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9:13-2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였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한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본문의 말씀은 토기장이의 비유로 잘 알려져 있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주권으로 어떤 그릇은 귀히 쓰는 그릇으로 어떤 그릇은 천히 쓰는 그릇으로 또 어떤 그릇은 멸망받을 진노의 그릇으로 어떤 그릇은 하나님의 영광을 받을 긍휼의 그릇으로 만드신다.
전에는 단지 토기장이가 자신의 뜻대로 그릇을 만들듯이 하나님은 자신의 뜻대로 사람을 빚으시는 주권의 하나님이라고만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말씀을 생각하면 할수록 한가지 분명하게 다가오는 것은 하나님은 진노의 그릇들인 우리 모두가 긍휼의 그릇으로 만들어지기를 원하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본문의 말씀을 두가지로 생각해 보자.
첫번째는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두번째는 하나님은 긍휼의 토기장이이시다.
첫번째,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시다
(15-16)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였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시다.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또한 나를 불쌍히 여기신다.
얼마나 은혜가 되는 말씀인가.
모세가 여호와께 주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간구를 하자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어떤 분이심을 말씀하신다.
(출33:19)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긍휼을 베풀고 누구에게 은혜를 베푸실지를 결정하신다.
나의 어떤 잘난 것을 보시고 결정하시는 것이 아니다. 누구를 택하실 것인지는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이시다.
나의 생각에 저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도 긍휼의 은혜를 베푸셨다. 또 그 사람도 나를 보며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저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것이 없이 보이는데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까 하며 생각을 할 것이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것이 곧 하나님의 마음이시며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마음은 언제나 나의 생각을 초월하신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있기에 나는 구원을 받았다.
왜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나의 무엇을 보시고 나를 택하셨을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비록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대로 받아 들이자.
내가 잘나서 무엇을 잘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며 긍휼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를 자녀로 택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기에 내가 마지막 호흡을 하기까지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나를 지켜주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신다.
(사49:15-16)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어머니가 자신의 자신의 뱃속에서 자라다 나와서 젖을 빨아 먹은 갓난 아이를 잊을 수 없듯이 여호와께서도
나를 잊지를 못하시며 그것도 모자라서 나를 손바닥에 새기시고 손바닥을 보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시고 나에게 한없으신 긍휼을 베푸신다.
저를
손바닥에 새기시고 잊지 않으시는 여호와여!
저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사54:7-8)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이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크신 긍휼하심으로 나를 손바닥에 새기시고 나를 사랑하시지만 나는 주님의 품안에 잠잠히 있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을 잊고 하나님의 길에서 뻣나가 죄악의 길에서 헤맨다. 그런 나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죄악 가운데서 헤매고 있는 나의 죄악됨을 알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진노를 허락하신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진노는 영원하게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잘못을 깨닫고 용서을 구하고 회개를 하게 되면 나를 언제나 불쌍하게 여기시는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거두시고 자비로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다시 회복시킨다. 인생들아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는가? 속이 탈때에는 밖으로 나오는 것도 새카맣지 않던가.
음식맛이 마치 모래알을 씹듯한가?
누가 뭐라고 말해도 들리지 않고 눈에는 초점이 없이 그저 망연하게 있는가?
고칠수 없는 병에 걸려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가? 왜 다른 이들은 멀쩡한데 나는 이러한 병에 걸렸을까?
소망은 모두 사라지고 절망만이 있는가?
사방을 둘러 보아도 높은 벽만이 보이고, 넘치는 성난파도만이 있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하며 마음이 녹아 내리며 낙심하지 말자.
우겨쌈을 당하여도 두려워하지 말자. 이미 벌어진 일 아닌가. 이웃과 친구들이 등을 돌리고 욕하며 멀리해도 모른척하자. 어차피 그들이 나의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지 않던가.
죽을 병에 걸려 내일이 나의 마지막날이면 어떠한가. 어차피 죽음은 언젠가 한번은 모두 경험하는 것인데 조금 일찍 죽는다고 무어 그리 억울해하며 왜 그리 살겠다고 발버둥치는가.
단지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자.
나의 지난 날들을 뒤돌아 보자. 혹 어떤 일로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는지를 찿아보자.
이 사건을 통해서 내게 가르치시고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간구해 보자.
아버지의 긍휼하심을 입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잠자고 있는 나의 영혼이 깨어야 한다.
나의 영혼아 깰지어다.
여호와의 긍휼을 바랄지어다.
두번째, 하나님은 긍휼의 토기장이이시다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토기장이의 비유는 이사야서 29장과 예레미야서 19장에 잘 나타나있다.
우선 이사야의 말씀을 살펴보자.
(사29:16)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나를 빚으시는 분이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어떤 그릇은 귀히 쓰이는 그릇으로 어떤 그릇은 천히 쓰이는 그릇으로 만드신다.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어떤 이들은 할 짓 못할 짓 온갖 비행을 다 저지르고도 오히려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뼈더 빠지도록 일을 해도 겨우 입에 풀칠을 간신히 하며 목숨을 연명한다.
능력이 있는 잘난 이들은 교회에서도 중한 직책을 받으며, 능력이 없는 못난 이들은 교회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취급을 당한다. 혹 사회에서 제대로 취급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교회에서 중책을 맡으면 안하무인처럼 함부로 행동한다.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의 태중에서부터 에서와 야곱 중에서 약속의 씨로 야곱을 선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믿는 자를 박해하러 다메섹으로 가는 사울을 선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왕을 완악하게 하여 결국 자신의 첫아이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과 가축의 첫번째 소산을 죽게 하였고 홍해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죽게 하셨다.
우리 인간은 결코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을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택하신다.
하나님께서 빗으시는 그릇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진노의 그릇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긍휼의 그릇이다.
(22-23)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진노의 그릇
(22)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진노의 그릇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 멸하신다하나님은 마지막 심판때에 진노의 그릇들은 영원한 불못에 던져 넣을 것이다.
- 오래 참음으로 관용하시고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심판을 아직 시행하지 않으셨다.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이유가 바로 나를 사랑하시기 떄문이다.우선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는 여호와이심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한다. 나는 얼마나 완악하며 강팍한 자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지금껏 나를 참고 또 참으시며 나를 천국으로 인도를 하신다.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 영광을 받으신다내가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신다
멸하기로 약속된 진노의 그릇인가 아니면 영광을 받으실 긍휼의 그릇인가?
긍휼의 그릇은 안에 불순물이 없어야 한다. 불순물을 건져 내고 하나님의 마음대로 지어진 후에는 뜨거운 불가마 안에서의 연단의 과정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성령의 불의 역사가 임해야 한다. 성령의 인치심의 역사를 통하여 빗어진 그릇은 단단하고 아름다운 그릇으로 만들어 진다.
(렘18: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말씀이다.
토기장이는 아무 흙이나 그릇으로 만들지 않는다.
토기장이가 질이 좋은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질이 좋은 흙을 구하는 것이 비결이다.
좋은 진흙을 우선 잘게 부수고 불순물들은 건져낸 후에 적당한 물을 붓는다. 그리고 여러번 밟아서 훍 가운데 공기의 공간이 없도록 하고 알맞게 찰지도록 만든 후에 둘레에 올려서 손으로 자신이 원하는 모양대로 그릇을 만든다. 만든 그릇들을 가마에 넣고 장작을 때어 뜨거운 열기가 며칠이고 가해져서 마침내 단단한 그릇으로 만들어 진다. 가마에서 꺼내어진 그릇들을 토기장이는 골라낸다. 흙 가운데 불순물이 들어 있거나 공기구멍이 남아 있거나 열기가 제대로 가해지지 않다면 그 그릇은 잘못된 그릇으로 만들어 진다. 토기장이가 원하는대로 잘 구워진 그릇들은 잘 보관하지만 원하는 대로 만들어 지지 않은 그릇들은 망설임 없이 깨뜨리고 잘게 부수워서 흙으로 만들어 언제든지 원하는 그릇으로 다시 만든다.
하나님의 마음대로 제대로 만들어진 그릇은 긍휼의 그릇이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잘못 만들어진 진노의 그릇은 깨뜨려 버린다.
나는 본래 진노의 그릇이다.
진노의 자식이기에 영원한 불못의 사망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내가 긍휼의 그릇으로 만들어질 때까지 나를 부수고 또 부수어서 진노의 그릇으로부터 긍휼의 그릇으로 빗으신다. 진노의 그릇인 나를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자녀로 삼으시고 오랫동안 나를 깨뜨리고 또 꺠뜨리시며 결국은 긍휼의 그릇으로 빗어 가시며 나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인내하시며 내 안에 있는 불순물들인 죄악들을 하나 하나씩 걸러 내도록 성령의 불에 나를 연단하며 또 연단하신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 왠만한 그릇이라 생각이 들지만 하나님께서는 만족하시지 않으시고 다시 깨뜨리시고 또 깨뜨리시며 결국은 영성과 인성과 지성과 영원한 육신이 잘 갖추어진 온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아름다운 긍휼의 그릇으로 만들어 내신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제각각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긍휼의 그릇들로 가득하게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 긍휼의 그릇으로 빗어져가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변함이 없는 진노의 그릇인가!
진노의 그릇들인 우리는 악으로부터 돌이켜야 한다. 악에서 돌이키면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돌이키시고 다시 긍휼의 그릇으로 만드신다. 긍휼의 그릇으로 빗어져서 영광의 풍성함에 거하여야 한다.
(렘18:8)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만일 긍휼의 그릇으로 빗어져 가고 있다면 더욱 하나님께 감사하고 더욱 순종하며 주님의 길을 따라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 진노의 그릇이라면 오래 참고 또 참으시며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자. 나의 죄악들을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며 긍휼의 그릇으로 빗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를 하자.
왜냐하면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시기 떄문이다.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항상 쉬지말고 감사를 하자.
하나님 아버지여,
저는 본래 영원한 사망이 기다리고 있는 진노의 그릇입니다.
진노의 그릇인 저를 깨뜨리시고 다시 저를 긍휼의
그릇으로 빗으소서.주여 은혜를 베푸사 진노의 그릇인 저를 긍휼의 그릇으로 다시 만드실 긍휼의 여호와께 감사를 드립니다.
성령의 불에 저를 연단하시며 제 안에 있는 불순물들을 다 태우사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긍휼의 그릇으로 저를 빗어 주옵소서.
긍휼의 하나님이시여.
저의 완악함을 오래 참고 참고 계시는 긍휼의 하나님. 오늘 이 시간이 제가 은혜를 받을 만한 때임을 깨닫도록 저를 인도하옵소서.
긍휼의 그릇으로 빗어져 가기를 간구합니다.
저를 긍휼의 그릇으로 빗으실 여호와여 영광을 받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