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후2:6-8)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함이라.
하나님께서는 롯을 의인이라고 부르신다.
성경에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롯을 의인이라 부르신다는 이 구절 말씀도 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롯과 같은 자도 의인이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살펴보자.
하나님께서 누구를 의인이라 부르시는지,
롯의 어떤 선한 행동이 의인이라 불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의인이라 불린 롯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호하시는지를 보며 위안을 갖고, 롯과 같은 나 같은 자도 의인이라 부르시는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자.
A. 의인
성경에서 의인이라 불리운 자들을 보자.
대표적인 믿음의 장인 히11장에 의인들의 이름이 나온다.
믿음으로 제사를 드린 아벨.
믿음으로 약속의 땅을 받은 아브라함.
믿음으로 약속한 아들을 잉태한 사라.
믿음으로 약속의 땅을 상속받은 야곱.
믿음으로 약속의 땅으로 가게 될 것이라 유언한 요셉.
모세, 기생 라합, 기드온, 바락,삼손,,,
그 외에도 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의인이라 부르시는데 거기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이들 믿음의 선진들은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선한 행실들을 하였다. 의인이라 불리우는 것에 조금도 의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롯을 의인이라 부르시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해가 가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롯을 의인으로 택하셨음은 우리가 무어라 말할 자격이 없는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이며 선택하심이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 역시 의인이라 불러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지 않는가!
우선 의인이라 불리는 것은 값을 지불하지 않고 얻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다.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리고 의인이라 불리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어떤 선한 행동이나 고행을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닌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진 자를 의인이라 부르신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울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는니라..
수도승이었던 Martin Luther는 영혼의 구원의 문제에 고심하였다. 카톨릭교회의 가르침대로 고행을 통해서 의를 얻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고행을 해도 선한 행실을 해도 그 자신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자신에게는 의로 불릴만한 의가 없음을 알고 고뇌를 한다. 그러다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의 말씀을 깨닫고 각성을 한다.
이 사건을 통하여 Luther는 선한 행실과 율례를 우선시하는 종교적 행위에서 벗어나 종교개혁을 한다.
나의 행실이나 고행을 해도 여전히 죄인이며,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선포하게 된다.
무엇을 믿는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마음에 진심으로 믿는가?
그렇다면 그런 나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의인이라 부르신다.
의인이라 불리는 것은 나의 선한 행실, 구제사역, 헌신이 아니다.
의인이 됨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를 의인이라 부르시려고 작정하신 하나님의 선물이며, 주님께서 나의 구주이심을 믿게 하는 갚을 길 없는 은혜이다.
무엇을 믿는가?
주님께서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으며, 죄악되고 부패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진실되게 믿는가?
그렇다면 그렇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를 보시며 의인이라 부르실 것이기 때문이다.
(요일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의인이란 믿음으로 영생을 소유한 천국백성이며 또한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된다.
B. 롯은 누구인가?
롯은 의로운 행동보다는 대부분 자신의 유익을 구하며 세상의 욕심을 쫓아간 어찌보면 나와도 같다.
나 역시 의롭고 거룩한 행실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세상에 속해 악한 행실을 하기도 하고 나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에 바쁘며, 하나님 안에 서 있기 보다는 세상에 속한 듯이 살기도 하지 않는가!
그렇지만 세상의 유익을 구하며 세상에 속했던 롯을 하나님께서는 의롭다고 하시며 의인이라고 부르시며 그가 고통가운데 있을 때 그를 건지셨다고 말씀하신다.
얼마나 위안이 되는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인가!
하나님께서는 롯과 같이 나 역시 대부분의 삶을 하나님께 범죄하며 악한 행실을 하며 눈 앞에 보이는 유익을 구하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거룩한 행실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롯을 의인이라 부르셨듯이 나 또한 의인이라 부르신다.
하나님께서 롯을 의인이라 부르실 때 나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성경을 보면 롯이 의인이라 불릴만한 어떤 선한 일을 한 기록이 거의 없다.
하나님께서 롯을 의인이라 부르심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말씀이다.
하지만 그런 롯을 의인이라 부르시며 자녀로 인정하시는 하나님께서 롯과 같은 나 또한 의인으로 삼으신다고 약속하시는 위로의 말씀이지 않는가!
롯의 행실을 살펴보자.
1. 사람을 따라 간 롯
(창13: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땅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간 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간것이지만, 롯은 아브람을 따라 갔다.
아브람은 말씀을 따라 갔지만 롯은 사람을 따라 간 것이다.
우리 역시 사람을 따라 가지 않는가?
흔히 우리가 말하기를 사람이 출세하려면 줄을 잘 타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혈연, 학연을 관계 지으며 보기에 좋은 줄을 타려고 안간힘을 쓴다.
무척이나 인본적인 생각이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의지하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필경은 그 관계는 아주 조그마한 것으로 인해 깨질수 밖에 없다.
롯은 우리와 같이 사람을 따라 갔던 사람이다.
의를 찿을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롯을 의인이라 부르신다.
나는 어떤가? 나도 롯처럼 사람을 따라 가지 않는가?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자녀로 삼으시고 의인이라 불러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2. 이기적인 롯
(창13:9-11)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롯은 하란에서부터 아브라함을 따라왔고, 아브라함과 같이 동거동락하며 힘들고 어려운 일을 같이 하며 마침내 많은 가축을 지닌 부자가 되었다. 많은 종들과 많은 가축으로 인해 종들간에 다툼이 일어나자 아브라함은 서로 독립을 하자고 한다. 아브라함이 우리 둘 모두 많은 가축을 가졌으니 함께 하는 것이 유익하지 못하니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 네가 오른쪽에 있는 땅을 가면 나는 왼쪽의 땅으로 갈것이니 네가 가고 싶은 곳을 가라고 하자, 롯은 자신의 눈에 보기 좋은 물이 풍부한 동편 땅인 소돔과 고모라 땅을 선택한다.
롯은 자신의 육신의 눈에 보기 좋은 곳을 선택한 것이다.
그것이 후에 고난의 길인줄을 모르고 당장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고 소돔 땅을 취한것이다.
겉에 보기에는 축복 받은 땅과 같이 보이지만 그 안을 보면 부패와 타락이 만연해 있는 멸망의 땅이었다.
우리 역시 눈에 보이는 이익을 택하려고 하지 않는가?
눈에 보임직하고 먹을만한 것을 탐하지 않는가?
세상의 물질, 명예, 권력, 정욕을 탐하지 않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신의 소욕을 찿는 자를 의인이라 하지 않을 것이다.
롯은 눈에 보이는 물질의 축복을 따라간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이런 롯을 보시면서도 그를 의인이라 부르신다.
나는 어떤가? 나도 롯처럼 세상의 욕심을 따라가지 않는가?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자녀로 삼으시고 의인이라 불러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3. 천사를 영접한 롯
성경에 기록된 롯이 행한 선한 행실이다.
(창19:1)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롯은 소돔을 멸하려 온 두 천사를 영접한다. 아마도 두 천사는 인간의 옷을 입고 인간의 모습으로 롯에게 왔을 것이다. 롯은 이 두 천사를 자신의 집으로 영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집을 포위하고 이 아름다운 모습을 한 두 천사와 동성관계를 맺겠다고 험악하게 요구하자, 롯은 마을 사람들에게 아무런 짓도 하지 말라며 막아서지만 흥분한 무리들은 힘으써 취하려고 한다. 이에 두 천사는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고 롯을 구한다. 그리고 두 천사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한다.
롯은 자신의 집에 머무는 자들이 주님의 천사들인지를 몰랐다.
롯은 영접한 손님들을 상관하겠다고 내 놓으라는 무리로 부터 지키려고 하였지만 많은 숫자이기에 중과부족이었다. 그럴때 천사들은 롯을 도와주며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얼마나 위안을 주시는 말씀인가.
우리 역시 주님께서는 천사들을 보내셔서 지켜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시91:11-12)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라.
(시34: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천사는 무엇인가?
성경에는 천사에 대한 기록이 많이 있다.
천사는 우리 인간과 같이 창조물이며 그들 또한 지정의를 갖고 있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영적인 존재이다. 창조때에 타락한 마귀를 쫓는 악한 천사들이 있고 주님을 따르는 선한 천사들이 있다.
선한 천사들은 주님의 자녀들을 도우라고 파견이 된다.
(히1: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보이지 않지만 천사들은 내 주변에 있을 것이다.
또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 나를 도우려고 나에게 다가 올 것이다.
천사들은 내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 주고 보호해 줄 것이다. 내가 천성에 가기까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볼픔이 없이 보인다고 함부러 사람을 대하지 말아야 한다.
부지불식간에 인간의 모습을 한 천사들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4. 마음에 근심한 롯
(벧후2: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롯은 눈으로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물이 넉넉하게 흐르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롯에게는 축복의 땅으로 보여 세상의 속물적인 선택으로 물이 흐르는 동편 땅을 차지하였지만, 그곳은 패역한 땅이요 부패한 땅이었으며 음욕이 가득한 땅이었다.
비록 롯이 속물적인 속성을 지닌 자이지만, 그래도 그 마음속에는 아브라함의 영향을 받아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었다. 롯은 아브라함과 많은 시간을 같이 지내며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순종과 열정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은연중에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그의 마음속에도 새겨 지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믿음을 갖고 있는 롯의 마음이 상하였으며 이를 하나님께서는 보시고 롯을 의인이라 부르신다.
하나님께서는 롯을 아브라함과 같이 그를 의인이라 부르신다.
참으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사건이지 않는가.
단지 음란하고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심령이 상하였다는데 그를 의인이라 부르신다
얼마나 나에게 위안을 주는가?
아무리 나를 좋게 보아도 나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그릇을 소유하지 못했다.
나는 롯과 같은 자가 아닌가. 세상의 속물근성을 가진 주님의 자녀이지 않는가.
그런데 나도 롯과 같이 음란하며 불법한 세상의 행실을 보고 들을 때에 나의 심령이 상하지 않는가.
롯이 소돔과 고모라의 불법한 행실을 보고 재를 뒤집어 쓰고 탄식하며 울며 하나님께 울부 짖었다고는 생각 되지 않는다. 단지 잠시동안 마음이 아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은 나의 조그마한 선한 행실이라도 기뻐하시며 칭찬을 하시며 보응을 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죄악됨을 잘 아시기에 나의 선한 모습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시며 나를 의인이라 불러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얄팍한 나를 보시고도 의인이라 부르신다는 데 창피하고 부끄럽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기쁜가.
C. 롯과 그의 가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롯과 두 딸과의 근친상간으로 만들어진 후손은 모압과 암몬자손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들과 늘 대적하였던 민족이다. 그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과 그의 가족들을 구원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을 사랑하신다. 그래서 모든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죽으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롯과 그의 가족을 구원하셨다.
(눅17: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불과 유황이 쏟아져 내리는 멸망의 곳으로부터 하나님께서는 롯과 두 딸과 아내를 건져내셨다.
비록 아내가 세상에 대한 미련이 있어 뒤돌아 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지만, 롯과 두 딸과 아내가 구원받을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한 이유가 분명하게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창19: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에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셨더라.
우리가 유념하여할 단어는 ‘생각하사”일 것이다. “Remember”라는 단어가 쓰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Remember what I did for you.
Remember what you have done for me.
Remember I AM WHO I AM.
하나님은 늘 죄악 가운데 있는 나를 기억하고 계신다.
또한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배은망덕한 자가 되지 말자.
나의 가족들이 구원 받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내가 우선 의인이라 불리어 구원받은 자가 되어야 한다.
내가 의인이라면 나의 가족들을 하나님께서는 그냥 보고만 계시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생각하시며 기억하시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도 나를 생각하사 지켜 주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실 것을 확신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롯도 의인이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에 저는 위안을 받습니다.
저는 롯과 같이 여호와를 따르기 보다는 사람을 찿아 다니고
눈에 보이는 좋은 것을 탐내는 세상의 소욕을 따르는 속물근성이 가득한 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롯을 사랑하시고 의인이라 부르십니다.
저는 롯을 의인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읍니다.
왜냐하면 저의 마음 구석에는 아직도 구원이란 선행과 고행을 통하여 얻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심으로 선행과 헌신과 말씀과 기도 가운데 거하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아 실망하고 절망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롯을 의인으로 삼으신 것은
바로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임을 저의 마음속에 가득하게 새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행실이나 고행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저의 믿음을 보시고 의인이라 부르십니다.
롯을 의인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저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제가 아무리 입이 많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 아무런 할 말이 없읍니다.
저의 마음은 죄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저를 자녀로 받아 주시고 의인이라 불러 주시니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아주 조그마한 선한 행실도 살피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에게서 조그만 착한 마음이나 선한 행실을 보시면
그래 너는 나의 사랑하는 자야 하시며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며
저의 모든 잘못된 죄악됨과 부패함을 용서 하십니다.
롯도 의인으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저의 아버지가 되시니 부끄럽지만 저는 참으로 기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눈물이나네요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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