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20일 일요일

선을 행하는 나와 함께 하는 악




(7:17-25)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우리 주님의 자녀들에게 당면한 인생의 문제는 천성에 다다르기까지 좁은길과 넓은 길의 선택의 싸움의 연속일 것이다. 나의 마지막 호흡을 하기까지 늘 선과 악과의 싸움 곧 좁은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넒은 길을 갈 것인가 늘 선택의 갈림길에 서있다.  좁은 길을 간다는 것은 곧 세상의 소욕들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의미한다. 선과 악과의 선택에서 쉽고 자연스러운 악을 택하는 대신에 때로는 희생을 감수하면서라도 어려운 선을 택.하는 삶을 말한다. 왜 선과 악의 선택에서 나는 어려워할까? 그것은 내 안에는 선과 악이 함께 공존을 하기 때문이다. 



A.   선과 악의 공존
(21)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인간은 선하게 태어났을까 아니면 악하게 태어났을까? 오랫동안 사람들이 되새기며 생각하는 말이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전에는 나는 인간은 선함을 갖고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인간은 원래 악을 갖고 태어났다고 믿는다.

갓난아이들은 아직 아무 악함에0. 노출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났기에 악이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는 sinful nature 곧 악한 본성을 함께 갖고 태어났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악함이 저도 모르게 시간이 지나갈수록 조금씩 조금씩 강도가 세어지며 나타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모두 악한 본성을 모두 갖고 있다.
신실하게 믿는 자나, 개차반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자나,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선량한 불신자나, 어떤 도를 열심히 수도하는 자나 하나도 예외 없이 우리 모두는 악한 본성을 갖고 있다. 거룩하게 보이는 자나 죄 없이도 살 것 같은 사람 안에도 죄의 본성은 남아 있다. 아무리 죄악이 그 안에서 훈련받아 절제되고 있어도 기회가 되면 어느 순간 표출이 되어 자신의 숨겨져 있던 죄의 모습이 드러난다.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는 강렬한 체험을 한다.
그 후로 그의 삶은 성령의 능력으로 완전하게 변화된 삶을 살며 주님의 복음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주의 사도로서의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을 한다. 원래부터 성실하고 완전해지려는 성정을 지녔기에 성령을 체험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열심히 주님을 섬기며 거룩한 삶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며 자신은 죄악으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난다고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성령의 강렬한 임재 가운데 죄악된 행실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났다고 생각을 하였지만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나타나는 자신의 죄악된 행실을 보고 깨닫고는 17-20절에서 고백을 한다.

(17-20)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우리는 너무나 죄에 연약하다.
그래서 늘 죄에 노출되어 있고, 자신도 모르게 죄악을 행하기도 하지 않던가.
죄로부터 결코 나는 벗어날 수 없다.  죄를 짓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쳐 보지만 어느새 슬며시 죄란 놈은 나를 흔들어 놓는다.

선을 행하기를 원하지만 선을 행하지 않고, 악을 행하기를 원하지 않지만 악한 일을 행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속성이다.  선을 행하려는 마음과 악을 행하려는 마음이 내 마음에는 늘 공존을 하며 어느 쪽이 이기는가 늘 다툰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악함이 이긴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의 육신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Anyone who has tried to do good is aware of this struggle. We never know how hard it is to stop sinning until we try. No man knows how bad he is until he has tried to be good.
죄를 이기려고 발버둥을 친다. 
얼마나 죄로부터 벗어나기가 어려운지를 늘 실감을 한다.

나에게는 선함이 없음을 죄에 노출될 때마다 뼈저리게 실감을 한다.
사도바울의 고백과 같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하고 고백을 할 수밖에 없다. 늘 죄에 노출되어 있고 죄를 짓지 않으려 나를 경계하며 나를 다스리려 하지만, 조금이라도 경계를 느슨하게 하면 죄란 놈은 나를 잡아 끌어 놓고는 어김없이 나를 뒤 흔들고야 한다.

Am I as a sincere Christian immune to sins?
No, not at all. That’s absolutely right.



B.   속사람과 겉사람 (22-23)
주님은 죄를 지향하는 나와 거룩을 지향하는 나로 둘로 나누셨다.
(22-23)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각 사람에게는 육과 영 곧 겉 사람과 속 사람이 있는데, 겉 사람 곧 육신은 노화하며 후패하여 가는데, 속 사람인 영 곧 마음은 육체의 소욕을 따라 죄의 법을 따르는 엣사람과 성령의 소욕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새사람이 있다고 말씀한다.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1. 옛사람=겉사람
옛사람은 육에 속한 자이며 죄의 법을 따른다.
옛사람은 죄에 속한 자이며 죄의 종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자이다.

나를 보면 나는 아직도 내 안에 혈기가 있고, 정욕의 탐심이 있으며, 거짓이 있음을 보면서 괴로워한다. 이는 나의 타락된 본성인 옛사람이 행하는 것이다.

주님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라고 말씀하시며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죄악들을 말씀해 주신다.
(7: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게 하는지라.


2. 새사람=속사람
늘 마음은 원하지만 죄를 범하는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새사람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그 마음속에 임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주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어 죄사함을 받아서 새사람이 되었지만 죄의 유혹은 여전히 있다.
나의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이 되는 것은 나의 힘으로 능력으로 선행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임하여 거룩함으로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 
거듭난 영혼은 성령께서 내주하심으로 죄에 대하여 더욱 민감하게 반응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내 가운데서 행하여지는 죄를 보면서 나는 곤고한 자라고 고백을 한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죄의 본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죄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며 죄에 노출되었을 때마다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여야 한다.
 

3. 나의 옛사람은 이미 죽었다.
죄를 사랑하는 나의 옛사람은 이미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었다.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6:11)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나의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현재 진형형이 아니라, 이미 주님과 함께 나의 옛사람은 죽었다.

나의 자아가 살아 있어서 분노가 있으며, 음란함이 있으며, 시기가 있으며, 남을 속이는 죄 가운데 있는 나를 보며 괴로워 한다. 하지만 나의 옛사람은 이미 죽었다. 나의 타락한 죄의 본성을 갖고 있는 옛사람은 이미 죽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선포하며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어야 한다.

새사람으로 사는 것은 주님께서 자녀들에게 주신 특권이다.
죄는 여전히 내 주위에서 나를 괴롭히며 깊은 나락 가운데로 끌고 들어가려고 한다.
하지만 새사람에게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님께서 주셨다.
죄에 더 이상 내가 종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 노예가 아니라, 이제는 죄를 다스릴 수 있는 자로서의 변환이 이루어 진것이다.

나는 죄에 대하여 이미 죽은 자이다.
주님께서 내가 전에 지은 죄악을 그리고 앞으로 행할 죄악들 모두 이미 십자가에 못을 박으셨다.
나의 자아는 이미 죽은 존재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때 나의 자아도 그 안에 함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죄의 욕구가 있다. 왜냐하면 나는 육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벧전4:1-3)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나의 자아는 죽었지만 나의 육신의 욕구나 정욕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때로는 실수를 하고 때로는 죄악을 범하기도 하며 죄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보며 힘들어 한다.
그래서 때로는 벗어나기 어려운 죄로 인하여 야기된 죽음과 같은 고통을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죽은 자아로 인해 나의 육신의 욕구나 정욕을 따르지 않으려 하며 성령님의 인도함으로 살아가는 성화의 과정을 가게 된다.
내가 마지막 호흡을 할 때까지 성령의 도우심으로 대적함으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잉태된 죄로부터 죽는 삶을 날마다 경험할 수 밖에 없다.

(5:16-17)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C.   항상 감사하라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마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죄의 유혹은 늘 가까이 있어 죄에 연약한 나의 육신은 죄에 져서 죄 가운데 있어 결국은 죽을수 밖에 없는 곤고한 인생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 곧 속사람은 성령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새사람으로서 열매를 맺으며 주님의 자녀로서 축복된 삶을 산다. 나를 사망의 죄로부터 건져 주시고 영원한 사랑 가운데 살게 하신 주님의 은혜에 늘 감사할 수 밖에 없다.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나의 죄성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사해 주셨으며, 이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분명하게 제시하셨다.  죄의 유혹에 나의 육신이 굴복하여 죄를 지음으로 낙심을 하기도 하지만, 성령님의 인도를 감사하며 순종하는 나의 속사람은 날로 날로 새롭게 회복할 것이다

(고전15:55-57)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는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러므로 우리는 늘 주님께 감사하여야 한다.
사망이 나를 이겨서 영원한 어둠으로 끌고 가려고 하지만 결국 주님의 은혜로 승리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제 안에는 두가지의 마음이 있읍니다.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과
주님의 선함을 따라 가려는 마음이 있어
제 안에서는 늘 갈등을 하며 전쟁을 합니다.


죄의 유혹에 넘어가서 죄를 짓기도 하며,
또한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생각을 따라 선한 행실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저는 죄악 가운데 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읍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런 저를 보시고
저의 모든 죄악을 따르는 옛사람을 십자가에서 이미 못을 박아 장사를 지내게 해 주셨읍니다.

이미 저의 죄는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음을 항상 기억하게 하옵소서.
저의 자아는 아직 죄성이 살아 있어서
분노와 음란과 시기와 속이는 거짓이 있는 한심한 저를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미 죄를 따르는 저의 옛사람은 이미 죽었으므로
순간 순간마다 죄의 유혹이 올 때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며 자유 가운데 거하도록 저를 인도하옵소서.
 
날마다 주님께서 은혜로 주신 새사람으로서의 특권을 마음껏 누리며
늘 감사하는 삶을 살며 주님께 영광을 드리기를 간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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