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떄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누가 천국에
들어갈까요?
여러분은
과연 천국에 들어갈까요?
교인이
되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교회에 발을 들이밀고
가끔가다 교회에 가도, 말씀에 순종함이 없어도, 자기 뜻대로 행하며
주님의 뜻을 따르는 행함이 없어도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것은 우리의 착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 (21)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주님은 주여
주여 하는 모든 자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경고하십니다.
교회의 모든 교인이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어떤 교인은 천국에 가지만 어떤
교인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목사도 장로도 집사도 일반 교인도 예외는 없습니다. 호흡이 있을 때 어떤 신앙 생활을 하였는지가 천국에 가는 지 못가는 지의 판단의 기준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입으로 시인
입으로 시인함에는 두 가지의 모습이 있습니다. 가식적으로 아무 뜻 없이 하는 시인함과 진심으로 시인함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하는 것이 있는데 ‘척’을 잘합니다. 있는 척, 아는 척, 잘난 척, 믿음이 있는 척하며 건성 건성 대답을 하지만 정작 행하지는 않습니다.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가식적으로
주님을 믿는다고 시인하는 것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
(잠21: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정직해
보이고 선해 보이지만 실상 그의 마음은 악한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마음 속을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저희의 마음 깊은 곳을 속속들이 보십니다.
(삼상16:7)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다윗을
왕으로 택하실 때에 사무엘은 다윗 형들의 출중한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줄 알았지만, 실상 하나님께서 택하신 다윗은 광야에서 양을 치느라 냄새나고 거친 모습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다윗의 바깥 모습을 보지 않으시고 마음을 보시고 왕으로 택하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며 고백할 때에 주님은 그 고백이 진심인지 아니면 가식적이며 거짓인지를 너무나
잘 아십니다.
입으로만
시인하며 가식적으로 고백하는 자는 주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저희는
주님의 이름을 너무나 쉽게 말합니다.
주님의
이름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주님의 이름에는 사망을 이기신 놀라운 권능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사람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소중한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 나를 살리신 긍휼과 사랑의 주님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인을
포함하여 많은 이들이 주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며 남용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나
입버릇처럼 ‘주여’ 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 조심하세요. 특히 불법을 행하는 지의 특징 중의 하나가 ‘주여 주여’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외람되이 사용되어서는 안됩니다.
주님의
이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무때나 ‘주여 주여’ 하면서 남발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함부로
‘주여 주여’ 하면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면 주님에 대한 경외심과 참사랑이 희석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지 말라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이름 주님의 이름은 무척이나 존귀한 이름입니다.
깊이 생각하며
감사하며 모든 영광을 드리며 마음을 다하여 주의 이름을 부르세요.
아마도 주님은
그런 저희를 기쁘게 보실겁니다.
2. (21)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
(약2:17)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주님은
산상수훈을 통하여 성도로서 행하여 주님의 뜻을 어떻게 행하여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십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을 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의 자아를 십자가에 내려놓아야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고 내 자아가 살아 있다면 결코 우리는 주님께서 명하신 소금과 빛의 자녀로서의 몫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일에
주님의 뜻대로 하는 것보다는 내 뜻대로 나의 욕심과 교만을 채우려고 행합니다.
천국 문은
좁은 문을 통과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에 한해서만 열립니다.
입술로만
믿는 신앙인에게는 결코 열리지 않습니다.
(눅6: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반드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말씀을
들었지만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 내보내며 아무런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말씀을
들었지만,
자신의 형편에 맞게 적용을 하며 원치 않는 악을 행합니다.
(롬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도다
우리는 늘
마음속에서 싸움을 합니다. 저의 마음에는 성령과 나의 자아가 공존을 합니다. 성령은 선을 행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하지만 나의 자아는 나의 욕심과 교만을 채우려고 악을 행하려 합니다. 항상 선과
악의 충돌이 있으며 우리의 마음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항상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선한 성품이
있으며 또한 인간적인 욕정을 이루고자 하는 악한 성품이 공존합니다.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행하도록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큰 능력을 심어주셨습니다. 내 마음의 한구석에서는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하는데 방해를 합니다. 하지만 이겨내고 선한 일을 하게 되면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3. (22)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님은
거짓 선지자가 행한 일에 대하여 부인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그 사람이 불신자이거나 거짓 선지자일지라도 때에 따라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주님은
거짓 선지자나 불신자의 요구도 들어주실 때가 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아 응답이 있지만, 정작 자신은 멸망을 받습니다.
선지자
노릇한 자.
교인인척하는
자.
알맹이가
비어있는 신자.
주님으로부터 쓰임 받는다고 착각하는 자.
주님의
사역에 열심히 봉사하며 헌신하였지만, 정작 주님은 나는 너를 모른다 하십니다.
남다른 능력을
행하였으며 권능을 행하였지만, 주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사람으로부터
인기를 받았으며 높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거짓되고 가식적인 성도를 모르십니다.
4. (23)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오랫동안
주님을 믿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하며 헌신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마지막 숨을 내쉬고 영이 육신으로부터 분리되자 주님은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하시는 말씀을 듣습니다.
헛된 삶을 산 것입니다.
주님 앞에
섰는데 이것저것 올바르게 행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주님께서 나는 너를 안다 하시며
책망을 듣는 것이 얼마나 위로의 말씀이며 축복입니다.
내게서 떠나가라
(눅13:27)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불법을 행하는 자나 행악하는 자는 예외없이 주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
안에만 오직 영생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뜻을 따르며 불법을 행하고 죄악을 행한 자의 결국은 주님으로부터 버림받아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나로부터
떠나가라 하시는 말씀은 곧 영원한 불이 있는 지옥에 가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마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곳은 천국입니다. 하지만
주님으로부터 떠난 곳은 지옥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처음에는 주님을 전한다고 열심으로 섬겼지만, 후에 변질된 줄을 알면서도 내가 지금까지 주님을 위해서 일을 했으니 이해하실 거야 하며 점차로 나락에 빠져들어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린 자에게 주님은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르니 불법을 행한 자야 내게서 떠나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하신다면 어찌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그저 맹목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뜻 또한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어야 합니다.
내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우리의 겉모습이나 행동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마지못해
억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함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함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을 행함에는 타협이 없습니다.
저희는 어떤
일을 행할 때에 나에게 맞도록 타협을 하려 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행함에는 타협이 없습니다.
(롬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죄를 행하여
죄의 종이 되어 주님으로부터 나는 너를 모른다 하시며 버림받지 않으려면 날마다 나의 옛사람을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는 훈련을 잘해야 합니다.
Breakthrough
the barrier.
믿음의 행함에
방해가 되는 것이 있읍니까. 과감하게 깨뜨리고 나오셔야 합니다.
Turn
away from sinful ways.
죄악된 길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죄의 습성이 고쳐져야 합니다.
죄악의 성품이 변해야 합니다.
선한 성품으로 맡기신 일들을 행하며 감당해야 합니다.
믿음이
자라나야 합니다.
갓난아기와
같이 늘 젖을 먹어야 한다면 어려운 일을 맞닥뜨리면 이겨낼 수 없습니다.
이제 잠시
후면 우리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주님 앞에 서게 됩니다.
꺼떡하면서 주여 주여 하던 자들,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고자 했던 거짓 목사와 신자, 주님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함으로 재물과 부와 명예와 교만을 함께 얻은 자에게 ‘불법을 행한 자야,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내게서 떠나라’ 하는 말을 만주의 주이며 만왕의 왕이신 주님으로부터 들으면 않됩니다.
사람의
부귀와 영화는 잠시뿐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지금껏 살아온 시간보다 훨씬 짦은 시간만이 남아 있습니다. 곧 시들어 버립니다. 시들어 버려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주님께서 기뻐하시며 인정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목사나
장로나 집사나 실질적이며 진실된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천국을 소망하며
천국 시민에 합당한 주님의 자녀로서 헹함으로 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네가
그동안 나의 뜻을 행하느라 수고하였구나 이제 나의 영광의 빛으로 가득한 영원한 평강의 축복이 있는 천국에 들어가라’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제 안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며 저의 육신의 소욕대로 따라가지 않도록 저를 인도하여주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자원하여 행하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보다 저의 소욕대로 정욕대로 행하여 주님께서 나는 너를 모르니 내게서 떠나가라 하시는
절망의 말씀을 듣지 않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저의 소욕과 정욕이 솟구쳐 떠오를 때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잠잠케 하시어 온전하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인도하옵소서.
기쁨으로
주님께서 맡기신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도구로 사용되어 지기를 간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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