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1일 일요일

감당할 시험 밖에는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시험을 우리는 고난, 연단, 시련이라 표현을 합니다.
삶이 내 생각대로 내가 원하는대로 된다면 시험받을 일이 전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시련은 끊임없이 다가 옵니다.

왜 그럴까요? 두 가지의 시험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나의 그릇된 자아로부터 야기된 시험이며 또 하나는 나의 믿음이 더욱 굳건하게 서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입니다.


우선 나의 그릇된 자아로부터 시작된 시험을 봅시다.

재물이 많은 이들은 늘 풍요로운 생활에 젖어 있다 보니 자신보다 가난한 자들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은 아무렇지 않게 행동을 하는데 다른 이들은 상처를 입습니다. 또한 자신보다 더욱 부유한 자가 의시대며 업신여길때 마음에 큰 상처를 입습니다.  또 재물이 없는 이들은 나보다 재물이 많은 이들이 나를 조금이라도 언잖게 대하면 저 사람이 재물이 많다고 나를 함부로 하나 하며 마음에 상처를 입고 힙들어 합니다.

권세가 있는 자들은 권세를 누림에 익숙해져 아래 사람들을 함부로 대해도 마음에 전혀 부담을 갖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신보다 더욱 권세 있는 자가 자신을 억누루고 함부러 대할 떄 마음에 상처를 입고 연단을 받습니다. 또한 권세있는 자의 아래에 있는 자들은 억압적으로 위에 있는 이들이 말이나 행동을 하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어 자신을 죽여야하는 시험을 받지만 마음에 앙심을 품습니다 

어떤 이가 나보다 잘 나 보일때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나도 잘 나보이려고 온갖 수단을 씁니다. 자신이 잘나 보이도록 변해 갈떄마다 자신도 다른 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습니다.

내 안의 잘못된 자아로 부터 시험을 받는 이들에 성령은 이렇계 말씀합니다.
(1:13-15)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시험을 받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는 나의 욕심으로 인하여 시험을 받습니다. 욕심의 근원은 무엇인가요?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이 나의 마음에 욕심을 심어줍니다. 나의 마음에 욕심이 자리잡게 되어 욕심장이가 되면 조그마한 욕심이 또다른 욕심을 부르고 결국은 더 큰 욕심을 가지려고 발버둥을 치게 되어 사망이 주인 노릇을 하게 됩니다. 이런 시험은 나의 잘못된 마음의 그릇으로부터 비롯되었읍니다. 하루빨리 버려야 합니다. 나를 점점 사망으로 인도하는 잘못된 시험입니다.


그런데 어떤 시험은 나의 잘못된 자아와는 연관이 없이 다가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연단이지요.

왜 이런 일들이 내게 임하였을까?  마치 욥이 어느날 갑자기 엄청난 시련을 겪었듯이 왜 이런 어려운 일들이 나를 힘들게 할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연단의 기간은 축북의 기간입니다. 바로 연단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다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다가왔을때 기뻐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으로 내게 연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삶은 내 뜻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어떤 때는 억울한 사건을 통하여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일을 겪기도 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 죽고 싶을만큼 어려워 하기도 합니다. 단지 주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순교한 자들도 있고 말할 수 없는 고통 받는 자들도 있읍니다. 떄론 원하지 않는 죽을 병을 만나 죽음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재정적으로 너무나 곤고하여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가의 걱정으로 밤을 지새기도 합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연단의 시험에 대하여 무엇을 말씀하는지를 살펴 봅시다 


감당할 시험 밖에는

우리에게 허락하신 연단의 시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하여 연단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시험을 받은 이로는 베드로가 있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시험으로 넘어질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2:31-3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노니

사탄은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베드로에게 예수님에 의심을 갖게 하려고 까부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교회의 반석이기 때문에 베드로가 넘어져서 예수님을 부인하여 교회를 세우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주님은 시험에 빠진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를 하시며 베드로가 시험에서 능히 이기고 교회를 세우는 주님의 제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시험에 빠진 베드로를 돌이켜 쳐다 보시며 붙들어 주십니다.

(22:61-62)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베드로는 죽음을 앞둔 비참한 모습의 예수님을 보는 순간 의심이 들어 예수님을 부인하며 까부림을 당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닭의 울음 소리를 듣자 예수님의 음성이 기억이 나서 회개하고 다시 예수님의 확고한 제자로서 교회의 반석이 될 수 있었읍니다. 아마도 그 순간이 베드로가 다시 태어나는 회심의 순간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로 그 순간에 주님은 베드로를 보시며 함께 하셨읍니다. 베드로에게 임한 시험은 위기가 왔을때 순간 주님을 부인하였지만 곧 다시 주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베드로가 감당할 수 있었던 시험이었읍니다.


저에게도 수많은 시련들과 시험이 있었읍니다. 

힘들었던 지난 날을 되돌아보면 어려움들이 내게 다가왔을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였던 적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김당하기는 너무나 힘들었던 어려움의 시간은 지나갔으며 지금은 기억의 한자리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짧지 않은 인생에서 겪었던 시험들은 지금은 저의 기억의 끝자락에서 겨우 생각해 낼 만큼 제가 감당할 수 있었던 어려움들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성정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제가 견디어 낼 수 있는 어려움만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그보다 힘든 어려움이 제게 다가 왔다면 저는 도무지 견디어 내지를 못하고 파멸의 길로 갔을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에 의심을 주며 혼란을 가져다 줍니다. 
(고후2:11) 우리로 사탄에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다.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 때로는 까불림을 당해 주님을 부인하여 세상의 소욕을 따르는 삶을 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주님 앞에 서서 시험에서 이길 수 있도록 주님께서는 바로 저를 위하여 중보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하며 또 시험에 들었다면 시험에서 이겨낼 수 있도록 주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제 안에 계신 주님께서 자비와 긍휼을 베푸실 것입니다.

임마누엘이신 주님께서 저와 항상 함께 하시기에 저의 인생길에 만나게 되는 주님 앞에 더욱 가까이 나아 가도록 허락하신 연단의 과정을 너끈히 넉넉하게 견디어내며 천성을 향하여 기쁘게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피할 길을 내사

너무나 힘든 상황에 부딪히게 되면 앞 뒤로 꽉막혀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절망만이 나를 휘돌아 가며 감싸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의 앞 뒤가 꽉막혀 나아갈 길이 보이질 않을때 주님께서는 피할 길을 예비하시고 인도하신다고 말씀을 합니다 

(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까?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겪는 고난을 겪으셨기에 우리가 받는 고난을 이해하십니다. 얼마나 뼈를 깍는 고통이 있는지, 나의 마음이 갈기 갈기 씻겨져 나가는지, 모래를 씹는 것과 같은 고통을 주님은 아십니다. 우리가 받는 고통의 아픔을 너무나 잘 아시는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녀인 우리를 도우십니다. 비록 보이지 않으시는 주님이시지만 바로 제 마음에 주님꼐서 임재하시기에 우리는 조금이나마 주님을 느낍니다.  주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고통 가운데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의 고통을 잘 안다. 많이 아프느냐. 내가 너를 낫게 할 것이다. 너를 가로막은 것들을 내가 꺠뜨리고 피할 길을 예비하였으니 조금만 더 참자. 인내하자. 내가 너의 함께 하지 않느냐. 나는 만주의 주이요 만왕의 왕이니라.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당시 최강의 군대인 애굽 군대가 뒤를 쫓아 맹렬하게 죽이려고 추격해 옵니다. 쫓기며 가다 보니 앞에는 홍해가 가로 막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있읍니다. 앞으로도 갈 수 없고 뒤로도 갈 수 없는 진퇴양난입니다. 이스라엘은 살려 달라고 울며 불며 차라기 애굽에 있었으면 이런 고난은 겪지 않을 텐데 하며 불평을 쏫아 냅니다. 이제 애굽 군대의 창칼에 무참하게 죽어야할 일만 남았읍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여호와께서 역사하십니다. 아니 그 이전에도 여호와께서는 항상 함께 하셨지만 절대 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놀라운 일들이 벌어 집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명하십니다.
(14:16) 지팡이을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 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홍해 바다가 둘로 나뉘는 기적이 일어 난 것입니다.
둘로 갈리운 바다 길로 이스라엘은 전원 무사하게 건넙니다. 하지만 뒤를 쫓아오던 애굽 군대는 바닷 길을 막으신 여호와의 권능으로 인해 몰살합니다. 그 뒤로 이스라엘은 애굽 군대의 추격을 더 이상 받지 않고 그토록 자신들을 얽매였던 애굽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었읍니다.

여호와께서 앞뒤좌우로 꽉 막힌 이스라엘에게 피할 길을 터주셨읍니다. 이스라엘은 바다가 둘로 갈라진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도 못하였읍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바다길을 터주셨읍니다.


삶의 위기에 계십니까?
한가지를 확신하십시요. 바로 내 안에 여호와께서 내주하시는지를 마음에 확신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여호와께서 임재하신다면 반드시 주님께서는 피할 길을 마련해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그저 생각 안에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실직적으로 관여하시며 섭리하시며 나를 살리시는 구세주이십니다. 


얼마전에 저는 암에 걸린 고난의 시간을 겪었읍니다.

암은 극심한 고통을 가져다 줍니다. 처음에는 암에 걸렸는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찌르는 고통을 주며 자신의 존재를 나타냅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 암에 걸렸다고 보고합니다. 그러면서 인생을 뒤돌아보며 또한 죽음에 대하여 생각을 합니다. 전과는 다르게 죽음이 보다 실질적으로 다가 옵니다. 주님 앞에 더욱 가까이 나아가기를 간구합니다.

들려 주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주님꼐서는 저를 다시 살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주님께서는 저의 육신을 다시 살리시며 위로를 하셨읍니다. 


암에 극심한 고통이 따르듯 고난에도 엄청난 고통이 따릅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고난은 나의 마음을 꼭꼭 무자비하게 찔러 댑니다. 나의 마음을 사정없이 찔러 대는 고난을 겪으며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바로 임할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바로 임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회복이 됩니다. 저를 고치시기 위하여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고난을 받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1:2-4)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고난 가운데 계십니까? 조급해하지 마십시요. 아무리 울며 불며 안달한다고 해서 고난은 절대 떠나가지를 않습니다. 고난은 그 자리에서 요동하지 않고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역사하실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9:11-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니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찿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저에게 임한 고난은 재앙이 아닙니다.
고난은 결국 저에게 평안과 희망을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저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하는 여호와 앞에 나아가서 간구하여야 합니다. 주님을 찿으셔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길에서 저와 함께 가시는 주님의 실체를 만나게 될 입니다.


(27:3)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리로다

그 어떤 것도 저를 해할 수 없읍니다. 왜냐하면 바로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신 주님께서 바로 제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고난이 다가올 때 감사하십시다. 바로 저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제가 주님앞으로 가까이 오게 하는 은혜의 선물이기 떄문입니다. 만일 저에게 고난의 연단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주님의 자녀가 아닐 수도 있읍니다.  


견디기 힘든 연단의 시간이 왔읍니까. 주님을 믿고 간구하다보면 어느새 고난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고난이 와도 감사하며 기쁘게 받아 들이십시다. 주님께서 고쳐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상하지 않도록 밤낮으로 간수하며 물을 주시며 마르지 않도록 은혜를 베푸십니다.


여호와 하나님

때로 찿아오는 결코 원치 않는 고난의 연단의 시간이 있읍니다.
너무나 힘들어하고 맥이 빠지고 살고자 하는 의욕도 없어집니다.
어떻게 견디어 내야 하나. 이 일을 어찌 해결해야 하는지 막막합니다. 도움을 청할 데도 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데도 없습니다. 아무도 저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습니다.

제가 간청할 데라고는 주님 밖에 없음을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주여 이 고난에서 빠져 나가도록 인도하옵소서. 자비와 긍휼을 베푸소서.

말씀에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을 허락하시며 또한 피할 길을 내 준시다고 주님께서는 약속을 하셨읍니다. 주님 이 약속의 말씀대로 저를 연단의 시험으로부터 건져 내주시고 피할 길로 인도하옵소서.

때때로 말라 비틀어 지지 않도록 흡족한 물을 주시며 밤낮으로 지켜주시는 주님께서 저와 늘 함께 하시며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저는 참으로 주님의 영광을 받은 축복받은 자입니다. 주님 저를 통하여 영광받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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