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30일 월요일

미움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아마도 남을 험담하고 미워하는 것이 아닐까?
매일 우리는 누구를 미워하고 미움을 받는 것을 경험하지 않는가!
 
사람과의 관계를 부부간의 관계를 가족간의 관계를 주님과의 관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미움이라 생각한다. 미움이 있는 곳에는 분노가 있고, 증오가 있고, 다툼이 있다.
 
 
A.    미움의 근원
언제 우리는 미워하는가? 여러가지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 미워한다.
 
시기
(37:3-5)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37: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하였더라
 
내 것을 빼앗겼을 때
나를 무시할 때
내 주장대로 되지 않을 때
나를 모함할 때
나를 함부로 대할 때
 
내 생각과 다를때
(6:11) 저희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율법으로 중요시하는 안식일에 주님께서 병을 고치시는 것을 보고 노기가 가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미움의 중심에는 “나”가 있다
나를 알아 주지 않으니 내 마음에서는 미워함으로 나타난다.
미움은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내 자아가 기뻐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할 때 나는 상대방을 미워한다.
 
누가 가장 미움을 받았을까?
바로 예수님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주님은 내가 받는 미움과는 비교할 수 없게 주님은 사람들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으셨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단은 주님의 자녀인 나 역시 미워한다는 것이다.                                                                
 
(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 알라.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속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미움의 근원은 사단이다.
사단은 기회만 되면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의 마음에 미움을 심어준다.
그렇기 때문에 사단은 사람의 마음을 사용하여서 믿는 자들이 서로 미워하게 만든다.
 
주님은 이유없이 미움을 받았다. 주님의 제자들 역시 미움을 받는다.
(15:25) 그들이 이유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이유없이 미움을 받을 때는 영적인 문제가 있다.
사단은 예수를 믿는 우리가 서로 미워지게 만들고 주위 사람으로부터 미워지게 만든다.
까닭없이 불공평하게 이유없이 가족안에서 직장에서 주위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
이럴 때 주님을 생각해 보자.
 
주님의 이름으로 미움을 받으면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주님의 자녀이라는 증거이지 않는가!
(6:22)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A.     
B.    미워하게 되면
미워하게 되면 마음이 굳어지고 강팍해 진다. 그래서 나타나는 특징들이 있다.
 
언사가 불평
(37: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미워함으로 가득차자 요셉을 죽이려고 궁리한다.
(37: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자신의 왕권을 위협한다고 느낀 사울왕은 다윗을 미워하여 그를 죽이려고 여러번 다윗을 곤경에 처하게 한다. 피신하는 다윗을 도왔다는 이유 때문에 아무런 죄가 없는 제사장 아히멜렉과 85명의 제사장들과 그들이 사는 성읍의 많은 사람들과 가축들을 죽였다

미움은 나의 마음을 찢어 놓는다.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여 살인하는 욕망을 일으킨다.

반드시 알아야 할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다.
(5:19-20)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미움은 현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잘 경험하였듯이 미움은 육체에 속한 일들인 분노를 일으키고 사람과의 관계를 분열시키며 나아가서 주님과의 관계를 깨뜨려서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게 하는 파괴적인 일이다.
미워함으로 천국을 갈 수 없다면 이는 심히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C.    미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렇다면 어떻게 미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곧 사랑과 용서이다.
 
1. 사랑
(12)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사람의 능력으로는 미움으로부터 벗어 날 수 없다.
오직 주안에 있는 사랑의 힘으로 벗어 날 수 있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사랑은 나를 낮추는 것이다.
나를 낮춘다는 것은 곧 상대방을 높이며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상대방을 존귀하게 여겨야 한다
상대방을 존귀하게 대하기 위해서는 나를 낮게 여기는 겸손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우리는 나를 낮추는 겸손을 얻는가.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십자가 복음의 핵심이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
또한 끊임없이 죄를 짓게 하는 나의 자아 나의 옛사람 역시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함께 죽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변화된 삶을 살게되면 삶은 변할 수 밖에 없다.
 
(6:4)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끊임없이 죄를 짓게 하는 나의 자아 나의 옛사람은 이미 십자가에서 함께 죽었다.
그렇지만 나의 자아, 옛성품, 옛사람이 살아 나려고 할 때마다 나의 죄악의 본성은 나타난다.
내 성에 차지 않으면 상대방을 미워하고, 누가 나를 미워하면 나 또한 상대를 미워한다.
 
그럴때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자.
내 안에는 주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계시기에, 내가 원하고 간구한다면 성령님은 이미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시고 나를 낮추어 주신다. 내가 낮아져서 죽음의 자리로 나아 간다면 나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2. 용서
주님께서는 허물을 덮고 70번의 7번 용서하라고 하신다.
허물을 덮는 것은 상대방의 잘못을 덮고 용서하는 것이다.
용서란 상대방의 잘못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표용하는 것이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자신을 못박는 자들을 보며 아버지께 기도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옶소서. 저들은 저들의 죄를 알지 못합니다.
 
Stephan 집사는 돌에 맞아 죽으면서 “주여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하며 기도하며 주님을 바라보며 죽었다. 그것을 본 사울은 후에 변화하여 사도바울로서 사명을 감당하였다.
 
왜 우리는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자들을 용서해야 하는가?
왜냐하면 주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이미 용서하셨기 때문에 나 또한 나의 형제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
주님으로부터 너무나 큰 죄를 탕감받았기에, 나 또한 내게 행한 형제의 조그마한 잘못을 용서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
 
용서를 하는 것은 내게 유익을 준다.
내가 누구를 진심으로 용서하게 되면 나의 마음이 평안해 지는 것을 경험해 보았다.
내가 누구를 용서할 때 얻어지는 것은 바로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를 십자가에서 용서하신 주님의 은혜를 더욱 느끼게 된다.
 
용서는 덮어주는 것이다. 뒤끝이 없어야 한다.
내게는 내게 잘못을 저지른 상대방을 용서할 수 없는 타당하고 합리적인 이유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그런 이유가 있기에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에 속한 이들이 하는 일이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하심과 용서하심을 받은 천국백성이지 않는가!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잘못을 이유를 묻지 않고 덮어주시고 표용하셨듯이, 우리 또한 내게 잘못한 이들을 아무런 이유를 묻지 않고 용서하고 그들의 잘못을 덮어 주어야 한다.
주님께서 그런 우리를 보시며 얼마나 기뻐하시곘는가!
 
나를 미워하는 자를 용서하며 축복하자.
누가 나를 미워하는 것을 보고 나를 돌아보게 된다.
왜 내가 무엇을 했기에 저가 나를 미워할까?
내가 미움을 받게 되면 왜 상대방이 나를 미워하는지를 생각하게 되고 나의 잘못, 죄성을 다시 보게 되게 된다.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를 축복하자.
 
 
말씀을 정리하면,
미움은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옛사람의 속성이며 그 배후에는 사단이 있다.
미움은 사단의 속성이다. 사단의 속성이기 때문에 미움이 있는 곳에는 분노와 혼란과 분열이 있어 모든 사람과의 관계 뿐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결국은 파멸에 이른게 한다
 
죄성에 속해 있는 우리는 흔히 상대방을 미워하고 또한 상대방은 나를 미워한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자녀이기 떄문에 우리는 이러한 미움의 상호관계를 끊어야 한다.
내가 다른 이들을 미워하게 되면 내 마음에는 쓴 뿌리가 자라 나게 된다.
쓴 뿌리는 나의 마음의 평강을 빼앗아 간다.
그렇게 되면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경험하지 못한다.
미움이 커 갈수록 나의 삶은 피폐해지면 지옥을 경험한다
그리고 미움을 간직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내가 살고 내 가정이 살기 위해서는 미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움으로 망가진 관계에서 벗어나서 회복되어야 한다.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여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이들을 용서하자.
가장 가깝게는 나의 가정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내게 미움의 마음을 주었던 나의 아내를, 나의 남편을, 나의 부모를, 나의 자녀를, 나의 가까운 이웃들을  용서하고 사랑하자.
 
그리고 나를 미워하는 자를 축복하자
그것이 나의 살길이요 내가 회복 되어 주님께로 가까이 가는 축복의 길이요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은혜의 길인 것이다.
 
잊지말자.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우리 역시 죽었다는 사실이다.
죽은 자가 무슨 자신의 권리를 내세울수 있겠는가!
 
누가 나를 미워할 때마다 누군가를 미워할 때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 볼 수 있는 잠시 동안의 마음의 여유를 갖자. 그렇다면 내게 사랑과 용서의 마음이 샘솟듯 일지 않겠는가!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축복의 길로 은혜의 길로 나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지 않겠는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저희는 늘 누군가를 미워하는 습성을 갖고 있읍니다.
조금만 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런 상대방을 보며 미워합니다.
 
미움은 저의 마음의 평정을 깨뜨리며,
사람과의 관계를 망가뜨리며,
또한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깨뜨리는
제안에 있는 무서운 옛사람의 성품입니다.
 
이 모든 것이 저의 자아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자아가 이미 주님과 함께 주님의 십자가에서 완전하게 못 박혀 죽었는데
이를 믿지 못하기에 저의 자아는 옛사람의 습성대로 행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저를 미워할 때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 볼 수 있는
잠시동안의 마음의 여유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제가 주의 이름으로 미움을 받는다면 그 사실만으로 감사하게 하옵소서.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저의 눈에 가시같은 자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축복합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미워하여 십자가에서 죽인 자들까지도
그들의 죄의 용서를 간구하시며 감싸 주셨듯이
저도 주님을 닮아 저를 미워하는 자를 용서하며 사랑하며 축복하기를 원합니다.
 
주의 은혜로 충만케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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