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9일 일요일

잔잔한 물과 흉융한 물


(8:5-8) 여호와께서 다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느니라. 그러므로 주 내가 훙융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

 르신은 7:1에서 나와 있듯이 웃시야의 손자인 아하스가 왕일때 아람왕이며 또한 르말리야의 아들인 베가는 이스라엘의 왕이다.  앗수루가 호시탐탐 유다를 노리고 있을때 아람 왕과 이스라엘의 왕은 유다를 처들어 오지만 유다는 간신히 물리친다. 그리고 후에 아람과 이스라엘이 서로 동맹하여 유다를 치러 온다는 소식이 들린다. 아람과 이스라엘의 침략을 간신히 막아냈지만 둘이 연합하였다는 소식은 유다백성들의 마음을 마치 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같이 흔든다.  그렇지만 여호와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어 여호와의 뜻을 전한다. 여호와께서는 아람과 이스라엘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구르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렇지만 유다는 이 말씀을 믿지 못하여 동맹한 이스라엘과 아람과 화친하려고 한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두가지 물을 서로 대비하신다.
곧 천천히 흐르는 물인 실로아 물과 흉융하고 창일한 물인 앗수루이다. 앗수루가 곧 이스라엘과 아람과 유다를 뒤덮을 것이라고 경고를 하신다. 천천히 흐르는 물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물이며, 흉융하고 창일한 물은 악을 의미한다.




흉융한 물
(NIV) therefore the LORD is about to bring against them the mighty floodwaters of the Euphrates


깊은 산에 갑자기 큰 비가 내리면 골짜기는 얼마못가 급하고 거센 물들이 흘러 내려 가면서 모든 것들을 휩쓸고 지나간다. 사나운 물결에 무거운 돌맹이들도 자리를 지킬 수 없어 떠 내려가며 물이 지나가는 길에 있는 모든 생명들을 앗아간다.
그 당시의 앗수라라는 나라는 지금의 미국과 같이 최강의 나라이었다. 그 어떤 것도 막아 설 수 없는 거센 물결과 같은 나라였다. 여호와를 믿고 의지하기보다는 아람과 이스라엘을 의지하려는 유다에게 거세고 흉융한 물인 앗수루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될 것이라고 말씀한다.


여호와를 의지하기 보다 세상을 의지할 때의 결과는 결국은 피할 수 없는 흉융한 물을 뒤집어 쓴다.
(17:12) 슬프다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으되 바다 파도가 치는 소리 같이 그들이 소동하였고 열방이 충돌하였으되 큰 물이 몰려옴 같이 그들도 충돌하였도다.


흉융한 물은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파괴와 죽음을 가져다 준다.
흉융한 물을 의지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힘이 있고 거칠게 흐르는 흉융한 물은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것을 갖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겉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는 괭과리와도 같다.

천천히 흐르는 물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기혼의 샘물이 실로아 수로를 통하여 흐르는 물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자신의 성읍을 천천히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이다.


(KJV) Forasmuch as this people refuseth the waters of Shiloh that go softly
(NIV) Because this people has rejected the gently flowing waters of Shiloh


천천히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KJV NIV에서 천천히를 softly 혹은 gently라 표현을 한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물은 급하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부드럽게 흐른다.  주님은 인내를 가지시고 나를 부드럽게 온유하게 보듬어 주신다.

쉴 만한 물 가
대표적인 물이 잠23의 잔잔한 시냇가이다.
(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나의 삶에서 지친 나를 쉬게 하는 잔잔한 시냇가.
피곤하고 힘이 들면 쉴 곳을 찿는다.  짐승도 지치고 힘이 들면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곳에서 쉴수 있는 곳을 찿는다. 우리 역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두 다리를 쭉 펴고 편히 쉴 곳이 필요하다.


주님께서 이르시기를 내게로 와서 너는 편히 쉬어라. 너의 곤한 영혼이 쉼을 얻을 것이라. 이제는 쉴 때가 아니냐. 나를 온전케 하시고 평안케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실로 너무나 크다. 주님안에서 곤한 나의 영혼이 쉬기를 원한다.

회복케 하는 물
주님은 실로암 물을 이렇게 인용하신다.
(9: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괄호를 열고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를 삽입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물이 병을 깨끗하게 고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보냄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병이 나음을 입었음을 말하고 강조하고 있다.  병의 근원을 고치는 것은 실로암 물 곧 어떤 영적인 목사나 신령한 은사를 받은 은사자가 아니라 곧 그들에게 은혜를 주신 주님이라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단지 물인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병을 고치신 것이다.




생명의 물
나의 영혼과 육신을 깨끗하게 회복케 하는 생명수. 생명수의 근원은 곧 예수 그리스도.
하지만 죄성을 갖고 있는 우리의 습성은 생수의 근원인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려 한다.
(2:13)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우리는 늘 하나님께 범죄한다.
생수의 근원이신 주님을 부인하고 멀리하는 것이며 또한 내 안에 나 자신의 웅덩이를 판 것이다. 그런데 그 웅덩이는 터져 있어 생수를 담아둘 수가 없다. 안에서 생명을 담아둘 수 없어 그 삶은 실로 황폐한 삶을 살수 밖에 없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7:20-21)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마음 속에는 두 가지 법이 서로 상충하고 싸우고 있다. 주님의 은혜를 받은 나는 늘 선을 행하려고 하지만 기회만 되면 결국은 죄악을 행하여 참으로 곤고한 자라고 고백을 한다. 내 안에 있는 죄성으로 인하여 우리의 삶은 때로는 황폐하며 영혼은 목말라 한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한다.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주님은 이 말씀을 인용하셔서 요7:37-38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7:37-38)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58: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죄의 본성을 갖고 있는 나의 육신은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한다. 내 속에 있는 죄는 항상 내 안에 있는 생명의 물의 웅덩이를 허물어서 생명수를 간직하지 못하게 한다.


값 없이 주시는 생명수를 마시기만 하면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는 나를 죄악으로부터 지키신다. 내가 정결하여 빛 가운데 거한다면 그 생명의 웅덩이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내 안의 죄가 샘명수가 고여있는 웅덩이를 허물려고 할 때마다 성령께서 주신 생명수는 나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심으로 나를 다시 정결케 하신다.


사막에서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물이다.
사막과도 같은 이 땅의 삶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생명수이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의 원천인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을 지키신다.
(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이라.


(28:17) 나는 정의를 측량줄로 삼고 공의를 저울추로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여호와께서는 공의과 의로서 우리와 셈하신다. 우박과 창일한 물로서 숨어있는 곳을 치실 것이다.  고요히 흐르는 생명의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 흉융한 물을 의지하는 자의 결국은 결국 의와 공의의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 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집을 지은 자들은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마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않으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다윗은 온갖 어려움을 겪는다.
한 때는 왕의 사위가 되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듯 하였지만 얼마못가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도망자로 피해 다니며 생명을 위협받는 깊은 절망의 나락 가운데로 떨어진다. 하지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라고 고백하며 어려서부터 믿어온 자신을 지키시는 여호와를 신뢰한다.  다윗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기를 간구한다. 다윗은 자신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해 주신 여호와에게 감사와 찬양으로 고백한다.


(삼하22:5) 사망의 물결이 나를 에우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지만
(삼하22:17) 그가 위에서 손을 내미사 나를 붙드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생명을 위협하는 폭풍우 가운데에서도 배 한 구석에서 평안하게 주무시던 예수님.
(4:37-39)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 고물에서 베개를 배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니이까 하니 얘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나의 삶 가운데 들이닥치는 흉융한 물.
나를 마구 뒤흔드는 심한 물결 앞에서 어찌할 수 없어 죽게 되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서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을 붙들자. 주님께서는 나와 함께 흉융한 폭풍우 가운데 계시며 나를 돌보신다. 주님의 손을 붙잡으면 주님은 나를 뒤덮으려는 광풍을 보시고 잠잠하라 고요하라 나의 사랑하는 종을 다치게 하지 말지어다하시며 나를 보호하시고 평안의 포구로 인도하신다.


(8)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의 축복이 저의 삶에도 늘 임하기를 간구한다.
나의 삶 또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비록 사망의 음침한 사나운 흉융한 물결이 나를 덮기도 하지만 주님의 섭리하심으로 나를 지켜주신 여호와를 두손을 높이 들고 찬양하며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도 많은 역경의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흉융한 사나운 물이 나를 뒤덮을지라도 그 가운데서도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주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간구할 것이다. 그것이 주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총이다. 


저의 삶 가운데 편만하게 임재하소서.
천천히 흐르는 생명의 물로 저를 감싸 주소서.
임마누엘이신 주님의 축복이 임하소서.
두 손을 높이 드신 주님의 날개 아래에 거하며 늘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이 제게 임하기를 간구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 오면서 수많은 일들을 겪었읍니다.
때로는 지치고 힘이 들때 주님의 팔에 안겨서 영혼의 쉬임을 통하여 평온함을 느끼기도 했읍니다. 그래서 회복의 은총으로 힘을 새로이 얻어 역경을 헤쳐 나갔읍니다. 때로는 무섭게 몰아치는 역풍을 만나기도 하여서 좌절하고 실의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주님은 저와 함께 하셨읍니다.  나의 인생 가운데 찿아온 달갑지 않은 사나운 폭풍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나게 해 주셔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에 모든 어려운 일들을 잠잠하고 고요하게 신 주님의 자비에 두 손을 높이 들고 찬양하나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주신 여호와의 은혜에 모든 영광을 여호와께 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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