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0:27-28)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의 특징 중에 하나가
주님은 자신이 어떤 분이심을 “나는…이다” 하시며 7번 말씀하십니다.
생명의
떡,
세상의 빛, 양의 문, 선한 목자,
부활이요 생명, 길이요 진리요 생명, 참 포도나무
요10:1-30에서 주님은 ‘나는 양의 문이며 선한 목자’라고 선포하십니다. 그 가운데
27-28의 말씀을 중심으로 나누려 합니다.
목자가
모두 선한 목자이지는 않습니다. 악한 목자와 선한 목자를 잘 비교해 놓은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악한
목자
(겔34:2-4)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찿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렘23:1-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목장의 양 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내 양 떼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 때문에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악한
목자는 양들을 이용하여 자기의 뱃속을 채우기에 바쁘며 양들을 돌보지 않고 양 떼를 흩어지게 합니다. 주님은 이런 악한
목자를 12-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12-13)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또 해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선한 목자
(겔34:14-16) 좋은 꼴을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반면
선한 목자는 양들을 진심으로 돌보며 살찌게 먹이며 상하고 병든 양들을 돌봅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잘 지킵니다.
밤에는 양을 늑대나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우리 안에 가두어 두지만, 날이
밝으면 싱싱한 먹을 것이 있는 초장으로 인도하여 건강하게 자라도록 합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선한 목자이다”라고 선포하십니다.
주님께서 양들 가운데서 한 어린 양을 안고 계시는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풀들로 뒤덮인 곳에서 많은 양이 목자 곁에서 풀을 먹고 있으며 온화한 목자의 품에 안긴 새끼 양은 평온함 가운데서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선한 목자 하면 떠오르는 시편이 있습니다. 시23편의 말씀이지요. 귀한 말씀이며 우리에게 위로를 줍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우리의
평생에는 많은 일이 있습니다. 평탄한 길을 가다가도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갑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저희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며 안위하시는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은혜가 차고도 넘치시기를 축원을 드립니다.
27-28을 통하여 선한 목자와 양과의 관계에 대하여 알아봅니다.
(27) 선한 목자와 양과의 관계
내 음성을 들으며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자신 양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선한 목자에게 속한 양은 자신을 부르는 목자의 음성을 듣습니다
(3)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4)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16)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나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수많은 사람 속에 있어도 나를 기억하시고
나의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 내가 가진 것이 없어도, 나의 몰골이 형편이
없어도, 내가 변변한 직업이 없어도, 늘 사람들에게 치이고 부대껴 실의에
차 있어도, 사람들이 실패자라 하여 가까이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나의
이름을 잊어버렸어도 주님은 나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이며 주권자이신 주님께서 나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부르십니다.
수십억의
인구 중에서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나는 매우 특별하고 사랑스럽다고 나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주님께서
나의 이름을 부르시는데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어서
가세요!
선한 목자가 계신 곳으로.
그런데
주님께 속하지 못한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아니 들을 수가 없습니다. 만일 목자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내 양이 아니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아들아” “내 사랑하는 딸아” 하시며 부르시는 잔잔하고 따뜻한 사랑으로 가득한 주님의 음성을 들어 보셨는지요?
들어본
적이 없다면 나의 믿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른다고 하는데 왜 나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혹 세상일에 너무 분주하지는 않았는지요!
주님
앞에 조용히 나가 나의 마음을 드려 본 적이 언제이었던가요!
내가
내 말만 하고 있다면, 화가 나 있다면, 거짓말하고 있다면, 교만을 떨고 있다면, 남을 정죄하고 있다면, 정욕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요?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는 죄악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죄의 행동을 중단하고 죄로부터 떠나라고
말씀하시지만 내 자아로 가득하기에 들려주시는 사랑의
권고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나는 그들을 알며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안다”라는
동사는 우리에게 희망과 소망과 위로를 주시는 말씀입니다.
“안다”의
뜻에는 형식적으로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닌 실질적으로 체험하여 경험적인 관계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서로 부닦이면서 온갖 미운 정과 고운 정이
들며 서로를 알아가는 부부의 관계처럼, 주님과 양과의 관계는 실제로 삶의 여러 체험을 통해서 어리석은 양이
변함이 없으신 선한 목자를 경험하며 알아 가는 것입니다.
나의
삶에 직접 개입하시는 주님을 체험을 통하여
아십니까 아니면 주님을 지식적으로 형식적으로 아시는지요.
주님은
나를 잘 아십니다. 그것도 나의 머리 터럭이 몇 개인지도 아십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바로 내가 잘 압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죄성으로 가득하여 있는 형편없는 나를 자녀로 삼고 영생의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 버리셨습니다. 나의 형질이 어떤지를 잘 아시는 주님께서 내가 세상에서 상하지 않도록 보호하시며 천성 길로 인도하십니다.
(계7:16-17)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 아니하며 목마르지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자신의 양인 내가 굶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시고, 목마를 때 바위를 쳐서 물을 쏟아 부어 주시고, 세상의 뜨거운 기운으로 내가 다칠까 봐 내 앞에 방패를 두어 막아
주십니다. 많은 인생의 고난 길에 어쩔 수 없이 애통하며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나의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저의 삶 가운데 역동적으로 개입하시며 놀라운 일들을 마련하십니다. 그런 주님과 교제하며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통하여 주님을 더욱 알아 가세요.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광야를
지나는 동안 낮에는 구름 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앞서가면서 이스라엘을 이끄셨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내 앞에서 가십니다. 그래서 나는 단지 앞서 가신 주님만을 바라보며 따라가면 되니 얼마나 쉬운가요!
그런데
어리석은 양인 나의 모습은 어떤가요.
앞서
가시는 선한 목자만을 바라보며 열심히 따라가야 하는데
주위를 돌아보느라 조그마한 돌에 차여 넘어지기도 하고,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내 마음을 끄는 곳이 있으면 딴
길로 벗어나 한참이나 딴청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멀리 벗어나서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면 갈 길을 잃어버리고 여기저기 헤매며 방황하며 잃어버린 어리석은
양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실망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잃어버린 양을 꼭 다시 찾아 오시기 때문입니다. 탕자가 세상에 지쳐 더는 갈 곳이 없을 때,
아! 내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 거할 곳이 많은데 하며 결심하고 염치없지만,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갔듯이, 나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선한 목자인 주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
가야겠다고 결단을 해야 합니다.
28절에는 선한 목자가 주시는 영생에 관하여
말씀합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9-10)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받게 하려는 것이라
양의
문이신 주님을 통한 영원한 생명.
양은 양의 문을 들어가야 합니다.
양의 문으로 들어간 자에게만 구원이 주어집니다.
과연
그것을 믿는지요! 우리 기독교의 가장 근본적인 교리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영생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교회에는 다니지만, 영생이 있다고 믿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과연 나는 영생이 있음을 믿습니까? 육신의 죽음 후에 영혼이 영원히 거할 곳인 천국과 지옥이 있는지를 과연 나는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왜 하루하루를 주님을 잊고서 나 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요!
우리의
육신의 삶은 순간입니다. 벌써 이만큼나 와 버렸습니다. 영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우리의
연약한 육신은 언젠가는 반드시 종말을 맞이합니다. 육신의 종말 후에는 영혼은 육신을 벗어나 죄의 유무에 따라 영원한 형벌이 있는
지옥으로 아니면 영원한 평강이 있는 천국으로 갑니다.
주님의
자녀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도록 주님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5)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18)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천군 천사를 불러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려는 무리를 치게 하리이까’하는 제자들의 말과 같이 주님은 천군 천사를 부르실 수 있으셨지만 그리하지
않으시고 담담하게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고 죽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살리시려고 스스로 목숨을 십자가에서 내어 놓으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피를 쏟으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의 값을 지불하심으로 우리에게는 영생이 주어졌습니다. 이를 믿는 자는 죄의 문제가 해결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만일 믿을 수 없다면 내가 짓는 죄는
나를 옭아 매어 마지막 호흡을 할 때 나와 함께 합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 받으셨습니까!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우리를 지키십니다. 주의 천사들을 우리에게 보내어 저희를 지키게 합니다.
(시91:9-12)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하고 지존자를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주님은
우리에게 천사를 보내어 지키게 하셨으며 또한 주님의 이름의 능력을 사용하도록 권위도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주님으로 빼앗아 가려는 마귀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주님의 이름의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막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선한
목자이신 주님 앞에 나아가세요.
부족한
자아로 가득한 나를 온전히 내려놓으세요.
자신만
아는 내 안에 깊숙이 감추어진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세요.
주님의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들어보세요. 선한 목자이시며 나를 만드신 창조주이신 주님께서 무어라 말씀하시는지를 들어보세요.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지식적으로 형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닌 우리의 삶 가운데 체험적으로 알아가는 복된 성도이기를 축원 드립니다.
마음을
정리하고 조용한 가운데 주님 앞에 나아가세요.
우리
인생은 바로 오늘 무슨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오늘이
바로 나의 인생의 마지막 호흡을 하는 날일지도 모릅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어리석은 양인 우리를 먹이시며 그 품에 안으시고 인도하십니다.
(사40:11)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감사드리며 존귀와 영광을 드립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저같이 어리석은 양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이십니다.
저에게
영생을 주시고 늘 푸른 꼴을 먹도록 끊임없이 생명수가 흐르는 풍요로운 곳으로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절망과 실망과 좌절과 실패를 주지만, 선한 목자의 품에 있는 한 우리 어리석은 양들은 평온함 가운데서 인도하시며 앞서 가시는 주님을 따라갈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저의
이름을 부르시며 안아 주시는 선한 목자가 바로 제 곁에 계시니 저는 분명 하나님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존귀한 자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분명하게 듣고 순종하며 천성 길로 가기를 원합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받으옵소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자비와
긍휼을 베푸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