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31:19-24) 주를 두려워 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주께서 그들을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말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의 놀라운 사랑을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내가 놀라서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꼐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의 놀라운 사랑을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내가 놀라서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꼐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새해가 시작이 되었는데 지난 날들의 잘못된 것들은 이제는 내려 놓고 주님안에서의
새사람으로서의 변환을 해보자. 하나님께서는 셀 수 없는 너무나 좋은 축복들을 이미 마련해 놓으셨다. 올해에는 하나님께서 쌓아 두신 좋은 풍성한 은혜들을 찿아 쓰는 축복받은 인생이기를 간구하자.
여호와께서는 주님의 자녀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하신다.
여호와께서 풍성한 은혜를 쌓아 두셨는데 그 내용물은 good things 곧 우리 인생에 유익이 되는 좋은 것들이다.
여호와께서는 주님의 자녀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하신다.
여호와께서 풍성한 은혜를 쌓아 두셨는데 그 내용물은 good things 곧 우리 인생에 유익이 되는 좋은 것들이다.
첫째, 쌓아 두신 (have
stored up)
(19) 주를 두려워 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How abundant are the good things that you have stored up for those who fear you, that you bestow in the sight of all, on those who take refuge in you,
(19) 주를 두려워 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How abundant are the good things that you have stored up for those who fear you, that you bestow in the sight of all, on those who take refuge in you,
‘have stored up’은 현재완료형이며 이는 이미 여호와께서는 좋은 것들을 여호와의 창고에 풍성하게 쌓아 두셨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준비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완벽하게 좋은 것들이 준비되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좋은 것들로 풍성한 은혜를 꺼내어 쓰는 축복된 성도이기를 간구한다.
여호와께서는 좋은 것들을 차고 넘치도록 보관하고 계신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마음대로 언제든지 꺼내어 쓸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쓸 수 있는 좋은 것들이 이미 차고 넘치도록 풍성하게 준비되어 있지만 창고 문을 열수 있는 key가 있어야 한다. Key를 갖고 있다면 언제든지 원할때 창고문을 열고 들어가서 필요한 좋은 것들을 가져내 올 수 있다.
둘째, 창고를 여는 key는?
(19) 주를 두려워 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여호와께서 풍성하게 쌓아 두신 은혜는 모든 자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다. 오직 자격을 갖춘 자만이 하늘 창고를 열고 하늘의 은혜의 축복을 꺼낸다. Conditional한 조건을 갖춘 자에게 여호와의 창고를 열수 있는 key가 주어진다.
두가지의 조건이 맞아야 한다.
1. 두려워하는 자 (who fear YOU)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은 어찌보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 것이다.
물론 여호와는 사랑과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임을 잘 안다. 그러기에 늘 죄악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용서를 구한다. 심판과 재앙과 저주하심으로 인간에게 보응하시는 무서운 여호와이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며 주권자이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두려워 하며 섬긴다. 온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해야 한다.
(렘5:22-2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 하지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리로다.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예레미야서 5장에서는 어떤 여호와이시기에 우리가 두려워하며 경외해야 하는 지를 말씀하고 있다.
여호와는 바다의 한계를 정하신 분이시다. 바닷가에 가면 수많은 모래들이 펼쳐져 있다. 아무리 깊고 넓은 바다도 하나님께서 경계로 정하신 모래를 넘어서지 못한다. 우리는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가 얼마나 큰 피해를 주었는지를 보고 안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쓰나미라 할지라도 어느정도 피해를 줄 수는 있지만 결코 온 땅을 뒤엎을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경외하지 않게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이른비와 늦은 비의 축복은 없어진다.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때에 맞추어서 와야 한다. 그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가 오기를 원해서 비가 오는 것이 아니며 비가 오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비가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비는 내리고 그친다. 하늘에서 내려 주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게 적당하게 내리지 않는다면 풍성한 추수를 기대할 수 없고 흉년이 오게 된다.
나의 삶에 피페함이 왔는가?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축복이 끊쳐 졌는가?
메뚜기와 황충이 남아 있는 열매들을 갉아 먹는가?
말할 수 없는 흉년으로 너무나 힘이 드는가?
혹 여호와를 온전하게 두려워 하지 않았으며 경외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말씀하신대로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 곧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축복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 곧 여호와의 축복을 막았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어디에 서 있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여호와를 온전하게 두려워 하며 경외하였는가?
혹시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는가?
여호와는 자신을 두려워 하는 자를 위하여 은혜를 쌓아 두셨다.
2. 피하는 자 (who take refufe in YOU)
주께로 피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주를 두려워 하는 자는 주님을 피난처로 삼고 주께로 피한다.
삼하22장은 다윗의 노래인데 다윗은 자신의 인생을 회상하며 여러 경험들을 통하여 깨달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찬양을 한다.
(삼하22:31) 여호와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이 밖에도 다윗은 여러 시편을 통하여 여호와께로 피하는 자가 받는 은혜를 노래한다.
(시5:11)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시17:7-8)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어려움 가운데 있다면 주님 앞에 나아가서 그 날개 아래에 거하도록 하여야 한다.
나를 지켜주실 이는 주님뿐이다. 창조주이시며 권능자이시며 주권자이신 주님의 날개 아래에 피하도록 하자.
오직 그 길만이 고통가운데 있는 나를 위로하시고 눈동자처럼 지켜 주시고 또 다른 예비하신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어 나를 회복의 은총으로 덮으실 것이다.
셋째, 어떤 좋은 것들인가?
좋은 것들의 축복이라고 할 때 우리는 흔히 우리 육신의 축복을 의미한다.
과연 시편에서 말하고 있는 풍성한 좋은 것들의 축복이 우리가 원하는 재물의 축복, 건강의 축복, 명예와 권세의 축복, 아니면 세상의 평안함의 축복인가? 본문의 말씀에서는 두가지의 회복 곧 관계의 회복과 어려움으로부터의 회복의 축복에 대하여 말씀을 한다.
1. 관계의 회복
(20) 주께서 그들을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말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두 가지가 언급이 된다.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두 가지가 언급이 된다.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시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시1편은 복있는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첫번째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한다.
복이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악인의 꾀를 쫓아서는 않된다.
악인의 꾀에는 무엇이 있을까?
유혹, 간계, 거짓, 자신이 남보다 우선이라는 교만,
악인의 꾀에 빠지게 되면 죄를 따르게 되며 오만한 자가 되어 결국은 복을 받을 수 없는 자가 된다.
악인의 꾀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곧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될 때 비로서 악인들의 꾀에 빠지지 않게 되어 복된 자가 된다.
시1편은 복있는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첫번째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한다.
복이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악인의 꾀를 쫓아서는 않된다.
악인의 꾀에는 무엇이 있을까?
유혹, 간계, 거짓, 자신이 남보다 우선이라는 교만,
악인의 꾀에 빠지게 되면 죄를 따르게 되며 오만한 자가 되어 결국은 복을 받을 수 없는 자가 된다.
악인의 꾀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곧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될 때 비로서 악인들의 꾀에 빠지지 않게 되어 복된 자가 된다.
말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라 (from accusing tongues)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문제가 적든 크든 항상 conflict가 있는데 그 이유는 대개 말로부터 시작을 한다.
사람의 심기를 건드는 말, 사람의 자존심을 깍아 내리는 말, 칭찬의 말보다는 정죄의 말, 따뜻한 말보다는 가시돋친 말, 따뜻한 사랑의 말보다는 차가운 미움의 말, 축복의 말 보다는 저주의 말,
온갖 말들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며 사람과의 관계를 허물어 뜨린다.
가장 말로 인해 관계가 허물어 지는 곳이 어디인가? 바로 가정이다.
사랑으로 가득해야 할 곳이 가정이 오히려 미움과 증오의 장소로 바뀐 것은 바로 말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한마디의 말로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만일 다툼이 있다면 조심하라. 다툼은 마귀가 심어주는 마음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마귀가 주는 다툼과 시기라면 그 결과는 좋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마귀가 주는 것은 악함이기 때문이다.
(약3:14-16)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려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하나님의 준비하신 축복은 바로 말로 인한 상처를 보담어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을 한다.
가정의 회복의 축복은 얼마나 귀한 축복인가.
교회안에서 교인들간의 관계의 회복.
삶의 일터에서 동료들간의 관계의 회복.
관계를 허물어 뜨리는 간계와 말들로부터 회복되는 은총.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문제가 적든 크든 항상 conflict가 있는데 그 이유는 대개 말로부터 시작을 한다.
사람의 심기를 건드는 말, 사람의 자존심을 깍아 내리는 말, 칭찬의 말보다는 정죄의 말, 따뜻한 말보다는 가시돋친 말, 따뜻한 사랑의 말보다는 차가운 미움의 말, 축복의 말 보다는 저주의 말,
온갖 말들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며 사람과의 관계를 허물어 뜨린다.
가장 말로 인해 관계가 허물어 지는 곳이 어디인가? 바로 가정이다.
사랑으로 가득해야 할 곳이 가정이 오히려 미움과 증오의 장소로 바뀐 것은 바로 말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한마디의 말로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만일 다툼이 있다면 조심하라. 다툼은 마귀가 심어주는 마음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마귀가 주는 다툼과 시기라면 그 결과는 좋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마귀가 주는 것은 악함이기 때문이다.
(약3:14-16)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려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하나님의 준비하신 축복은 바로 말로 인한 상처를 보담어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을 한다.
가정의 회복의 축복은 얼마나 귀한 축복인가.
교회안에서 교인들간의 관계의 회복.
삶의 일터에서 동료들간의 관계의 회복.
관계를 허물어 뜨리는 간계와 말들로부터 회복되는 은총.
2. 어려움으로부터의 회복
(21-22) 견고한 성에서 그의 놀라운 사랑을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내가 놀라서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늘 좋은 일들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생은 늘 좋은 일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힘이들고 낙심케 하는 어려운 일들을 만난다.
앞뒤로 꽉 막혀 좌절하고 놀라서 주앞에서 나는 끊어졌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때로 우리는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는 견고한 성을 만난다.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는 견고한 성.
정욕의 문제, 탐욕의 문제, 재정의 문제.
굶주림과 절망으로 소망이 끊어진 상태.
질병으로 죽음을 전전긍긍하며 즐거움이 끊어진 상태.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진 상태.
이러한 것들은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깰 수 없는 견고한 성이다.
비록 적으로 에워싸여 있어 아무런 소망이 없지만 소망을 잃지 않고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여호와께 피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견고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주님의 은혜의 손길로 기적처럼 어려움을 디디고 회복이 되는 은혜가 임한다.
(수6: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들이 크게 소리쳐서 견고한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린 것이 아니다.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크게 소리치는 것을 보고 들으신 여호와께서 자신의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견고한 성 여리고를 무너뜨리신 것이다.
늘 좋은 일들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생은 늘 좋은 일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힘이들고 낙심케 하는 어려운 일들을 만난다.
앞뒤로 꽉 막혀 좌절하고 놀라서 주앞에서 나는 끊어졌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때로 우리는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는 견고한 성을 만난다.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는 견고한 성.
정욕의 문제, 탐욕의 문제, 재정의 문제.
굶주림과 절망으로 소망이 끊어진 상태.
질병으로 죽음을 전전긍긍하며 즐거움이 끊어진 상태.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진 상태.
이러한 것들은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깰 수 없는 견고한 성이다.
비록 적으로 에워싸여 있어 아무런 소망이 없지만 소망을 잃지 않고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여호와께 피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견고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주님의 은혜의 손길로 기적처럼 어려움을 디디고 회복이 되는 은혜가 임한다.
(수6: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들이 크게 소리쳐서 견고한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린 것이 아니다.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크게 소리치는 것을 보고 들으신 여호와께서 자신의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견고한 성 여리고를 무너뜨리신 것이다.
넷째, 은혜를 받은 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찬양 – Praise be to the LORD
(21) 여호와를 찬양하라
KJV는 ‘Blessed be the LORD’로 즉 ‘여호와여 축복을 받으소서’라고 번역을 했다.
내가 누구를 축복을 하는 것보다는 축복 받는 것에 익숙해 있다. 더군다나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울 받는 것에만 익숙해 있다. 하지만 우리 역시 하나님을 축복하여야 한다. 여호와께서 나를 견고한 성으로부터 건져 주셨음으로 나는 여호와를 축복하며 찬양을 한다고 다윗은 고백을 한다. 여호와를 축복하며 찬양을 하자.
찬양을 할 때 어떤 모습으로 하는가?
많은 이들이 찬양을 형식적으로 하는 것을 본다.
찬양 team이 하는 가장 큰 잘못은 자신의 찬양하는 모습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다. 가운데 서려고 하고 화면에 비쳐지기를 원한다. 그런 모습으로 찬양을 하면 하나님께서 받으실까?
나의 마음 중심으로 찬양을 드려야 한다.
찬양을 받으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많은 예배 가운데서 정작 중요한 찬양은 대강 생략을 하고 중요하지 않는 교회광고에 더욱 치중하기도 한다. 찬양은 설교만큼이나 중요한 예배의 요소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2. 간구 – For I said in my haste, when I cried unto YOU
(22) 내가 놀라서 말하기를
(22)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기쁠떄는 기쁨의 감사의 간구를 슬플 때는 나의 아픈 심정을 토로하는 간구를 드리자.
여호와 하나님 앞에 무엇을 감추고 포장해서 간구하지 말자.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모든 사정을 이미 잘 알고 계시며 나의 간구를 들으시기를 기뻐하신다.
나의 모든 사정을 주님께 간구하자.
3. 사랑 – Love the LORD
(23)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사랑하라’는 교회의 성도들이라면 너무나 많이 들어서 익히 알고 있는 말씀이다. 그런데 실천에 옯기기에는 어려운 말씀이기도 하다. 내 안에 주님의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남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다. 내 안에 주님의 사랑이 없다면 그 사랑은 형식적이며 가식적인 사랑일 수 밖에 없다.
4. 담대함 – Be strong and take heart
(24)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세상은 때로는 내게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내게 준다. 그럴때마다 좌절하고 소망을 잃어 버린다. 그렇지만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그런 나를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너는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너는 오직 여호와를 믿고 의지하며 강하고 담대하라. 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나를 위로하시고 감싸주시며 용기를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축원을 드린다.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독수리라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으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경외하며 피난처로 삼은 자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새힘으로 독수리가 힘차게 날개치며 올라가듯이, 달음박질 하여도 지치지 않고, 아무리 오래 걸어도 피곤하지 않는 강건함을 주신다. 나의 육신의 연약함을 회복시키시며 보다 중요한 나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새힘을 주셔서 세상의 곤고한 일들이 많지만 주눅들지 않고 실망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만을 바라보며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축복받은 성도가 되자.
(사61:9) 그들의 자손을 뭇 나라 가운데에, 그들의 후손을 만민 가운데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여호와께 피하여 여호와께서 쌓아 두신 은혜를 찿아 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쌓아 두신 은혜의 축복을 나의 후손에게도 물려 주어서 대대로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받는 축복 받은 자손이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찬양 – Praise be to the LORD
(21) 여호와를 찬양하라
KJV는 ‘Blessed be the LORD’로 즉 ‘여호와여 축복을 받으소서’라고 번역을 했다.
내가 누구를 축복을 하는 것보다는 축복 받는 것에 익숙해 있다. 더군다나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울 받는 것에만 익숙해 있다. 하지만 우리 역시 하나님을 축복하여야 한다. 여호와께서 나를 견고한 성으로부터 건져 주셨음으로 나는 여호와를 축복하며 찬양을 한다고 다윗은 고백을 한다. 여호와를 축복하며 찬양을 하자.
찬양을 할 때 어떤 모습으로 하는가?
많은 이들이 찬양을 형식적으로 하는 것을 본다.
찬양 team이 하는 가장 큰 잘못은 자신의 찬양하는 모습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다. 가운데 서려고 하고 화면에 비쳐지기를 원한다. 그런 모습으로 찬양을 하면 하나님께서 받으실까?
나의 마음 중심으로 찬양을 드려야 한다.
찬양을 받으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많은 예배 가운데서 정작 중요한 찬양은 대강 생략을 하고 중요하지 않는 교회광고에 더욱 치중하기도 한다. 찬양은 설교만큼이나 중요한 예배의 요소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2. 간구 – For I said in my haste, when I cried unto YOU
(22) 내가 놀라서 말하기를
(22)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기쁠떄는 기쁨의 감사의 간구를 슬플 때는 나의 아픈 심정을 토로하는 간구를 드리자.
여호와 하나님 앞에 무엇을 감추고 포장해서 간구하지 말자.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모든 사정을 이미 잘 알고 계시며 나의 간구를 들으시기를 기뻐하신다.
나의 모든 사정을 주님께 간구하자.
3. 사랑 – Love the LORD
(23)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사랑하라’는 교회의 성도들이라면 너무나 많이 들어서 익히 알고 있는 말씀이다. 그런데 실천에 옯기기에는 어려운 말씀이기도 하다. 내 안에 주님의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남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다. 내 안에 주님의 사랑이 없다면 그 사랑은 형식적이며 가식적인 사랑일 수 밖에 없다.
4. 담대함 – Be strong and take heart
(24)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세상은 때로는 내게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내게 준다. 그럴때마다 좌절하고 소망을 잃어 버린다. 그렇지만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그런 나를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너는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너는 오직 여호와를 믿고 의지하며 강하고 담대하라. 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나를 위로하시고 감싸주시며 용기를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축원을 드린다.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독수리라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으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경외하며 피난처로 삼은 자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새힘으로 독수리가 힘차게 날개치며 올라가듯이, 달음박질 하여도 지치지 않고, 아무리 오래 걸어도 피곤하지 않는 강건함을 주신다. 나의 육신의 연약함을 회복시키시며 보다 중요한 나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새힘을 주셔서 세상의 곤고한 일들이 많지만 주눅들지 않고 실망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만을 바라보며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축복받은 성도가 되자.
(사61:9) 그들의 자손을 뭇 나라 가운데에, 그들의 후손을 만민 가운데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여호와께 피하여 여호와께서 쌓아 두신 은혜를 찿아 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쌓아 두신 은혜의 축복을 나의 후손에게도 물려 주어서 대대로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받는 축복 받은 자손이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주께서 이미 준비하신 풍성한 은혜를 받기를 간구합니다.
주님의 창고에 예비하신 좋은 것들을 찿아 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주님을 두려워하며 주님께 피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두려움으로 섬기기를
원합니다.
또한 제가 주님의 은밀한 곳으로 피하여 거처를 삼기를
원합니다.
늘 저의 삶 가운데서 여호와를 저의 마음으로 입술로
찬양을 드리며,
늘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간구하며,
무엇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늘 주님만을 의지하여 강하고 담대하게
저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들을 보내도록
주의 풍성한 은혜로 저를 덮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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