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5:17-26)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어놓고자 하였으나…(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이 말씀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도 기록이 되어있는데 마가복음에 보다 상세하게 상황을 말씀한다.
(막2:3-5)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내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1. (20)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 말씀에서 주목하여 볼것은 중풍병자를 메고 온 네 사람의 친구들이다. 중풍병자를 메고 온 친구들은 사람이 많아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자 포기하지 않고 지붕위로 올라가서 지붕을 뚫고 친구인 중풍병자를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달아 내린다.
Florida Orlando에
Holyland가 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의 생활의 모습을 민속촌과 같이 전시해 놓았다. 골고다 동산, 성막과 성막의 성물들, 제사장의 의복등을 재현해 놓았는데 그 가운데
예루살렘 성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당시의 집들은 대개 직사각형으로 돌로 벽을 만들었고 나뭇가지와
진흙으로 만든 지붕은 평평하며 지붕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예수님이 주의 도의 말씀을 전하는 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걸을 수 없는 중풍병자를 맨 네 친구들은 도무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자 한가지 계획을 한다.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뚫고 친구를 달아 내리겠다고 기발한 생각을 한다. 나의 친구를 위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라는 말씀은 세 복음서에 동일하게 기록이 되었있다.
(막2: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마9:2)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주님은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고치신 것이 아니라, 지붕을 뚫고서라도 예수님 앞에만 서면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시고 고쳐 주신다. 아마도
네 명 모두 귀한 믿음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한명 아니면 두명의 믿음이 있으면 된다.
백부장의 예를 보자.
신실한 백부장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종이 병이 들어 죽게 되자 그가 나을 수 있는 온갖 방법을 찿아본다.
그러다가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찿아 가서 간청을 한다. 이에 예수님이
백부장의 집으로 가려고 하자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집에 오심을 감당할 수 없으니 말씀만 하여 하인을 낫게 해달라고 간청을 한다.
(눅7: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7)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9-10)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주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주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종을 고쳐주셨다.
백부장의 하인이 병이 낫게 된 것은 하인의 믿음이 아니라 신실한 백부장의 믿음으로 고침을 받았다.
성경에는 기록이 되어 있지는 않지만 친구들은 주님의 큰 축복을 받았음에 확신을 한다.
주님을 만나 주님께서 고쳐주시는 사건을 직접 두 눈으로 경험하였으니 그들의 마음속에는 주님이 분명하게 새겨졌을 것이다. 비록 그 후에 주님을 배반하고 십자가에 죽게 하였을지도 모르지만 곧 회개하고 다시 주님 앞에 나아와서 육신의
연약함을 치료하시고 영혼의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안에 머무르며 생명이 다할 때까지 신실한 믿음생활을 하였을 것이다.
나를 위하여 울어줄 수 있는 친구 한명이라도 있다면 그것이 곧 축복이다.
내게는 귀한 친구들이 있는데 그들은 늘 신실한 친구이며 내가 곤고함 가운데 있을때에는 나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며 나를 보살피는
친구들이다. 주님은 나의 친구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곤고함을 고쳐주신다.
본문의 말씀과 같이 친구의 믿음을 보시고 주님은 나의 영혼과 육신을 고쳐주신다.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중보기도해 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가?
만일 없다면 주위를 살펴보아 나를 위해 진심으로 중보기도해 줄 수 있는 의인을 찿아라.
(약5:15-16)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의인을 친구로 두었다면 참으로 그는 복을 받은 자이다.
그가 나를 위하여 자기 일처럼 간구하며 기도할 것이다. 그의 기도를 통하여 많은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기도만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나 또한 그 누군가에게는
그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나의 일처럼 중보기도해 줄 수 있는 진솔한 친구가 되자. 그것을 보시면서
주님은 기뻐하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좋은 친구가 있다.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나를 친구라 부르신다.
(요15:12-15)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세상의 친구들은 때로는 나를 배반하기도 하고 뒤통수를 치기도 하고 이용하려고 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심으로 나에 대한 크신 사랑을 나타내셨으며 그런 주님을 따르는 자를 친구라 부르시며 영원토록 신실하시며 배반하지 않으시고 나를 지키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2. (23) 어느
것이 쉽겠느냐
주님은 우리에게 “어느 것이 쉽겠느냐”하시며 물으신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시기를 원하시는가?
주님께서는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을 사람들이 듣기를 원한다는 것을 아신다. 그런데도 주님은 일부로 “네
죄 사함을 입었느니라” 말씀하신다. 그리고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와 ‘일어나 걸어가라’ 어느것이
쉽겠느냐 하고 물으신다.
우리는 어떤 것에 더욱 마음이 끌리는가?
‘죄를 사한다’는 것은 나의
내면의 문제이다. 그리고 ‘일어나 걸어가라’는 보이는 육신의 문제를 의미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내면의 문제와 육신의 문제중에 어느 것이 더욱 중요한가를 물으신다.
영혼의 풍요로움과 육신의 풍요로움 중에서 우리는 무엇을 더욱 원하는가?
그런데 주님은 거듭해서 나의 죄의 문제를 다루신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영생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육신의 풍요로움은 잠시뿐인 영광임을 알려 주신다.
주님은 온갖 육신의 풍요로움을 모아놓은 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눅12:19-
20)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찿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만일 내가 불치의 병에 걸렸다고 생각해 보자.
주님께서 나를 보시면서 ‘네 죄가 사함받았다‘라는
말씀과 ‘네 병이 다 나았으니 침상에서 일어나 걸으라’라는
말씀 중에 어떤 말씀이 내게 다가오는가?
아마도 ‘네 병이 다 나았으니 일어나 걸으라’ 하시는
말씀이 내 귀에 더욱 속속히 들어 올 것이다.
병이 기적적으로 나았다고 해서 영원하게 살지는 못한다. 언젠가는 죽으며 죄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것이다.
육신의 기적적인 나음이 지금의 내게 절실할 지라도 나의 영혼을 위해 나의 죄를 사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마음이 앞서야 할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주님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주님은 사람과 사탄은 할 수 없는 죄를 사하시는 능력과 불치의 병을 낫게하시는 능력을 갖고 계시며 그 일은 주님께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말씀하시듯이 주님에게는 쉬운 일이시다. 주님은 이를 증명해 보이셨다.
주님께서는 이 중풍병자의 사건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죄를 사하시는 능력이 있으심과 보이는 육신의 질병을 치유하시는 능력이
있음을 많은 이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이심을 두 눈으로 보아야만 믿는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이셨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주님께서는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영혼과 육신의 문제를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중풍병자를 메고
와서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뚫고 달아 내린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영과 육을 고치셨읍니다.
친구들에게는 주님 앞에만 나아가면 이 친구가 낫겠다는 믿음이 있었읍니다.
그래서 네 친구들은 무겁지만 낑낑거리며 온 힘을 다하며 메고 지붕에 올라서서 지붕을 파헤쳐서 중풍병자를 주님
앞으로 내렸읍니다.
그것을 보신 주님께서는 친구들의 귀한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의 영혼과 육신의 아픔을 치료하셨읍니다.
저도 그런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친구가 되기를 원합니다.
무겁지만 힘들지만 그럼에도 아픈 이를 위해서 지붕을 뚫는 수고를 하여 주님 앞으로 데려 가는 진실한
친구가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저에게도 아플 때에 저를 메고 저의 힘으로는 주님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저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읍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주님에게는 사람의 죄를 사하실 수 있는 능력과 우리 자신이 해결 할
수 없는 불치의 질병을 치유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심을 보이시며 하나님 아들이시며 만주의 주이시며 창조주이시며 메시야 이심을 증명해 주셨읍니다.
바로 그 주님께서 저의 마음에 성령으로 오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제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저의 연약한 영혼과 육의 아픔을 치유하시고 영생을 주셨음을 확신하며 믿는
믿음을 갖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모든 영광을 받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