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14:4-9)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는 흔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축복에 대하여 말하며 그런 축복이 내게도 임하기를 간구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어떤 축복을 의미할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여호와를 기쁘게 하는 자에게 약속된 축복의 땅이이며 그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고 말씀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오해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물질적인 축복으로만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잘 믿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축복을 받아 물질적으로 인간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것이라는 소망을 갖는다.과연 성경에서 말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과연 어떤 땅일까?
성경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산과 골짜기에 있다고 말씀한다.
(신11:11-12)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이 성경구절을 우리가 생각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다시 작성해보자.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평탄하며 물이 풍부하며 기후도 알맞고 풍성한 곡식의 열매를 맺기에 적합하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좀 더 우리가 생각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심히 아름다운 땅으로 다가 온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기록하고 있지 않다.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평탄하며 물이 풍부하며 기후도 알맞고 풍성한 곡식의 열매를 맺기에 적합하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좀 더 우리가 생각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심히 아름다운 땅으로 다가 온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기록하고 있지 않다.
산과 골짜기에 있어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어떤 땅일까?
고대의 이스라엘은 양을 치는 유목민족이다. 양을 치기에 가파른 산과 골짜기는 부적절하다. 또한 곡식을 풍성하게 수확하려면 산과 골짜기보다는 평야가 효율적일것이다. 농사를 지으려면 때에 맞춰 물이 풍부히 공급되어야 하는데 산과 골짜기는 물을 흡수하며 대부분의 물을 흘려 내려보내기에 농사를 짓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물질적인 풍요로움의 축복만을 말하는 것이 아님은 명확하지 않겠는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물질적인 풍요로움보다는 영적으로 축복받은 땅을 의미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란 여호와의 눈이 항상 함께 하며 지키시며 돌보아 주시는 땅이다.
그 땅이 비록 척박하고 황량하고 메마른 땅이지만 여호와께서 항상 함께 하시며 지켜 보시는 땅이다.
만일 골짜기와 산에 여호와의 섭리하심이 없다면 곡식의 열매를 맺기가 어려울 것이고 꿀과 젖을 만들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 사는 자들은 항상 여호와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하며 때에 맞취 비를 내리며 알맞은 더움과 추위를 공급하시는 여호와의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그곳은 절망이요 땅의 풍족한 소산을 맺을 수가 없는 메마른 황폐한 광야일 뿐이다.
고대의 이스라엘은 양을 치는 유목민족이다. 양을 치기에 가파른 산과 골짜기는 부적절하다. 또한 곡식을 풍성하게 수확하려면 산과 골짜기보다는 평야가 효율적일것이다. 농사를 지으려면 때에 맞춰 물이 풍부히 공급되어야 하는데 산과 골짜기는 물을 흡수하며 대부분의 물을 흘려 내려보내기에 농사를 짓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물질적인 풍요로움의 축복만을 말하는 것이 아님은 명확하지 않겠는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물질적인 풍요로움보다는 영적으로 축복받은 땅을 의미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란 여호와의 눈이 항상 함께 하며 지키시며 돌보아 주시는 땅이다.
그 땅이 비록 척박하고 황량하고 메마른 땅이지만 여호와께서 항상 함께 하시며 지켜 보시는 땅이다.
만일 골짜기와 산에 여호와의 섭리하심이 없다면 곡식의 열매를 맺기가 어려울 것이고 꿀과 젖을 만들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 사는 자들은 항상 여호와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하며 때에 맞취 비를 내리며 알맞은 더움과 추위를 공급하시는 여호와의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그곳은 절망이요 땅의 풍족한 소산을 맺을 수가 없는 메마른 황폐한 광야일 뿐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란 여호와께서 항상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는 땅을 말한다.
나의 삶이 척박하고 황량하여 어려움 가운데 있지만, 그 곳에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며 인도하신다면 바로 그 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인 것이다. 재물은 없지만 권세는 없지만 그 마음에 주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평강과 기쁨이 샘솟듯하는 곳에서 천국의 삶을 경험한다면 바로 그 곳이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 아니겠는가.
나의 삶이 척박하고 황량하여 어려움 가운데 있지만, 그 곳에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며 인도하신다면 바로 그 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인 것이다. 재물은 없지만 권세는 없지만 그 마음에 주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평강과 기쁨이 샘솟듯하는 곳에서 천국의 삶을 경험한다면 바로 그 곳이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재물이 많이 있어 원하는 모든 것을 살수 있으며 혹은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권력이 있다할지라도
그 안에 여호와와 함께 하는 참 생명이 없다면 진정한 기쁨과 평안이 없기 때문에 항상 불안해하며 안절부절하며 두려워 하다가 결국은 헛것을 쫓은
인생이 되어 아무런 가치가 없는 허무한 인생이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업으로 받기 위해서는 우선 여호와께서 기뻐하셔야 한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업으로 받기 위해서는 우선 여호와께서 기뻐하셔야 한다.
어떻게
하면 여호와를 기쁘게 해 드릴수 있을까?
첫째,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신11:13-14)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신11:13-14)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여호와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여호와께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태어나서 얼마되지 않아 아이들은 불순종과 교만과 이기심과 거짓을 배우기 시작하며 세살 버릇이 여든을 간다고 평생을 불순종과 교만과 이기심과 거짓이 매일 밥을 먹듯이 삶의 동반자가 된다. 신앙과 지식으로 어느정도 표식이 나지 않게 덮을 수는 있지만 악한 본성이 자리잡고 있어 기회만 되면 불순종과 거짓은 슬그머니 머리를 내밀고 본연의 모습을 나타낸다.
태어나서 얼마되지 않아 아이들은 불순종과 교만과 이기심과 거짓을 배우기 시작하며 세살 버릇이 여든을 간다고 평생을 불순종과 교만과 이기심과 거짓이 매일 밥을 먹듯이 삶의 동반자가 된다. 신앙과 지식으로 어느정도 표식이 나지 않게 덮을 수는 있지만 악한 본성이 자리잡고 있어 기회만 되면 불순종과 거짓은 슬그머니 머리를 내밀고 본연의 모습을 나타낸다.
여호와께 온전한 순종을 한다면 불순종과 교만과 이기심과 거짓은 치료될 것이다.
온전한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갖게 된다. 우리는 교회에서 순종에 대하여 수없이 들어왔다. 그래서 여호와께 순종을 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안다. 그런데 막상 여호와께서 이것을 하라고 하시면 아예 못들은 척 무시를 하거나 설마 이것을 나에게 하라고 하셨을까 하면서 갖가지 이유를 대며 부인을 한다.
온전한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갖게 된다. 우리는 교회에서 순종에 대하여 수없이 들어왔다. 그래서 여호와께 순종을 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안다. 그런데 막상 여호와께서 이것을 하라고 하시면 아예 못들은 척 무시를 하거나 설마 이것을 나에게 하라고 하셨을까 하면서 갖가지 이유를 대며 부인을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하게 신뢰하지 못하기에 온전한 순종을 할 수 없다.
이유가 없는 온전한 순종은 상대방을 온전하게 믿고 신뢰할때에만 가능하다.
또한 온전한 순종은 자기의 의가 없어야 가능하다. 신실한 종은 주인의 명령에 따른다. 죽으라하면 죽을 수 있는 것은 자기가 우선인 자아보다는 주인이 최우선이기에 가능하다.
우리는 신실한 주님의 종이 되기를 원한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나의 자아가 하고자 하는대로 한다면 나는 신실한 종은 결코 될 수가 없다.
주님의 신실한 종이 되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나의 모든 자아를 주님의 십자가에 내려 놓아야 가능하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유가 없는 온전한 순종은 상대방을 온전하게 믿고 신뢰할때에만 가능하다.
또한 온전한 순종은 자기의 의가 없어야 가능하다. 신실한 종은 주인의 명령에 따른다. 죽으라하면 죽을 수 있는 것은 자기가 우선인 자아보다는 주인이 최우선이기에 가능하다.
우리는 신실한 주님의 종이 되기를 원한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나의 자아가 하고자 하는대로 한다면 나는 신실한 종은 결코 될 수가 없다.
주님의 신실한 종이 되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나의 모든 자아를 주님의 십자가에 내려 놓아야 가능하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순종은 가장 먼저 가정을 통하여 배운다.
아이가 자라나면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법을 배운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며 남편은 아내에게 순종하며 서로 순종하는 법을 배운다. 만일 자녀가 자아가 자라나면서 부모를 온전하게 신뢰하지 못하면 그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반항하기 시작한다. 부부간에도 서로 믿고 신뢰하지 못하면 순종하지 않고 온갖 이유를 대며 자아를 나타내려 한다. 순종을 통하여 건강한 가정으로 완성되어져 간다. 믿음 역시 순종을 통하여 자라간다. 우리의 믿음이 주님안에서 온전하게 성장해 가면서 이유를 대지 않고 순종한다.
아이가 자라나면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법을 배운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며 남편은 아내에게 순종하며 서로 순종하는 법을 배운다. 만일 자녀가 자아가 자라나면서 부모를 온전하게 신뢰하지 못하면 그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반항하기 시작한다. 부부간에도 서로 믿고 신뢰하지 못하면 순종하지 않고 온갖 이유를 대며 자아를 나타내려 한다. 순종을 통하여 건강한 가정으로 완성되어져 간다. 믿음 역시 순종을 통하여 자라간다. 우리의 믿음이 주님안에서 온전하게 성장해 가면서 이유를 대지 않고 순종한다.
둘째, 백성을 두려워말라
가나안땅에 사는 거민들은 크고 장대한 족속들도 있었다. 그들은
네피림 후손이며 신장이 장대하였다.
정탐꾼들은 그들과 비교하여 자신들은 메뚜기 같다고 위축되어 두려움으로 가득하었다. 그들과 전쟁을 하면 질 것이 뻔하니 괜히 죽지 말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선동을 한다. 아무리 하나님의 기적적인 일들을 목격했지만 도무지 상대할 수 없는 상대를 만나자 미리 겁을 집어먹고 두려워한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하며 백성들에게 용기를 준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른 10명의 정탐꾼들과 백성들과는 완전히 상반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탐꾼들은 그들과 비교하여 자신들은 메뚜기 같다고 위축되어 두려움으로 가득하었다. 그들과 전쟁을 하면 질 것이 뻔하니 괜히 죽지 말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선동을 한다. 아무리 하나님의 기적적인 일들을 목격했지만 도무지 상대할 수 없는 상대를 만나자 미리 겁을 집어먹고 두려워한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하며 백성들에게 용기를 준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른 10명의 정탐꾼들과 백성들과는 완전히 상반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여호와의 관점으로 약속으로 주신 땅을 바라보았지만,
다른 이들은 세상의 관점으로 눈에 보이는대로 판단하여 자신들은 그들과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 지례 짐작하고 두려워한다.
나의 보는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나의 눈에 보이는 적들은 견고해 보이고 장대해 보인다. 그런데 그들의 실상은 헛것이다.
나의 눈에 보이는 적들은 견고해 보이고 장대해 보인다. 그런데 그들의 실상은 헛것이다.
내 안에는 누가 계시는 가?
바로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주님께서 나와 함께 임마누엘로서 계신다.
여호와는 나와 항상 함께 하시며 나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신다.
바로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주님께서 나와 함께 임마누엘로서 계신다.
여호와는 나와 항상 함께 하시며 나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신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왕에게 추적을 당하여 위기에 빠져 절망하여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서 여호와께 간구한다.
(시55:4-5)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
(시55:4-5)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
우리
역시 나만의 광야길을 가는 동안 수많은 두려운 일들을 많난다.
그런데 성경은 곳곳에서 우리에게 ‘두려워말라’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신다.
우리는 삶에서 수많은 크고 적은 일들을 만나는데 대부분 어려운 일들이며 힘들게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하며 실의에 빠지기도 하며 모든 소망을 잃어버리기도 하며 심지어는 자신의 생명을 자신이 취하기도 한다. 도무지 해결 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어 죽을 날을 기다리며 절망한다. 그럴때마다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은 무엇일까? 곧 ‘나의 사랑하는 자여 너는 두려워말라’ 하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던가!
그런데 성경은 곳곳에서 우리에게 ‘두려워말라’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신다.
우리는 삶에서 수많은 크고 적은 일들을 만나는데 대부분 어려운 일들이며 힘들게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하며 실의에 빠지기도 하며 모든 소망을 잃어버리기도 하며 심지어는 자신의 생명을 자신이 취하기도 한다. 도무지 해결 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어 죽을 날을 기다리며 절망한다. 그럴때마다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은 무엇일까? 곧 ‘나의 사랑하는 자여 너는 두려워말라’ 하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던가!
주님은 우리가 인생의 광야길을 가는 동안 수많은 적들을 만나 고전을 면치못해 두려워하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신다.
(사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43:1-2)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떄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떄로는 너무나 뜨거운 고통의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된다. 떄로는 숨이 막히도록 답답한 물 가운데로 지날 때가 있다. 홀로 있는 것과 같고 아무런 도움도 없는 절박함 가운데 있지만 바로 그 곳에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면 바로 그 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다. 여호와께서 아루런 소망도 없는 절망과 곤고함 가운데 있는 나와 함께 하시며 지키시며 도와주신다고 약속을 하신다.
떄로는 너무나 뜨거운 고통의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된다. 떄로는 숨이 막히도록 답답한 물 가운데로 지날 때가 있다. 홀로 있는 것과 같고 아무런 도움도 없는 절박함 가운데 있지만 바로 그 곳에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면 바로 그 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다. 여호와께서 아루런 소망도 없는 절망과 곤고함 가운데 있는 나와 함께 하시며 지키시며 도와주신다고 약속을 하신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세상의 축복과는 사뭇 다르다.
나무도 별로 없어 물이 고이지 않고 흘러 내려가는 산과 골짜기 같은 척박한 땅이어서, 그곳에 사는 자들은 여호와의 도움심을 바라볼 수 밖에 없으며, 그런 땅에 여호와의 눈이 항상 쳐다 보고 있다면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여호와께서 항상 보시며 기뻐하시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의 기업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을 받기 위해서는 여호와를 온전하게 순종함과 두려워 하지 않는 담대함을 배워 여호와를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
여호와께 온전하게 순종함은 우리의 인생의 가장 큰 숙제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실때에 아무말 없이 잠잠하게 순종할 때 여호와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시시때때로 만나는 세상의 적들을 대하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내 안에는 만군의 주이시며 창조주가 나와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나무도 별로 없어 물이 고이지 않고 흘러 내려가는 산과 골짜기 같은 척박한 땅이어서, 그곳에 사는 자들은 여호와의 도움심을 바라볼 수 밖에 없으며, 그런 땅에 여호와의 눈이 항상 쳐다 보고 있다면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여호와께서 항상 보시며 기뻐하시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의 기업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을 받기 위해서는 여호와를 온전하게 순종함과 두려워 하지 않는 담대함을 배워 여호와를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
여호와께 온전하게 순종함은 우리의 인생의 가장 큰 숙제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실때에 아무말 없이 잠잠하게 순종할 때 여호와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시시때때로 만나는 세상의 적들을 대하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내 안에는 만군의 주이시며 창조주가 나와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여호와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세상의 축복과는 거리가 먼것을 알게 해 주셨읍니다.
말씀에 쓰인대로 젖과 흐르는 땅은 하늘에서 내리는 물을 흡수하는 골짜기와 산과 같은 척박한 땅이지만
여호와께서 항상 감찰하시고 도와주시는 여호와의 임재가 있기에 축복의 땅입니다.
여호와께서 저를 기뻐하실 때 여호와의 임재와 도우심이 항상 있는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읍니다. 여호와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는 여호와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저의 순종함과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입니다.
성령님 저를 도와 주옵소서.
온전하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게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명하실때 온갖 이유를 대지 않고 잠잠히 순종할 수 있도록 이 종을 훈련시키옵서서.
항상 제 안에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세상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도록 은혜를 베푸사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을 간직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령님 저를 도와 주옵소서.
온전하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게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명하실때 온갖 이유를 대지 않고 잠잠히 순종할 수 있도록 이 종을 훈련시키옵서서.
항상 제 안에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세상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도록 은혜를 베푸사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을 간직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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