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18:11-19)
네게 돌릴 것은 이것이니 곧 이스라엘 자손이 드리는 거제물과 모든 요제물이라. 내가 그것을
너와 네 자녀에게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주었은즉 네 집의 정결한 자마다 먹을 것이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
소금 언약은 무엇을 의미할까?
(레2: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여호와께서는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고 하시면서 이 소금을 언약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신다.
소제는 알곡을 곱게 갈아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 곧 예배의 한 방법이다. 알곡을 곱게 갈은 가루에는 반드시 소금이 첨가가 되어야 했다.
왜 소제물에 들어가는 소금을 언약의 소금이라 하셨을까? 소금의 특성을 살펴보자.
대표적인 소금의 특성은 부패를 방지하며, 변하지 않으며, 값이 비싸다.
소금은 부패를 방지한다.
바다물이 오랜 기간 동안 썩지 않고 보존되는 이유는 바다물에 소금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소제는 알곡을 곱게 갈아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 곧 예배의 한 방법이다. 알곡을 곱게 갈은 가루에는 반드시 소금이 첨가가 되어야 했다.
왜 소제물에 들어가는 소금을 언약의 소금이라 하셨을까? 소금의 특성을 살펴보자.
대표적인 소금의 특성은 부패를 방지하며, 변하지 않으며, 값이 비싸다.
소금은 부패를 방지한다.
소금을 음식물에 치는 이유는 음식 맛을 맛있게 하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음식물을 오랜 기간 동안
썩지 않고 보관하기 위해서 소금을 쓴다. 우리가 좋아하는 김치나 새우젖등은 소금으로 절여 오랜 기간
동안 보관하여 우리들의 건강을 지키고 입맛을 돗군다. 부패하지 않게 하는 소금을 정결한 언약의 표징으로
삼았다.
소금의 특성은 변하지 않는다.
소금이 물에 녹아 있으면 고체로서의 소금의 형태는 없어지고 대신 짠 맛이 남아 있지만, 물이 마르게 되면 다시 소금이 된다. 소금은 오래 있어도 변하지
않는다. 오래 전에는 바다였지만 노아 홍수 후에 온 지구가 격변하여 골짜기가 되고 움푹 파진 곳에 바닷물이
모여 있다가 증발하여 소금 덩어리가 된 곳들이 지구 곳곳에는 있다. 바위처럼 굳어진 소금 덩어리들을
암염이라고 부르며 여러 용도로 쓰이며 또한 암염을 갈아서 소금으로 쓴다. 변하지 않는 소금을 영원한
언약의 표징으로 삼았다.
고대에는 소금은 매우 값진 것이었다.
지금은 소금을 무척이나 저렴한 값을 치루고 얻을 수다. 하지만
고대에는 소금은 무척이나 비싼 값을 치루어야 가질 수 있었다. 16세기까지 소금은 가장 비싼 식재료였다고
한다. 그 비싼 소금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사람은 귀족, 왕족, 혹은 거부들 뿐이었다. 집에 소금그릇이 있다면 어느정도의 신분을
나타내었다.
여호와께서 우리와 맺은 소금언약은 무척이나 값이 비싼 약속이시다.
여호와는 우리와 같은 죄로 가득한 죄인들과의 언약을 맺으시기 위해서 매우 값진 비용을 치루셨다.
곧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대속물로 보내셨고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 죽게 하심으로 속죄의
값을 치루게 하심으로 우리는 용서함을 받았다.
소금언약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약속을 말한다.
여호와께서는 나와도 변하지 않는 매우 값비싼 소금 언약을 맺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나와는 무엇을 소금 언약으로 약속을 하셨을까?
영원한
나라의 약속
남유다의 아비야 왕은 북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면서 다윗 왕가를 영원토록 지키시겠다는 여호와의 변하지
않는 소금언약을 상기시키며 유다백성들을 위로하며 용기를 준다.
(대하13:5) 이스라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것이 아니냐
아비야 왕이 다스리는 남유다는 군인이 40만명이며 여로보암
왕이 다스리는 북이스라엘의 군인은 80만명으로 유다는 이스라엘보다 군세가 약하였다. 아비야 왕은 군사력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와 맺은 영원한 언약을 의지하며 이 언약을 소금언약이라고
부른다.
여호와께서 다윗과 맺은 영원한 약속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출19:5-6에서 맺은 언약을 근거로 한다.
(출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지키지 못하였다. 이스라엘은 시시때때로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을 믿지 못해서 패역한 일들을 저질렀다. 그래서 결국 출애굽한 자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 갈 수가 없었고 그들의 후손이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았다. 그렇지만 후손들 역시 목이 곧은 자들이라 얼마가지 않아 주님의 명령에 순행하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며 주님의 언약 가운데 머물러 있지 못했다.
히브리 민족처럼 탄압을 받은 민족은 찿아 보기 힘들다.
여호와의 택함을 받은 자들이었지만 주님을 떠난 자들이기에 주님께서 돌보시지 않으셨다.
자신을 버린 자녀들을 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자신의 자녀들이 부모인 자신을 거역하고 배신할때의 심정은 어떠한가!
하지만 주님의 사랑은 끊어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비록 그들은 패역한 자들이었지만 주님의 사랑은 결코 소멸된 것이 아니다.
주님은 히8:8-12에서 이런 약속을 하신다. 이 말씀은 예레미아서 33:31-34에서 인용된 말씀이다.
(히8:8-10)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사람들은 자신을 배반하고 또 배반하며 또 배반하는 자를 보면서 결국에는 관계를 끊어버린다.
그렇지만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택한 자녀들이 거듭해서 거듭해서 배반하고 패역한 일을 일삼아도 차마 그들을 버리고 외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기에 여호와께서는 자비하심으로 자녀들을 사랑하시고 돌보아 주심에 얼마나 감사한가!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사랑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여호와께서는 주님을 중보자로 새 언약을 맺으셨다.
(히9;15)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여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은 이 땅에 오사 나에게 새언약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심으로 나의 모든 죄를 속죄하사 부활하셨다. 그것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생을 유업으로 갖게 되니 참으로 복되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토록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실 것을 소금 언약으로 맺으셨다.
다윗의 자손은 곧 주님을 믿는 주님께 속해 그 안에 주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자들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약속임을 말한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자녀들과 영원한 나라인 이스라엘 곧 하나님 나라를 약속하셨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신다면 바로 그 곳이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며, 나의 육신의 호흡을 마치는 순간 나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기업을 약속으로 받을 것이다. 이 약속은 변하지 않는 여호와께서 나에게 약속하신 소금언약이시다.
주님은 주님의 택함을 입은 나와 같은 자와도 변하지 않는 언약 소금인 새 언약을 맺으시고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생을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생활의 보장
여호와께서 다윗과 맺은 영원한 약속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출19:5-6에서 맺은 언약을 근거로 한다.
(출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지키지 못하였다. 이스라엘은 시시때때로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을 믿지 못해서 패역한 일들을 저질렀다. 그래서 결국 출애굽한 자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 갈 수가 없었고 그들의 후손이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았다. 그렇지만 후손들 역시 목이 곧은 자들이라 얼마가지 않아 주님의 명령에 순행하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며 주님의 언약 가운데 머물러 있지 못했다.
히브리 민족처럼 탄압을 받은 민족은 찿아 보기 힘들다.
여호와의 택함을 받은 자들이었지만 주님을 떠난 자들이기에 주님께서 돌보시지 않으셨다.
자신을 버린 자녀들을 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자신의 자녀들이 부모인 자신을 거역하고 배신할때의 심정은 어떠한가!
하지만 주님의 사랑은 끊어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비록 그들은 패역한 자들이었지만 주님의 사랑은 결코 소멸된 것이 아니다.
주님은 히8:8-12에서 이런 약속을 하신다. 이 말씀은 예레미아서 33:31-34에서 인용된 말씀이다.
(히8:8-10)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사람들은 자신을 배반하고 또 배반하며 또 배반하는 자를 보면서 결국에는 관계를 끊어버린다.
그렇지만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택한 자녀들이 거듭해서 거듭해서 배반하고 패역한 일을 일삼아도 차마 그들을 버리고 외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기에 여호와께서는 자비하심으로 자녀들을 사랑하시고 돌보아 주심에 얼마나 감사한가!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사랑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여호와께서는 주님을 중보자로 새 언약을 맺으셨다.
(히9;15)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여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은 이 땅에 오사 나에게 새언약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심으로 나의 모든 죄를 속죄하사 부활하셨다. 그것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생을 유업으로 갖게 되니 참으로 복되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토록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실 것을 소금 언약으로 맺으셨다.
다윗의 자손은 곧 주님을 믿는 주님께 속해 그 안에 주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자들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약속임을 말한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자녀들과 영원한 나라인 이스라엘 곧 하나님 나라를 약속하셨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신다면 바로 그 곳이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며, 나의 육신의 호흡을 마치는 순간 나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기업을 약속으로 받을 것이다. 이 약속은 변하지 않는 여호와께서 나에게 약속하신 소금언약이시다.
주님은 주님의 택함을 입은 나와 같은 자와도 변하지 않는 언약 소금인 새 언약을 맺으시고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생을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생활의 보장
본문의 말씀에서 여호와께서는 아무런 기업을 받지 못한 레위 지파에게 모든 거제물과 요제물을 주시며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주시며 영원한 소금 언약이라고 하신다. 여호와께서는 아무런 기업도 받지 못한 레위
족속의 자손들에게 영원한 음식의 축복을 주신다.
사람이 어떻게 먹는 것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이 된다.
지금은 형편이 많이 좋아져 먹는 것에 그리 지장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diet 한다고 하며 먹는 것을 제한하며 어떻게 하면 영양있게 먹어 아름답게 보이고 건강하고 균형있는 몸매를
유지하는 것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만큼 요사이는 풍족한 음식의 축복을 받아 먹는 것 자체보다는
어떻게 먹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지구촌의 곳곳에서는 제대로 먹지 못해서 굶어 죽거나 영양결핍으로 바짝 마른 모습들을 우리는
종종 본다. 아직도 먹는 것이 삶의 가장 최우선의 선택인곳은 너무나 많다. 지금은 보릿고개라는 단어를 거의 쓰지
않지만 불과 몇 십년전만 해도 우리 한국은 대대로 “지난해 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바닥이 나고 올해 지은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먹을 것이 거의 없어 거의 굶어 죽을 지경이 되어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궁핍한 나라였다.
사람은 먹지 못하면 죽는다.
먹는 것의 보장은 우리의 삶의 가장 필요한 요소이다.
제사장이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일은 무척이나 성스러운 일이다.
아무리 성스러운 일일지라도 먹어야 할 수 있다. 제사장이 제사장의 직분을 올바르게 행하기 위해서는 음식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하고 성스러운 제사장일지라도 자신들의 가족이 굶어 죽어 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제대로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을까? 만일 먹을 것이 없다면 음식을 얻기 위해서는 세상의 방식대로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아무런 기업을 받지 못한 제사장으로 삼으신 레위지파에게 먹을 것을 주셨다.
아무리 성스러운 일일지라도 먹어야 할 수 있다. 제사장이 제사장의 직분을 올바르게 행하기 위해서는 음식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하고 성스러운 제사장일지라도 자신들의 가족이 굶어 죽어 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제대로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을까? 만일 먹을 것이 없다면 음식을 얻기 위해서는 세상의 방식대로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아무런 기업을 받지 못한 제사장으로 삼으신 레위지파에게 먹을 것을 주셨다.
먹을 것을 얻는 수고에서 벗어나서 제사장의 직분을 올바르게 감당할 수 있게 하셨다.
레위 지파가 특출나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족속으로 삼으신 것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으로 삼으신 레위 족속에게는 아무런 땅의 기업을 주시지 않으셨다. 오직 회막을 돌보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가장 좋은 헌물을 여호와께 드리고 난 후에는 레위 지파의
몫이 되게 함으로 레위 지파가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인도하셨다.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가 성막을
돌보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생활 보장의 축복을 약속하신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레위지파의 아론족속에 속한 특정한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삼았지만, 예수님께서 오신 후로는 주님을 믿는 모든 자녀들을 제사장으로 부르셨다.
(벧전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의 자녀인 왕같은 제사장인 우리에게도 생활보장의 약속을 영원히 약속하셨다.
왕같은 제사장이 된 우리는 여호와의 도우심을 받는다.
나의 어디가 잘 나서 여호와께서는 나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셨을까!
아무리 기를 쓰고 나를 좋게 보아도 왕같은 제사장이 될 그릇이 될 수 없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지
아니한가.
그런데도 주님은 그런 나를 보시면서도 나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나의 모든 것을 인도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시니 감사 또 감사할 수 밖에 없다.
주님은 세상에서 염려하며 안절부절하며 사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6:26,31) 공중의 나는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주님은 세상에서 염려하며 안절부절하며 사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가 숨이 있어 사는 동안 이 땅의 축복을 약속하셨고 또한 그 후에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안식과 평강을 약속하셨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여호와께서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생과 일상생활에서 돌보심을 주님의 자녀와 소금언약으로 영원한
약속을 맺으셨읍니다.
주님을 믿는 주님의 자녀에게는 영원한 나라에서의 영생을 약속으로 주셨읍니다.
제가 아무리 패역한 일들을 일삼아도 주님 앞에 나아와 죄를 고백하고 용서을 구하면 자비의 여호와께서는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영생을 주시겠다고 주님을 보내셔서 영생의 약속의 중보자로 보내셨읍니다. 영원한 평강의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생을 주심에 감사를 드리며 중보자이신 주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립니다. 저의 생명의 끊나는 순간에 저의 영혼은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될것을 저는 믿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영원한 하나님이 계신 나라에서의 영생을 보장을 받을 것임을 여호와께서는 불변하는 언약을 맺으셨읍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자녀를 돌보시겠다고 소금언약을 맺으셨읍니다.
저의 인생의 광야길을 가는 동안 먹고 사는 것에 너무 많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읍니다. 저희들은 연약하여 몇끼를 굶으면 먹는 것에 연연해 하며 어떻게 먹고 살아갈까 근심하여 마음은
마릅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하늘에 나는 새들도 들판의 들풀들도 먹이고 입히며
재우는데 하물며 나의 택한 자들아 하시며 위로하시며 담대함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저의 인생의 광야길을
가는 동안 먹고 사는 것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축복해 주심을 저는 믿습니다. 너무 부하게도
너무 가난하게도 하지 마옵시고 오직 베푸신 주님의 사랑을 늘 기억하는 삶의 호흡을 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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