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6일 일요일

남은 자의 은혜




(10:20-23)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 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 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된 파멸은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선민인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의 뜻대로 여호와 중심의 삶을 살아야 했지만 여호와를 섬기기 보다는 이방신을 섬기며 진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믿을 수 없는 세상의 강한 자를 의지하며 자신의 뜻대로 살다가 결국은 하나님의 준엄하신 진노의 심판을 받아 대다수는 앗수루의 칼에 스러지고 얼마는 종으로 끌려 가고 나라는 산산히 부셔져 버렸다.

하지만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몇몇을 남겨 두셨다. 여호와께서는 남은 자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구원의 은혜의 축복을 베푸셨다. 여호와께서는 여호와께 불순종하며 이방신을 섬기는 패역한 자들에게 진노를 베푸셨지만, 여호와의 은혜를 생각하고 다시 여호와께 돌아 온 자들에게는 항상 남은 자의 은혜를 베푸셨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롬9:27에서 인용하며 비록 많은 유대인들이 있지만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을 받은 남은 자들은 얼마 되지 않음을 말한다.

(9: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서 얼마는 교회에 나오는 신자들이다. 그런데 교회에 나오는 모든 자들이 구원을 입었는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수 많은 자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구원을 입은 자들은 소수이다.  이들 구원을 입은 남은 자들은 자신의 뜻대로 구원을 입은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택하심이며  은혜이다.
(11:5)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남은 자의 은혜는 나의 선하고 의로운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다. 만일 남은 자의 은혜를 나의 완전한 의로운 선한 행위로 받는다면 그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남은 자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공의이시다.
누구를 택하사 남은 자의 은혜를 주실 것은 하나님의 택하심이다. 누가 무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18: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남은 자의 은혜가 없다면
(1: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패역한 소돔과 고모라는 많은 이들이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진노의 불의 심판을 받아 오직 롯과 그의 딸 둘만 남은 자의 구원을 받았다. 소돔과 고모라는 패역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았다.

현재 우리는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마치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말하지 않던가. 사방을 둘러 보아도 온전하게 주님을 섬기는 모습을 찿아 보기 힘들며 곳곳에서 주님을 부인한다.  자신의 한 때 뿐인 만족을 위한 향락과 타락함과 부정함이 넘친다. 거짓이 난무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이들을 짓밞는 것을 수 없이 본다.

세상은 그렇다치고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주님은 분명하게 동성애를 금하셨다. 그런데 정통성이 있다는 장로교단을 시작으로 거룩히 구별됨을 가르쳐야 하는 교회에서 세상과 동조되기 위해서 동성애가 합법화 되었다. 분명히 주님의 뜻은 아니다.  낮은 자리에 서있기보다는 성도나 사역자나 기득권을 갖기 위하여 온갖 권모술수가 자행되는 곳이 교회이다.  진실된 주님의 사랑을 찿기 위해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떤 부정한 이익을 취하기 위해 교회에 출석을 한다.  주님만이 영광을 받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영광을 받으려는 곳이다. 성도가 많이 나오는 큰 교회나 성도가 없어 쩔쩔 매는 교회나 잃어버린 영혼을 살리는 진정한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야 한다. 하지만 패역한 나를 살리시려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말씀만이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귀를 만족시키려고 그럴듯하게 포장을 해서 말씀을 선포한다. 살았다 하나 실은 죽은 교회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책망을 받을만 하지 않겠는가!  주님의 준엄한 진노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그 부패함이 아마도 유황불이 심판을 받아 멸망한 옛적의 소돔과 고모라보다 심하면 심할 것이다. 그런 세상에 남은 자의 은혜가 없었다면 나는 결코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주님은 패역한 세대이지만 그 가운데서 주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남은 자의 은혜를 베푸셨다.

만일 남은 자의 은혜가 없었다면 나는 세상에 속한 자가 되어 소돔과 고모라에 살던 자들과 같이 영원한 파멸의 심판을 받아 멸망의 자식이 될 수 밖에 없었지만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남은 자의 은혜가 내게도 임하여 주님의 구원을 받은 은혜의 자식이 되었다. 남은 자의 은혜가 나 같은 자에게도 임하였으니 얼마나 주님의 은혜에 감사한가!

오늘도 해가 뜨고 있다.
캄캄하여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어둠을 뚫고 온 세상을 환희 비추는 해가 다시 내게도 비친다.
주님의 은혜가 오늘도 내게 임한다.  오늘도 죄악 가운데서 살 내게도 남은 자의 은혜를 베푸신 주님의 거룩한 강렬하며 모든 것을 투과하는 빛이 오늘도 비춘다.

남은 자로 택하신 주님의 축복이 차고도 넘치나이다.


여호와의 약속
패역함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남 유다가 멸망하여 뿔뿔히 흩어지고 나라들 잃어버렸지만 여호와께서는 흩어진 자 중에서 남은 자들을 다시 모아 한 곳으로 모아 들이실 것이다.

(2:12-13) 야곱아. 내가 반드시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반드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의 양 떼 같이 하며 초장의 양 떼 같이 하리니 사람들이 크게 떠들 것이며 길을 여는 자가 그들 앞에 올라가고 그들은 길을 열어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가며 여호와께서는 선두로 가시리라.

이 말씀에서 여호와의 아픈 마음이 전해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자식의 패역함을 보시고 벌을 내리셨지만 차마 쳐 버릴 수 없는 아버지의 아픈 마음이 전해진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만일 나에게 패역한 자식이 있다면 그 자식의 패역함을 고쳐서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려고 체벌을 가한다. 하지만 체벌을 가하며 같이 아파하며 나의 목숨과 바꿀수 있는 그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그런 못난 자식이 변화되어 온전한 모습이 될 때 얼마가 기쁜가.

주님은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하실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아!  내가 지금은 너를 벌할 수 밖에 없어서 진노의 벌을 내리지만 얼마후에 내가 반드시 너를 다시 모을 것이라. 다시 한 곳 모아서 너희들은 은혜를 베푼 나 여호와를 크게 기뻐할 것이라. 내가 너희 앞서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잃어버린 영혼들이다. 
주님은 잃어버린 자를 찿으시고 다시 남은 자의 은혜를 베푸신다.
(34:15-16)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찿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Am I not a loser?
지쳐버린 영혼,
잃어 버린 영혼.
상처가 나서 곪은 영혼.
병든 영혼.
영혼의 양식을 먹지 못해 곤고한 영혼.
무엇에 쫓긴 듯 늘 불안한 영혼.
삶의 평강이 없어 항상 불평하는 영혼.

여호와께서는 친히 목자가 되어 남은 자들을 욕망과 정욕으로 살진 자와 강한 자로부터 지키신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주님의 은혜로 남은 자들인 곤고한 영혼들을 싸매어 먹이시고 마시우게 하시며 주님의 품으로 안아 주시는 여호와의 절절한 사랑 앞에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다.


이해할 수 없는 남은 자의 은혜
(8: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 일이 그 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야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남은 자의 은혜를 우리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왜 나와 같은 형편이 없는 자에게 여호와의 남은 자의 은혜가 임했는지를 나는 결코 알 수 없다.
왜 나보다 더 악하게 보이는 자에게 주님의 남은 자의 은혜가 임했는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나보다 나아 보이는 자들에게 여호와의 진노의 심판이 임했는데 그들보다 못한 나는 여호와의 택함을 입어 남은 자의 사랑을 받게 되었는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일이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은 나의 눈에는 참으로 기이하다.
도저히 나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여호와의 사랑이 있기에 나도 구원을 입지 않았는가.
나를 택하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할 뿐이다.


남은 자의 은혜를 받은 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20-21)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남은 자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여.
다시는 세상을 의지하지 말자. 세상은 나에게 가지 가지의 상처와 실망과 좌절과 슬픔을 주지 않았던가.
그런 겉에 보이는 세상을 다시는 의지하지 말고 오직 사랑과 긍휼하심으로 나를 감싸 안으시는 만군의 주이신 주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자 

늘 불순종을 한다.
여호와께로 돌아 오지 않고 계속해서 불순종을 하게 되면 여호와의 진노의 심판이 임하여 멸망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여호와를 의지함으로 여호와 앞에 나아와서 불순종을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면 남은 자의 은혜는 반드시 임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남은 자의 은혜를 받은 자는 악을 더 이상 행하지 말고 거짓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3:12)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로 온전하게 돌아가자
남은 자의 은혜를 받은 자는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해야 한다.

남은 자의 은혜가 너무나 귀한 것임을 아는 이사야는 이렇게 우리에게 권면을 한다.
(26:3-4)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주 안에서 심지가 굳어야 한다.
주를 신뢰함에 심지가 굳은 자를 주께서는 평강위에 평강을 더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신다.
나의 마음의 중심에 주님이 계셔야 한다. 주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오직 주 안에서 정결함과 성결함과 거룩히 구별되어야 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남은 자의 은혜를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의 겉모습은 포장이 되어 그럴듯해 보이지만 제 자신은 제가 잘 압니다.
저는 참으로 패역하고 부정한 자입니다.

그런 저에게 남은 자의 은혜의 소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살리시고 남은 자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패역한 저를 택하사 남은 자의 은혜를 주신 주님을 저는 이해할 수 없읍니다.

저의 눈에는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은 기이할 뿐이십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은혜를 베푸신 주님앞에 참된 마음으로 나아가서 주님께서 기뻐하사는 모습으로 살기를 간구합니다.

성령님이여 저를 도우사 남은 자의 은혜를 받기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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