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23:4) 그 이름이 형은 오홀라요, 아우는 오홀리바라.
그들이 내게 속하여 자녀를 낳았나니 그 이름으로 말하면 오홀라는 사마리아요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이니라.
에스겔서는 에레미야서와
거의 같은 시대인 BC 593년경에 쓰여졌다.
두 권은 이스라엘의
멸망과 회복에 대하여 말하며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조명한다.
한글성경에는
정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지만, 오홀라와 오홀리바는 자매이다.
The older was
named Oholah, and her sister was Oholibah. They were mine and gave birth to
sons and daughters. Oholah is Samaria, and Oholibah is Jerusalem.
오늘의 본문은
두자매에 대한 말씀이다. 즉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레이먀서에서도
유다와 북이스라엘을 자매라 표현한다.
(렘3:7)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는 그것을 보았는지라.
여호와는 에스겔서 23장 4절에서 북이스라엘을 “Oholar” 그리고 남유다를
“Oholibah”라 부르신다. Oholar의 이름의 뜻은 ‘Her
tent’ 이며 ‘사마리아가 임의대로 세운 성소’를 의미한다고 하며, 그리고
Oholibah 이름의 뜻은 ‘My tent is in her’ 이며 ‘예루살렘에
세운 여호와의 성소’를 의미한다고 한다.
오홀라라 상징된
북이스라엘은 겔23:9에 “그러므로 내가 그를 그의 정든 자 곧 그가 연애하는 앗수르 사람의 손에 넘겼더니”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앗수루에 의해 멸망당한다.
그리고 오홀리바, 곧 남유다는 겔23:23 “그러므로 오홀리바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는 네가 사랑하다가 싫어하던 자들을 충동하여 그들이 사방에서 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 그들은 바벨론 사람과 갈대아 모든
무리 브곳과 소아와 고아 사람과 또 그와 함께 한 모든 앗수루 사람….그들이 무기와 병거와 수레와 크고 작은
방패를 이끌고 투구 쓴 군대를 거느리고 치러 와서 너를 에워싸리라.” 말씀과 같이 바벨론에 의해 완전하게
멸망당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23:30과 35절의 말씀과 같이 “네가 이같이 당할 것은 네가 음란하게 이방을 따르고 그 우상들로
더럽혔기 때문이로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나를 잊었고 또 나를 네 등뒤에서 버렸은즉 너는 네 음란과 네 음행의 죄를 담당할지니라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오홀라와
오홀리바를 치신 이유가 곧 이방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잊어 버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네가 네 죄를 알렸다”하며 뭉그러뜨려서 말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왜 그렇게 되었고 또 어떻게 될 것인가를 성경을 통해 분명하기 말씀해 주신다. 하나님께서 심판 하시는 이유를 성경은 우리에게 확실하게 가르치시며, 또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행하여야 하는 가를 분명하게 인도하신다.
기적인 사건이
있다.
오홀라와 오홀리아로
명칭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자.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 섭리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경험했고 지금도 보고 있다.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지금까지 존속되고 있다는 그 자체가 기적이다.
북이스라엘은
호세아왕이 다스리던 BC722에 앗수루에 의해 멸망당했고 (왕하17),
남유다는 시드기야왕이 다스리던 BC587에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당한다
(왕하25), 그후 400년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이스라엘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로마에 의해 AC70년 경에 완전하게 멸망당한다.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은 사방으로 나라를 잊어 버리고 뿔뿔히 흩여 졌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사방의 다른 이방민족들과 혼합되게 된다. 아마도 유대인들처럼 혼합된 민족은 찿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스라엘이란
나라는 약 2000년 전에 완전하게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2000년 쯤 지나서 1948년 다시 이스라엘로 회복되었던 것이다.
기적이 2000년이 지난 후에 일어난 것이다.
Palestine이란 나라가 그 땅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신의 땅을 찿겠다고 잘 살고 있던 이들을 밀어내고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세운 일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고구려 땅을 회복한다고 지금의 중국의 북방의 영토를 주장하고
나선다면 중국은 어떻게 반응할 까?
오직 하나님의
간섭이 있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인것이다.
2000년 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으시고 다시 회복시키신 것이다.
아니 사람들의 눈에는 잊혀 버린 2000년이란 긴 기간동안에도 하나님께서는
늘 남겨진 택하신 자녀들과 함께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적극적인 간섭함으로 남은
자들인 이스라엘 자손들은 잃어 버린 2000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자신들의 종교와 문화 유산들을 간직할 수
있었도 그것들을 후손에게 물려 주었던 것이다.
이해가 가는가?
우리 한민족은
일본에 의해 1910년 합병이 되어 조선을 잃게 된다. 그 후 약
35년간 나라를 잊어 버리고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얼마나 많은 것들이 일본의 영향을
받았는가. 이름도 일본식으로 개명되었고 모든 종교, 경제,
정치와 문화도 일본화되어 가지 않았던가. 그 기간이 2000년을 지속되었다고 상상해 보자. 과연 그렇다면 한국이란 나라가 지금도 존속되었을까?
아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한민족은 일본인들과 뒤섞여서 구분도 되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자부하는 한글 그 자체도 없어져 버렸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2000년이 지난 후에 다시 세워졌는지는 인간의 상식과 지식과 관례로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예루살렘에 다시 이스라엘이 다시 세워진 것은 우리가 생각할 때는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이지만, 분명한 여호와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이시며 간섭이시며 주권인것임을 우리는 느낀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죄를 짓는 이스라엘 자녀들을 다시 회복하셨을까?
선택하신 자신의
자녀를 버리지 못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여호와 이심을 우리는 에스겔서를 통해서 배운다. 에스겔에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행음과 우상섬김에 대하여 경고하시며 심판을 하실 것이라고 거듭해서 말씀하신다. 그렇지만 에스겔서를
통하여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수 있다.
바로 에스겔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보여 주신다.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탕자인 자녀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마음과도 같이 하나님께서는 늘 죄를 짓고 패역한 자녀들을 벌주시고 또 기다리시고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절절한 사랑을 우리는 에스겔서를 통하여 느끼지 않는가.
에스겔서를 통해서
택하신 자녀를 끔찍히도 사랑하시는 여호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여호와께서는
뻣나간 자녀를 향하여 거듭해서 벌을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시지만 실상은 자녀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느낄수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지금껏
수많은 죄악을 향하였다.
여호와보다 세상의
다른 것을 더욱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곧 우상숭배이지 않는가.
나를 여호와보다
나의 자아을 더욱 가치있게 여기고 사랑하며 모든 것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나의 유익을 위하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우상의 죄악을 저질렀다.
얼마나 많은
경우에 주님을 부인하였던가.
주님께서 나에게
너는 이같은 악을 행하지 말라고 마음속에 말씀하시는데도 그것을 무시하고 내 뜻대로 행하며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던가.
나야말로 오홀라
혹은 오홀리아보다 더 악한 존재이지 않던가!
그런데 그런
나를 죄악을 행하는 나를, 여호와께서 오홀라와 오홀리아를 사랑하셨듯이, 여호와께서는
나를 사랑하신다.
그토록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나의 죄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셨다 .왜냐하면 내안에 유전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나의 죄성을 도무지 해결 받을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이스라엘 자녀를 보시며 겔24:16에서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이라 표현을 하신다. “My dearest treasure” 혹은 “the delight of
your eyes” 라고 번역이 되기도 하는 데 곧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택하신 자녀를 “나의 가장 아끼는 보물”이라고
말씀하신다.
가장 아끼는
보물인 자녀들이 목이 굳어 죄악의 길로 나아가며 패역을 저지를 때 부모의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올바른 부모라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자녀를 보며 야단치기도하고 벌을 가하기도 하며 때로는 얼르기도 하면서 뻣나간 자녀들이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왜냐하면 그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탕자의 비유를
보면 뻣나간 자식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이 잘 표현되고 있다.
(눅15:20)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이제나 저제나 돌아올까 걱정하며 아들이 떠나간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가 멀리서 아들이 자신에게로
돌아 오고 있는 것을 보자 너무나 기뻐서 달려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추지 않는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탕자인 내가 돌아 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내가 하나님께서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보물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위안을
주시는 회복의 말씀이 있다.
성경을 보면
늘 죄를 행하는 이스라엘 자녀를 보시고 진노하시며 벌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 하지만 자녀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용서를 구할 때 다시 회복의 은총을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삿10:13) 이스라엘 자손의 행악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내가 다시는 너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이라고 말씀하시며
진노하시지만
(삿10:15-16)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고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죄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여호와를 섬기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시 회복의 은총을 베푸신다.
한글로는 “마음에 근심하시니라”로 번역이 되었지만 “He could bear Israel’s misery no longer”로 번역이 된다. 즉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라고 번역이 되는 것이 더욱 그 뜻이 다가오지 않는가.
여호와께서는 더 이상 자신의 자녀들의 곤고함을 받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다시 회복시키시며 사랑의 은혜를 베푸신다.
(겔20:17) 그러나 내가 그들을
아껴서 광야에서 멸하여 아주 없이하지 아니하였느니라.
Nevertheless
(Yet) I took pity on them and held back from destroying them in the wilderness
“그러나” 로
번역이 되었는데 영어로는 “Yet” 혹은 “Nevertheless”로 번역이 된다.
즉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번역이 되었으면 더 우리에게 와닫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내가 참 좋아하는 성경 단어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광야에서 완전하게 멸절되도록 버리시겠다는 것이 아닌, 비록 내가 죄악을 끊임없이 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의 죄를 깨닫고 주님께로 돌아오면, 내가 주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사망의 구렁텅이로
부터 구하시겠다는 회복의 은총인 것이다.
말씀을 정리하면,
에스겔서에는
하나님의 절절하게 애타는 사랑이 잘 나타나 있다.
죄악을 인하여
진노의 벌을 내리시지만, 자녀를 사랑하시기에 구원의 길 역시 마련해 주신다.
끊임없이 죄악을
범하는 목이 곧은 오홀라와 오홀리바가 곧 내가 아닌가.
하지만 주님은
그런 목이 곧은 나를 보시며 나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고 말씀하시며 회복의 은총을 베푸신다.
여호와의 마음을
잘 나타내는 말씀인
(겔 18:30-3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복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회복하고 죄에서
떠나기 위해서는 주님의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
주님의 성령의
능력은 나의 더럽고 추악한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한다.
주님께서 부활하신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아라 말씀하셨다.
우리는 성령의
숨결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나는
죽지 않고 나의 마음과 영이 새롭게 된다.
하나님 아버지
에스겔를 통하여
저를 향한 절절한 하나님 아버지의 애끓는 사랑을 느낄수 있었읍니다 .
늘 죄악을 행하고 패역을 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저를 잊지 않으시고 기다리시며 또 기다리십니다.
왜냐하면 제가 곧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아끼고 사랑하시는 존귀한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제가 행한 모든 죄악에서 떠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저를 충만케 하옵소서.
저의 마음과 영이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님 저를 다시리옵소서.
제가 곧 늘 죄를 짓는 패역한 자손인 오홀라요 오홀리바이지만,
그런 제가 저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죄에서 떠나
여호와께서 저의 참 여호와이심을 알기를 원합니다.
심판하시는 이도 여호와시요,
구원을 베푸시는 이도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저의 삶의 주관자이십니다.
주님께서 저를 위하여 모든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이심을 알기를 원합니다.
저를 받아 주옵서서.
예수 그리시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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