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주님은 ‘새 계명’을 제자들에게 주셨다.
‘새 계명’의 핵심은 “서로 사랑하라” 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질서를 주신 것이다.
이 땅에 오신 주님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새롭게 변화되었다.
놀랍지 않은가!
주님안에서 모든 것이 새롭게 된다.
새로운 포도주를 새로운 병에 담듯이 주님께서는 새 계명을 지키며 새 이름과 새 생명을 갖고 새 노래를 부르는 새로운 피조물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과 함께 주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를 완성하실 것이다.
주님은 이제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갈 시간이 임박했음을 아시고 (13:3) 유월절 만찬을 베푸시며 몇 가지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신다. 마치 부모가 죽기 전에 자녀들에게 유언하는것과도 같다.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셨다.
주님은 우리에게 ‘새 계명’으로 “서로 사랑하라”를 주셨다.
이 말씀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새계명을 주시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감당하셨다.
주님의 새 언약인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버리셨을때 극명하게 나타났다. 곧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우리를 위해 버리셨던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주님은 자신의 피로서 대속하시며 새 언약을 새우셨던 것이다.
(마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요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주신 ‘새 계명’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일것이다.
‘새 계명’과 ‘옛 계명’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새 계명’은 예수님께서 주신 것이며, ‘옛 계명’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임을 알 수 있다.
(요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옛 계명’은 ‘율법’이며 ‘새 계명’은 ‘은혜와 진리’이다.
두 계명의 차이점은 “관계의 재정립”이라고 할 수 있다.
옛 계명은 하나님과 수직적인 관계이며 새 계명은 수평적인 관계라 할 수 있다.
옛 계명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행위가 요구된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십계명과 각종 규례를 일컫는다.
율법은 십계명과 각종 제사 방법과 인생 전반에 걸친 삶의 규칙을 제정하고 그 율례를 삼가 지켜 행함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수많은 규례를 제정하셨는데 그것은 늘 죄성으로 가득한 인간을 일깨워 주시기 위함이었으며 특히 우상숭배에 대하여 하나님은 엄하게 다루셨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그 옛 언약을 지키는 것을 요구하셨다.
언약을 지키는 자에게 형통의 축복을 주시지만 그렇지 않고 언약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게는 형벌의 심판을 약속하셨다.
(대상22:13) 네가 만일 여호와께서 모세를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든 율례와 규례를 삼가 행하면 형통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며 두려워말고 놀라지 말지어다.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 백성들에게 준 말씀이다.
(삼상12:14-15)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를 섬기며 그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하지만 ‘옛 언약’ ‘옛 계명’을 온전하게 지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오직 극소수의 자들만이 율법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울법이 잘못되었는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선한 것이며 율법은 내 안에 있는 죄를 깨닫게 해 준다. 하지만 그 선한 율법을 지키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죄성은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게 하여 생명에 이르게 하는 율법이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한다.
(롬7: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성이 있기에 결코 율법을 온전하게 지킬 수 없는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구원역사를 이루심으로 옛 언약인 율법으로부터 자유케 하시며 새 언약을 주셨다. 더 이상 지키기 어려운 율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신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새 계명’으로 “서로 사랑하라” 를 주셨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수직적인 관계로부터 수평적인 관계로 전환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서로 사랑하라”는 창조 때부터 있어온 말씀인 것이다.
(요일2: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라는 말씀은 구약에 뿌리들 두고 있다.
(레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주님은 구약시대로부터 있어온 “네 이웃을 서로 사랑하라”의 계명을 재확인시켜 주셨다.
“사랑”
우리는 이 말을 수없이 들어 왔다.
사랑에도 종류가 있다고 한다.
하나님과의 사랑.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이성간의 사랑.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악용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신 동성간의 사랑도 있고, 해서는 않되는 금지된 사랑도 있지 않으며, 남을 해하는 일방적인 광적인 사랑도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은 신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비록 익숙하진 않지만 점도 없도 흠도 없는 정결한 사랑.
내 마음속에 계신 주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사랑.
부족하지만 오직 창조주 주님만을 생각하는 사랑.
서로 사랑하라.
주님안에서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영성을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주님의 새로운 창조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신 메시야이신 주님을 부활의 첫 열매로서 사망 가운데 있는 죽은 자로부터 다시 살리셨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역사이었다.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도 하나님의 창조역사가 일어난다.
죽어있던 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의 창조역사가 임하게 되어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서로 사랑하라”를 행하게 된다.
서로 사랑하라.
온전하게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가?
내 아내를, 내 남편을, 내 자녀를, 내 부모를, 내 형제를, 내 이웃을 나는 사랑하는가?
위기가 올 때 나는 내 가족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가?
주님께서 행하신 사랑은 희생이셨다.
주님께서 말하신 사랑은 희생이 따른다.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온 사람들을 위해서 주님은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서 화목제물로 희생하셨다.
주님께서 자신을 희생하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
“서로 사랑하라”에는 나의 생명까지도 내어 던질 수 있는 희생이 요구된다.
말로만 하는 사랑에는 희생이 있을 수 없다.
형식적으로 하는 사랑은 위기가 오면 자신의 목숨을 먼저 생각하기때문에 희생이 없다.
껍데기뿐인 외식적인 사랑인 것이다.
주님안에 온전하게 거하게 되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인해 내 자신을 내려 놓으며 희생하는 사랑이 생기게 된다.
서로 사랑하라.
거기에는 나의 희생이 필요하다.
내가 이웃을 위해 희생을 할 때, 내 이웃이 내 왼편 빰을 칠 때 나의 오른 빰을 내어 줄 수 있을 것이고, 내 이웃이 춥다고 옷을 벗어 달라 할 때 벗어 줄 수 있을 것이다.
희생이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희생이 없다면 그 사랑은 이기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며 독선적인 자기 위주의 사랑을 할 것이다.
그런 이기적이며 자신만 아는 사랑은 결코 주님께서 행하신 사랑이 아니다.
외식적인 사랑의 결과는 결국 허무한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랑을 주고 있는가?
주님의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고 있는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서 내려 놓으면서
우리에게 어떻게 서로 사랑해야 하는 지를 본을 보이셨읍니다.
자신을 내려 놓고 목숨을 주시면서까지 희생하신 주님의 사랑을 닮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서로 사랑하라를 따르기 위해서는
나의 희생이 필요함을 깨닫게 해 주셨읍니다.
제 안에 있는 죄성으로 인하여
저는 결코 주님께서 행하신 그 사랑을 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제가 지금껏 한 사랑은 내 위주이었고 이기적이며 환경을 따르가는 외식적인 사랑이었읍니다.
주님께서 행하신 희생의 사랑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성령님.
저를 도와주시어 주님의 희생의 사랑을 닮아가게 하옵소서.
서로 사랑하라 말씀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사랑을 나의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에게
나의 희생을 통하여 전하도록 인도하옵소서.
그래서 제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축복을 부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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