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7:24-28)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예수께서 이 말씀(들)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마태복음의 5장과 6장과 7장은 산상수훈 (the Sermon on the Mount)이라 잘 알려져 있다.
주님은 산에 올라 가셔서 제자들에게 산상수훈에 대하여 말씀하신 후에 산에서 내려 가셨다.
(마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마8;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산상수훈은 주님의 설교이시다.
어떤 설교보다 가장 훌륭한 설교이다.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주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치신다.
구약에서는 모세 오경의 율법이 성도의 삶의 지침서이었지만, 신약에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산상수훈이 성도의 삶의 지침서이다.
산상수훈은 믿지 않은 사람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 하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의 잘못된 것들을 잘라 내어 새 사람으로 회복케 하시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군더더기 없는 주님의 설교이다.
가장 최고의 설교를 듣기를 원하는가?
요사이는 Internet 이 잘 되어 있어서 원하기만 하면 좋은 설교들을 search 해서 이 사람의 것은 들을만해 하며 가려서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설교말씀이 좋다고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큰 교회의 목사님의 설교가 최고라 생각하는가? 내 취향에 맞으면 좋은 설교인가?
좋다고 들은 설교를 듣고 내 삶이 변화되었는가?
내가 생각하는 것이 주님의 마음으로 바뀌어졌는가?
남을 무시하고 나 잘났다고 하는 나의 말하는 습성이 바뀌었는가?
고르고 골라서 들은 설교를 통해 영과 육에 중병이 들어 있는 내게 약이 되었는가?
다른 설교보다 주님의 설교에 귀를 기울여보자.
주님의 설교는 병들은 나의 영과 혼과 육을 치료하실 것이다.
육신의 대표적인 중병인 암.
암에 걸리게 되면 놀라게 되는 일이 하나 있다.
암으로 진단받았는데 병원에서는 아무런 치료약을 처방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기나 몸살이 걸려 의사에게 가면 약을 처방해 준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한 암에는 어떤 약도 없다는 것이 환자를 절망케 한다.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암의 부위를 절단하거나. 키모나 방사선 치료를 통하여 암세포룰 죽이거나, 아니면 자연적인 치료법으로 낳는 방법밖에 없는 듯하다.현대의학으로는 암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지를 못하기에 근본적인 치료법은 없다. 암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여 치료할 수 없기에, 믿는 자들은 주 여호와만을 의지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주님의 섭리가 있는 듯 하다.
나의 영의 상태는 어떠한가?
나는 건전하고 건강한 영을 갖고 있는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갖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교만함과 거짓과 음욕과 분노의 마음을 갖고 있는가?
그렇다 아직 나의 영와 육은 너무나 연약하다.
육신의 병이 낫기를 원하는가?
삐뚤어지고 왜곡된 나의 영이 회복되기를 원하는 가?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자.
무엇보다 존귀하고 소중한 나는 주님의 말씀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나의 영과 육의 환부를 도려내어 쪼개기까지 하는 주님의 설교인 산상수훈을 늘 가까이 하자.
그러면서 주님의 뜻대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길인 섭리에 나를 온전하게 맏기자.
주님은 산상수훈을 통하여 아름답고 영롱한 보석과 같은 여러 말씀들을 주셨다.
우선 팔복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주님의 자녀에게 주신 이미 받은 복들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팔복을 받기 위해서 이런 저런 일들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첫번째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말씀하셨다.
나의 심령이 완전하게 가난해 질 수 있을까? 아마도 마지막 호흡을 하기까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천국을 갖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미 믿는 자들에게는 천국을 약속하셨다.
주님께서는 믿는 자녀들에게는 가난한 심령을 주셨다. 하지만 때로는 나의 패역한 심령이 동할 때마다 나는 마음이 강팍해 진다. 그럴때마다 성령은 내게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주님께서는 네가 심령이 가난한 것을 기뻐하신다. 네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말라 하시며 권고하시며 이 땅에서도 천국을 소유한 축복된 삶으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소금과 빛의 자녀가 되라고 말씀하신다.
소금은 주님안에서의 화목을 의미한다.
(막9: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소금이 음식에 골고르게 배어 조화를 이루어 맛을 내듯이, 성도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이들과 화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화목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성도의 인내와 겸손이라고 생각한다.
내 말만하게 되면 그곳에 화목이 임할까?
내 생각대로만 하기를 원한다면 그곳이 화목할까?
내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하게 되면 그곳은 화목이 있을 수 없다.
가정이나 교회에서나 다른 이들을 나의 입장에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대할 수 있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내가 나타나지 않고 조용하게 스며 들어 조화를 이룰때 그곳은 화목이 있게 된다.
빛은 성도의 착한 행실을 말한다.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착한 행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성도의 거룩함이다.
이 빛 곧 착한 행실을 “등경위에 두어 사람앞에 비춰라”라고 말씀하신다.
착한 행실을 나 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웃들에게 베풀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는 방법은?
주님은 무엇이 착한 행실인지를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왜 착한 행실을 해야 하는 지를 설명해 주신다.
(마5:16)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의 자녀로서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선한 행실을 하게 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얼마나 놀라운가! 내가 선한 일을 하게 되면 누가 영광을 받는가? 곧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적어도 교회에 발을 담고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열심히 기도하고 헌신하게 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까?
경건하고 거룩하게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까?
나의 속내를 감추고 겉은 정장을 입고 의젓하게 앉아서 조용한 모습으로 교회에 참석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까?
참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주님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법이 실은 매우 실질적이며 간단함을 피력하신다.
곧 소금과 빛의 자녀로서 화목하며 착한 행실을 하게 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신다.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돌리는 방법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쉽지 않는가?
이어서 주님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받으시는 지를 말씀하시면서, 소금과 빛의 자녀가 해야 할 착한 행실들 그리고 해서는 않될 악한 행실들을 가르치신다:
· 형제에게 노하지 말고 화목하라
· 마음에도 간음하지 말라
· 맹세하지 말라
· 원수에게 보복하지 말라
· 구제하라
·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
· 금식함을 사람들에 나타내지 말라
·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으라
· 염려하지 말라
· 비판하지 말라
· 남을 대접하라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 좋은 열매를 맺으라
주님의 초점은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림에 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자녀들이 마땅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명확하게 말씀하시며 천국을 소유하는 법을 가르치시며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소금과 빛의 자녀로서의 거룩함은 말로만 얻어 지는 것이 아니다.
착한 행실과 하지 말아야 할 행실을 통해 주님의 마음인 거룩함에 조금씩 다가간다.
빛과 소금의 자녀에게 주시는 축복의 가장 큰 것이 천국을 소유한다는 것이다.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빛과 소금의 자녀로 살지 못한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수도 있다.
아무리 열심으로 교회에 참석해서 예배를 드리고 헌금하고 모든 일에 헌신하며 일등 신자의 노릇을 하였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보이고자 하는 겉의 모습이었다면 주님은 그런 자를 보시면서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다고 말할 것이다.
주님은 산상수훈의 말씀을 마치신 후에 7장 24-27절에 이렇게 말씀하시며 결론을 맺으신다.
(마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그러므로” 이 단어를 통하여 주님께서는 산에 오르셔서 하신 산상수훈의 말씀인 팔복과 이어서 소금과 빛의 자녀로 살기 위한 착한 행실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결론을 지어 주시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신다.
“(마7:24)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
“(마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행함”이다.
주님께서는 빛과 소금의 자녀는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닌 실제적인 행함이 반드시 있어야 함을 가르치신다.
아무리 좋고 훌륭한 말을 들었지만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렸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자녀로서 이미 받은 복을 더욱 풍성하게 받으며 소금과 빛의 자녀답게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면서 살라고 말씀하신다.
이웃들과 화목하며 착한 행실을 통하여 주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기 위해서는 우리는 행함이 있어야 한다.
야고보서는 행함에 대하여 말씀한다.
(약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니라.
이어서 예를 드는데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고 또한 기생 라합은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피신토록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한다.
(약2: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의롭다함을 받는 것 즉 구원을 얻는 것은 믿음으로만 얻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는 행함이 있어야 한다. 믿는다고 하면서 아무런 행함이 없는 그런 믿음은 곧 죽은 믿음이다.
믿음을 단지 신앙의 교리로만 이해하며 입술의 고백으로만 만족하는가.
믿음이 온전케 되기 위해서는 행함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빛과 자녀로서 착한 행실을 행하는 자는 비, 창수, 바람이 불어도 견디어 낼 수 있다.
비와 창수와 바람은 두가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비와 창수와 바람은 우리의 삶에 시련이 있음을 의미한다.
주님의 가르치심대로 행하였다면, 마치 땅을 깊이 파서 기초를 쌓은 집이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쳐도 견디어 내듯이, 착한 행함으로 집을 반석위에 잘 지은 사람은 시련이 왔을 때에도 굳건하게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지킨다.
하지만 주님의 가르치심을 듣고도 행하지 않았다면, 마치 모래에 기초를 쌓은 집이 파도에 속절없이 허물어 내리는 모래성과도 같이, 말만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는 자는 인생의 갖가지 시련이 오게 되면 기초가 든든하지 않아서 쉽게 무너져 버리고 만다.
둘째, 비와 창수와 바람은 마지막 심판을 의미한다.
최종적인 심판에서 내가 갖고 있는 믿음이 영원한 천국을 소유한지 아니면 영원한 불못의 지옥을 소유했는지를 판결을 받는다.
주님의 가르치심대로 행하였다면, 마치 땅을 깊이 파서 기초를 쌓은 집이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쳐도 견디어 내듯이 최후의 심판에서 견디어 낼 것이다.
하지만 주님의 가르치심을 듣고도 행하지 않았다면, 마치 모래에 기초를 쌓은 집이 파도에 속절없이 허물어 내리는 모래성과도 같이 영원한 불못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말씀을 정리하면,
주님은 우리들에게 성경을 통해 삶의 지침서를 주셨다.
특히 산상수훈은 우리 성도들의 기독교 윤리 교과서이자, 축복된 삶의 안내서이자 지침서이며, 천국으로 인도하는 기행문과도 같다.
주님은 산상수훈을 통해서 소금과 빛의 자녀들이 미리 예비된 팔복의 복을 받으며 착한 행실을 행하여 집을 반석위에 지은 거룩한 주의 백성이 되어 이 땅에서도 천국을 미리 경험하는 축복을 충만하게 받고 또한 최후의 심판에서도 천국을 소유한 축복받은 자녀들이 되라고 권면하신다.
소금과 빛의 자녀로서 행하는 착한 행함을 통하여 주님께 영광을 드리며, 이 땅에서도 천국을 미리 경험하며 풍성한 천국의 축복을 받는 성도이기를 축원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주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하여
믿는 자녀들이 어떠한 기독교적인 윤리의 삶을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치십니다.
주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서
천국을 풍성하게 누리는 축복의 방법을 말씀하셨으며,
또 소금과 빛의 자녀로서 어떠한 행함이 있어야 함을 알려 주셨읍니다.
소금과 빛의 자녀로 살게 되면 삶의 이득이 있읍니다.
우선 인생의 시련이 올 때에 주님의 도우심으로 능히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서
이 땅에서도 천국을 경험하게 합니다.
또한 최후의 심판에서 영원한 천국을 보장받게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주위를 보면
교회안에서는 주님을 잘 믿는 행동을 하지만
교회문을 나서면 얼마나 가식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저 역시 예외는 아님을 고백을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산상수훈의 삶을 온전하게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저희는 단지 말로만 믿기를 좋아합니다.
말로는 무엇이든 다 한다고 하지요.
말로는 무슨 의인이나 된 듯 말하지만, 아무런 행함의 따름이 없는 죽은 신자와도 같습니다.
저의 마음이 완악하고 굳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영이신 성령님. 저의 마음을 생명수로 부드럽게 하옵소서.
부드러운 땅이 물을 남김없이 흡수하듯이
저의 마음도 부드럽게 되어 성령의 생수로 충만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께서 가르치신 산상수훈의 말씀과 같이 행함이 있는 믿음을 소유하여
이 땅에서도 미리 천국을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소서.
저와 같이 완악하고 패역한 자를 불쌍히 여기소서.
말로만 주님의 제자의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실제에서 착한 행실를 통하여 소금과 빛의 자녀로서 천국의 축복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그래서 부족한 저의 착한 행실을 통하여서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영광을 드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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