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기뻐받으시는 예배
(신12:5-7)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찿아 나아가서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의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들로부터 예배를 받으시기를 원하시며 온전한 예배를 드릴때 기뻐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예배를 드리십니까? 예배 시간 중 특히 설교시간만 되면 졸다가 예배가 끝나자 마자 혼미한 정신으로부터 돌아와서 사람들과의 교제를 나누기에 열심을 다하는 무미건조한 예배를 드리지나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예배를 드릴때도 있지만 때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는 무의미한 예배를 드릴때도 있읍니다.
하나님께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할까요?
택하신 곳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 이름을 위하여 예배를 받으시는 “택하신 곳”이 있다고 하십니다.
많은 교회들이 있읍니다. 그렇다면 그 많은 교회가 하나님이 택하신 곳 일까요?
유럽에는 유서깊은 많은 교회들이 있읍니다.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고 또 아름답게 지어져서 역사적인 가치도 있읍니다. 한때는 많은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를 드렸었지만, 지금은 그러한 교회들에 성도들은 없지만 관광객들이 들려보는 관광명소가 되었으며 또 어떤 교회들은 팔려 모슬렘의 사원으로 바뀌거나 심지어는 술집이 되어 버린 곳도 있읍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교회가 하나님이 택하신 곳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겠지요. 하나님의 임재가 떠난 교회는 건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은 그토록 크고 웅장한 교회 건물을 지으려 하나요?
많은 사람들이 교회건물과 부대시설이 잘 가꾸어 진곳에 하나님이 계실 것이라 착각들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작은 교회들의 사정을 생각지도 않고 자신들의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서 크고 웅장한 교회를 짓기에 열정을 다합니다. 작고 퇴락하였으며 적은 성도의 교회일지라도 그 곳에 주님의 임재가 있어 마음이 위로를 받으며 평강의 축복이 있는 교회가 있읍니다. 아무리 크고 아름답고 공교하게 지은 교회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처소가 아니라면 그곳은 그저 훌륭한 교회 건물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시는 곳은 사람들이 정한 곳이 아닌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신 곳입니다.
그곳이 우리들 보기에 초라하고 보잘것이 없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라면 그곳에서 하나님은 우리들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찿아 가서
예배드릴 곳으로 우리들은 찿아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기 원하시는 신성한 장소에 가서 예배를 드릴때 하나님께서는 그 예배를 열납하십니다. 그 장소는 어디에 있을까요?
11절에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예배드릴 장소를 마련해 주시며 그 곳으로 가야한다고 하십니다.
(11)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구약시대에는 예물을 신성하게 하여 드리는 제단이 있어 그곳으로 가야만 했읍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후 주님의 복음 아래에서는 제단을 찿아가지 않아도 됩니다.
(말1:11)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이름이 이방 민족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요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찿으시느니라.
예배의 장소에 관하여 말1:11에서는 각처에서 영적으로 분향이 드려진다고 하였으며, 또한 주님은 요4:23에서 산이나 예루살렘도 아니고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참된 예배자들을 하나님은 찿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는 결코 갚을 수 없는 너무나 커다란 은혜를 주셨읍니다. 주님은 구약시대에서 말하는 예배의 처소를 주님께서 거하시는 각 사람에게로 옮겨 주셨읍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온갖 고통 가운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주님께서 택하신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주님의 영이신 성령이 선물로 주어졌읍니다. 주님을 믿는 자녀들 안에는 성령께서 임재하십니다. 주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내주하는 자들은 예배의 처소가 되어 진정과 신령으로 예배를 드릴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받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예배의 장소를 우리 자신에게로 옮기셨읍니다. 우리 자신이 예배의 처소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처소가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곳이 더럽혀지고 냄새가 나는 곳이 되어서는 않되지 않겠읍니까? 거룩하게 구별된 예배의 처소가 되셨야 합니다. 늘 생각을 바르게 하고 주님의 얼굴을 향하여 손을 들고 베푸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십시요. 말한마디 행동할때 주님의 자녀다웁게 하십시다.
드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이스라엘은 번제과 제물과 십일조와 헌물을 드렸읍니다.
교회에서 연보는 중요합니다. 십일조나 예정헌금 혹은 감사헌금등 각종 모습의 성도들이 정성껏 드린 연보를 통하여 교회는 살림을 꾸려가며 목회자의 월급을 주며 또한 가난한 자나 선교에 쓰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9:7--8에서 연보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고후9:7-8)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연보는 각자가 넉넉한 마음에서 정한 대로 드려야 합니다. 인색함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드려야 합니다. 연보가 쓰이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연보는 목회자를 과도하게 배불리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성도들을 도우며 모든 착한 일에 쓰여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양들이 정성으로 드린 연보를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하여 악용하는 삯군인 목자들은 회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그러한 삯군인 목자들을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앞에서
예배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드릴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몸과 마음을 다하여 정성스럽게 드려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므로 장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자세입니다.
여러분은 예배를 드릴때 사람을 보십니까?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을 보십니까?
제발 사람을 보지 마세요. 목사도 연약한 사람이며 실수합니다. 사람을 보지 마시고 예배에 임재하시는 주님을 만나십시요. 목사나 영적인 지도자들이나 일반 성도들이나 모든 사람들 안에는 자신만이 아는 인간의 약점과 잘못된 죄악의 부분들이 있읍니다. 우리가 사람을 바라 보게되면 얼마안가 그 사람에게 실망할 수 밖에 없음을 우리들은 경험을 통해 수 없이 보아 왔읍니다.
주님은 사람을 보지 말고 여호와 앞에서 예배를 드리라고 하십니다.
여호와 앞으로 나아 가세요. 모든 만물이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는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앞으로 나아 가세요. 그 하나님은 우리들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먹고
여기서 “먹고”는 함께 모여 먹으며 교제를 나누라고 한 말씀입니다. 함께 떡을 떼며 먹고 마시며 하는 교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계3:20)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들은 육신적으로 먹는 것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먹어야 합니다. 영적으로는 우리들은 주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매일 매일 각 사람의 형평대로 정하여 준 만나를 먹으세요.
너희 손으로 수고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수고한 일에 복 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와 기쁨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을 주시며, 우리들은 그러한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을 드려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평생 수고해야 하며 이 땅의 삶에는 가시와 엉컹퀴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창3:17-19)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컹퀴를 낼 것이라…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우리들은 열심히 수고하여야 합니다. 때로는 엉컹퀴와 가시가 나의 앞을 가로 막을 때도 있어 실망하며 낙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피할 길을 주시며 우리들이 시험에 넘어지지 않도록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맏기고 나아가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나아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참새도 먹을 것을 주시며 들꽃도 입히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즐거워할찌라
(말2:13)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가리게 하는도다.
때로는 우리에게 닥친 어렵고 불행한 일로 인해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 제단을 가릴 때가 있읍니다.
두 손으로 눈물을 딱으시고 좀 더 멀리 보십시다. 비록 지금은 어렵지만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어려움 가운데 있는 우리들을 평탄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늘 우리에게 "너희는 두려워말라" 말씀하십니다. 슬픔은 저 멀리 가버리고 기쁨으로 충만할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즐거워할찌니라(7)”, “즐거워할 것이요(12)”, “즐거워하되(18)” 등 12장에서 세 번 반복하여 즐거움으로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고 늘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저의 삶을 주관하시며 모든 수고한 일에 복을 주십니다. 우리들이 수고한 일에 복주시는 주님을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셨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진정한 예배를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외적인 모습으로 드리는 예배에는 관심이 없으십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예배를 받으시는 처소가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지를 하나님께 간구하세요. 나의 먹을 것을 주시고 이 땅의 기업을 주시어 땀을 흘리며 수고하게 하셨읍니다. 때로는 힘이 들지만 피할길을 열어 주시며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하나님은 진정과 신령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들을 지금도 찿고 계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주님을 온전하게 예배하는 법을 가르쳐 주옵소서.
주님의 은혜로 제 자신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게 하셨읍니다.
주님의 얼굴을 찿으며 주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참된 예배자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저의 삶의 주변에서 주님앞에 나아감에 방해가 되는 모든 세속적인 것들로부터 자유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영이 임한 제가 늘 기쁨이 충만하여 베푸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주님의 얼굴을 찿으며 주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참된 예배자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