄를 지으려고 할 때에 알려 주십니다. 내 안에서 내 양심에 들려주시는 세미하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10:10)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임한 우리는 이미 모든 죄로부터 깨끗하게 되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이 임함으로 모든 누룩은 제거 되었으며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읍니다.

우리는 이미 누룩이 없는 자입니다. 누룩이 이미 제거되었기에 누룩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교묘한 누룩은 가만히 슬며시 나의 인생에 개입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꼐서는 누룩이 들어오려는 것을 감지하며 경고를 하십니다. 그럴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만일 나의 영이 잠을 자고 있다면 둔하게 되어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흘립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죄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고 내 안에 들어 오려는 누룩을 제거할 수 있읍니다.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5: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일단 누룩이 밀가루 반죽에 섞이게 되면 다시는 그 누룩을 제거할 수 없은니다. 만일 누룩이 없는 빵을 만들려면 일단 누룩이 반죽에 섞인 덩어리는 아무리 아까워도 버려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죄악이 내 안에 들어오게 되면 누룩과도 같아 온 몸에 퍼지게 됩니다. 누룩이 섞여 반죽이 된 밀가루에서 누룩을 골라낼 수 없는것과 같이 죄는 내가 아무리 없애려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도 지워지지 않으며 없어지지 않습니다.

(1:18)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아무리 적은 죄일지라도 죄의 결과는 나를 패망으로 인도합니다. 그런 죄를 없애려고 아둥 바둥대지만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내게 임할 때에 내 안에 있는 모든 죄들이 깨끗하게 지워집니다.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에는 묵은 누룩과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묵은 누룩은 켜켜묶은 오래된 죄악이며 어려서부터 몸에 밴 못된 습성입니다.
오랫동안 손이 안 간 방이나 물건을 정리하려면 먼지들이 수북히 쌓였읍니다. 먼지를 털어 내려면 뽀얀 먼지로 온 방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물기가 가득한 수건으로 몇번이고 씻겨 냅니다. 내 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묵은 누룩인 오래된 죄악들과 못된 습성을 제거해야 합니다. 나의 묵은 누룩인 엣습성들을 버려야 합니다. 가라앉아 있어 꺠끗하게 보이지만 성령께서 휘저어 놓으면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뿌옇게 되는 나의 마음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깨끗하게 청소를 해야 합니다. 성령의 물과 불로 깨끗하게 되야 합니다.

또 다른 누룩은 나의 삶 가운데서 오랜 기간 동안 자연스럽게 몸에 밴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입니다. 옛 죄악의 습관과 악의로 가득합니다. 순전함이 없으며 진실됨이 없읍니다. 무엇을 해도 겉으로는 남을 위하는 것 같지만 실상 마음속에는 자기 위주입니다. 자기가 제일 잘났으며 교만하며 가식적이며 위선적입니다. 선함은 없고 악의가 가득합니다. 세상에 속한 자들은 교활하며 자신 밖에 모릅니다. 남을 해쳐서라도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곁에 가기만 해도 세상에 속한 영의 바람을 느낍니다.


사도바울은 새 덩어리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합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주님의 은혜로 우리는 새로운 덩어리도 거듭났읍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읍니다. 묵은 누룩이나 악의로 가득한 누룩이 또 다시 나를 지배하려고 하면 깨어 있어 경계하고 버려야 합니다. 죄란 못된 놈은 문턱에 아주 가까이 있어서 나를 끌어 내리어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인 구원으로부터 멀어 지도록 유혹하고 어둠으로 이끌려고 부단하게 쉬지도 않고 노력을 합니다. 이런 악의에 가득찬 죄를 눈을 부릅뜨고 물리쳐야 합니다.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4: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여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이루라.

사도바울은 누룩으로 가득한 인생을 옛 사람으로, 누룩이 제거된 인생을 새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새 사람은 누룩이 없이 선함으로 가득합니다. 순전함이 있으며 진실함이 있읍니다. 무엇을 해도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며 내 위주보다는 주님의 이웃을 먼저 생각합니다. 늘 나를 낮추려고 합니다. 교만하지 않습니다. 늘 겸손하려고 합니다. 겸손함이 몸에 배어 있읍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진실합니다. 어리숙해 보이지만 마음과 행함은 항상 순수합니다. 깊은 호수 밑바닥까지 보이는 투명함이 있읍니다. 교활한 사람들에게는 밥입니다. 양이 자신을 지킬 수 없지만 선한 목자가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추위와 더위로부터 지키듯이 새사람이 된 저를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의 삶을 보장하시고 지켜주십니다. 저의 지난 날을 뒤돌아보면 떄로는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었지만 선한 길로 인도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밖에 없읍니다.

새 사람이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를 새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 치르신 대가는 너무나 크십니다. 자신의 목숨을 저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보혈을 흘리시고 죽으셨읍니다. 보혈로 저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새 사람이 되라고 은혜를 베푸셨읍니다.

늘 새 사람을 잘 간직하라고 주님의 영이신 성령을 내 안에 거하시도록 선물을 주셨읍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건입니까. 바로 제 안에 주님의 영이 함께 거하시며 누룩이 없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며 주님만을 자랑하며 살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것도 제가 저의 육신의 호흡을 마치고 천국에 이를때까지 말입니다. 저는 틀림없이 너무나 큰 복을 받은 축복받은 자입니다.

(고후7:1)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기 위해서 늘 성령충만함을 간구해야 합니다.
공의의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기며 예배의 회복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살리신 주님을 경외함으로 대하여야 합니다.
주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찬양의 회복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이 새겨져 있는 말씀을 늘 가까이 해야 합니다.
수시로 미주알 고주알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이름의 능력이 제 삶에 나타납니다.
마귀가 지배하는 혼잡한 세상에서 주님께서 저와 함께 하심으로 승리는 보장이 되었읍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악하고 천한 묵은 누룩과 지금껏 살면서 익히 몸에 밴 죄악의 습성들인 악한 누룩들은 저의 삶을 망치며 파멸으로 사망으로 인도합니다. 제 안에 켜켜묵은 오래된 죄악과 또 지금껏 제 안에 그릇되이 만들어진 사람을 해치는 저의 못된 죄악의 성품을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새로운 피조물로서의의 삶을 온전하게 살기를 간구합니다. 제 안에 계신 성령님이여 저를 가르치시고 깨우쳐 알게 하옵소서. 저의 남은 삶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님의 기뻐하시는 종으로서의 누룩이 없는 구별된 삶을 살도록 저를 변화시켜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