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가 누구이기에 (Who is this?)
(막4:37-41)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 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놀라운
일을 행한 사람을 보며 “와 이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하며 감탄을
합니다.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신 주님을 만나셨습니까? 주님을 만난 감동으로 “주님 과연 주님은 누구이십니까?” 하며 고백을 하셨습니까?
요사이는 Covid로 인하여 많은 것들이 변했습니다. 대부분 신자들이 교회를 가지 못해 그나마 있던 믿음이 흔들리고 있으며 또 많은 이들은 아예
주님을 떠난 삶을 살기도 합니다. 주님을 떠났어도 큰 부담 없이
아무렇지 않게 삽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님을 온전하게 만나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는 우리의 인생길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탄 배는 잔잔한 곳을 지나다가도 바람이 심히 부는 곳을 지나갈 때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살려
달라며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같은 배에 타고 계셨던 주님께서 잠잠하라 명령하실 때 아주 잔잔하여 졌습니다. 원치 않는 것들이 우리의 인생을 마구 흔들어댈 때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께서 잠잠하라 명하실 때 우리의 인생은 평안의 항구를 향하여 나아갑니다. 나를
평안케 하시는 주님을 만나 과연 주님이십니다 하고 경외하며 주님을 만나시기를 간구합니다.
“예수님은 과연 누구이신가?”
이 질문은 우리뿐 아니라 예수님과 3년간 동고동락하며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함께했던 제자들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 후에 2000년이 지나는 동안 예수님의 이름이 전파된 곳에 사는
사람이라면 가진 질문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으로 주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아직 그들은 주님이 누구이신지를 몰랐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며 천국 복음을 전하시며 더러운 귀신들린 자들의 귀신을 쫓아내시고 각종 병에 걸린 자들을 낫게 하시며 죄인을 부르시는
것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가까이서 보면서 주님께서 가지신 어떤 영적인 능력을 느끼며
주님에 대해서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주님이 자신이 말하는 대로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바로 주님 곁에 있었지만, 그들은 주님의 실체를 볼 수 없었고 단지 주님의 외부적인 모습만을 보았던 것입니다.
주님을 표면적으로 지식적으로는 많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2000년 전에 오신 분이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기독교를 세운 사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주님을
만나 주님을 알게 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대부분 교회를 나가는 사람들 역시 주님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지식적으로 상식적으로 예수님을 만납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에 나간다고는
하지만 진정으로 나의 삶을 변화시키는 주님을 만난 이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예수님은 누구이시지?” 하는 질문을 하며 자신의 삶 가운데 직접 개입하시는 주님을 체험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주님의 자녀로서 더욱 깊은 관계로 들어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주님을 체험적으로 만나지 못한 이들은 주님에 관한 관심이 없어 주님이 주시는 깊은 교제가 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소유할 수 없어 조그마한 일에도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자들이 어떤 주님을 체험했는지를 보십시다.
1. 주무시고 계시는 주님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 말씀에서 육신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수많은 이들에게 천국복음을 선포하셨으며 아픈 이들을 치유하셨습니다. 사역으로 인해 지치고 곤하여 탄 배가 마구 흔들려도 곤하게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제자들의 곤고한 소리에 깨어 목숨을 위협하는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주님은 내가 느끼든지 못 느끼든지 항상 나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성난 파도와 바람이 부는 배에 제자들과 함께 계셨듯이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십니다.
때로는
절망 가운데 있지만, 주님께서 주무시는 듯 주님의 임재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주무시지
않으십니다.
(시 121:3-4)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왜
주님은 주무시고 계신 듯할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평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육신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은 많은 것들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과의 마찰, 많은 이들을 돌보야 하는 부담,
열 두 제자들, 십자가에 달려야 하는 운명 등 많은 것들을 주님은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님은 그런 것들을 염려하지 않았으며 풍랑이 거칠게 이는 가운데서도 평안하게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어떤 상황에서도 심한 풍랑과 바람이 몰아쳐도 평강을 가지십시요. 그 가운데서도 두 다리 쭉 펴고 잠을 자십시요.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때로
우리는 이 세상에 나 홀로인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빠져나갈 곳이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의 자녀이지만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느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무시는 듯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으시는 듯한 주님께서는 나의 실족함을 더는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주여 빠져 거의 죽게 되었나이다”
하는 저의 절규를 듣고는 주님께서는 “바람아 파도여 잠잠하라” 명령하십니다.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 “아
이제 우리는 살았구나” 하고 마음에 위안을 가졌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배에 있었으므로
심한 파도가 몰아치고 바람이 불었어도 아무 염려도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들은 같이 계신 주님을 보지 않고
환경만을 보았기에 자신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셨습니다.
때로는
사방에서 나를 우격다짐으로 덮치는 경험을 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찾아 온다면 바로 그곳이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귀한 축복의 자리입니다. “바람아 파도야 잠잠하라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 하느냐” 하시며 바로 나를 위하여
바람과 파도를 잠잠하게 하시는 주님을 만나십시요. 주님은 결코 주무시지 않으시고 저와 함께 하시며 제가 하는 곤고의 소리를 다 듣고
계십니다.
2. 말씀의 능력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예수님은 병이 낫기를 원해 몰려드는 사람을 피해 호수 건너편으로 가시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 때 심한 바람과 파도를 만나 배에 물이 가득하여 배가 거의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배가 위험에 빠져 모두가 물에 빠져 죽게 되었을 때 제자들은
곤히 주무시고 계시는 주님을 급히 깨웁니다. 그리고 “주여 우리가 물에 빠져 죽게 되었나이다” 하며 주님께 호소합니다. 이에 주님은 사납게 몰아치는 파다와 바람에게 “파도야 바람아 잠잠 하라 고요하라”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거세게 부는 바람과 파도를 향하여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토록 흉용스럽게 자신들에게 내리치던 바람과 파도는 주님의 말씀 한마디로 아주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은 “아주”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예수님의
말씀 전과 후의 너무나 다르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제자들은 주님의 한마디 말씀에 자연도 복종하는 것을 보고 놀랍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비로소 말씀 한마디로 자연이 복종하는 놀라운 주님의 실체를 보았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이신 주님을 바로 옆에서 보며 경험하며 주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주님은
자연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의 말씀에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광풍과 파도로 인해 죽을 고통 가운데서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 여호와께서 잠잠하게 하시고 항구로 안전하게 인도하는 말씀이 시편에 쓰여 있습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이 처한 환경과 일치합니다.
(시107:28-30)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 도다
시편의 말씀처럼 주님은 말씀으로 성난 파도와 바다를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시편의 말씀을 기억하며 이 같은 일을 행하신 주님은 과연 여호와이시구나 느낄 때 제자들은 두렵고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과
함께 배에 타고 있는 예수님은 과연 하나님이심을 알고 경외함으로 두렵고 떨며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말씀이신 주님의 실체를 비로소 만난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에 대한 믿음은 아직 확고하게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후에 주님을 배반하기도 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버리고 멀리 도망을 하기도 하였지만, 주님의 실체를 만난 그 믿음은 제자들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어
있어 그 후에 주님의 참된 제자로서 복음을 세계에 널리 전파하는 교두보 역할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쁘게 감당하며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 누구인지를 만나는 체험을 통해서 비로소 주님의 실체를 알게 된 제자들은 두려워하며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들과 같이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경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두려움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본문에서 두 가지의 두려움을 표현합니다.
하나는
세상의 위력에 육신이 느끼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또 다른 두려움은 주님이 누구인지를 알고 느끼는 영적인 경외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결국은
주님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두려워하다”의 원어는 “경외하다” 뜻을 가집니다.
주님이
누구이신지를 알 때 사람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주를 경외하게 됩니다.
주님을 체험적으로 만나게 되면 놀라고 경외하며 두려워하게 됩니다.
제자들뿐 아니라 사람들은 주님을 만날 때 두려워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친구처럼 대했던 (출33:11) 모세는 하나님을 만났을 때 두려워 얼굴을 가렸습니다.
(출3:6)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칠 때 그곳에 거하는 사람들은
여호와의 소식을 듣고는 마음이 녹았습니다.
(수2: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계시록을
쓴 사도 요한은 주님의 임재를 보고는 땅에
엎드려져 죽은 자 같이 되었습니다.
(계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려져 죽은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사도 요한은 주님의 가장 가까운 친구요
제자입니다. 주님은 사도 요한을 많이 사랑하셨고 이 땅에 계실 때 많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누구보다 주님을 가장 가까이서 교제한 사도 요한이지만 부활하사 영광의 몸을 입으신 주님을 볼 때에 두려워서 주님 발 앞에 엎드려져
죽은 자같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의 실체를 알게 된 제자들은 두려움의 대상이 바뀐 것입니다.
광풍과 거센 파도를 보며 자연의 위협에 두려워했던 제자들은 더는 광풍과 파도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예수님을 경외하며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하는 자에게 여호와는 자비를 베푸사 막힌 것들을 회복케 하시고 다시 살리시며 축복하십니다.
(시33:18-19)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
주님을 두려워 하며 경외하며 교제를 나누십시요. 우리의 영혼과 육신의 평강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41)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주님의
실체를 만난 제자들은 “이런 일을 행한 이가 누구이신가” 경외함으로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토록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며 날뛰던 파도가 주님의 “잠잠하라” 한마디의 말씀으로 완전하게 잠잠해지는 것을 목격한 순간 자연도 자신의 권위로서 복종시키는
주님을 보고 두렵고 놀라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백부장은
자신이 못 박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들과 운명하시면서 지진이 나며 땅이 갈라지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백부장은 예수님의 실체를 만났습니다.
그 후로 그의 삶은 전적으로 변화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며 고백하였습니다.
귀신들도
주님을 보고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하며 두려워하며 고백을 합니다.
나에게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나의
삶을 송두리체 바꾸신 주님을 과연 여러분은 체험적으로 만나셨습니까?
주님을
만나서 주님이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저의 모든 죄를 구속하시고 살리셨다고 주님께 고백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라는 질문을 갖고 살 때,
우리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되며,
주님이
창조주이심을 확신하며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형통의 귀한 축복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자들은
심한 바람과 파도로 자신들이 탄 배 안에 물이 가득 차서 배가 거의 가라앉게 되어 죽게 되었음을 알고 주여 내가 죽겠나이다 나를
살리소서 절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나와 같이 풍랑이 이는 배에 타고 계시지만 주님의 임재를 느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늘 저와 함께하시며 저를 안전한 포구로 인도하십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삶의 어려운 과정을 맞닥뜨렸을때 좌절하며 두려워하지 말게 하옵소서.
저를 위하여 바다야 바람아 잠잠하라 명하시며 저를 지키시는 주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지식적으로 주님을 만나는 것이 아닌 저의 삶에서 체험적으로 섭리하시는 주님을 만난 인생은 실로 복된
인생입니다.
과연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저를 구원하신 메시야이십니다 하며 고백하며 살아 가도록 성령이여 인도하옵소서.
주님을 만난 놀라운 경험을 하였지만 때로는 실수와 실패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주님을 따라가는 아름답고 값진 삶을 살도록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
주님은
늘 저와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저를 덮치려는 날뛰는 바다와
파도를 보시며 “잠잠하라” 명령하십니다.
주님은
온 우주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만왕의 왕이신 창조주이십니다. 창조주이신 주님께서 저를 부르시며 “내 아들아 내 딸아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세상 끝까지 함께 함이니라” 말씀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저의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은 “예수님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늘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늘 갖고 있어 늘 주님께 감사하며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느끼며 살아 이 땅에서 미리 천국의 삶을 경험하며 많은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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